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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52화 (52/371)

〈 52화 〉 결착

* * *

"어우, 씨발."

자욱하게 깔린 흙먼지에,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뚜둑, 목덜미에서 울려퍼지는 섬찟한 소리. 절로 미간이 찌푸려지는 게 느껴졌다.

이래서 거인 새끼들은 상대하기 싫다니까. 고작해야 한 번의 실수로도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 크다. 심지어 이번 전투는 사전에 준비한 대로 흘러갔음에도 불구하고 이 꼴이라니.

만약을 대비해 준비해 둔 예비 플랜들을 폐기하며 흙먼지의 중심부를 향해 걸음을 옮기자, 나 이상으로 넝마짝이 되어 널부러진 남상원의 모습이 보였다.

'캬, 씨발. 딜계산 오졌고~'

이딴 상황에서도 목숨줄은 붙여둔 거 실화냐? 박우찬 실력은 진심 전설이다…….

스스로의 솜씨에 자화자찬하고 있자니, 문득 남상원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에 맞추어, 그의 입가 주변에 쌓인 모래먼지들이 일어나는 게 보였다.

"끝났군."

차라리 후련한 어조였다.

물론, 정말로 속내 하나 없이 시원한 기분일 리도 없다. 그대로 양 손을 들어 올린 남상원은, 불편한 거동에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눈두덩을 눌렀다.

"정말로 끝났어."

거, 그러니 진즉에 항복하라니까.

그렇게 말할 분위기는 또 아니라서 그냥 조용히 하기로 했다.

뭐, 혼인회 양반들의 처우를 결정할 건 내가 아니라 최승준 쪽이고. 이번에 습격당한 건 어디까지나 녀석이 교장으로 재임하고 있는 이 아카데미이기도 했거니와, 솔직히 그런 일로 왈가왈부하기도 귀찮았다.

애초에 그런 걸 감수하고 혓바닥을 놀려줄 만큼 친한 사이도 아니잖은가.

머쓱하게 목덜미를 긁적이고 있자니, 문득 저 멀리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소리를 듣고 몰려든 기자들인 듯했다.

나름대로 조심조심 싸울 생각이었지만, 싸움의 무대는 어느덧 운동장까지 도달한 상황. 거기에 방금 전 남상원을 시원스레 운동장 한구석에 패대기치기까지 했으니, 이걸 듣지 말라는 건 내가 생각하기에도 다소 지나치지 않나 싶긴 했다.

뭐, 이 이상 여기 남아있으면 아무래도 눈에 띄겠지. 창고에서 자동 결박 능력이 부여된 밧줄을 휘두른다. 특수한 소재로 만들어져 B랭크 몬스터조차 문제 없이 구속할 수 있는 물건이었지만, 평소 남상원이었다면 별다른 문제 없이 끊어버릴 수 있었겠지. 허나, 남상원은 일을 벌이는 대신 순순히 내 인도에 따랐다.

다만.

"한 가지만 물어도 되겠나?"

그렇게 묻긴 했다.

거 참, 시간도 없는데. 나도 모르게 쯧 하고 혀를 차길잠시, 차라리 몇 마디 대답해 주면 고분고분 이 쪽도 편해지지 않을까 싶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런 내 태도를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인 듯, 남상원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혼혈들을 죽인 적은 없다, 그리 말했었지."

"그렇수."

"그건 정말인가?"

"내가 댁하고 무슨 사이라고 거짓말까지 해."

어처구니없다는 듯 그리 쏘아붙이자, 남상원 또한 가볍게 어깨를 떨었다.

"그것도 그렇지. 허면, 내 물음세."

"젠장, 하나가 아니잖아. 숫자도 못 세는 거냐?"

"단순한 푸념이라고 생각해도 좋으니, 부디 이해해 주게."

"뭐, 그러쇼."

"어째서인가?"

짧은 물음.

허나, 거기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런 말은 하기 뭣하지만, 자네에 대해선 나 또한 충분히 알고 있으이. 조사해보기도 했고, 이전부터 들어본 적도 있으니."

"쪽팔리는 별명이 붙긴 했더구만요."

"그래. 그러니 궁금해. 도축업자, 몬스터들의 죽음. 그렇게 불리는 자네라면, 모르긴 몰라도 혼혈 세 자릿수는 토막냈을 거라는 게 우리 쪽의 중론이었지."

"허어."

"말해두겠지만, 우리 혼인회 쪽의 의견이 아니야. 지극히 보편적인 의견일세. 물론, 그 보편적인 의견을 맹목적으로 믿고 달려든 내가 할 말은 아니겠지만 말이야."

"그래서?"

"묻고 싶었네. 자네의 그 말이 정녕 사실이라면, 어째서?"

몬스터를 미워하다 못해 혐오하는 내가, 어째서 혼혈들에겐 검을 향하지 않았는가.

