〈 68화 〉 반으로 갈라져서 죽어
* * *
"내가 예전에 혼혈 인권 위원회라는 애들한테 물어본 적이 있거든?"
다행스럽게도, 타 게이트를 제압하는 데엔 별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를 위해 인력을 할애해두기도 했거니와, 배치된 헌터들의 실력 또한 고만고만했기 때문이다.
축지를 병행해, 열댓개 가까운 게이트를 돌아보는 데에 걸린 시간은 제압 포함 30분 가량.
사실상, 길드 측은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못 해 본 셈이다.
물론, 내게는 편한 일이었다.
이런 이런,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 중 하나라면서 형편없는 실력인걸~
……뭐, 예상했던 대로다.
서아네 길드가 어디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소규모 단체도 아니고, 길드에 속한 이들 전원이 이번 일을 알고 있을 거라곤 처음부터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만한 인원이라면 어떻게 해도 정보가 샐 수밖에 없는데다가, 애초에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니었으니.
반대로, 이만한 규모의 실험이다. 필시 상당한 인원이 관련되어 있겠지.
그렇다면, 상층부는 이 사업에 대한 정보를 어떤 식으로 취급하고 있을까?
물론, 불을 보듯 뻔하다.십중팔구 따로 전담 팀을 만들었으리라.
한두 명도 아니고, 계획에 차질이 생길 때마다 관련인 전원이 호다닥 뛰쳐나가는 건 아무래도 우스꽝스러울 테니까.
거기에, 가급적 고랭크 헌터는 들이려 하지 않았을 테고.
만에 하나, 고랭크 헌터 하나가 죽기 살기로 들이받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리스크가 너무 크다.
길드 상층부 중 일부에 더해, 현장 일을 전담할 헌터들 다수.
추가로, 서아와 같이 어쩌다가 이 일을 알게 된 일부 고랭크 헌터들.
현실적으로 보면 이 정도가 전부 아닐까.
고랭크 헌터라는 전력의 부재가 아쉽게 느껴질 순 있겠지만, 길드 측에서 볼 때 살인멸구 따위는 쉬이 선택할 수 있는 수단도 아니다.
막말로, 몬스터 가축화 한 번 시도해봤습니다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과 몬스터 가축화 시도하다가 애들이 말 안 듣길래 몬스터 먹이로 줬습니다 하는 건 아무래도 파급력이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무엇보다, 저 쪽에서 진정으로 두려워한 건 칼이 아니라 펜일 테고.
어지간한 헌터들은 길드 이름만 듣고도 꽁무니를 뺄 테니까.
허나, 공교롭게도 나는 어지간한 헌터도 아니었고 펜 대신 칼을 들고 있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면, 켄타우로스라는 몬스터가 있잖냐."
"예, 예!"
"사실 켄타우로스의 기원에 관련된 전설들은 참 여러가지가 있거든? 화가 난 여신이 정령들을 변화시켰다거나, 말로 변한 정령이 사람 혹은 신이랑 교미해서 태어났다거나……."
"그, 그렇습니까?"
"그래. 여기서 중요한 건, 켄타우로스는 말로 변한 무언가와 사람같은 무언가가 교미해서 태어난 종족이라는 거다. 신화적인 혼혈이라고 해야 할까?"
"참으로 그럴듯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예."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신기한 일이 있더라고."
"신기한 일이라니요……?"
"내가 혼혈, 그러니까 사람이랑 몬스터 사이에서 태어난 하프들 보면 딱 반만 빡치거든? 그런데 켄타우로스를 보면 존나 빡치더라고."
"어, 어째서일까요?"
"나도 모르지, 인마~"
"네?"
"야, 상식적으로 내가 그걸 알고 있으면 이러고 있겠냐? 가운 쫙 빼입고 화이트칼라 하지."
"허어."
"뭐,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이 있는데."
"뭐, 뭡니까?"
