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교생
* * *
"묘한 이야기로군요."
방금 전, 도축업자가 가져온 제안에 대해 최승준의 비서는 그리 평했다.
최승준 또한 비슷한 생각이었다. 물론, 녀석이 생각보다 교직에 열심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이전만 해도 어마어마한 양의 건의서를 보냈으니까.
덕분에, 헌터 아카데미는 세상에서 가장 선진적인 체단실을 보유하게 되었다. 팀 닥터까지 부속된 전문 트레이너들은 덤이고.
이번 제안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년 있을 교직 채용에 앞서, 미리 무기술 담당자들을 초빙해두는 건 어떻겠냐는 이야기.
헌터 출신 교사들 사이에서 내려진 잠정적 결론을 완전히 뒤엎는 말이었으나, 무장 구현 능력을 각성한 학생들 사이에 맴도는 묘한 분위기에 대해선 최승준 또한 알음알음 주워들은 바가 있었다.
물론, 그렇다 해서 단박에 받아들일 순 없었다.
제안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박우찬이 미리 픽업해 둔 인선들이 문제다.
터놓고 말해, 정필연 학생의 부친을 제외하면 누구 하나 교육자로서의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이들이었으니까.
현역 시절 일류 플레이어였다고 해서, 무조건 명감독이 될 미래가 보장된 건 아니다.
그렇게 잘라 단언하는 최승준을 앞두니, 박우찬 또한 이번에는 한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일단, 정일현 선생과의 접촉은 아카데미 측에서 공식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 외, 다른 이들의 설득은 박우찬에게 맡기되 이미 교육자로서의 실력이 검증된 정일현 선생과는 다소 차등적인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을 거라고 못을 박았다.
박우찬 또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업계 내에서야 어쨌든, 이 아카데미 안에선 자신 또한 일개 신입 교사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최승준의 비호가 있다 해도, 벌써부터 다른 누군가를 꽂아줄 수 있을 만한 입장이 아니라는 사실은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오히려 이 정도면 선방한 축이 아닐까?
그렇게.
박우찬이 데려온 전직 A+랭크 헌터, 신서아는 헌터 아카데미의 첫 교육실습생이 되었다.
"놀랐습니다. 설마, '여고생 헌터'가 도축업자의 제자였을 줄이야."
"사냥꾼이라는 별명도 있으니 그 쪽으로 불러 주자고. 여고생이라 불릴 나이도 진즉 지났는데, 그렇게 불리는 건 또 얼마나 힘들겠어."
"경험담이십니까?"
"틀리진 않지. 솔직히, 30대까진 괜찮아. 그런데, 40대가 되서도 누가 엄동설한 운운한다? 나도 모르게 얼려버릴지도 몰라."
"그만두시죠. 그 순간 주변에서 엄동설한 콜이 시작될 겁니다."
"세상에, 그런 끔찍한 일이."
펜은 칼보다 강하다. 협회가 붙인 별명에 시달리고 있는 모든 헌터들이 실감하고 있는 명언이었다.
당연하지만, 비서가 정말로 묻고 싶었던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알고 계셨던 겁니까?"
"뭘?"
"여고생 헌터가 도축업자의 제자였다는 사실 말입니다."
방금 전, 최승준은 그렇게 말했다. 현역 시절 일류 플레이어였다고 해서, 무조건 명감독이 될 미래가 보장된 건 아니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승준은 실적 하나 없는 박우찬에게 망설임 없이 교사 자리를 맡겼다.
물론, 프로젝트 진행자인 이준구가 직접 추천한 인물이라는 점은 있었다. 그러나, 만일 그 뿐이었더라면 최승준은 차라리 이준구와 따로 담판을 지으면 지었지 이를내버려 둘 인물은 아니었다.
최승준의 취미는 재능 수집.
그에게 있어, 이 아카데미는 차세대 헌터라는 원석들을 수집하는 장소이자 동시에 진열대다.
다른 누군가가 아카데미 운영에 흙발을 들여놓는 일 따위 가만히좌시할 리 없다.
허나, 최승준은 박우찬의 취임을 반대하는 대신 오히려 이번 기수 최고의 실력자들을 박우찬의 반에 몰아넣었다.
그리고 이 나이대에서 최고의 실력자라는 건 다시 말해 최고의 문제아들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처음엔 모종의 괴롭힘이라도 되나 싶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최승준답진 않은 행동이다.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최승준은 처음부터 박우찬이 지닌 교사로서의 능력을 꿰뚫어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야 당연하지."
다소 콩깍지 씐 추론에 대해, 최승준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아무래도 짐작이 가질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엉?"
"그 '여고생 헌터'가 좋은 스승을 두었을 거라는 이야기야 여럿 있었습니다. 여하간, 업계에 투신한 시점이 상당히 늦었으니까요. 실력 있는 헌터에게 가르침을 받은 게 아니었다면, 그만한 성장세를 보이긴 힘들었겠죠."
