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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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는 대응 훈련 뿐이었다.
갑자기 나타나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위축되는 일 없도록, 설정한 모습 그대로 달려드는 몬스터들.
울창한 밀림 위쪽에서 덮쳐드는 환각을 상대로, 제때 반응하지 못한 학생들이 사방팔방으로 나동그라진다.
공교롭게도, 몬스터를 먼저 발견하고 기습에 성공한 조는 없었다.
이예은이 착실하게 대답한 점도 있어, 시야와 위장에 한해선 몬스터와 거의 동등한 조건을 제공했음에도 마찬가지였다.
'뭐, 당연하지.'
학생들에게 제공된 건 어디까지나 암시경과 위장 도구 일체.
그에 비해, 몬스터들이 갖춘 감각은 날 때부터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응한 결과물이다.
제대로 다뤄본 적 한 번 없는 도구와, 타고난 오감.
어느 쪽이 익숙할까 물으면 당연히 후자다.
하물며, 이예은이 언급한 건 어디까지나 사전 준비.
현장에 도착하고 나서 준비해야 할 사항에 대해선 여전히 무방비했다.
물론, 일부러 말해주지 않은 건 아니다. 보다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지.
막말로, 고작해야 하루.
학생들이 습득할 수 있는 내용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지금은 일단 대형 몬스터의 공격에 익숙해지는 쪽이 먼저다.
'게이트를 쓸 수 있었다면 조금 편했겠는데.'
체단실이 아무리 호화롭다 해도, 결국은 환각.
처음이야 어떨지 몰라도, 한 번 환각이라는 걸 자각하고 나면 느슨해지고 마는 게 또 사람 마음이다.
직접 몸에 와닿는 게 있는 실습과는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당장 몬스터를 상대로 어떻게 싸워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이 태반인 상황.
허나, 만일 이게 실습이었다면?
십중팔구 누군가는 이상한 점을 눈치챘을 테지.
대등한 조건이라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몬스터 측이 항상 선수를 취하는 것일까?
녀석들이 불성실한 태도로 임하고 있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실제로 상처가 남는 실습에 비하면 다소 허술한 태도임은 부정할 수 없다.
툭 터놓고 말해, 누구라도 아픈 건 싫지 않겠는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람은 고통에서 배우는 법이다.
"야, 이거 발라."
"뭐? 진심이야?"
"그럼 진심이지 농담이냐? 막말로, 어차피 환각인데 뭐 어때?"
뭐, 나쁘지 않은 발상도 있었지만.
예를 들어, 황윤하와 이예은 조다.
이번에는 내 쪽에서 임의로 조를 섞어 보았지만, 몬스터에 대한 지식은 역시 윤하가 눈에 띄게 빼어났다.
아르바이트 덕도 없잖아 있겠지만, 애시당초 본인이 몬스터의 생태에 관심이 생긴 게 크겠지.
물론, 아무리 환각이라 해도 망설임 없이 몬스터의 똥을 안면에 부비는 건 여고생으로서 어떨까 싶다.
'천하대장군 감이구나, 윤하야…….'
단, 틀린 행동은 아니다.
익숙하지 않은 장비와, 날 때부터 사용한 오감의 차이.
단지 그 뿐이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몬스터 측이 우세한 상황.
이런 상황이라면, 몬스터 측에게 시각과 별도로 감지 기관이 존재하는 게 아닌가 의심해보는 쪽이 합리적이다.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건 역시 후각 쪽이겠지.
몬스터는 물론이요, 야생동물 또한 인간의 체취엔 다소 민감한 편이니까.
지나치게 낯선 냄새라는 게 그 이유다.
토벌에 나설 때, 향수 따위를 뿌려서는 안 되는 이유 또한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현장의 진흙 따위를 이용해 체취를 감추는 건 상당히 효과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겠지.
'점수로 따지자면 80점 정도일까?'
저래서야 위장 크림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게다가, 만일 변에 독성이 있다면?
이런 상황을 대비해, 헌터들은 주로 향낭을 사용한다.
문자 그대로, 각 환경에 어울리는 냄새를 뿌리는 향주머니다.