"종족이 어떻고 근간이 어떻고, 시시콜콜하게 하나하나 따지는 것도 귀찮잖아. 그래서 그냥 내가 존나 빡치면 반인반수 몬스터고 덜 빡치면 혼혈인 거라 치기로 했어."
그리 말하며 손에 쥔 쇠사슬을 잡아당기자, 크르륵 하는 울음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이번 게이트에서 확보하는 데에 성공한 반인반수형 몬스터였다.
"그런데, 너희는 왜 그랬냐?"
"예?"
"나야 뭐, 저런 놈이니 그렇다 치고. 설마 이제 와서 혼혈이랑 반인반수형 몬스터의 차이점에 대해 심도 깊은 토론을 나누고 싶어진 건 아니겠지?"
"……."
"왜 이 지랄을 떨었는지 도통 이해가 가질 않는단 말이야. 심지어 머리엔 폭탄까지 박고."
"네? 폭탄이요?"
허어, 잡아떼는 꼴 좀 보게.
아무래도 이 녀석은 최소한의 생명 존중 사상도 없는 사이코패스인 모양이다.
물론 나 또한 몬스터를 보고 있으면 그런 기분이 들기는 했다.
'아니, 안 되지.'
들끓는 살심을 진정시킨다.
게이트 제압에는 성공했지만, 증거 확보율은 얼추 1/3 가량.
다시 말해, 거의 2/3에 가까운 몬스터를 살해하고 말았다.
내가 아니라 길드가.
크윽, 잔인한 길드 놈들!!잘 했다, 더 해라!!
때문에, 지금 나로서는 몬스터의 머리로 수박 화채를 만들 순 없는 입장이었다.
"야, 꼽냐?"
"크르륵!"
"그러게 왜 여태까지 안 죽고 살아있었어, 이 친구야. 진즉 죽었으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을 일 아니었겠어?"
이 친구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아도 되고, 나는 행복해진다.
길드를 제외하면 누구나 즐거운 세상의 완성이 아닐까?
"이, 이러시는 이유가 뭡니까?"
"뭐?"
"무언가 원하는 게 있으실 거 아닙니까!"
아니, 그렇게 말해도.
질끈 눈을 감으며 외치는 꼴이 숫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도 맞았다는 투라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거 참, 궁금할 일도 많네. 어차피 내일이면 직장도 사라질 텐데, 알바천국이나 찔러보고 있지?"
"길드엔 이번 일과 관계 없는 헌터들도 많습니다!"
"그래? 거 참 신기하네, 이런 일에 얽히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헌터들은 이제 없거든. 누가 없애서."
낄낄대며 그리 첨언하자, 담당자 양반은 꾹 하고 입을 앙다물었다.
꼴에 부끄러운 줄은 아는 모양이지?
뭐, 애초에.
'시발,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누가 들으면 내가 사회 정의 구현을 위해 여기까지 왔다고 착각할 법한 말이었다.
허나, 공교롭게도 내가 지금 여기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내 제자한테 협잡질한 게 빡쳐서다.
이번 일을 주도한 길드 내의 실세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대신 이런 쓸데없는 노고를 기울이고 있는 게 바로 그 때문이고.
아니, 그보다 사회 정의 구현을 왜 나한테 시켜? 경찰 불러라, 경찰.
내가 할 일은 어디까지나 이번 일을 공표하고, 그 덕에 길드가 공중분해당하는 모습을 똑똑히 봐 두는 거다.
길드라는 뒷배경도 사라진 상황에서, 여태까지 서아를 겁박하던 녀석들은 과연 어떻게 나올까. 과연 그대로 고압적인 태도를 고수할 수 있을까?
글쎄, 나는 불가능하다고 보거든요 이게~
"애초에, 이런 일을 하는 이유가 뭐냐?"
결국 다시 한 번 물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같은 헌터들을 생각했다면, 오히려 이런 일은 지양해야 정상 아닌가?
그렇게 말하니, 담당자 양반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불그죽죽하게 달아올랐다.
