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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60화 (60/371)

〈 60화 〉 교생

* * *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하연이가 먼저 돌아왔다.

이야기는 잘 나눴냐고 물어보자,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주억대던 걸 보면 아마 잘 둘러댄 거겠지.

아무리 그래도 녀석이 나를 신고하지는 않겠지만, 어느 날 여고생을 주워왔단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도 못할 것이다.

"알겠어. 음, 하연이 너는 이제 어쩔래?"

"먼저 들어갈까요?"

슬쩍, 시선을 흘리는 하연이.

거기에는 내가 냉장고에서 미리 꺼내놓은 맥주캔이 쌓여 있었다.

"씁, 이게 왜 여기에 있지? 거 참, 학생도 있는데……."

민망한 마음에 괜히 여기 없는 옆집 사람을 성토하자, 하연이는 피식 웃으며 짧게 목례했다.

그렇게 하연이를 먼저 올려보낸 뒤에야, 나는 베란다로 나갈 수 있었다. 물론 양 손에는 방금 전 머쓱하게 감춘 캔맥주를 하나씩 든 상태였다.

허나, 불초 제자 신서아 씨는 하늘같은 스승님이 그러는 와중에도 난간에 몸을 기댄 채 하늘을 쏘아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주 담배도 피겠다, 그냥?"

"어, 사부."

그제서야 나를 눈치챈 듯 손을 흔드는 녀석을 향해, 가볍게 캔을 던진다.

탁, 가볍게 그걸 받아든 녀석은 곧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곤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이게."

"뭐긴 뭐야, 술이지."

"어이구, 내가 담배 피울 때만 해도 뭐라 하더니. 술은 괜찮아?"

"그 때는 미성년자였잖냐."

녀석이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을 적 이야기였다.

몰래 담배를 태우던 중 하필이면 어머님께 걸린 탓에 하숙집이 발칵 뒤집어졌었지.

부친을 잃은 충격도 있을 테고, 나로서는 그럴 수도 있겠지 싶었지만 어머님께서 정말로 혼절하기 직전이라 어쩔 수 없이 대표로 줄빠따를 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녀석은 그토록 하기 힘들다는 금연을 단번에 성공한 것이다.

"까고 있네. 사냥꾼이 어쩌고저쩌고 했으면서."

"아니, 틀린 말도 아니잖냐. 냄새도 나고, 불빛도 보이고. 몬스터한테 들키기 쉽다고."

"술은 괜찮고?"

"포션 중에 술이랑 비슷한 물건들도 많으니까, 익숙해져야지."

"담배랑 비슷한 물건도 많잖아."

"요즘은 괜찮은 물건들도 있더만. 무슨 향수처럼 뿌리는 포션도 있더라고."

"아, 그거? 즉효성이 없어서 영 별로야."

"보드카나 광대버섯보단 낫지 않냐?"

낄낄거리며 나 또한 베란다에 등을 기댔다.

밤하늘 저편으로 녀석의 옆얼굴이 사라지고, 후줄근한 하숙집의 모습만이 눈에 들어왔다.

"뭔 일 있냐?"

캔을 따며 물었다.

지나가듯 튀어나온 소리이긴 했지만, 퇴직했다는 녀석의 말은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을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여하간, 이 녀석이 몸을 담은 건 대한민국 안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협업 조합Guild.

개중에서도 현직 A+랭크 헌터라고 하면, 그리 손쉽게 대체할 수 있을 만한 인력이 아니다.

물론, 길드라고 해 봐야 그 실체는 사실상 헌터 협회 내의 파벌. 그 헌터 협회조차 실제로는 딱 헌터들의 노동 조합 수준인 판국에, 일개 파벌 따위가 헌터의 거취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 리 없다.

특히, 이 나라는 군부 외의 다른 무력을 그렇게 반기는 편이 아니니까.

하지만, 사람 사는 일이라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적어도 나 관둡니다 한 마디 하고 나오기엔 여러 문제가 산재하고 있었겠지. 예를 들어 인수인계라던가.

어느 쪽이든, 하루 아침에 휙 그만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반대로, 몇날 며칠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면…….

"거 뭐야, 어머니 게이트만 닫고 효도할게요?"

"거긴 다른 쪽."

"어쨌든, 좀 괜찮은 데 아니었냐? 계약 조건 나쁘지 않았고."

……내가 뭐라고 할 수는 없겠지. 어쨌든, 이 녀석도 이제 성인이니까.

문제는, 정작 서아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결정을 내린 건지 전혀 짐작이 가질 않는다는 점이었다.

녀석이 잡은 건 협회 내의 수많은 파벌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거대 길드. 다시 말해, 썩 나쁘지 않은 동앗줄이다. 설마 대우가 나빴을 리도 없는데.

"뭐 어디 이상한 대머리가 성추행이라도 했간?"

"대머리가 있긴 했는데, 성추행은 아냐."

"씨발, 그럼 그냥 불쌍한 새끼잖아."

슬픔이 눈 앞을 가렸다.

