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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64화 (64/371)

〈 64화 〉 인연

* * *

서아가 참가한 첫 수업은, 나름대로 성황리에 끝을 맺었다.

솔직히 말해, 생각보다 편하기도 했다. 다른 점보다, 기초 설명에 드는 시간이 거의 반감된 게 편했다.

나로서는 다소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눈에 밟히긴 했지만, 객관적으로 이 정도면 훌륭한 교생이라 할 수 있겠지. 아무래도 첫 날이라 어색한 부분이 있긴 했지만, 그거야 나중에 경험을 쌓으면 될 일이고.

때문에.

그럭저럭 수업을 마무리한 오후, 나는 서아와 하연이를 데리고 아카데미 지하로 향했다.

"어우, 어색해."

평소와 달리, 깔끔하게 빼입은 정장이 어색한 듯 소매를 만지작대는 서아. 아카데미에 취직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아주머니께서 한 벌 맞춰주신 물건이다. 버는 돈은 비교도 안 되겠지만, 정작 어른들은 이런 세상 속에서도 사짜 돌림 직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어쩌면 이런 세상이니까 더더욱 그런 걸지도 모르지. 적어도 사짜 붙은 직업이면 몬스터랑 투닥거릴 일은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사부?"

"스카우트."

알쏭달쏭한 얼굴로 내 뒤를 따라오던 서아는, 지하에 도착하자 한층 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다소 요란스러운 광경이기는 했다.

급하게 복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남상원과의 싸움으로 이리저리 박살난 지하엔 아직까지 드문드문 파괴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거기에 눈 앞의 출입 금지 테이프까지 더해지니, 마치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몬스터가 폭주한 듯 보이기도 했다.

"엥? 사부, 괜찮아? 출입 금지라는데?"

"난 괜찮아, 인마."

인맥 좋다는 게 다 뭐냐?

주변에 둘러친 출입 금지 테이프를 치우자, 서아는 당황한 듯 어어 하는 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고작 출근 1일차 신입인 자신까지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듯했다.

물론, 나나 하연이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뭐, 나로서는 태연한 얼굴로 출입 금지 테이프를 넘나드는 하연이의 모습 또한 예상 외였지만.

'참 씩씩하게 컸구나, 하연아…….'

덕분에 서아 또한 망설임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조심스레 테이프를 우회하는 서아를 보며, 나 또한 고개를 끄덕인 뒤 방독면을 꺼내들었다.

"좋아, 갈까?"

"아니, 잠깐."

"왜?"

"방금 그거 뭐야."

"뭐가?"

"지금 얼굴에 쓴 그거 뭐냐고."

"뭐긴 뭐야, 방독면이지."

이제 와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얘. 설마 방독면이 뭔지 모르는 건 아닐 텐데.

나도 모르게 의문을 담아 시선을 보내면, 서아는 어지럽다는 듯 이마에 손을 얹곤 조용히 뇌까렸다.

"이거, 내가 이상한 거야……?"

"원래 저래요."

하연이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뭐, 무슨 걱정을 하는 건진 알겠지만.

"야, 아무리 그래도 나 혼자만 살겠다고 방독면을 가지고 왔겠냐? 안에 독 없으니까 긴장 풀어."

"아니, 독이 없는데 방독면은 왜 가지고 온 건데?"

"원래 저래요."

다시 한 번, 하연이는 그리 대답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우리들은 간신히 게이트 안으로 발을 들였다.

황량하기 짝이 없는 게이트 속 풍경이 우리들을 반긴다. 무더운 바람이 가혹하게 불어닥치는 가운데, 그러나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도대체 여기서 무얼 할 생각이냐 되묻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거기엔 선객이 있었기 때문이다.

"으응? 오늘따라 손님들이 많구나."

특유의 사이비 교주같은 말투.

이 메마른 세상에선 한층 더 눈에 띄는, 불꽃같은 머리칼.

그리고, 그 이상으로 어울리지 않는 현대복.

도대체 어디서 구해온 건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검은색 라이더 슈츠 너머로, 보랏빛 눈동자가 요사스레 반짝인다.