방금 전 얼굴에 철판 깔고 말한 것과는 달리, 적어도 지금 그들이 매달리고 있는 일이 어딜 어떻게 포장해도 인류에 대한 배신이라는 사실은 자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몬스터를 대상으로 한 교류나 가축화에 성공하면 인류에게 얼마나 되는 이익이 발생할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 모르는데."
"……엄청난 이익이 발생합니다. 어쩌면, 당신의 지금 이 행동은 인류의 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일일 수도 있어요!!"
"그래도 싫어."
"어째서입니까?!"
"그야, 재미있으니까."
"예?"
"애초에, 이 세상에서 몬스터들을 한 마리도 남김없이 말소하는 게 모든 인류의 소원이라고."
내가 물어보긴 했지만, 솔직히 별로 관심도 없다.
덕분에, 우리 사이의 대화는 적당히 고전 명작의 대사를 반복하는 나와 거기에서 쓸데없는 의미를 발견하며 전전긍긍하는 담당자 사이의 침묵으로 덧칠되고 말았다.
아니, 것보다몬스터와의 교류? 몬스터의 가축화?
'씨발, 미쳤군.'
만약 저 놈들의 목적이 거기에 있는 거였다면, 정말로 위험할 뻔했다.
세상에, 몬스터를 죽일 때 다른 사람의 허락을 맡아야 하는 세상이라니.그게 지옥 아니냐?
응애 나 애기 박우찬, 몬스터는 죽여야 해.
"뭐, 그건 그렇고. 너 이제 어떡할래?"
"예?"
"아니, 이제 어떡할 거냐고. 그런 신념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나 이거 다 뿌릴 작정이라고 말하지 않았냐? 설마, 그 뒤에도 길드가 널 보호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어떻습니까? 애초에, 이번 일을 공표한다면 길드의 상위 헌터들이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요?!"
"반응 안 할걸."
"네?"
다시 한 번 멍청한 소리를 내는 담당자의 모습에, 쯧 하고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 딱 봐도 인텔리같이 생겨서 잡아둔 건데 이거 완전 책상물림 아냐?
일단, 이런 일을 저지른 내가 이제 와서 길드의 상위 헌터 따위를 두려워할 리 있겠냐는 점은 차처하더라도 말이지.
"거기에, 헌터들이 반응이나 하겠냐?"
"뭣?"
"씨발, 칼밥 먹고 사는 새끼들이 방금 전 네가 말한 인류의 대의 어쩌고저쩌고 하는 이야기를 진심으로 찬동할 거라 생각하는 쪽이 더 이상해. 그냥 어쩌다 보니 알게 됐고, 뭐가 됐던 이득이 있으니까 눈 감았던 거겠지."
목숨이 됐든, 이 사업에 투자를 했든.
그래서.
만약 이번 일이 대대적으로 공표되면 어떻게 될까.
돈줄이 사라져 분노한 헌터들이 눈이 돌아가 달려들기라도 할까?
글쎄, 내 생각엔 절대 아니라고 본다.
그런 식으로 티를 내서야, 자신이 이번 일과 관계가 있다고 자백하는 꼴이 아닌가.
십중팔구, 대다수 헌터들은 이런 참혹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며 자숙의 시간을 가지겠다 어쩐다 하겠지.
때문에, 솔직히 별로 걱정하고 있지는 않았다.
상대는 대한민국 3대 길드 중 하나라는 뭐시기 길드. 여태까지 인류의 방패로서 헌신했던 헌터들이, 사실은 뒤에서 몬스터와의 공조 따위를 추진하고 있었다?
다른 길드에 칼밥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다.
이만한 빅 뉴스라면, 해당 길드 내에서도 관계 없던 헌터들은 물론이요 동종업계 종사자들 또한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대한민국 국민 중 3할이 몬스터에 의해 가족을 잃었다 일컬어지는 이 시대에, 몬스터와의 협력이라니.
국민 정서 상 도저히 허용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덕분에, 헌터들 또한 자신들의 이미지를 보호하려면 서아네 길드에 이를 드러내야 할 테지.
조금이라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 비슷한 녀석이라고 물어뜯길 게 뻔하니까.
