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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54화 (54/371)

〈 54화 〉 성적평가

* * *

내가 뒷쪽에서 신명나게 구르는 동안, 중간고사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무진장 화려하게 돈을 쳐바른 시설들은 물론이요, 이를 활용한 시험의 내용 또한 성공적으로 어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차세대 헌터. 동시에, 학생들의 정신 건강을 생각한 커리큘럼.

나를 비롯한 교직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낸 문제점과, 이를 듣고 밤을 새며 시설에 손을 댄 기술자들 덕택이었다.

실제로, 내가 보기에도 이번 시험의 완성도는 상당히 높았다.

내 교육 방침과 맞물리는 내용 때문에 들어간 편애를 제외하더라도 훌륭한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 적절하게 조정된 난이도, 거기에 응시생에 따른 환경 구현까지!

고작해야 2주 안에 수많은 교사들이 지적한 점을 개선한 기술자들과, 이런 신속한 일처리를 가능케 한 최승준의 자금력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뭐, 직접 참관하진 못했지만.

허나, 다행스럽게도 체단실 안에는 학생들의 모습을 기록하는 감시 카메라가 비치되어 있었다. 덕분에, 이를 바탕으로 나는 학생들의 시험 성적을 평가할 수 있었다.

개중에서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역시 정필연이었다.

정필연은 이번 시험에서도 특히나 우수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몬스터들이 나오는 족족 칼질 한 번에 베어넘겼고, 간혹 그의 검을 버틸 수 있는 몬스터가 나오면 주춤대면서도 두 번째 공격으로 확실히 끝을 맺었다.

성적 또한 상위권이었다. 실제로, 다른 교사들 또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기도 했고.

다만.

"꽤나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더라."

정작 정필연은 내 말에 다소 멋쩍은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본인이 어째서 불려온 건지 나름 짐작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상담실에 비치된 TV를 켠다. 우리 집에 있던 TV는커녕 지금 우리 집보다 큰 기분이 드는 스크린을 향해 어설픈 솜씨로 리모컨을 누르니, 체단실 내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정필연의 모습이 재생되었다.

'A+랭크 값은 하네.'

역시 비싼 게 좋긴 좋다니까.

속으론 그런 감탄을 흘렸다. 물론 TV도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선명한 녹화 영상 때문이었다.

기계나 녹화 영상까지 간섭할 수 있는 환각이 최소 A랭크였던가?

덕분에, 영상 너머에서 칼을 휘두르고 있는 정필연의 모습 또한 아무도 없는 체단실에서 혼자 붕쯔거리고 있는 거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걸로 보였다.

주변으로부터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베고 또 벤다. 몬스터들의 습성을 충실히 구현한 환각들은 마치 정필연을 물어뜯기 위해 태어났다는 듯, 동족의 시체를 짓밟으며 달려든다. 환각임을 고려해도 다소 과장스러운 전법이었지만, 중요한 건 그 부분이 아니니만큼 시시콜콜하게 지적하는 대신 영상을 한층 더 앞당겼다.

그렇게 일격으로 몬스터들을 정리하던 정필연의 공격이, 처음으로 튕겨져나간다.

일전, 윤하에게 소개해 준 아르바이트에서 몇 번 소재로 나온 적 있는 갑각류 몬스터. 그 모습에 잠깐 얼굴을 굳힌 영상 속 정필연은, 이윽고자세를 고쳐잡았다.

손에 쥔 검을 끌어당기고, 보폭을 크게 둔다. 다소 어정쩡하지만, 강검을 휘두르기 좋은 자세가 완성되었다.

정필연의 그런 행동은 이후로도 몇 번이나 계속되었다. 재빠른 몬스터가 나오면 검을 가볍게 쥐고, 공격이 무거운 몬스터를 상대론 공세를 흘려넘길 수 있도록 발디딤을 두텁게 한다.

사실, 과장스레 말하긴 했지만 상대하는 몬스터에 따라 전법을 바꾸는 헌터들이 드문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이번 시험의 쟁점은 수험생이 극복하기 힘든 상황에 맞서, 어떤 방식으로 난관을 타개하느냐.

다시 말해, 헌터들의 대응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다.

순수한 헌터로서의 능력은 아직 정필연이나 이예은에 미치지 못하는 하연이가 이 둘보다 높은 성적을 거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요 몇 달 사이, 고랭크 몬스터 여럿과 마주친 하연이에게 있어 안전장치까지 부착한 환각은 별다른 위협도 되지 못했을 테니까.

허나, 정필연의 상대적인 부진은 오로지 저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응력을 측정하는 시험인데, 정작 몬스터들은 제대로 마주치기도 전에 죽여버리고."

이래서야, 대응 능력을 측정하는 게 아니라 단순한 빨리 베기 승부다.