남상원의 그 질문은, 내게 노골적으로 어떤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다.

허나, 공교롭게도 내가 혼혈들을 토막치지 않은 데에 그런 멋들어진 이유 따위는 없었다.

혼혈이라 하지만 혼인회의 주장마냥 그들이 정말 인간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존재라 생각하는 건 아니고, 반대로 몬스터와 다름없다 여기지도 않는다. 것보다, 그런 정체성 논란엔 별 관심도 없다고 말해야 하겠지. 남상원이 말했듯이, 나 또한 혼혈들이 사람인가 몬스터인가 하는 문제는 솔직히 아무래도 좋았다.

그런 시대다.

내 일도 아닌 사정에 고개를 들이밀고 다니기엔 지나칠 정도로 각박한 세상. 제 목숨 하나 건사하는 것조차 사치인 세상이 왔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마저 혼혈들의 비극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이번 사건을 저질렀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내가 미쳐서 혼혈들을 썰고 다니지 않은 이유는, 어떻게 생각해 봐도 단 하나 뿐이었다.

"거, 댁들도 반쯤은 몬스터잖수?"

내 말에 남상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조금 상처받은 얼굴을 하기는 했다.

씨발, 40대 아저씨가 징그럽게 무슨.

뭐,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라면 미안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몬스터라 칭하는 건 무슨 학술적인 기준이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봤을 때 빡치면 몬스터고 아니면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가 봤을 때, 혼혈들은 대충 반쯤 빡친다.

"그럼 죽여봤자 즐거움은 절반이란 말이지."

"즐거움, 인가?"

"그려."

게다가.

킁, 하고 코끝을 울리며 머쓱한 얼굴로 눈가를 문질렀다.

"거기에, 반쯤 몬스터라는 건 반쯤 사람이라는 소리이기도 하잖수?"

"……."

"어, 말하자면 그런 거지."

반쯤은 사람이니까, 그래서 죽이지 않았다. 그런 형편 좋은 이야기가 아니다.

애초에, 사람 한 명의 목숨값도 지나치게 가벼운 세상이다. 방금 전 내가 말한 이유는 사람을 죽일 이유는 되어도 사람을 죽이지 않을 이유는 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내 결론은 다음과 같다.

내가 혼혈들을 죽이지 않은 건 다름이 아니라, 제 2차 대침공이 끝나기 전까지만 해도 혼혈들보다 몬스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혼혈들을 죽여 봐야 느낄 수 있는 쾌감은 잘 해도 몬스터의 절반 이하. 게다가 어중간하게 사람 냄새까지 섞여 있다.

때문에, 나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에 비하면 죽여도 그렇게 즐겁지 않은 혼혈. 게다가, 도살 후의 흥분이 가시고 난 이후엔?

과연 나는 혼혈들을 죽인 내 모습을 보고도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제대로 고민해 결론을 내리는 대신 그냥 몬스터나 쳐죽이기로 했다.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내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쾌감도 절반 수준에 찾기도 힘들며 부작용까지 존재할지도 모르는 혼혈들을 굳이 사냥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보았을 땐, 지나칠 정도로 쓸데없는 행동이었다.

하물며 아직 게이트가 제대로 닫히지 않았던 당시라면 더더욱.

혼혈을 찾는 노력으로 몬스터를 조사하면 그 사이 세 마리는 더 죽일 수 있었을 테니까.

뭐, 사냥꾼으로서 말하자면 제 상태를 과신하지 않는 게 중요하기도 하고.

즉, 한 마디로 말하자면──.

"혼혈은 가성비가 별로 안 좋잖수."

그게 내 결론이다.

아니, 얼마 전처럼 진짜 눈 돌아가기 직전이라면 또 모를까.

그런 내 대답을 듣고, 남상원은 얼빠진 얼굴을 했다.

"하, 하하. 하하하, 가성비? 하하, 하하하하하!!"

그러더니, 어처구니없다는 듯 홍소를 터트리는 게 아닌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혼인회를 위해 이런 일을 저질렀다 자언한 저 사내가 내 대답에서 무엇을 느꼈을진 알 수 없다.

하지만.

때 아닌 혼인회의 중간고사도, 이로서 어떻게든 마무리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

*

그 뒤.

의외로, 최승준은 이번 사태를 공론화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로서는 상당히 의외였다. 혼인회의 사정을 듣고 나서,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구나 동정심을 품었던 나와는 달리 최승준은 시종일관 냉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최승준은 이번 아카데미 습격 사태가 불거지면 당장에 피해를 입을 당사자였으니까 아무래도 어쩔 수 없는 면 또한 있었겠지.

만일 혼인회의 습격에 의해 물질적인 피해가 발생하기라도 했다면 과연 어쩔 수 없었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어떻게든 조기 진압에 성공했기도 하고.