"거기에, 한 쪽은 보기 드문 손님이군."

여신 티아마트.

정확히는, 그 분신체.

윤하 납치 사건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 아카데미 지하 게이트에서 머무르던 여신의 단말이 그 자리에 있었다.

*

사실, 원론적으로 따지자면 여신 티아마트가 지금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됐다.

얼마 전, 게이트 관련 이상 사태를 조사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건 문자 그대로 특례.

그조차도 예의 조사가 끝난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육체를 지니고 강림한 성좌와 그 정체. 거기에, 대한민국 정부가 여신을 데리고 있다는 사실까지.

어느 쪽이든, 당장에 불필요한 혼란이 늘어날 만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허나, 모든 사건이 마무리된 이후 여신은 내게 그리 말했다.

"네 녀석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되는 문제 아니더냐?"

……아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물론, 나로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니, 누구 좋으라고?

비록 협회를 상대로 실컷 죽을 쑨 나지만, 최소한의 위기 의식 정도는 있다. 여신 티아마트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극비. 거기다, 그 정체는 사실상 S랭크 몬스터에 준하는 괴물이다. 그런 존재가 마음대로 거리를 쏘다닐 수 있도록 내버려 두라니, 미치지 않고서야.

뭐, 설령 이 녀석이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 해도 내 대답은 변하지 않았겠지만. 뭔가 기분 나쁘고.

사실, 몬스터가 내 주변을 알짱댄다는 생각만 해도 그렇다. 애초에, 몬스터가 좋아할 만한 일이라는 시점에서 내가 반대할 이유는 차고 넘치기도 하고.

그러나.

결국 나로서는 녀석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윤하가 납치당했을 당시 녀석은 협회 측의 누군가가 아닌 내 편을 들어 그들을 격퇴하는 데에 일조했기 때문이다.

사나이 박우찬, 남들에게 빚 따위 지고 살지 않는다.

당연히 구라다. 빚 따위는 얼마든지 떼먹어도 상관없지만, 몬스터에게 빚을 남겨둔다는 사실만 해도 온 몸에 경기가 들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을 뿐.

덕분에, 그 날부터 여신은 마음 놓고 제 분신을 보내기 시작했다.

물론, 뒤늦게 정신이 든 나 또한 어떻게든 녀석을 만류하고자 했지만…….

'아니, 닿으면 징그럽잖아.'

실제로 말리지는 못했다.

그렇게.

녀석을 돌려보내다 못해 아예 저승으로 보내버리고 싶은 나와 이 녀석 사이에도, 극적인 협상이 타결됐다.

나는 녀석에게 주거지를 제공한다. 대신, 녀석 또한 이리저리 쏘다니는 대신 이 주거지를 중심으로 생활한다.

매일같이 분신을 만들기 귀찮았던 녀석 또한 내 제안에 동의했고, 이로 인해 녀석의 분신은 요 게이트 속에서 살게 되었다.

주 업무는 예의 '사람 잡는 헌터'의 감시.

무엇을 숨기랴, 사실 혼인회의 습격 당시 게이트 안에 준비되어 있었던 우리 측의 최종 방위선 또한 바로 이 년이었다.

나와 하연이가 만나게 된 사건을 시작으로, 예의 집단이 얽힌 사건은 무엇이든 쉬이 떠벌리고 다닐 수 있을 만한 물건이 아니다.

때문에, 우리에게는 이러한 사건을 처리할 수 있을 만한 내부 인력이 절실했다.

나나 최승준, 나아가서는 이준구가 있는 만큼 이 쪽이 힘겨루기에서 밀릴 리는 없겠지.

허나, 우리들은 고작해야 세 명.

혼인회를 빼내는 데에 성공했다고는 하나, 각 분야에 온갖 영향력을 동원할 수 있는 저들에 비해선 압도적인 소수다.

막말로, 저 쪽이 발을 묶을 생각으로 고랭크 헌터 여럿을 동원하면 이 쪽으로선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겠지.

지지야 않겠지만, 만일 그 사이 저들이 아카데미에 테러라도 저지른다면?

