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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58화 (58/371)

〈 58화 〉 제자

* * *

자하연은 농담으로도 대범하다 할 수 있는 성품이 아니다.

천성적인 성격이라 해야 할지, 그렇지 않으면 고아원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형성된 성격이라 해야 할지.

애초에, 그 둘을 구분할 방법도 없다.

그렇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박우찬과의 만남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속으로 그녀를 얕보고 있는 이들은 더러 있었다. 무언가 속셈이 있어 다가오는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고아라는 입장만 보고도 사람들은 그녀를 사회적 약자라 여기곤 했으니까.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고.

하물며, 거기에 소심한 여학생이라는 점까지 더해지면 더더욱 그렇다.

때문에, 자하연은 다른 무엇보다 먼저 미소짓는 법을 배웠다.

냉정한 척, 초연한 척. 한 걸음 물러나 여유를 가지면 대다수 문제는 흘려넘길 수 있다. 그게 자하연 나름대로 익힌 처세술이었다.

하지만, 박우찬은 달랐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난생 처음 만난 계집애를 위해 어째서 이렇게까지 해 주는 건지,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으니까.

허나, 박우찬과 함께하며 그의 마음을 이해한 뒤로는 고마움이 앞섰다. 고작해야 일개 고아에 지나지 않는 자신이 뭘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언젠가 꼭 신세진 만큼 보답하고 싶다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그런 감정 또한 변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처럼, 어느 순간 박우찬이 베푸는 호의를 당연시하게 되었던 걸까?

아니, 만약 그랬다면 자신의 뻔뻔함을 수치스럽게 여겼을지언정 이런 마음을 품지는 않았겠지.

쓸쓸함.

최근, 자하연이 품고 있는 감정은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자하연이 보기에, 박우찬이 자신을 돌보는 건 정말로 사심 하나 없는 호의였다. 그리고 그런 만큼, 박우찬은 다른 아이들에게도 그만한 호의를 망설임 없이 베풀곤 했다.

처음은 이예은. 다음은 황윤하. 알음알음 주워들은 바에 따르면 류지희 또한 무슨 일이 있었을 테고, 거기에 정필연까지 있다.

……본래라면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이겠지. 박우찬이라는 헌터는, 그 능력과 품성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유명세를 타지 못했으니까.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이라고, 자하연은 몇 번이나 스스로를 다독였다. 괜찮아. 기쁜 일이지 뭘? 오빠는 조금 더 평가받아야 할 사람이잖아…….

하지만, 자하연은 도저히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물론, 박우찬이 다른 아이들을 챙긴다 해서 자하연에게 소홀하지는 않았다. 아니,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무어라 투정할 권리 따위는 없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하연은 묘하게 끓는 속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위로 미소를 지었다. 박우찬과 만나기 전 그러했듯이.

냉정한 척, 초연한 척. 한 걸음 물러나 여유를 가지면 대다수 문제는 어떻게든 웃어넘길 수 있다.

그게 자하연이 배운 처세술이었으니까.

정말로 냉정해질 수는 없었다.

처음과 달리, 박우찬의 진가를 알아보는 학생들이 점차 늘어날 때도.

예전과 달리, 박우찬이 다른 아이들을 봐주기 시작할 때도.

박우찬에 대한 짜투리 기사가 나돌아다닐 때, 이에 개의치 않고 선망하는 시선을 보내는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밟혔을 때도.

역으로, 이는 자하연이 침묵하는 요인이 되었다.

자신은 이미 박우찬에게 목숨을 빚졌다. 달리 갚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이 이상 박우찬에게 폐를 끼치는 일만큼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다.

그런 자하연의 마음에 지주가 되어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와 박우찬 사이에 있었던 첫 만남이었다.

'나는 다른 애들이랑 달라.'

다른 아이들과 달리, 자신과 박우찬이 만난 거 일개 아카데미의 교사와 학생이라는 입장 때문이 아니었다. 다른 학생들과 달리, 고작해야 개인적인 사정 따위가 끼어들 수 없는 특별한 만남이었으니까.