억지로 밀어붙였다고 해야 할까? 몬스터 토벌에 문제는 없었던 만큼 고득점엔 성공했겠지만, 하연이보다 성적이 낮은 건 저런 부분에서 감점이 들어갔기 때문이겠지.

게다가, 저 어정쩡한 자세들까지.

"시험을 본 게 아니라, 시험해 보고 있구만?"

"죄송합니다."

피식 웃으며 흘린 말에, 정필연은 즉각 대답했다.

역시 그랬던 모양이다. 저 어색한 자세들. 최소한, 정필연이 여태까지 몸에 익힌 자세와는 영 딴판이었다. 숙련도는 물론이요, 몬스터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이번엔 이런 식으로 해 볼까 하고 생각하는 게 눈에 밟힐 정도로 몸에 익지 않은 품새였다.

요컨대, 정필연은 중간고사와 별도로 자신만의 기준을 정해 시험에 임한 셈이다.

"아니, 뭐하러 사과해? 시험을 실전처럼! 선생님, 이런 거 안 싫어한다?"

오히려 좋아하면 좋아했지.

학생들에게야 어쨌든, 내 입장에서 보자면 이번 시험은 고작해야 고등학교 성적표 한 줄을 채우는 용도에 지나지 않는다.

성적이 좋아서 나쁠 건 없겠지만, 대침공 이전처럼 대학이 활성화된 것도 아니고…….

앞으로 3년, 도합 열 두 번은 치를 시험 중 한 번 망쳤다고 해서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지.

하물며, 성적 한 번 내버리고 그 이상 가는 걸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무슨 일이니?"

하지만, 정필연은 어째서 이런 행동을 한 걸까?

행동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적어도 본인이 이러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있지 않겠는가.

갑자기 벽을 느꼈다던가, 그렇지 않으면 라이벌이라도 생겼다던가.

내 물음에, 정필연은 잠시 마른 세수를 했다. 혹시 사춘기 소년 특유의 고민이라도 되는 걸까? 그리 생각하고 있자니, 정필연은 천천히 입을 열어 내게 답했다.

"요 최근, 어떻게 싸우면 좋을지 여러모로 시험해보고 있었거든요."

"흠, 그래서?"

"솔직히, 별로 진척이 없었습니다. 혹시 연습이라 생각해서 그런 걸까, 싶기도 했고요."

요컨대, 배수진을 치기 위해 시험 도중 스스로에게 그런 조건을 부가했다는 말이다.

거 참, 성실하다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아니, 나쁘지 않은 향상심이긴 하지만.

헌데.

"갑자기 왜? 당사자 앞에서 이런 말까지 하는 건 조금 그렇긴 하지만, 네 실력이면 이미 학생들 중에선 최고잖냐."

"학생들 중에선 그렇죠."

갑자기 왜 자신의 전법에 의문을 품게 되었는가?

그런 의문을 담아 던진 물음에, 정필연은 그렇게 대답했다.

"선생님."

"어, 왜?"

"선생님처럼 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엥?"

조금 얼빠진 어투로 답하고 있자니, 정작 당사자인 정필연은 사선으로 시선을 흘릴 뿐이었다. 그 얼굴엔 괜히 말했다는 감정이 반,속 시원하다는 감정이 반쯤 되어 보였다.

그런데, 내가 뭐 하긴 했던가? 사냥하는 모습은 보여준 적도 없는 것 같은데…….

다소 어처구니없는 기분을 담아 정필연을 바라보고 있자니, 녀석 또한 다시금 대답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입학식 날 기억하고 계세요?"

"어어, 그럼. 너랑 나랑 대련했었잖냐. 기억하고 말고."

"사실, 엄청 놀랐습니다."

"어? 뭐가?"

"선생님 실력 말이에요."

응?

"물론 지금은 알고 있습니다. 설령 퇴역 헌터가 상대였다 해도, 제 실력으론 감당하기 힘들겠죠."

"뭐, 그렇지."

"그 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요. 아니, 만약 제가 선생님의 힘이나 능력에 밀려서 진 거였다면 아직까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어설픈 미소로 그리 답하는 녀석의 말을 듣자, 과연 나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말마따나, 최승준같은 생태계 교란종이 상대가 아닌 이상 전직 헌터가 일개 유망주를 상대로 꼴사납게 나뒹굴 일은 거의 없겠지.

허나, 당시 내가 정필연을 상대하는 데에 사용한 건 어디까지나 기교. 말하자면 기술이었다.

"아니, 그런데 이 나이 먹고 너희같은 핏덩이들 상대로 스펙 써서 밀어붙이는 쪽이 더 비참하지 않나……."

"그래도 저한텐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죠."

아무리 그래도 너무 띄워주는 게 아닌가 싶어 조금 머쓱한 기분이 들었지만, 저렇게 말하니 나로서는 또 할 말이 없었다.

