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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49화 (49/371)

〈 49화 〉 중간고사

* * *

류지희가 보기에, 박우찬은 이상한 사람이었다.

비단 그의 정체를 두고 하는 말만은 아니었다. 교사로서 보여준 모습 또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경력 하나 나오지 않는 것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해박한 지식. 자신의 실력을 숨길 생각도 없는 그 모습에'도축업자'라는 별명을 들었을 땐 차라리 납득이 갈 정도였다.

제 2차 대침공을 기점으로 모습을 드러낸 헌터. 몬스터들의 죽음. 가장 위협적인 사냥꾼.

그런 사람이 이제 와서 아카데미 교사 노릇이나 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류지희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묘한 위화감.

류지희가 바라보는 박우찬에게는 언제나 그런 어색함이 느껴졌다.

때문에, 류지희는 이번에 하달된 의뢰에도 가장 먼저 반대 의견을 냈다. 혼혈로서 몸에 익힌 처세술이었다. 저런 사람을 상대할 땐 처음부터 빈틈을 보이지 않는 게 상책이다.

남상원의 결정 하에 이를 수락하게 된 뒤로도 마찬가지였다.자신만으론 남상원을 설득할 수 없다. 죽음조차 불사할 각오로 나선 혼인회 사람들을 말릴 수도 없었다. 그만큼 저들이 제시한 보수는 매력적이었고, 일개 고등학생에 지나지 않는 지희로선 그 이상의 보상을 제시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혼인회 사람들을 도울 수도 없었다. 남상원이 극구 반대한 것도 있다. 이번에 가담한 혼혈들과 같이, 이미 사회에 혼혈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이들이라면 모를까 잘 살고 있던 지희까지 정체를 드러내는 건 너무 리스크가 크다는 판단에서였다.

사실, 남상원이 허가했다 한들 과연 자신이 무얼 할 수 있었을까 물으면 썩 회의적이기도 했다.

여하간, 그녀는 일개 고등학생에 지나지 않는다. 혼혈로서 힘든 삶을 살았다 해서 없던 정치력이 눈을 뜨진 않는 법이다. 고작해야 그녀 한 명이 가산된다 해서 작전의 성공률이 극적으로 변화하는 것도 아니었거니와, 아카데미 재학생이라는 신분을 살려 무언가를 하기엔 일개 생도라는 입장은 너무나도 무력했다.

반대로, 담임인 박우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상대는 바로 그 도축업자다. 만일 자신이 이 이상 피해를 늘리지 않기 위해 혼인회의 거점을 알리기라도 했다가, 달리 걷잡을 수 없는 일이 생긴다면? 일개 여고생인 지희로서는 그런 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기에, 힘껏 허세를 부리는 게 고작이었다.

어째서 그런 승산 낮은 일에 투신하는 거냐고 남상원에게 따졌던 것과 달리, 류지희 또한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혼인회의 계획을 살짝 흘리고, 둘이 부딪히지 않도록 조율한다. 그렇게 번 짧은 시간 동안 남상원을 제압할 수 있다면, 다른 혼인회 사람들도 물러설 수밖에 없으리라.

아무리 죽음을 각오했다 해도, 완전히 가망 없는 일에 목숨을 버리고 싶은 사람은 없다.

본격적인 테러가 시작되기 전, 이를 완수할 수 있다면 싸움은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십중팔구 수상하다며 의심을 살 테고, 어쩌면 혼인회 측에서도 자신을 배신자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당시 류지희가 할 수 있는 한계였다.

허나, 그런 지희도 박우찬의 태도만큼은 도저히 종잡을 수 없었다.

태연하게 보일 수 있도록 미리 대본을 준비해 연습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하긴 했지만, 직접 자신의 정체를 밝힐 땐 역시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마치 무언가 속셈이 있다는 듯 의미심장한 어휘를 사용하긴 했으나, 솔직한 심정으론 당장에 목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혼혈로서 사회의 뒷쪽에 어느 정도 발을 담근 지희가 듣기에, 도축업자란 그런 사람이었다.

몬스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협회의 명령을 무시하고 출격하거나, 살의를 뿜어 독심술사를 혼절하게 했다는 바닥 모를 분노. 듣기로는, 협회가 주선한 고위층과의 만남에서 누군가 몬스터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베어버리고 도망친 적도 있다고 들었다.

그러므로, 류지희에게 있어 이는 사실상 제 목숨을 판돈으로 삼은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정작 박우찬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자신이 혼혈이라는 걸 밝혔을 땐 상당히 놀란 듯했지만, 그걸로 별다른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자신의 뿔을 자르거나 날개를 도려내려 달려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평온한 태도로 지나가며 조언을 던지기도 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저 웃는 얼굴 그대로 칼을 휘두를 것만 같은 생경함.