다소 유치한 발상이긴 했으나, 자하연에게 있어선 절실한 문제였다.

살면서 처음으로 받아본 후의였기 때문일까?

그녀로서는 끄득끄득 깎여나가는 자신의 인내심을 그런 방식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는 박우찬의 사생활을 알고 있다는 점 또한 단단히 한몫을 했다.

아슬아슬한 마음 속 균형을, 우월감이라는 저울눈으로 간신히 맞추는 나날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

허나, 자신의 마음을 자각한 이후로도 그녀는 줄곧 학창 생활에 매진했다. 적극적으로 연습에 나섰고, 성적을 올렸다.

박우찬의 칭찬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언젠가 자신 또한 박우찬의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박우찬과 만난 그 날 이후, 자하연은 자신과 관련된 일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박우찬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가 또한 마찬가지였다.

물론, 침착하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 날, 자신이 마주쳤던 용이나 악마처럼 박우찬이 얽힌 일은 고작해야 일개 생도 입장인 자신 선에서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 만한 물건일 리 만무했다.

아니, 설령 도움이 될 수 있다 치더라도 그 박우찬이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할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이니까.

오히려, 보다 적극적으로 입을 다물겠지.다른 학생들처럼 평범한 삶을 보낼 수 있도록.

만일 박우찬의 의도가 거기에 있었다면, 정 반대 방향으로나마 소망이 달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이 쪽에서 먼저 물어볼 생각은 없다. 만일 박우찬이 자신을 배려해 답을 삼키고 있다면, 이를 성의 없이 들추는 건 너무나도 염치없는 행동이겠지.

그러니, 묵묵히 실력을 올리자. 지금은 아닌 언젠가, 일방적인 피보호자에서 믿음직한 동료가 될 수 있도록.

그렇게.

간신히 평형을 맞춘 그녀의 마음 속 저울을 기울인 건, 공교롭게도 다른 학생들이 아니라 완전히 의식 밖에서 날아온 돌멩이였다.

"와, 사부. 취직했다는 게 진짜였어?!"

신서아.

박우찬은 그녀의 이름을 그렇게 소개했다. 자하연 또한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자신이 헌터였음을 알게 된 그 날, 갑자기 자리를 비운 박우찬을 기다리며 협회 안을 돌아다니던 도중 발견한 잡지 속 특집 기사에 당당히 실려 있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협회에서 매월 발간하는 잡지의 표지 모델로 우아하게 미소짓고 있던 그녀의 사진은, 아직까지도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었다.

여고생 헌터.

지금은 완전히 때늦은 별명이었지만, 가장 처음 그녀를 발굴한 매스컴이 신서아에게 붙여준 별명이었다. 말 그대로 여고생 나이의 헌터라는 뜻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여고생이었던 그녀가 뒤늦게 헌터 업계로 투신했다는 점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잡지에 실린 인터뷰에서,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자신도 본래 헌터가 될 생각은 없었다고. 헌터였던 아버지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눈 앞에서 돌아가신 게 아니었다면, 헌터가 되지 않았을 거라고.

허나 게이트는 그녀의 부친을 앗아갔고, 눈 앞에서 남편이 잡아먹힌 트라우마로 인해 몬스터만 봐도 발작을 터트리는 어머니를 대신해 그녀는 몬스터들에 대한 복수를 천명했다.

다행스럽게도, 당시 그녀의 가족들을 구해 준 헌터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자신이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거라고, 그렇게 말하던 기사였다.

하지만, 역시 그 기사 안에서도 차세대 헌터 필두라는 신서아의 은인이 박우찬이었다는 말 따위는 실려있지 않았다.

당연히, 평소 머무르는 하숙집 아주머니네 외동딸이 그녀일 거라고 생각해 본 적 따위도 없었고.

그러나, 자하연의 생각과는 별개로 언젠가 한 번 뵈어야겠다 생각하고 있던 아주머니네 외동딸은 바로 신서아 헌터였고 심지어 그 스승은 박우찬이라고 한다.

