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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62화 (62/371)

〈 62화 〉 교생

* * *

뭐, 교생이 되었다 해도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그렇다고 멀뚱멀뚱 방치해둘 수도 없으니만큼 이 쪽에서 나름대로 수업에 끼어들 수 있도록 여러모로 궁리해 볼 생각이다.

그렇게, 다음 수업이 되어 우리들은 체단실로 향했다.

체육관 옆에 달린 쪽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카데미라는 이름엔 영 어울리지 않는 울창한 나무들이 우리를 반긴다.

이번 수업의 무대는 바로 숲.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밀림을 배경으로 하는 게이트다.

"자, 오늘은 환경 분석이다."

기초 체력 훈련에 가벼운 대련, 거기에 몬스터의 성질 파악을 위한 소재 해체와 중간고사까지.

상대의 능력을 파악하고, 본인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토대 다지기는 끝났다.

허면.

이 다음부터는 전투에 개입하는 변수, 다시 말해 환경 등 자신에게 불리한 온갖 요인을 최대한 배제하고 활용하기 위한 수업이 필요하다.

"미리 말해두겠지만, 환경을 멋지게 활용한 승리 따위는 거의 불가능하니까 포기해라 얘들아."

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그렇게 못박아두기로 했다.

물론, 학생들은 내 말에 다소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여태까지 우리는 전사가 아닌 사냥꾼이라 줄창 이야기하던 내가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한다는 사실이 영 뜬금없게 느껴지는 거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헌터 대 몬스터의 전투에서, 주도권을 가지는 건 십중팔구 몬스터 쪽이니까."

바로 게이트의 존재 때문이다.

현대의 대 몬스터 전술에 있어, 대다수 국가들은 수비전 중심의 전투 교리를 채택하고 있다.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게이트를 경계하고, 갑작스레 출몰한 몬스터를 도시 내에서 배제하기 위함이다.

때문에, 역으로 공격의 주도권을 가져가는 건 십중팔구 몬스터 측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예측할 수는 있지만, 그조차 완벽하진 않은 게이트의 분포.

대비할 수는 있지만, 그조차 사전에 제거할 순 없는 게이트의 발생.

산발적으로 날뛰면 그만인 몬스터와는 달리, 치안을 지키고 사람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군이나 헌터로서는 아무래도 수성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하다못해 눈 앞에 대놓고 나타난다면 모를까, 대다수 게이트들은 어떠한 전조 하나 없이 튀어나오기 마련.

때문에, 필연적으로 협회의 대책 또한 때 아닌 자연재해에 대처하는 식으로 굳어질 수밖에 없다.

태풍이 온다고 미사일을 쏴 풍향을 바꾸겠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

게이트 공략이란, 말하자면 태풍을 앞두고 대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는 행동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환경을 장악할 기회도 줄어든다.

공격의 주도권이 저 쪽에게 있다는 건, 다시 말해 전장을 선택할 권리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니까.

갑자기 출몰한 몬스터를 앞두고, 한가하게 지형 따위를 조사할 시간이 있을까?

게이트가 상대라면 더더욱 그렇다.

만일 어떻게든 게이트 내부의 정보를 확보하는 데에 성공했다 치더라도, 상대는 게이트 내부의 환경에서 나고 자란 몬스터들.

철저히 대비한다 한들, 지형상의 이점은 몬스터들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아니, 정말로 들고 싶다는 뜻은 아니지만.

막말로, 산소통 끼고 잠수한다 해서 상어처럼 헤엄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물며, 이는 도시 한가운데에서 몬스터를 상대한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몬스터와 달리, 헌터들은 재산 피해를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는 상위 헌터라 해도, 매 전투마다 억 단위 지출이 발생하면 버틸 재간이 없다.

"그러니, 헌터들이 환경을 활용한다고 해서 뭔가 멋들어진 즉석 전술 따위를 기대하지는 마라. 십중팔구 헌터 측에게 주어진 불리함을 어떻게든 해소하기 위한 잔재주가 고작일 테니까."

뭐, 철저하게 이 쪽 기술을 파고든다면 또 모르겠지만…….

적어도 벌써부터 배울 만한 내용은 아니다.

어느 쪽이든, 내가 할 일은 일단 이 녀석들을 불리한 지형 속에서도 어떻게든 싸울 수 있게 만드는 쪽이겠지.

"그럼, 간단한 테스트부터 해 볼까? 만약 너희가 어느 날 게이트 공략을 위해 파견되었다고 해 보자. 환경은 지금 여기처럼 숲이라고 할 때, 너희들은 가장 먼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숫제 산책이라도 나간다는 듯이 시작된 간이 테스트도, 이제 와선 익숙한 풍경이다. 실제로, 학생들 또한 당황하지 않고 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곰곰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이윽고, 학생들 사이에서 새하얀 팔이 똑바로 올라왔다.

"그래, 이예은. 말해보렴."

