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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66화 (66/371)

〈 66화 〉 반으로 갈라져서 죽어

* * *

물론, 이건 서아와 서아가 속한 길드 사이의 문제다.

서아가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면 모를까, 지금으로선 뭘 해도 시기상조에 지나지 않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같은 하숙집 일원이라는 핑계로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파수를 서는 게 고작일까.

말하자면, 이번 일에 있어 내게 허락된 역할은 서아의 스승이 아니라 같은 하숙집 거주자 정도라는 거다.

녀석도 참, 조금만 더 스승님께 의지하면 좋을 텐데.

아니, 어쩌면 사정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예를 들면, 감시가 붙었다던가.

방금 전, 잔뜩 날이 선 채로 주고받던 대화를 상기한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겠지.

뭐, 어느 쪽이든.

지레짐작은 여기까지다.

독심술사도 아니고, 말하지 않은 속내까지 짚어줄 수는 없으니까.

이제 어린애도 아니고.

"쉽구만……."

그래서.

한 번 말하게 해 봤다.

주변에 널부러진 술잔. 알싸하게 감도는 알코올 내음.

역시 본심을 토로하는 데에는 술자리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소요 시간, 대략 3시간.

서아가 얽힌 사연은 물론, 서아네 길드 내에서 일어난 치정극까지 남김없이 박박 긁어내는 데에는 그 정도로 충분했다.

솔직히 말해, 너무 쉬워서 김이 빠질 정도였다.

서아야, 이 사부는 네가 걱정이다…….

"으어엉."

"그래, 그래. 코 자자."

뭐라고 웅얼대기 시작한 서아의 턱밑을 간질이자, 고로롱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곯아떨어진다.

사실,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마시자고 권유한 건 물론 나였지만, 애초에 술의 힘을 빌리려는 시점에서 당사자 또한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뜻이니까.

뭐, 나로서는 몬스터 냄새가 신경 쓰였을 뿐이지만.

술을 마셔 달뜬 머리로 방금 전 서아가 입에 올린 정보를 정리한다.

예상했던 것처럼, 서아와 길드 사이에 무언가 마법적인 계약이 있었던 건 아닌 듯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서아 정도면 상당한 유명인이고.

길드 입장에선 사건 발설 금지 등, 각종 제약을 걸어두고 싶었겠지. 하지만, 만에 하나 이를 눈치챈 누군가가 길드 측의 부당계약이라 성토하며 걸고넘어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상당히 귀찮아질 수밖에 없겠지.

마법적인 계약이라는 게 척 봐서 티가 나는 물건은 아니지만, 반대로 모든 마력 운용은 좋든 싫든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뛰어난 마력 감응 능력자라면 계약을 눈치채는 일도 불가능하진 않겠지. 어쩌면 계약 당사자만 보고도 계약의 상세한 조건을 간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것보다, 나부터 그러려고 했고.

만약 우리 서아가 부당하게 착취당하고 있기라도 했다면, 그 날로 서아네 길드장 모가지는 내 축구공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처음부터 책잡힐 거리를 만들지 않은 길드의 솜씨는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만일 계약 따위의 마력적인 증거가 남아있었다면, 나 또한 공식적으로 저들을 추궁할 수 있었을 텐데.

허면, 어떻게 할까.

제대로 된 증거는 없다. 있는 건 어디까지나 서아 본인의 증언 뿐이고, 애초에 당사자인 서아부터 내게 도와달라는 말 따위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잠시 고민해 봤다.

이번 일이 밖으로 드러날 경우 미칠 사회적 여파와 그 무게. 그리고 지금 내가 놓인 상황까지.

"우웅, 사부……."

"그래, 그래."

그리고 때려쳤다.

하긴, 내가 언제 그런 거 신경이나 썼다고.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나냐?"

"뭐가 말이죠."

"왜 하필이면 나한테 배우려는 거냐고."

"돈이 없다고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그러긴 했지. 했지만……."

"뭔가요."

"아니, 넌 날 미워하지 않았었나?"

"……."

"너도 그랬잖아.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왔었으면 너희 아버지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내가 너희 아버지를 죽인 거라고."

"나 참, 무슨 소리를 하는가 했더니."

"아니, 야. 나는 나름 진지하게 한 말이다, 이거?"

내게 있어, 서아는 어디까지나 귀여운 첫 제자다.

비록 이번 일로 인해 서아가 나를 미워하게 될지라도 변치 않는 사실이었다.

*

주말이 찾아왔다.

아무리 헌터의 신체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익숙하지 않은 일을 처리하느라 쌓인 정신적 피로마저 무시할 수는 없다.