물론, 그 경우 밀림이냐 사막이냐에 따라 필요한 향이 다르다 보니 아무래도 여러 향낭을 구비해둬야 하겠지만.
어느 쪽이든, 체취를 감추기 위해선 현장의 환경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향낭을 제공하지 않은 이유 또한 바로 거기에 있었다. 게이트에 대한 정보가 있다면 모를까, 제대로 된 정보 하나 없이 게이트에 투신해야 할 상황이 온다면 이에 대처하는 방법 또한 익혀두어야 할 테니까.
사실, 비가 오기라도 하는 날에는 향낭도 사용할 수 없고.
"대신, 너도 마력 낮춰."
"응?"
"네 뜻은 알겠어. 하지만, 마력이 너무 난잡해. 이래서야, 아무리 위장해도 들킬 수밖에 없을걸."
"오, 오오. 그래서, 어떻게 하는 건데?"
"……기다려 봐. 알려줄 테니까."
마지막까지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장렬한 똥 폭탄 세례 앞에 무릎을 꿇은 이예은이,울적한 목소리로 그리 중얼거렸다.
다소 비참한 광경이긴 했지만, 정답이었다.
시각과 후각을 포함한 육감에 더해, 짐승적인 육감.
거기에, 추가로 마력을 감지하는 기관까지.
몬스터가 동원할 만한 색출 방법은 대개 그 정도다.
개중에서는 마력 감지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다니는 거인종 또한 있지만, 이런 밀림에서 서식하는 몬스터라면 십중팔구 마력 감지 능력을 갖추고 있기 마련.
그렇기에, 게이트 공략에 나서는 헌터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마력을 은폐할 줄 안다.
숨을 죽이듯이, 자신의 마력을 낮추는 것이다.
만약 실수라도 한다면 몬스터의 공격에 능력을 발휘할 새도 없이 상하체가 분리되고 말겠지만, 적어도 기습을 허용하는 것보단 낫다.
거기에, 점차 익숙해지면 밖으로 새어나가는 마력을 억누르며 능력을 행사할 수도 있고.
육체 강화 능력자만 신체 능력을 단련하는 게 아니듯, 마력 감응 능력자가 아니더라도 최저한의 마력 조작 능력은 익혀두어야 하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이예은의 마력 조작 능력은 상당히 훌륭했다. 자신의 마력을 깔끔하게 감춘 데에 더해, 전신을 덮은 염동력 또한 조금도 쇄하지 않았으니까.
그에 비해, 윤하 쪽은 자신의 능력을 해제하는 게 고작이었지만.
뭐, 능력이 그렇듯 사람마다 적성은 다른 법. 적어도 막무가내로 돌진하는 쪽보단 낫다.
스스로의 마력을 제어하지 못할 경우, 거대한 마력 덩어리인 헌터는 일반인보다 훨씬 선명하게 보이기 마련이니까.
"그럼 내가 막는 사이, 네가 뭐라도 해 봐. 상의 끝."
"자, 잠깐. 나 그런 거 잘 못한단 말이야."
"시발, 뭐 어쩌라고. 그럼 내가 방패라도 던지리?"
"아, 알겠어. 해 볼게. 욕하지 마……."
능력의 상성만 보고 짠 조합이었지만, 의외로 둘의 호흡도 나쁘지 않았다.
실제로, 가장 먼저 몬스터를 쓰러뜨린 게 바로 이 둘이었으니까.
체단실 내에 비치된 방패를 엉거주춤 들고 몬스터의 강습을 막아낸 윤하. 그 뒤에서 염력을 휘두른 이예은.
깔끔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퍽 시원스러운 승리였다.
"둘 다 축하해. 첫 번째 통과다."
다가가며 그리 말하자, 몬스터와 투닥거린 피로에 뻗어 있던 윤하가 조용히 브이자를 그렸다.
반대로, 추욱 늘어져있던 이예은은 불현듯 고개를 쳐들었다.
"처, 처음이요?"
"옹야."
왜 저리 호들갑인가 싶었더니, 그럴 법도 했다.