"시야 확보를 위한 도구와 위장 크림이 필요합니다."

"정답이다."

아직까지도 몬스터의 정체에 대해선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그 역겨운 새끼들도 일단은 생물이라는 점이다.

비록 마력의 영향 탓에 말도 안 되는 힘을 발휘하는 일이 잦지만, 이런 부분을 제외하면 생각보다 멀쩡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밀림 지역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사항은 두 가지.

하나는 아름드리 나무들에 의한 시야 방해요, 두 번째는 각종 몬스터들이 보유한 독소다.

"숲이라는 지형은 참 거지같지. 이 쪽은 제대로 된 시야 확보조차 불가능한데, 저 쪽은 숲에서 사는 놈들이란 말이야."

"당연히, 이 쪽과 달리 어떻게든 시야를 확보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죠."

"그래. 중요한 건, 설령 이 쪽이 시야를 확보하는 데에 성공했다 해도 유리한 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제서야 간신히 몬스터 놈들과 엇비슷한 조건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

바로 그렇기에 위장 크림이 필요한 것이다.

이 쪽의 모습을 감추고, 역으로 저 쪽의 숨통을 옥죄기 위해서.

뭐, 최근 헌터들이 사용하는 크림엔 무슨 기기묘묘한 소재가 들어간다던데.

덕분에 피부에도 좋고 초소형 몬스터들의 독침 따위도 막아준다고 하니, 나같은 녀석을 제외하면 참 살기 좋은 세상이다.

"독성이 있는 풀잎 따위도 있으니, 긴 소매 옷을 입는 것도 좋겠고."

짧게 덧붙인다.

나름대로 특수한 소재를 사용한 아카데미 교복은, 저랭크 몬스터를 상대론 충분히 통용될 만한 갑옷이기도 하다. 이처럼, 실용성 위주로 디자인된 교복은 당연히 하복 동복을 가리지 않고 피부 하나 드러내지 않을 정도로 철저한 구성을 자랑했다. 요컨대,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낮은 조언이라는 뜻이다.

뭐, 아무리 그래도 아카데미를 졸업하면 따로 전투복을 발주해야겠지만.

그 때라도 도움이 되면 다행이겠지.

"자, 여기까지 했으면 간신히 몬스터들과 같은 무대에 설 수 있다.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튼 무언가 대단한 도구를 갖춰, 시야 확보에 성공했다고 치자.

위장 크림 등을 아낌없이 사용해, 몬스터들의 시야에서 벗어났다고 하자.

허면?

이렇게 여러 조건을 덕지덕지 붙인 뒤에야 간신히 시도라도 할 수 있는 게 바로 게이트 공략이다.

어떻게든 대등한 조건을 갖추는 데에 성공했다면, 당연히 전투의 우선권을 잡는 쪽이 싸움을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겠지.

요컨대, 중요한 건 상대보다 먼저 상황을 파악하는 기술이다.

공격을 해야 할지, 아니면 그대로 지나쳐야 할지.

설령 잘못된 판단을 내려 대차게 일을 말아먹었다 해도, 일방적으로 공격당하는 쪽보단 훨씬 나으니까.

뭐, 거기서부터는 지지부진한 연습이다.

숲에서 사는 짐승들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가. 이를 통해 몬스터의 행동을 유추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몬스터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가. 이를 통해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은 무엇인가…….

이런 건 정말로 지식과 경험의 영역이다.

하물며, 이조차 숲에 한정된 기술일 뿐.

화산 지형이나 사막 지형에 대처하는 법은 또 다르다.

'어렵단 말이지~'

반드시 필요한 공부라고는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흥미를 붙이긴 어렵다.

순전한 암기, 그리고 활용의 영역이니까.

배운 지식을 시험해 볼 기회라도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지금은 게이트도 폐쇄 중이고.

일단 닥치는 대로 암기시키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봤지만, 보나 마나 다음 주 즈음 까먹고 말겠지.

이건 점수 한 번 잘 따면 그만인 자격증 시험 따위가 아니다. 생업이다.

필요한 건 성적이 아닌 기술이라고 생각하니 자연스레 고민 또한 커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고작 하루 이틀 공부했다고 어떻게 암기할 수 있을 만한 내용도 아니다. 같은 숲이라 해도 건기인가 우기인가에 따라 행동 방침이 달라지는 일 또한 일쑤였으니.

게다가, 대충 하고 넘어갈 수도 없다.

이 아카데미는 제 3차 대침공을 대비하기 위한 헌터 양성 기관.

만일 제대로 된 정보 하나 없이 게이트를 공략해야 할 상황이 닥치기라도 한다면?

벼락치기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 그럴 여유 하나 없는 상황 또한 있기 마련.

자칫 잘못할 경우, 이런 정보를 알아내기 위한 밑거름이 되고 끝날 수도 있다.

때문에, 나로서는 녀석들이 처음 보는 환경에서도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을 만한 경험을 쌓아주고 싶었다.