때문에, 골골대는 서아를 뒤로하고 나는 거리로 나섰다.

"사부, 올 때 메로나~"

서아는 그리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 날 이후로도, 서아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 나한테 말할 건 없느냐 꼬치꼬치 캐묻는 일 따위는 없었다.

그렇게,우리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이번 주를 보냈다.

찰칵, 문을 닫고 하숙집을 나선다. 그렇게 걷길 얼마간, 저 멀찍이 떨어진 담장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는 하연이의 모습이 보였다.

물론, 내가 부탁한 일이었다.

"제 말이 맞죠?"

"그러게."

비록 서아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이번 일엔 아무래도 하연이의 힘이 필요했다.

때문에, 나는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을 하연이에게 공표하고 도움을 청했다.

다행스럽게도, 하연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로서는 물론 고마울 일이었지만, 너무 시원스러워서 오히려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그러자 하연이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요구를 덧붙였다.

지금 이 상황 또한 바로 그 때문이었다.

본래는 아침부터 하연이와 함께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하연이가 부득불 뜯어말린 끝에 바깥에서 따로 합류하게 된 것이다.

당연하지만, 호위 임무를 방치한 건 아니다. 덕분에, 하연이는 약속이 있다는 핑계로 하숙집을 떠난 이후로도 줄곧 내 감지 범위 안에서 서성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서아 언니한텐 숨겨야 하는 일인 거죠?"

"뭐, 그렇지."

"그럼, 따로 나가는 게 좋겠네요."

신기한 건, 정말로 하연이 말대로 되었다는 점이다.

처음에 하연이를 배웅할 때까지만 해도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같이 가자며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리던 서아가, 적당한 핑계로 하연이를 먼저 내보내고 나니 오히려 축 늘어져버렸기 때문이다.

도대체 뭘 하고 싶었던 건지.

"하지만, 설마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엉? 뭐가?"

"힘을 빌려달라 말씀하신 건 물론 기뻤지만, 설마 처음으로 도와달라 하신 게 서아 언니랑 관련된 일일 줄은 몰랐거든요."

그렇게 말하니까 조금 묘하네…….

나중에 뭐라도 하나 챙겨줘야겠다. 당장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뺨에 손을 얹고 그리 말하는 모습이, 정말로 본인조차 모르고 있는 듯했다.

"일단, 걸으면서 설명할게."

"네."

그리고.

나는 다시 한 번 하연이에게 이번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번에 술을 먹이며 살살 긁어본 결과, 아무래도 최근 서아네 길드에 무슨 일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다.

역시 자세한 사정까진 들을 수 없었지만, 한껏 취한 서아가 구구절절 제 속내를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개중에서도, 특히나 한이 서린 목소리로 언급한 게 바로 각종 게이트의 위치였다.

허나, 정작 협회 측의 기록은 영 시원찮았다.

이준구의 답변 또한 마찬가지였다. 요 최근, 서아가 언급한 게이트 중 특이한 움직임을 보이는 장소는 달리 존재하지 않았다.

적어도 기록상으론.

만약 다른 녀석이 그랬다면 나 또한 허풍이라 생각하고 손을 털었겠지만, 이번엔 그럴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보고자 했다.

서아가 언급한 게이트들은 서아가 속한 길드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이런 게이트들의 상세한 정보를 살펴보던 나는,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타 게이트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사상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A랭크 헌터조차 E랭크 몬스터의 공격에 모가지가 날아가곤 하는 것이 바로 이 업계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지나칠 정도였다.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점차 늘어나는 사망률.

그렇게 하루 이틀 누적된 사망자는 도저히 간과할 수 있을 만한 수치가 아니었다.

언뜻 보고 지나쳤다면 단순한 우연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허나, 하필이면 서아가 지목한 게이트만 이런 경향을 보인다는 건 무언가 이상한 일이었다.

뭐, 그렇다고 길드 측에 문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만.

다행히, 내게는 이럴 때 사용할 수 있을 만한 패가 있었다.

요 최근, 나를 고생시킨 예의 '사람 잡는 헌터' 씨다.

까놓고 말해, 녀석의 심문 준비가 끝났기 때문이다.

애초에, 녀석을 감시하는 게 주된 업무였던 티아마트를 교생으로 차출한 시점에서 쉬이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겠지만.

내 개인적인 인맥을 동원해 구한 진실의 묘약.

마시는 순간 진실만을 토해낼 수밖에 없다 전해지는 약물이다.

물론, 이런 게 횡횡하는 세상이다보니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교묘하게 답변을 회피하는 화술 또한 존재하긴 했지만.