하물며, 이만한 흠결이라면 돈 좀 뿌린다고 잠재울 수 있는 수준도 아니다.
언론 통제?
글쎄, 정부 쪽 사람들은 오히려 좋아할 것 같은데?
대침공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를 목전에 두고, 국가의 통합을 위해 헌터들을 영웅시할 수밖에 없었던 정부다.
그 때에야 마침내 영웅들이 나타났다는식으로 이미지만 팔아먹으면 그만이었겠지만, 대침공이 끝난 지금 헌터들은 어마어마한 무력과 인망을 지닌 사회적 인사들이 되었지.
정부 또한 헌터들의 군벌화를 방지하기 위해 백방으로 손을 쓰고 있긴 했지만, 과연 언제까지 억누를 수 있을까.
이토록 위태위태한 상황에서, 갑자기 터진 대형 스캔들?
청와대 대변인 등은 유감을 표하겠지만, 정부로서는 좋아 죽지 않을까.
즉.
"이거 터지면 십중팔구 길드 나가리 되는 거야."
"그, 그럴 수가!"
"그럴 수가 있거든, 이게."
낄낄, 가벼운 웃음을 터트린다.
그럼, 내가 여태까지 이걸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말이야, 이야기를 조금 들어봤거든?"
"예?"
"다른 게이트 관리자들은 전부 자기 사욕만 채우려고 들던데, 우리 친구는 시야가 좀 트였네."
"가, 감사합니다?"
"아니, 뭘. 단순한 사실인데. 물론, 내가 이제 와서 멈출 수는 없어. 하지만, 이렇게 우리 조국의 미래를 염려하는 사람이 저런 파렴치한이랑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건 조금 억울한 일 아닐까?"
"……!!"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다 죽어가던 녀석의 눈에 문득 불이 들어왔다.
"생각해 보라고. 어차피 길드는 해산, 아무도 널 보호해 주지 못할 거란 말이야?"
"그렇군요. 방금 전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건 길드가 널 노릴 수도 없다는 뜻이지."
"그렇게 되겠죠?"
"그럼 괜찮지 않을까? 막말로, 저 쪽이 먼저 배신한 거 아닌가? 이런 일을 하고 있는 주제에 허술하기 짝이 없는 보안 좀 보라고. 만약 고랭크 헌터들이 한 명이라도 여기에 있었다면, 과연 이런 꼴이 났을까?"
"제, 제 말이 바로 그겁니다! 줄곧 그렇게 말했는데, 상층부는 듣지도 않고!"
그야 당연히 안 들어줬겠지.
고랭크 헌터쯤 되면 이미 그 인기는 아이돌이나 다름없다. 그런 고랭크 헌터가 줄창 게이트 안에 죽치고 있다면, 누구라도 수상하다 생각할 게 뻔하지 않은가.
애초에, 고랭크 헌터 한 명 있다고 뭐가 달라질 리 있나. 서아 상대로도 쩔쩔매고 있는 주제에 무슨.
하지만, 그런 착각을 정정하는 대신 나는 녀석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렇다면, 네 의견을 무시한 길드. 너같은 두뇌를 이렇게 홀대한 길드에게, 알맞은 보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그렇습니다. 대의를 위해 투신했지만, 지금 길드의 태도는 영 실망스럽군요. 처음부터 자신의 속내를 채우려던 게 아니었을지 의심이 듭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용기 있는 선택에 박수를 보내지."
좋아, 증인 한 명 확보 성공.
물론, 거짓말은 아니다. 만약 이번 일이 공표된다면, 길드는 이 녀석을 건드릴 여유 하나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건드릴 수 있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넌 뒈졌다.'
이 새끼, 딱 봐도 다른 담당자들이랑 달리 상당히 깊게 관련되어 있던 모양이고.
너무 섭섭해하지 마라, 가는 길 심심하지 않게 길드도 붙여줄 테니까.
그렇게.
대한민국 3대 길드 중 하나를 반으로 쪼개버릴 준비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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