그러나, 끝끝내 이유를 감추는 걸 보면 또 단순한 농담은 아닌 모양이다.

만약 곧 때려칠 거다 하는 술자리 농담 수준이었다면 나 또한 살판 났다며 놀리고 말았겠다만.

"그래서? 이제 뭐 하고 살려고?"

"아, 좀. 사부가 우리 아빠야?"

"자당 옆에 서기엔 아무래도 내가 좀 딸리지."

"징그럽게 진짜!"

술기운이 돌기 시작한 건지, 깔깔대며 박수를 터트리는 녀석.

그렇게 시덥잖은 농담을 몇 번 주고받은 결과, 아무래도 이 녀석 또한 별다른 대책이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 몰라. 당분간 좀 쉴래. 모아둔 돈이 얼만데, 좀 놀아도 되겠지 뭐."

"어머님께선 그리 생각 안 하실걸?"

"또 왜?"

"딸내미가 집에 쳐박혀만 있으면 좋아할 부모님이 세상 어디에 있겠냐?"

으아악, 앓는 소리가 들렸다.

그 모습에 낄낄대며 이 쪽도 캔을 기울였다. 오랜만에 술을 입에 대서 그런지, 별로 도수가 높지도 않은데 무더운 느낌이 확 올라왔다.

"말은 그렇게 해도, 좋아하시긴 할 거야. 너 요새 휴가도 못 나오지 않았냐?"

"좀 바빠서."

"쓸쓸해하시더라고. 좀 놀아드려. 너무 놀기만 해도 조금 그렇지만."

"진짜 아빠 다 됐네, 아빠. 잔소리, 그만!!"

어디서 본 걸 따라하듯 어설프게 손을 허우적대는 녀석의 모습에, 나 또한 헛웃음을 짓고야 말았다.

뭐, 이러니저러니 군소리를 하긴 했어도 녀석은 내 첫 번째 제자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긴 했지만, 적어도 웃고 다니는 만큼 옛날보단 보기 좋았다.

"몬스터 죽이는 법, 가르쳐주세요."

"……그걸 어디다 쓰게?"

"헌터가 될 거에요."

"아서라, 꼬맹아. 헌터는 무슨. 어머니 기절하시는 꼴 보고 싶냐?"

"그런 일 없게 하려고 그러는 건데."

"난리 났네, 난리 났어. 일 없다, 꼬마야."

"사실, 안 도와주셔도 괜찮아요."

"그럼 귀찮게 하지 말고 썩 꺼져."

"안 도와주시면 자살할 거거든요."

"……."

"부탁드려요. 어디 가서 배울 돈도 없어요."

나 참, 그 철없던 꼬맹이가 많이도 컸다.

낄낄 웃으며 그 정수리를 짓누르자, 녀석은 마치 고양이처럼 과장된 반응을 보였다.

"아, 좀! 그만 해, 그만. 헤어스타일 망가져."

"좀 망가져도 돼."

"왜? 본바탕이 괜찮으니까?"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는 거 아니니까."

"진심 저 주둥아리를 어떻게 해야 하지?"

으르릉, 어설픈 위협이 꼭 불독 같았다.

나도 모르게 다시 한 번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으나, 이처럼 녀석과의 대화는 무언가 마음 편한 게 있었다.

허나, 정작 당사자인 서아는 이런 내 모습이 영 아니꼬운 듯 푸욱 하고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 어쩌다 내가 백수가 되고 사부가 직장인이 된 거람."

"낭중지추라는 말이 있지."

"뭔데 그게. 추한 사람도 어디 쓸 데는 있다?"

"나는 방금 네 어휘 능력에 실망했다. 공부 좀 해, 이것아."

"탁상머리 앉아있던 게 벌써 몇 년 전인데 그래, 진짜."

"아니, 5년도 안 됐잖냐."

"지식이란 탄창과 같으니, 하나가 들어가면 하나가 빠져나가는 게 순리인 법이지."

"미친 년."

다시 한 번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녀석의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나 또한 대답을 재촉하는 대신 고개를 젖히고 천천히 밤하늘에 박힌 별을 세었다.

이윽고, 퓨우우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술기운 맴도는 숨기운이 여기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사부, 재밌어?"

"뭐가."

"일."

"돌았냐?"

"아니, 재밌어 보이길래."

"재미는 무슨, 맨날 사표 쓰고 싶다 야."

"에이, 거짓말."

"하늘 같은 사부 말이 우습냐?"

"방금 전 걔 눈에서 아주 꿀이 떨어지던데. 솔직히 좋지? 여고생들 푸닥거리하니까?"

"얘야. 비록 옛날 옛적 이야기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너도 한때 여고생이었단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한창 사춘기일 고등학생들을 데리고 수업 진도를 뺄 수 있는 이유 또한 어쩌면 이 녀석을 상대해 본 경험 덕분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말하면 기고만장할 것 같으니까 절대 말하진 않겠지만.

"왜? 재밌어 보이냐?"

"엉. 나 취직할 때까지만 해도 사부 얼굴 죽을 상이었잖아."