달리 지름길이 있는 것도 아니니만큼, 3년 내내 이를 때려 박아도 가능하기는 할지 의심스러운 판국이긴 하다만.

'골 때리는구만.'

뭐, 그래서 체단실까지 내려온 거고.

억지로 사고를 전환한다. 이윽고, 나는 방금 전 간이 테스트에 추가로 조건을 덧붙였다.

"그렇게 탐사를 진행하던 너희들은, 하필이면 몬스터와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았다. 거리는 10m 이내, 몬스터는 고양잇과 맹수형이라 치고……. 그래, 호랑이가 좋겠네. 아마도 나무 위에서 너희를 내려다보고 있겠지? 그럼, 너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쏴야죠!"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쪽을 중심으로 싸우되, 근거리 쪽이 몬스터를 상대해 줘야겠죠."

정석적인 대답이었다.

나쁘진 않다. 실제로, 나만 해도 그렇게 싸울 테고.

하지만.

정석수를 두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게 있다.

당연히, 내가 여태까지 줄곧 강조한 것.

즉, 기본기다.

"그래?"

오랜만에 정답을 맞혔다고 생각하는 듯, 왁자지껄 떠드는 학생들을 향해 나는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옆에 서 있던 나무들 중 하나를 그대로 걷어찬다.

족히 10m는 될 법한 거목이, 뿌리째 뽑혀 학생들 사이로 쳐박힌다.

콰아앙!!

끔찍한 작렬음과 함께, 혼비백산한 학생들 사이로 비명이 울렸다.

나무에 깔린 건 대략 다섯 명.

반응할 수 있었던 건 거의 한두 명 정도일까?

실제 상황이었다면 저 다섯 명은 못해도 중상, 냉정하게 판단했을 경우 사상이 되겠고.

"뭐, 뭐야?!"

"선생님, 뭐에요!!"

물론, 실제로는 환각에 지나지 않는다.

다친 사람도 없었다. 덕분에, 흩어지는 환각 속에서 허우적대며 기어나온 다섯 명 또한 내게 항의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허나, 나로서는 피식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뭐긴 뭐야, 몬스터지."

그 말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과장은 아니다. 얼추 10m 거기에, 적절한 중량과 속도.

몬스터 중에서는 10m쯤 되는 거체는 그렇게 드물지도 않다.

다시 말해, 방금 전 공격에 반응하지 못한 녀석들이 누군 몬스터를 상대하네 누군 몬스터를 공격하네 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뜻이다.

"반만 정답이다. 근거리 전투가 능숙한 인원이 몬스터를 맡고, 원거리 전투가 가능한 인원이 거리를 두고 몬스터를 상대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기본적인 문제가 있지."

"기본적인 문제요?"

"갑자기 나타난 몬스터를 상대로, 너희가 정말로 반응할 수 있을까? 적당한 거리가 있긴 하지만, 몬스터를 상대로 여유를 부릴 수 있을까?"

즉, 스펙이다.

일전에 말했던 피어Fear와 같이, 몬스터들은 피식자를 위축시키는 울음소리 등으로 전신을 무장하고 있다.

허면, 갑자기 마주친 미지의 몬스터를 상대로 초보 헌터들이 당황하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을까?

글쎄, 나는 무리라고 보거든요 이게.

솔직히 말해, 싸우기는커녕 제대로 반응이나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그러니.

바로 이게 내가 선택한 교습법이다.

몬스터와의 싸움을 전제로, 학생들이 대응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 훈련.

이후, 환경에 맞추어 추가적인 조건이나 패널티 등을 부여한다.

말 그대로, 몸에 지식을 때려박는 것이다.

원리 자체는 중간고사와 비슷하다 할 수 있겠지. 중간고사 쪽은 본인의 트라우마나 위협 등, 개인적인 문제를 앞두고도 움직일 수 있을까 묻는 시험이었다면 이번엔 전체적인 환경 대응 능력을 요구할 뿐이다.

"그럼, 슬슬 준비들 할까?"

물론, 방금 전 안면에 나무가 쳐박힌 학생들은 도저히 내키는 얼굴이 아니었다.

허나.

"응?"

슬쩍, 그 시선들이 멀뚱멀뚱 서 있던 서아에게 향했다.

이에 맞추어, 힘내라는 듯 손을 흔들어주는 서아.

그러자, 학생들 또한 체념한 듯 천천히 엉덩이를 들어올렸다.

'편하구만.'

서아의 반응을 보고 단념한 거겠지.

아니, 어쩌면 내가 서아를 가르쳤다는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헌터 아카데미, 개교로부터 2개월.

학생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화려한 헌터로서의 싸움법 따위를 배운 적은 없다.

하지만, 이런 수업을 소화한 결과 A+랭크에 도달한 헌터가 있다는 점은 학생들에게도 썩 위로가 되는 사실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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