사저. 사부.

그리고 첫 번째 제자.

그런 단어들이 자하연의 머릿속에서 회오리치고 있었다.

"속고만 살았냐?"

"아니, 솔직히 사부는 속고만 살 것 같은 인상이잖아. 돈도 많은 사람이 왜 이런 데에서 살고 있담?"

"야, 아무리 그래도 너희 어머니께서 운영하시는 곳인데 이런 데라니. 말뽄새가 그게 뭐냐?"

"꼰대짓, 그만."

"시끄러, 이것아."

"아악!! 사부, 방금 나 때렸어?! 그러다 머리 안 좋아지면 어떻게 할 건데?!"

"하긴, 나도 조심해야겠다. 여기서 더 나빠지면 마운틴 고릴라밖에 더 되겠냐. 아주머니한테 죄송스러울 일이지."

"우호!! 우호우호!!"

"미친 년. 애초에 뭘 속고만 산다는 거야? 여기서 사는 건 다 이유가 있다니까."

"그러니까~ 내 미모에 속아버린 거 아니야, 사부?"

"아주머니께 감사해라. 태어날 때 한 번, 지금 한 번. 두 번이나 목숨 빚졌으니까."

실제로, 눈 앞에 있는 여성은 자신 이상으로 박우찬과 가까운 태도였다.

다소 묘한 광경이었다. 도저히 세련되었다고는 말하지 못할 하숙집 한 가운데에, 자연스레걸터앉은 미녀. 입만 다물고 있으면 차가운 도시 여자라 해도 부족함 없을 생김새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연신 경박한 발언을 터트리며 자신의 주가를 훅훅 끝없이 떨어뜨리고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장소는 그녀의 친가였다. 동시에, 그녀는 박우찬의 첫 번째 제자이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에 직면한 순간, 자하연은 문득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집이라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던 이 단칸방이 자신을 꽉 옥죄는 듯했다.

익숙한 감각이다.

자신이 아직 보육원에 있었을 적, 어떻게 해도 고아원을 자신의 집이라 생각할 수 없었을 때마다 그녀는 이런 막막함을 마주하곤 했다.

자신에게는 지독히 낯선 이 풍경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나누는 박우찬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더더욱 그랬다. 솔직히 말해,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자신이 분위기를 못 읽고 끼어든 불청객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사부?"

"옹야."

"이 애, 누구야?"

마치 제 삼자처럼 동떨어져 있던 그녀에게, 갑자기 화살이 향한다.

샐쭉 휘어진 호박색 눈동자가 자신을 겨냥하는 듯한 감각에, 자하연이 남몰래 헛숨을 들이키기도 잠시.

"와, 엄청 귀엽다~! 누구야? 새로 들어온 애?"

"사촌이냐곤 안 물어보냐?"

"에이, 와꾸 차이가 있는데 그건 아니지!"

"하긴, 우리 부모님도 그리 생각하시겠지."

"아니, 사부는 선이 굵은 타입이라 이거지 내 말은……."

에헤헤, 멋쩍은 어조로 덧붙이며 속 편한 웃음을 짓는 신서아.

그런 그녀의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피식 헛웃음을 터트린 박우찬은, 곧 자연스러운 태도로 부연했다.

"미안하다, 하연아. 소개해 줄 생각이었는데, 얘가 너무 오랜만에 와서 경황이 없었네."

"아, 아뇨. 괜찮아요."

"그렇지. 여기 얘는 신서아라고,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내 제자 비스므리한 거. 실력은 쥐뿔도 안되는데 벌써부터 하산해서 속 썩이고 있는 녀석이라고 기억해두면 돼."

"아니, 무슨 말이 그러냐?! 사부 기준이 이상한 거지, 나 정도면 업계 최상위야 업계 최상위!!"

"그리고 얘는 자하연이라고,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 한 명이야."

학생 중 한 명.

너무나도 명백하게 자신의 현 위치를 가리키는 그 말에, 자하연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그 모습이 어색하지 않게끔, 마저 허리를 숙이며 조용히 인사를 건넨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자하연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영광이에요, 신서아 헌터님."