그건 그냥 몬스터를 못 잡아서 그랬던 거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 경우 십중팔구 나를 이상한 놈처럼 볼 테니 이번엔 조용히 입다물고 있기로 했다.

"내가 찔러줄 수 있다니까, 듣지도 않았으면서."

"너 같은 신삥이가 찔러주긴 누굴 찔러줘. 네 밥그릇이나 잘 챙겨."

"뭐? 나 이제 A+랭크거든?"

"씨발, 헌터 협회도 드디어 끝물이구만."

"아, 진짜!!"

"아니, 너라면 믿을 수 있겠냐? 너, 마지막까지 내 시험 반도 통과 못했잖아."

"그건 사부가 이상한 거라니까? 길드 가보면요, 예? 나만큼 하는 사람도 없거든요?"

"그러니까 끝물이라 이거지."

"어우, 진짜. 이 아저씨, 쇠고집 좀 봐."

투덜거리는 녀석을 보며 어깨를 좁힌다.

뭐, 그런 적이 있긴 했었다. 내가 한창 몬스터 금단 증상에 시달리고 있었을 때였던가? 하도 안색이 나쁜 내 몰골을 보고, 녀석이 함께 일이라도 해보지 않겠느냐 제안했었지.

물론 거절했지만.

아니, 구미가 당기긴 했다. 여하간, 제 2차 대침공이 종식된 지금 길드 소속 헌터들의 역할이라 해 봐야 각 기업 내부의 게이트를 관리하는 일 정도였으니까.

요컨대, 몬스터를 죽일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내가 현역 시절 협회와 척을 지고 있었다는 점.

지금이야 어떻게든 수습하긴 했지만, 사실 그조차 절반 이상은 이준구의 이름값 덕택이고.

헌데, 당시 일개 신입에 지나지 않던 이 녀석이 나를 길드에 추천한다?

기껏 출세한 제자 앞길이나 가로막게 되겠지.

솔직히, 자존심 문제도 있었다.

마! 이 박우찬이가, 마! 사지 멀쩡한데 제자 인맥으로 입사해서 쓰겠냐 이거야!

"사부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녀석에게는 아무래도 그 사실이 영 마뜩잖은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직장 내의 파벌 싸움 따위에 지쳐버린 걸지도 모르겠지만.

헌터 협회 사이트에 대문짝만하게 걸린 몬스터 광고가 나쁘다.

그렇게 말하기는 아무래도 멋쩍어, 나 또한 앓는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서아야, 취했으면 들어갈까?"

"안 취했는뎅."

"취했네. 들어가자."

"으어억."

다 죽는 소리를 내며 비척대는 서아의 어깨를 부축한다. 아니, 나야 그렇다 치더라도 얘는 왜 이렇게 술을 못 마셔? 요즘은 회식도 안 하나?

진짜 사내 왕따였던 거 아닌가 하는 의혹이 머리를 스치는 가운데, 웅얼거리는 녀석의 목소리가 내 귓가를 간질였다.

"이이잉, 사부."

"옹야."

"왜 내가 불렀을 땐 안 왔어."

"일하기 싫어서."

"지금은 취직했음서."

"야, 일단 너한테도 가르쳐주긴 했잖냐. 마침 교사가 천직인 모양이지."

내가 말하긴 했지만 참 우스운 이야기였다.하루에 사표 쓸 생각만 수십 번은 하는데 말이지.

얘 하나 가르칠 때만 해도 나름대로 소소한 재미가 있는 취미 생활에 가까웠는데, 직업이 되니 당장 내일 출근하기도 싫은 걸 보면 확실하다.

"사부우."

"야, 입 닫아. 술 냄새나니까."

"아니!! 어떻게 꽃다운 나이 아가씨한테!! 냄시가 난다는 말을!!"

"진심 말투 하나하나에서 홀애비 냄새나는 거 실화냐? 내 제자지만 넌 진짜 전설이다……."

"으아악!!"

"그래서, 뭔데 그래."

"아니, 나도 사부 다니는 데에 꽂아주면 안 돼?"

숫제 무슨 맞선 한 번 나가보면 안 되냐고 묻는 투였다.

물론, 단순한 투정이다. 마음이 약해진 틈새를 비집고 흘러나온 푸념. 동시에, 힘들 때 옆에 있어주지 않았던 나에 대한 하소연일지도 모르고.

어느 쪽이든, 녀석으로서도 진심은 아니겠지.

허나.

서아의 말을 들은 순간, 내 머릿속에 번뜩이는 구상이 떠올랐다.

아니, 당장 내 위치조차 확실하지 않은 판국에 인맥 운운하는 이야기까지 나오겠지만…….

'꽤 괜찮은데?'

이 모든 걸 감안해도 나쁜 계획은 아니었다.

때문에.

"옹야. 나중에 따로 말이나 해 보마."

"띠요옹?"

기묘한 소리를 내뱉는 녀석을 데리고 올라가는 와중에도, 나는 머릿속으로 팽팽히 주판알을 튕기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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