류지희가 박우찬에게 사정을 털어놓지 못한 데에는 바로 그런 이유가 있었다.

"야, 지희야. 너 왜 여기 있냐? 좆됐네 이거, 방금 막 시험 시작했는데. 네 성적 망했다, 야."

헌데.

지금 이 순간 류지희가 가장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나타나 뜬금없이 그런 말을 늘어놓는 게 아닌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평소 교실에서 보던 모습과 같이, 박우찬은 쓰러진 그녀를 내려다보며 경박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 쪽을 비웃는 게 아니라, 정말로 눈 앞의 상황이 우습다 생각하는 듯한 묘한 쾌활함이 거기에 있었다.

"엉?"

천천히 손을 뻗어, 간신히 그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게 지금 류지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책략이라 부를 수도 없는 우책은 처절하게 실패했다. 남상원과 박우찬, 둘의 조우를 막을 수도 없었다.

결국, 류지희에게 허락된 건 언제나 그랬듯 공염불을 읊는 것 뿐이었다.

"제발, 부탁드려요. 선생님, 제발. 아저씨, 죽이지 말아주세요."

"어? 그래."

그리고.

여태까지 그러했듯, 박우찬은 이번에도 무게감 하나 없는 얼굴로 그리 대답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 모습이 도축업자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깔끔해서, 류지희는 자신도 모르게 너털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

'우와, 뭐야 얘네들…….'

솔직히 말해서 조금 깼다.

방금 전, 기묘한 부탁을 내뱉으며 기절한 류지희 때문이다. 아니, 누가 들으면 내가 무슨 연쇄살인마인 줄 알겠네. 애초에 여기서 죽이면 핏자국 남잖아. 물론 그걸 내가 지우진 않겠지만, 그런 일까지 더해지면 게이트 해금은 정말로 다음 학기가 되어버리고 만다. 나로서는 결단코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것보다, 사실 지금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혹시 지희가 거짓말이라도 한 건가 싶어 최우선 포인트인 게이트를 확인하러 온 건 좋았고, 실제로 지희나 남상원이라는 양반도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정작 둘은 아무래도 방금 전까지 서로 박터지게 싸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뭐지? 보수 문제로 내분이라도 났나?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지희가 너무 결연한 목소리로 말하는 통에 조금 위축되서 묻질 못했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그런 분위기는 내가 오기 전에 끝내줬으면 하는데 말이지.

뭐, 대충 짐작은 간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희가 넘겨준 정보에 하자가 있기도 했으니. 그렇게 내가 시간을 낭비하는 동안 합류한 둘 사이에 무언가 마찰이 있었고, 남상원이 승리했다.

즉, 몸이 부족하면 머리가 고생한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이런 이런, 선생님이 그래서 제대로 훈련해두라고 했잖니~

물론 나야 두 명 팰 거 한 명만 패면 되니 오히려 편해졌지만.

'그래도 제 때에 온 모양이구먼.'

슬쩍 곁눈질로 게이트를 확인해 보니, 아직 문제는 없는 모양이다. 물론 최소한의 방비는 준비해 두었지만, 상대가 보통이 아니다 보니 영 믿음이 가질 않기도 했고.

끙차, 소리를 내며 다시금 무릎을 폈다. 마음 같아서는 쓰러진 지희 또한 조금 편하게 뉘여주고 싶었지만, 닿으면 기분 나쁠 것 같아서 내버려두기로 했다.

"이야, 깜짝 놀랐네. 아, 기다려줘서 고맙수."

"설마. 그건 이 쪽이 해야 할 말이지. '도축업자'의 명성은 익히 들었네. 사제의 정, 그렇게 말해야 할까? 어느 쪽이든, 지희를 건드릴 생각은 없는 듯하군. 고마우이."

"거 참, 누가 들으면 내가 공격하러 온 줄 알겠소."

툭 내뱉은 말에 남상원 또한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 틀린 말은 아니지 않남? 습격자는 저 쪽이고 방어자는 이 쪽. 그런데 왜 나한테 역으로 지랄이람.

"어, 뭐냐. 그래서, 항복하실라우? 일단 다른 양반들은 다 뻗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럴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하긴, 나도 한 번 말이나 해 본 거고.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심정이라고들 하지."

어휴, 시발. 이렇게 될 것 같았다니까.

나도 모르게 치밀어 오르는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니, 그래서? 거, 사정이나 한 번 들어봅시다. 결국 뭣 때문에 이 지랄을 하는 거요?"

솔직히 별 관심은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 사정 청취가 필요할지도 모르거니와, 개인적인 호기심도 있었다.

도대체 저만한 양반이 뭘 받고 여기까지 와서 차력쇼를 하고 있는 걸까.

그런 내 물음에, 남상원 또한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 혼인회의 이미지 실추를 고려하면 어쩔 수 없었다……. 10분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그런 대답을 원하는 건 아니겠지."