"그렇지. 눈에 띄기 싫어하는 녀석 다운 일이야."
"허나, 여고생 헌터가 차세대 헌터 필두라 불리게 된 지금까지 그녀의 스승에 대해선 별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헌데, 도련님께서는 어떻게……."
"내 나이가 스물 일곱인데 꼭 도련님이라고 불러야겠어?"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리 되묻는 최승준과 달리, 비서 쪽은 여전히 무표정을 고수했다.
그러나, 최승준으로서는 오히려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보폭."
"네?"
"아니, 걸음걸이 말이야."
"걸음걸이, 말씀이십니까?"
"그래. 내가 보니까, 신서아 그 아가씨 발디딤이 딱 박우찬 그 녀석이랑 비슷하더라고. 무게중심 분배도 그렇고. 그런 식으로 걷는 건 여태까지 박우찬밖에 못 봤으니까, 십중팔구 그 녀석이다 싶었지."
이번에는 비서 쪽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헌터 아카데미의 교장이며,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알 수 있을 법한 대기업의 후계자.
허나, 눈 앞에 있는 이 도련님께선 동시에 세계 최고봉의 재능을 가진 헌터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실감했으니까.
"문제는 그게 아니야."
"예?"
"신서아 헌터가 아카데미에 합류한다면 우리로서는 좋을 일이지. 하지만, 정작 그 신서아 헌터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단 말이지."
"협회 내의 추이를 살피겠습니다."
"그래. 하는 김에 길드 쪽도 조금 찔러 보고."
*
어떻게든 됐다. 그게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플랜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근거리와 원거리, 그리고 보조 계통. 크게 세 분야로 나누어, 미리 교육 인력을 확보한다.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문제는 원거리 계통 헌터의 확보였다. 근거리는 필연이네 아버님께 부탁드릴 생각이었고, 보조 계통이라면 나 또한 짐작 가는 녀석이 있었으니까.
허나, 이 문제도 신서아 요 녀석이 나타나면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었다.
내 교육 방침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요컨대, 이 녀석에게는 만약을 대비해 백병전을 포함한 온갖 기술들을 때려박아두었다는 소리다.
개중에서도, 이 녀석의 주 전법은 주변 환경을 역이용한 함정. 다음으로는 활을 사용한 사격전이다.
통칭 사냥꾼.
그렇게 불리는 녀석의 별명은 거기서 온 거겠지.
'지금 생각해 보니 개빡치는데?'
아니, 굳이 따지자면 내가 원류 아니냐? 왜 나는 도축업자고 쟤는 사냥꾼이지?
물론 이렇게 말하면 앞으로 저 녀석이 날 보고 여고생 헌터라 부를 게 뻔했기 때문에 지금은 침묵하기로 했다. 작전상 후퇴라는 녀석이다.
"자, 집중. 오늘부로 우리 헌터 아카데미에 교생 선생님이 들어오게 됐다."
"교생 선생님이요?"
"어, 헌터 교육대같은 게 있었나?"
"작명 센스 꼬라지 하고는. 삼청교육대냐?"
간신히 술기운을 쫓아내고 들어온 교탁 너머로, 꺄르르 웃음을 터트리는 목소리들이 들린다.
하지만, 그런 녀석들도 뒤이은 내 말엔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알고 있는 애들도 있지? 신서아 헌터다."
"할로! 할로할로! 안녕, 얘들아!"
깨방정을 떨며 앞문으로 들어오는 못난 제자의 모습에, 잠시 침묵.
그리고.
다음 순간, 어마어마한 환성이 교실을 가득 채웠다.
"신서아, 신서아 헌터다!"
"진짜야? 구라 아니야?"
"신서아 헌터가 뭐가 아쉬워서 여길 와?"
"아니, 구라면 뭐 어때! 신서아 헌터잖아!"
내가 생각하기에, 이 녀석들은 신서아라는 이름을 아무튼 다 괜찮다는 뜻의 동사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반 내의 평균 지능을 오랑우탄 수준으로 낮춰버린 듯한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어느 순간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박수를 보내달라고 말할 필요까지는 없을 듯했다.
'잘 된 일이지, 뭐.'
안 그래도 저번 기사가 난 이후 조금 미묘한 기류가 감돌던 교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등장한 뉴페이스는 이런 꿀꿀한 분위기를 단번에 날려버릴 만한 위력이 있었다.
솔직히 말해, 나보다 더 환영받는 것 같아서 살짝 상처다.
하지만, 이렇게 인기가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나야 뭐 얘가 어디까지 올라갔구나 이번에 표지 모델이 됐다던데 진짜구나 사진빨 쩌는구나 하는 생각이나 했지, 이 정도일 줄이야.