여하간,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난 이후로 줄곧 죽을 쑤고 있던 이예은이다.
물론 다른 애들 입장에서 보자면 충분히 상위권이라 할 수 있는 성적이었지만, 아무래도 본인으로서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겠지.
휙휙, 재빠르게 주변을 둘러보던 이예은의 시선이 아직까지 몬스터와 투닥대고 있는 정필연에게 닿았다.
"크아악!!"
만화에서 나올 법한 과장스러운 비명과 함께, 다시 한 번 선공을 당해 나뒹구는 정필연.
그 옆엔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하고 있는 하연이가 보였다.
하긴, 필연이도 하연이도 정면에서 몬스터와 마주친 적은 있어도 기습당하는 상황은 처음일 테고.
어쩔 수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고개를 돌리자 보이지 않게 주먹을 움켜쥐고 있는 이예은의 모습이 보였다.
"아주 좋아 죽네, 죽어."
"아, 아뇨. 잠깐만요. 그런 게 아니라……."
"됐어, 인마. 좋을 때지."
피식, 그리 말하며 주변에 걸터앉았다.
이예은의 승부욕은 나 또한 알고 있었으니만큼, 이런 상황에서 기를 죽일 필요는 없겠지 싶었다.
"놀랐어요."
"뭐가?"
"신서아 헌터 말이에요."
"왜? 내가 사부라니까 놀랍든?"
"아뇨, 제자가 있으실 거라곤 생각 못 했었거든요."
그리 말하며, 저 멀리 시선을 던지는 이예은.
거기에는 다른 학생들의 질문에 한창 쩔쩔매고 있는 서아의 모습이 보였다.
서아에게도 기척을 죽이는 법 정도는 진즉에 가르쳐두었지만, 아무래도 할 줄 아는 걸 남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설명해 주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인 모양이다.
하긴, 그런 점을 실감해보라고 시킨 일이긴 하다만.
"혹시 먹이는 건 아니지?"
"정말로 놀랐을 뿐이에요."
"야, 놀라기는 내가 더 놀랐지. 내가 너 그 전법 때려치우게 하려고 한 달을 썼는데, 이번에 윤하한테 욕 먹더니 또 잘만 쓰더라?"
역시 사람은 욕을 먹어야 하는 법이란 말인가.
방금 전, 윤하가 몬스터의 공격을 막아내는 사이 사출한 염동력 화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식으로 능력을 쓸 생각은 없다며 징징거리던 이예은의 모습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겠지.
허나, 정작 당사자인 이예은은 멋쩍은 태도로 홱 고개를 돌렸다. 그 옆으로는 영 부끄럽다는 듯 달아오른 뺨이 보였다.
"……윤하 말 듣고 쓴 건 아니에요."
"그래. 농담이다."
"진짠뎅."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예의 실습 이후, 이예은은 본디 자신이 능력을 사용하던 방식을 벗어나 다양한 방법으로 능력을 활용하기 시작했으니까.
본래부터 재능은 있었고, 거기에 제 신경을 튀겨버리는 미치광이 전법을 연습하고 있었으니 컨트롤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분 거냐? 오빠가 뭐라고 했어?"
"아뇨."
진짜냐.
새끼, 드디어 일 좀 했네 싶어 감탄하던 마음이 순식간에 증발하고 만다.
이준구, 그 새끼는 도대체……?
그러나, 내 의문에 답하는 대신 예은이는 찬찬히 내게 시선을 맞추었다.
일전 보았을 때보다 한층 맑아진 하늘빛 눈동자가 나를 마주 보았다.
"그냥, 알려줬어요."
"뭘?"
"예전에 있었던 일."
그게 뭔데.
하지만 이번에도 대답은 없이, 그녀는 짧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선생님. 이번 시험 결과, 기억하세요?"
"어? 어어, 그래. 좀 특이하더라."
휙, 갑자기 달라진 화두에 어영부영 대답했다.
예은이의 경우, 불타는 도서관 비스므리한 장소에서 도마뱀 같은 몬스터를 상대로 추격전을 벌였던가.