우리로선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이 녀석과의 오월동주는 우리들에게도 꽤나 고무적인 결과였다.

'내 기분만 제외하면 말이지.'

확실히, 예의 집단은 여태까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우수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신 티아마트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 묻는다면 썩 회의적인 대답을 돌려줄 수밖에 없다.

성좌가 지상에 강림했다는 건 단순히 발이 넓다고 알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설령 알고 있다 해도 마찬가지였겠지.

저토록 변덕스런 여신이, 이제 와서 우리 편을 들고 있을 거라 예상할 순 없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해 보면, 오히려 이 녀석이 우리를 돕고 있는 까닭을 모르겠다.

솔직히 별로 관심도 없고.

한동안 방에서 먹고 자고 싸다 보니 뒤룩뒤룩 살이 오르기라도 한 모양이지, 뭐.

그렇지 않으면, 저번에 먹었던 치즈 버거가 마음에 들었다던가?

뭐, 어느 쪽이든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

무언가 속내가 있다면, 나로서는 오히려 좋을 일이다. 마음 놓고 죽여버리면 그만이고.

사실, 내심 배신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거기까진 좋았지만, 슬슬 녀석이 지루하다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줄창 게이트 안에서 빈둥대고 있어야 하는 입장 때문이겠지.

하여튼, 존나게 변덕스럽다니까.

그런 기분도 들긴 했지만, 마침 타이밍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달리 재미있는 일은 없을까 쏘다니고 싶은 기분을 온몸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녀석과, 교생을 찾아 헤매고 있던 나.

새로운 협상이 타결될 여지는 충분했다.

"야, 너 교생 해볼래?"

"할래."

그리고.

총 소요 시간, 1분 남짓.

협상이 체결되었다.

실로 쾌거였다.

"헌데, 교생이라는 게 뭐지?"

"교과 과정을 이수하기 위하여 일선 학교에 나가 교육 실습을 하는 학생."

"과연. 사전에서 떼어 온 듯 적확한 설명 고맙구나."

읏차, 가벼운 태도로 엉덩이를 떼고 일어서는 여신.

……농담처럼 말하긴 했지만, 섭외 자체는 진심이었다.

여하간, 이 녀석은 성좌.

지금 이 시대에 있어, 별자리 너머로부터 인류를 굽어보고 있다 여겨지는 오래된 신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좌들의 능력은 십중팔구 축복에 특화되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이었던 존재를 헌터로 각성시키는 등, 실로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지.

개중에서도, 이 녀석은 특히나 더했다.

저 메소포타미아 신화 속, 자신이 홀로 빚은 자식들을 병사로 삼아 단독으로 전쟁을 벌였다 여겨지는 여신.

그 능력은, 여타 성좌들과 비교해도 자신의 휘하에 속한 이들에게 가호를 내리는 쪽으로 치중되어 있다.

보조 계통 능력에 있어, 이 녀석만큼 뛰어난 교사는 드물다는 뜻이다.

문제는, 최승준에게 이 녀석을 뭐라고 설명하냐는 건데…….

과연 어떨까.

혹시, 최승준은 이미 녀석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

잘 모르겠다. 확실히, 최승준은 이 대한민국 내에서 손꼽힐 만큼 대단한 배경을 가진 녀석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들어봤을 법도 하지만, 반대로 예전엔 협회와 반목하고 있다는 소리가 공공연히 나돌 정도로 독자적인 노선을 걷기도 했지. 그렇게 생각해 보면, 선뜻 알려주기도 힘들지 않나 싶기도 하고.

'뭐, 됐나.'

생각하기 귀찮아졌다. 대충 중동계 노동자라고 하자.

한국 대기업, 외노자 좋아해.

"저기, 사부? 이 사람은?"

"응?"

허나, 아무래도 서아는 지금 이 상황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한 듯했다.

뭐, 사실 나름 면식 있는 하연이도 이 녀석의 정체에 대해선 따로 들은 적 한 번 없다만…….