하긴, 학생들에게 있어 요 불초 제자 녀석은 말 그대로 워너비. 자신들의 우상이라 할 만한 헌터일 테니까.
업계에 투신한 건 고등학교 졸업 직후.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고생 헌터라는 특징을 무기로 삼아 각지에서 활약해 자신의 몸값을 높인다.이윽고, 성실한 자세와 유명세를 발판으로 협회 잡지 표지 모델에 등극.화려하게 언론 데뷔에 성공한 이후, 엄청난 속도로 A+랭크에 오른다.
현세대 헌터들 중 가장 입지전적인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우등생들에겐 자신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동경의 대상으로, 열등생들에겐 고등학교 졸업 이후 업계에 투신한 사람도 저렇게 대단한 헌터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으로.
어느 쪽이든, 먹힐 만한 캐릭터였다.
"반가워요, 여러분! 신서아 헌터에요. TV에도 몇 번 나온 적 있는데, 혹시 본 사람 있으려나~?"
"네!!"
"어유, 빈말이라도 고맙네. 그래도 너무 딱딱하게 굴 필요는 없어요! 왜냐하면, 나 너희 사저거든~"
"어어, 야!"
갑작스러운 녀석의 발언에 당황한 내가 뒤늦게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미 늦었다.
어느새 나를 바라보던 학생들의 눈에는 선망 비슷한 감정이 깃들었기 때문이다.
"괜찮지? 사부."
소근소근, 속삭이는 녀석의 말에 나 또한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뭐, 딱히 숨겨야 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자 학생들은 한층 더 환호성을 올렸다.
"어떡해, 그 기사 진짜로 사실인 거 아니야?"
"선생님이 S랭크 헌터라는 그거?"
"신서아 헌터가 A+랭크인데, 그 신서아 헌터를 가르치려면 S랭크는 되어야 앞뒤가 맞지!"
"야, 감독이 축구선수보다 잘 뛰어서 감독이냐?"
"교생 선생님!! 솔직히, 솔직히 말해서 담임 선생님한테 배운 거 얼마나 도움 됐어요?!"
"음, 거의 전부?"
"오~"
"그럼 저희도 A+랭크 될 수 있는 거에요?!"
"그럼!"
여러 목소리들이 뒤섞이며 왁자지껄 떠드는 모습에, 나도 잠시 질린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뭐, 하고 싶은 말은 여럿 있지만…….
스윽,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만둘까.'
저렇게 좋답시고 꺅꺅대고 있는데, 지금 너희 수준으론 거기까지 힘들 거다 운운하는 소리를 끼얹는 건 지나치게 분위기를 못 읽는 행동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지.
애초에, 나 또한 고작해야 B랭크 헌터 수준에서 만족하고 하산시킬 생각은 없다.
내 제자라면 못해도 A랭크는 돼야지, 암.
사실상 교생 소개 시간이 되어버린 아침 조회 속에서, 교탁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선 난 찬찬히 학생들의 반응을 살피기 시작했다.
정필연 녀석은, 나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선이 시시각각 바뀌는 걸 보며 오히려 모종의 우월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저 녀석, 생각보다 성격 나쁘네.
그에 반해, 이예은은 순수하게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단, 내가 신서아의 스승이라는 점에 놀랐다기보단 신서아의 등장에 놀란 듯했다.
묘한 일이었다. 여하간, 이예은의 오빠는 바로 그 이준구니까. 이제 와서 A+랭크 헌터 한 명을 보고 놀랄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얼마 전, 납치 사건을 기점으로 다소 미묘한 거리를 두고 있던 윤하는 A+랭크 헌터라는 말에 이 쪽을 보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아마도 머릿속으로는 A+랭크 헌터가 되면 한 해에 벌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겠지.
반대로, 지희는 눈매를 좁힌 채 서아의 얼굴을 조목조목 뜯어보고 있었다. 하긴, 혼인회 입장에선 새로운 헌터의 등장은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일일 테니.
뭐, 하연이는 언제나처럼 생글생글 웃고 있었지만.
저번에 따로 이야기를 나눈 탓일까? 서로 많이 친해진 모양이다.
학생들의 반응을 확인한 뒤에야, 나는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찾아든 새로운 바람은, 이 교실에도 신선한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새로운 바람인 서아를 키운 건?
하하하, 다름 아닌 나로군요.
첫 제자의 성공을 확인하는 일도 물론 기뻤지만, 그 이상의 흡족함이 나를 감쌌다. 하하하, 저 헌터는 도대체 누가 키운 건지. 뭐? 박우찬이라는 헌터라구요? 하하하, 이름만 들어도 참 훌륭한 헌터일 듯 싶습니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전근에도 불구하고, 서아는 손쉽게 우리 반 학생들 사이로 섞여드는 데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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