뭐, 이 이후로는 나 또한 예상할 수 있었다. 실제로 녀석의 입에서 나오는 말 또한 예상과 그닥 다르지 않았고.

그렇게 처음으로 기술 앞에 패배한 정필연은, 어떻게 하면 나처럼 검을 쓸 수 있는 건지 백방으로 고민했던 모양이다.

물론 당시 내가 사용했던 건 칼이 아니라 회초리였지만, 아무래도 녀석은 본능적으로 내 동작이 검술에 가깝다는 점을 눈치챈 듯했다.

난생 처음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기술을 앞두고, 정필연은 본격적으로 탐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여태까지 마주한 대다수 난관을 재능으로 어떻게든 극복했던 정필연으로서는 당황스럽게도, 마땅한 차도는 볼 수 없었겠지.

뭐, 당연한 일이다. 단순한 재능만으로 거기까지 한달음에 뛰어오를 수 있는 건, 최승준을 비롯한 정말로 소수에 지나지 않으니까.

정필연의 재능도 나쁘진 않지만, 최승준 수준은 아니다. 애초에 본인부터 그런 타입도 아니고.

공교롭게도, 정필연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지만.

때문에, 어쩌면 단순한 연습이라 생각해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 정필연은 마침내 시험이라는 환경 속에 자신을 몰아넣기까지 했다.

'허어.'

거기까지 들으니 나 또한 조금 미안한 기분이 생겼다.

아니, 무협지였으면 주화입마인가 뭔가 아니냐 이거?

녀석이 이제라도 속내를 털어놓는 심정 또한 나름 짐작할 수 있었다.

결국, 녀석으로서는 아무래도 별다른 성취를 보지 못했을 테니까.

영상 속에 비치는 정필연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필시 녀석 또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내게 말한 거겠지.

"아니, 그런데 필연아. 막말로 고작해야 두 달만에 무슨 성취가 있을 수 있겠냐? 그게 되면 실력이 아니라 단순히 운이지, 운."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모든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고작해야 두 달.

까놓고 말해서, 다이어트 복싱조차 성과를 볼 수 없는 기간이다. 하물며, 검술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이런 내 말에 정필연은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본인 또한 속으로는 알고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 뒤를 이어 흘러나온 말은 나로서도 쉬이 외면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요새 마음이 급해졌던 모양입니다."

씁쓸한 미소와 함께, 녀석은 그렇게 말했다.

물론, 짐작이 없지는 않았다.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줄곧 동년배들 사이에서 수석을 차지한 정필연이, 이제 와서 이토록 초조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건 바로 지금 이 아카데미에서 무기술 수업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카데미에서 무기술 수업이 시작되는 건 내년 이후부터.

지금은 어디까지나 철저한 기초 단련을 추진할 때라는 게 바로 교장인 최승준을 포함한 교사진 전원의 총의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훈련을 시작하자마자 사용할 무기를 고르라 말하는 교관 따위는 결국 웹소설 속 등장 인물에 지나지 않으니까. 만약 내가 인사권자였다면 그딴 교관은 그 자리에서 곧장 짤라버렸겠지.

무기는 어디까지나 수족의 연장.

그렇기에, 각종 격투기에서도 철저한 훈련을 거치고 나서야 무기술을 익히는 법이다. 시작하자마자 무기를 들고 싸워 봐야, 단순히 눈 먼 칼에 다치는 녀석들만 늘어날 뿐일 테니.

때문에, 나로서도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지만…….

'빡세네, 이거.'

아무래도 녀석으로서는 그리 생각하기 힘들었던 거겠지.

녀석 입장에서 보자면, 다른 동급생들이 각기 제 능력을 갈고닦는 사이 자신만 제자리걸음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정필연의 능력은 무장 형성.

개중에서도, 자신이 쥐고 다루는 검에 특화되어 있다. 무기술을 배우지 못하는 이상, 뚜렷한 발전이 없다 생각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다.

물론 다짜고짜 무기술을 배우는 것보다 전반적인 단련 이후 본격적인 무기술을 익히는 게 좋을 거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었지만, 그렇게 말한다 해서 단박에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결국, 나 또한 백기를 내걸고 말았다.

"아니, 그런 문제가 있었으면 선생님부터 찾아왔어야지."

"네?"

막말로, 방과 후에 수업 질문하면 싫어할 선생님이 세상 천지 어디에 있다고.

어쩔 수 없지. 달리 일정도 없던 머릿속 스케줄에 찍찍 줄을 긋는다. 그리고 그 위로 떡 하니 새로운 네 글자를 기입했다.

가정 방문.

혹은, 방과 후 학습.

"잠깐 너희 집 좀 들리자, 필연아."

처음엔 어쩔 수 없이 수락한 아카데미 교사 자리였지만, 아무래도 팔자에 없는 선생 노릇 또한 당분간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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