아닌 게 아니라, 독심술사들부터 자신들이 능력을 사용하고도 실패한 케이스라면서 영업 뛰고 다니더라.

그러나.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이 쪽의 개인적인 사정.

아무리 녀석이라 해도 미리 대비할 수는 없겠지.

때문에, 나는 어렵게 구한 진실의 묘약을 먼저 이번 사건을 파헤치는 데에 사용하기로 했다.

A랭크 헌터라는 게 어디 밭에서 나는 것도 아니고, 이만큼 각종 조직과 연관된 끄나풀이라면 이런 업계 뒷사정에도 빠삭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실의 묘약을 토해낸 헌터 양반은,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였다.

적어도 약값은 했다고 해야 하겠지.

덕분에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 거고.

"애들은 다 모여 있다냐?"

"네."

과연 그녀의 말대로였다.

저 멀리 어렴풋하게 모여 있는 인영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내가 하연이에게 부탁한 일은 단 하나, 이번 일에 필요한 인원을 따로 불러내는 일이었다.

나중에 흔적이 남지 않도록 말이지.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사정. 거기에, 그 여파는 나 또한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괜히 나한테 얽혀서 좋을 일이 어디 있겠나.

천천히 설명을 갈무리한다.

서아가 술김에 언급한 게이트는 여럿.

그렇다면, 이 쪽 또한 가급적 많은 인원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불씨를 터는 일은 내가 맡아야겠지만, 그 사이 다른 게이트에서 움직이라도 하는 날에는 상당히 귀찮아질 테니까.

요컨대, 게이트 주변 감시 인력이라 할 수 있겠다.

개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인원은 역시 그녀들이었다.

"선생님?"

공터를 향해 걸어들어오는 내 모습을 보며, 이예은은 그리 얼빠진 소리를 흘렸다.

내 추론을 들은 이준구는, 자신을 대신해 여동생인 이예은을 보냈다.

자신이 움직이면 너무나도 눈에 띈다는 점이 하나요, 이런 일을 경험해 둘 필요도 있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저번 일로 생각해 본 건데, 너무 오냐오냐 하면서 키웠던 게 아닐까 싶어."

쓴웃음을 지으며 그리 말하는 녀석에게, 나 또한 애매한 공감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이예은은 지금 이준구가 보낸 헌터들을 대동하고 이 자리에 와 있었다.

류지희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사정.

최승준이나 아카데미 측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혼인회를 부르는 데에는 그녀의 조력이 필수불가결했다.

"허어."

저렇게 감탄을 토하고 있는 황윤하 또한 마찬가지였다.

서아가 지목한 게이트 중에선 윤하가 일하고 있는 해체소 주변에 자리한 것들 또한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이걸 어떻게 은폐해야 하나 고민하던 나는, 차라리 윤하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만에 하나, 내가 지목한 게이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알려줄 수 있겠느냐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모인 인원들을 주욱 둘러보니, 무슨 노가다 작업 반장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짝, 가볍게 박수를 쳐 주의를 환기시킨다.

"이렇게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리 들은 사람도 있겠지만, 이번에 잠깐 여러분들의 힘이 필요할 상황이 있어 이렇게 모여달라 부탁드렸습니다."

"……."

"제 이름은 박우찬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헌터 아카데미 교사 자리를 맡고 있죠."

스윽, 시선을 살핀다.

묘한 반응이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 대부분은 나와 직접적인 연이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나와 면식이 있는 학생들 쪽은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고.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일입니다. 시급 정도는 챙겨드릴 수 있지만, 솔직히 영 내키지 않는다 싶으면 중간에 관두셔도 상관 없습니다."

따로 추궁할 생각도 없다.

애초에, 지금 당장 최대한 많은 인력이 필요했을 뿐이고.

"목표는 단 하나. 제가 지목한 게이트의 감시입니다.말씀드렸다시피, 여러분들이 힘을 써야 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응?"

"그게 당췌 무슨 뜻이오?"

"말 그대로입니다. 설령 중간에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해도, 여러분들이 싸우실 필요는 없습니다. 정말로 감시만 해주시면 됩니다."

……같은 반 친구의 이름으로 자신들을 불러낸 담임 교사가 늘어놓는 궤변을 들으며, 학생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 또한 알 수 없었다.

허나, 다행스럽게도 내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성토하기 위해 나선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덕분에, 나 또한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사이로 맴도는 의문을 답해줄 수 있었다.

"이번에 지목한 게이트 안에서 몬스터 둥지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있어서 말입니다."

얼마 전, 하숙집 앞까지 찾아왔던 알싸한 몬스터 냄새를 떠올리며 나는 그리 말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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