마침 잘 된 일이지. 서아나 하연이나, 어차피 아카데미에서 생활하다 보면 이 녀석과 마주칠 수밖에 없을 테니.

이미 얽힐대로 얽힌 하연이는 물론이요, 서아 또한 얼굴 정도는 미리 익혀두는 게 좋겠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서아는 내 첫 번째 제자다. 이런 일에 끌어들이는 건 내키지 않지만,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고려하면 최소한 얼굴도장은 찍어두어야 할 테니까.

막말로, 내게 있어선 헌터 협회의 보안이나 사회의 혼란 따위보다 제자들의 안위 쪽이 훨씬 더 중요하고.

"네 직장 동료."

"으, 응?"

"너랑 같은 교생 후보라니까. 어차피 곧 만나게 될 거, 미리 소개나 시켜주려고 했지."

"아니, 그게 아니라!"

"또 뭐가?"

"그래서, 결국 이 사람이 누구냐 이거지! 뭐야, 사부. 언제 이런 미녀랑 알고 지냈어?!"

"오, 뭐냐. 네 녀석의 제자라기에 십중팔구 미치광이라 생각했었는데, 좋은 녀석이 아니냐."

"넌 좀 닥쳐."

굳이 따지자면 너보다 얘를 먼저 알았는데.

그렇게 답하는 대신, 나는 조금 머리를 굴렸다.

어디 보자.

말마따나 앞으로 직장 동료가 될 사이. 가급적 설정엔 문제가 없는 편이 좋겠지?

"중동계 이민자 티아 빈트 라흐만 빈 압둘라 무함마드 씨. 외국인이니까 잘 챙겨줘."

"아, 그렇구나. 저기, 안녕하세요."

"미친놈아!!"

"크아악!!"

서아의 인사에 답하는 대신, 그대로 내 정강이를 걷어차는 여신.

물론 특제 정장을 입고 있었던 탓에 별다른 데미지는 없었지만, 옷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몬스터와 접촉했다는 사실에 그만 공중제비를 돌고 말았다.

"아니, 씨발!! 왜 또 지랄이야?!"

"미친놈아, 지랄 안 하게 생겼느냐? 응?"

"너 중동권 출신 맞잖아, 또라이 년아."

"그럼 넌 이 나라 출신이니 빨갱이라고 부르면 쓰겠느냐?"

그대로 나자빠진 내게 다가와 조곤조곤 쏘아붙이는 여신.

거 참 향토적인 언어 사용이었다.

"게다가, 오랜만에 방문한 주제에 계집이란 계집은 모조리 끌고 왔구나."

"미친년아, 쟤들 다 내 제자야."

"하긴. 생각해 보면, 예전부터 여제자들만 데리고 다녔구나."

"네가 모를 뿐이지, 사내놈들도 있거든?"

"닥쳐라. 하여튼, 사내란 것들은. 젖가슴만 보면 눈이 돌아간다니까."

"나는 방금 네가 사용한 천박한 어휘 쪽에 놀랐다고."

역시 미개한 고대인이로군. 이 시대에 그런 표현을 사용하다니, 아주 고소당하고 싶어서 작정을 했구만?

아니, 여신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고자 할 땐 여자를 대동하지 않는 게 좋다는 건 비교적 대중적인 관념이긴 하지만.

"하물며, 어딜 봐서 제자라는 게냐?"

"엉?"

"여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도 있겠다만, 저 녀석들이 널 보는 시선은 절대로 그런 부류가 아니니라."

흘끔, 뒤쪽을 돌아보며 그리 말하는 여신.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과부 여신이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확실히 믿음이 가는걸."

"씨발아."

"애초에, 그런 거 아니라니까."

"본인은 네 녀석이 뭘 믿고 그렇게 자신만만한지 모르겠구나."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서아는 날 미워하거든."

"허어?"

"너라면 자기 애비를 죽인 놈한테 그런 감정을 품을 수 있겠냐?"

"씹가능."

"돌겠네 진심."

나름대로 비장한 분위기를 잡으며 그리 말해봤지만, 고대 신화 출신인 여신님께선 그렇게 답하실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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