처음 연습할 때만 해도 다른 애들처럼 당황하던 그녀가, 시험 당일엔 침착하게 대처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였어요."
"엉?"
"제가 누굴 닮고 싶어 했던 건지, 누굴 닮아야 하는 건지……. 오빠랑 이야기를 나눴었거든요."
"그, 그래. 무슨 소린지 전혀 모르겠구나."
"당연하죠. 선생님이 무슨 소리인지 모르실 것 같아서 이야기한걸요. 만약 기억하고 계셨다면, 기쁘긴 하겠지만 부끄러워서 죽어버렸을 거에요."
참으로 담담한 어조였지만, 곧이곧대로 듣기엔 영 짐작이 가질 않았다.이준구 그 새끼한테 배운 유체이탈 화법이 아닐까.
뭐, 어느 쪽이든 그 이상한 전법을 고수하지만 않는다면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겠지.
때문에, 다소 떨떠름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이 이상 대답을 기대할 수 없는 예은이 대신 윤하를 향해 물었다.
"윤하야, 좀 괜찮냐?"
"죽을 맛임."
예의 납치 사건 이후 나와 윤하 사이에 있던 묘한 거리감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진이 빠진 태도였다.
"쌤."
"옹야."
"거, 뭐냐. 신서아 헌터? 저 양반도 비밀 요원 그런 거에요?"
하지만, 선생님 이런 질문은 곤란해~
그 날 이후, 윤하는 나를 무언가 대단한 특수 요원이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뭐, 같은 반 학생까지 대동하고 납치범이랑 일기토를 벌인 판국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게 아니면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그 납치범 놈이 몬스터까지 불러낸 게 문제다. 윤하에게 함구령을 내리기 위해선 나에 대한 착각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런 거 아냐, 인마."
"아, 진짜요? 사이드킥인 줄."
"그래. 그런 거 아니니까 잘 대해주고. 동생들은? 잘 지내냐?"
"에이, 걔들이야 뭐 잘 지내죠."
"그럼 다행이고. 너 납치당했을 때 눈물 콧물 다 빼길래 물어봤다."
허나, 정작 당사자인 윤하는 멀뚱멀뚱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 표정이 얄미워, 나도 모르게 이마 위로 꿀밤을 먹이고 만다.
"아악!"
"뭐가 그리 신기해."
"아니, 그야 신기하죠!"
"그러니까 뭐가?"
무슨 특수부대 일원이라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양반이, 이제 와서 평범한 선생님같이 말하는 게 우스웠던 걸까.
하지만, 아무래도 이 부분만큼은 정정해야겠지 싶었다.
"너무 어려워하진 말고. 선생님, 무슨 임무 있어서 여기 온 건 아니니까."
지금 당장엔 그렇게 말해둘 수밖에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보호 임무 정도는 있지만.
뭐, 보호 임무를 위해 선생이 된 건 아니고. 오히려 나 때문에 하연이가 반강제로 아카데미를 다니게 된 셈이지.
만감을 담아 그리 말하자, 윤하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얼마 가지 않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파안대소를 터트리는 게 아닌가.
"뭐야, 진짜로?"
"그래, 인마."
"아, 난 또. 난 내가 선생님 임무에 방해라도 된 줄 알았잖아요."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그런 발상이 나오는 거냐?"
아니, 인질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또 그렇게 되려나?
다만, 그런 이유로 거리를 두고 있었던 거라면야.
"걱정하지 마, 인마. 선생님 겁나 세."
"아니, 그거야 알긴 알죠. 직접 본 적도 있는데."
"그래. 그러니까 그런 생각 안 해도 돼. 나중에 동생들 데리고 한 번 인사라도 오고."
그 꼬마들, 결국 윤하 돌려보낸 다음에 제대로 인사도 못 했으니까.
투덜대며 그리 덧붙이자, 푹 고개를 숙인 윤하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꼭 그럴게요."
꼭이라니, 그럴 필요까지 없는데.
그렇게 말하는 대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나중에 꼬마들 데려오면 밥 한 번 사주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때문에, 이 이상 섣불리 입을 여는 대신 우리들은 조용히 남은 시간동안 다른 학생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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