거기에, 지희의 어중간한 박쥐 노릇도 있다.

비록 중간에 마음을 바꿔 먹긴 했지만, 아카데미 습격을 사전에 알린 시점에서 어떻게든 사태를 공표하지 않고 끝내기에는 충분한 공적이다.

그럼, 정작 당사자인 최승준은 어째서 이런 판단을 내렸는가?

[특보!! 헌터 아카데미, 교사진의 실체!!]

[아카데미의 교사를 맡고 있는 건 전 불법 헌터?!]

[헌터 아카데미 인사, 이대로 괜찮은가?!]

이유는 얼마 가지 않아 밝혀졌다.

언론전.

그게 녀석들의 진짜배기 노림수였기 때문이다.

삽시간에 뉴스 1면을 장식한 기사들.

표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공격 대상이 된 건 바로 나였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헌터 아카데미의 교사진 중에 경력 일체 불명인 헌터가 있다는 점이라고 해야 할까?

심지어 저런 기사 중에선 얼마 전까지 내가 불법 헌터였다는 식으로 적혀 있는 물건도 있었다.

불법 헌터라니, 비 인가 헌터라고 해 달라고. 그렇게 말하니까 무슨 범죄자처럼 들리잖아.

아니, 그런 효과를 노린 거겠지만.

정말로 일개 기자가 내 뒤를 캐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힘들다. 필시 저 쪽에선 이를 통해 아카데미, 내지는 나를 공격할 심산인 거겠지.

개중에서도, 일부 기자들은 당시 운동장을 뒤로하던 나와 남상원의 뒷모습을 찍어 각종 사이트를 장식하기도 했다.

……혼혈들의 권리 신장과, 아카데미 입학권을 위해 시험 기간을 노리고 시위를 벌인 혼인회. 그리고 이를 무자비하게 진압한 전 불법 헌터, 박우찬.

뭐, 이런 식이다.

[혼인회의 간부 남상원과 아카데미 사이의 불화?!]

타이틀을 뽑자면 이런 느낌일까.

아니, 비 인가 헌터였던 거랑 별로 상관 없잖아.

내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그런 느낌이었지만, 기사를 본 사람들은 일찍이 몬스터를 잔혹하게 도살한 끝에 협회에서 쫓겨난 불법 헌터가 혼인회의 요구를 묵살한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더니, 옛말에 틀린 거 하나 없구만.

나로서는 그리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지만, 이게 바로 최승준의 노림수이기도 했다.

[아카데미 교장 최승준, 혼인회와 접촉!!]

[국내 첫 헌터 아카데미, 혼혈들의 입학에 제한을 두지 않을 것이라 천명.]

[최승준 교장, 오히려 혼혈들의 입학을 적극 환영!!]

저런 기사들이 나돌아다니고 얼마 뒤, 이런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런 추가타까지.

[혼인회 간부 남상원, 입장 표명!!]

[아카데미 측의 배려에 깊은 감사, 혼인회는 아카데미의 방침을 적극 지지!!]

[아카데미 교사 박우찬, 이해심 깊은 대화를 나누었을 뿐.]

한 마디로, 최승준은 혼인회와 계약을 맺었다.

예의 헌터가 내뱉을 정보에서 혼인회의 이름을 완전히 지워주는 대신, 혼인회를 우리 쪽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미 우리들에게 패배해 뒤가 없던 혼인회로서는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협박에 가까운 거래이긴 했지만, 안 그래도 거의 하청업체에 가까운 형편이었던 혼인회로서는 오히려 반기는 입장이었다고 하던가.

그렇게, 적의 수를 줄이며 이 쪽의 패를 늘리는 카운터 펀치.

이로서, 혼인회는 자신들의 위신을 담보로 우리 쪽에 합류한 셈이다.

문자 그대로, 시원스러운 역습.

저들의 수를 방어하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반격에 성공한 것이다.

그렇게.

채 3일도 지나지 않아, 아카데미를 겨냥한 모략은 끝을 맺었다.

혼인회와 아카데미 사이의 불화에 대해 떠들던 언론들은 순식간에 잠잠해졌고, 역으로 최승준을 위시한 아카데미는 혼혈들의 입학을 환영하겠다 공표해 대외적인 이미지 확충에도 성공했다.

여기에 언론 앞에서 혼혈들에 대한 태도를 못박아두는 걸로 자칫 잘못하면 사자 몸 속의 벌레가 될 수 있었던 혼인회의 환심도 살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가십거리에 밀려 놓칠 뻔한 본래 목표의 달성에도 이바지한 셈이다.

역시 이런 술책에서 녀석을 따라갈 수는 없단 말이지.

중간고사가 끝난 날.

내가 그렇게 혀를 내두르는 사이, 우리 아카데미 측과 녀석들 사이의 싸움에도 이처럼 대략적인 결착이 붙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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