"응? 말씀 많이 들었다구?"

"네? 네……."

"이상한데~ 사부가 내 말을 좋게 했을 리가 없는데~ 수상한데~"

"알고 있으면 까불대지 말고 좀 앉아라, 요것아."

이제는 숫제 힐난하는 어조로 콧방귀를 뀌는 박우찬으로부터 시선을 돌리며,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신서아.

"어라?"

"또 왜?"

"그럼 얘, 집까지 데려다줘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가 잡아두고 있는 건가?"

"굳이 따지면 우리가 아니라 네가 잡아두고 있는 거지."

"또 또, 자기만 발 빼기는."

"아니, 막말로 내가 끼어들었냐? 네가 튀어나온 거지?"

"어휴, 알겠습니다~ 착한 제자인 내가 심부름은 도맡아 해야지. 그래서? 너 어디 사니? 언니가 데려다줄게!"

"됐으니까 앉아."

"아, 또 왜?!"

"걔 여기 사니까."

자연스레 흘러나온 말에, 다른 누구보다 당사자인 자하연이 놀라고 말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학생과 교사가 한 지붕 아래에서 산다는 걸 들킨다면 별로 좋은 소문이 날 것 같지는 않다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 주던 박우찬이다.

지나가는 어투로나마 이를 넌지시 알려주는 그 모습은, 역으로 둘 사이의 거리감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어, 뭐? 응? 학생이라고 안 했어?"

"왜."

"아니, 학생이랑 교사가 같은 집에서 살아도 돼?……아, 우연히 숙소가 겹친 건가?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내가 데려왔는데."

"……응?"

"내가 데려왔다고. 애초에 저 나이 계집애가 따로 방 잡을 돈이나 있겠냐. 지금 내 방에서 같이 살고 있어."

새삼 들으면 참 놀라운 이야기라며, 박우찬은 다시 한 번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자하연은 볼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헤실헤실 웃고 있던 신서아의 표정이 급변하는 모습을.

당황한 듯 크게 흡뜬 눈. 그러다 한층 딱딱해진 얼굴. 그리고 마지막으로 철통같은 무표정까지.

박우찬이 보지 못하는 사이 삽시간에 바뀌던 낯빛을 감추며, 신서아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후, 사부! 좀, 여자애가 상대면 신경 좀 써 줘! 그게 뭐야, 진짜~!"

"다 그런 사정이 있습니다요, 사정이."

"알 게 뭐야, 차라리 엄마한테 말하지! 사부가 해 준 거 생각하면 방 하나 내주는 건 어렵지도 않을 텐데!"

"다 사정이 있다니까. 안 그래도 죄송스러워서 아주머니한텐 말 했어. 돈도 더 냈고."

"그런 문제가 아니거든요?"

후우, 여전히 무표정을 유지한 채 과장스러운 한숨을 내쉬는 신서아.

그리곤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자하연을 훑어내리기 시작한다.

곧이어, 피식 하는 웃음.

무슨 의도를 담은 건지 알 수 없는 실소에 자하연이 멈칫하는 사이, 신서아는 쾌활한 어조로 덧붙였다.

"사부, 설마 손댄 건 아니지?"

"미쳤냐?"

"아니, 믿을 수가 있어야지~ 어디서 갑자기 여고생을 주워왔다는 사람을 어떻게 믿어?"

당연히 그래야지, 작게 뇌까리는 신서아의 목소리는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청각을 가진 박우찬도 들을 수 없을 만큼 낮고 싸늘했다.

"하연이라고 했지?"

"네, 네."

"잠깐 언니랑 이야기 좀 할까?"

"괜히 애먼 사람 잡지 마라?"

"안 그러거든요?"

활기찬 태도로 대답하며, 다시 한 번 눈매를 구부리는 신서아.

그치?

그렇게 되묻듯 조용히 머리칼을 흔드는 그 모습에, 자하연 또한 찬찬히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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