"뭐, 출처도 증명할 수 없는 찌라시 하나 때문에 아카데미 테러리스트가 될 생각이라는 건 아무래도 수지에 맞질 않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군. 그러니, 답할 수 있는 이유는 둘 뿐이야. 하나는 만만찮은 보수가 있기 때문이고, 나머지 하나는 차라리 이게 낫기 때문이지."

"엉?"

의문을 토하는 내게, 서류에서 본 사진보다 강인하나 그 이상으로 초췌한 인상의 사내는 나지막한 어조로 대답했다.

"혼혈이라는 게 있다. 몬스터가 사람을 덮쳐서 만들어진 생명체다. 그거 참 끔찍한 일이로구나. 사람들이 혼혈에 대해 품는 감상은 딱 그 정도겠지."

"흠."

"사실 자네부터 그렇지 않은가? 이런 사상 놀음엔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한 얼굴이고 말이야."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얼굴로 차별하지 마쇼. 나 정도면 인텔리요, 인텔리."

"그건 미안하군. 허나, 저게 내 솔직한 본심이야. 혼혈이라는 게 있다고 마치 다른 세상 일처럼 이야기하며 잡담처럼 소비하는 것보단 차라리 말이라도 나오는 게 낫다. 그게 우리 혼인회의 결론일세."

그 말에 나 또한 귓가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문득, 서류를 통해 접한 남상원의 삶이 떠올랐음이다.

짐작할 수는 있었다. 본디 일개 대학생에 지나지 않았을 사내가, 어쩌다 저런 사상을 가지게 된 건지.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버린 바로 그 날, 손에 묻은 핏값에 대고 그리 맹세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수많은 피가 흐르는 방식이라 할지라도, 이 이상의 결론을 찾아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시대다.

학생들이 그랬듯이, 누구 하나 트라우마 없기 힘든 시대. 어쩌면, 남상원의 저런 모습 또한 트라우마의 일환일지도 모른다.

그 날,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너무나도 소중해 이를 대체할 무엇 하나 찾아내지 못한 자의 몸부림. 류지희나 그에게 경도된 다른 사람들과 달리, 아직까지 제 가슴에 뻥 뚫린 구멍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사내의 포효.

그렇기에, 남상원은 저리 되새기고 있는 거겠지. 달리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스스로에게 그리 되뇌고 있는 것이다.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의 통곡을 무시하지 말라고. 희생이 적은 길이라는 이유로 무시해서는 아니 된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홀로 살아남은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고.

아직도 그 날 잃어버린 것의 무게를 잊지 못한 사내는, 그 이상으로 값어치 있는 무언가를 스스로에게 요구하고 있다.

어쩌면 단순한 보상 심리일지도 모르고. 아니, 도리어 그 쪽이 잘 어울리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뭐, 어느 쪽이든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말이 있는데, 참 잘 어울리십디다그려."

"틀린 말은 아니군."

이러니저러니 떠들어 봤자, 결국 아카데미가 잘못한 건 단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상원은 자신에게 부당한 명령을 내린 예의 집단보다 아카데미를 후려갈기기로했다.

포장은 잘 했지만, 본질적으론 당근이 먹고 싶다는 이유로 투레질하는 경주마와 다를 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자네가 상대라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

"엥?"

"허면 내 반대로 묻지. 여태까지 몇 명이나 되는 혼혈들을 베어 죽였나? 여태까지 몇이나 되는 혼혈들을, 토벌이라는 명분 하에 쓰러뜨렸나?"

남상원은 짤막한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말에는 날이 서 있었지만, 그건 박우찬이 아닌 자신을 향하고 있는 듯했다.

혼혈이라는 단어를 별다른 무게감 없이 소비하고 있는 세상에 대한 토로. 그조차 변변찮은 소일거리 하나 되지 못하는 미친 시대에 대한 증오. 아직 남자가 교사를 지망하던 시절과는 달리 지나칠 정도로 가벼워진 생명의 값어치까지.

거기에.

"나 또한 사람의 아이였던 모양이군. 그런 일로 하나하나 분개하기엔 지쳐버린 걸까? 오히려, 마음껏 화낼 수 있는 대상이 상대라 안심하고 있는 내가 있어."

마치 술에 취한 듯, 남상원은 그리 토로하며 자세를 잡았다. 나름대로 대의를 지향하던 그에게 있어, 말마따나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고 있는 자신의 상황이 퍽 우습게 느껴졌던 거겠지. 여태까지 사내가 억누르고 있던 마음고생과 그에 걸맞는 한탄이 사내의 어미에 배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나라고 해도 생사결을 앞둔 지금 이런 상황에서 침묵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니, 거 미안한데……."

"뭐지?"

"죽인 적 없는뎁쇼."

뚝.

문득, 정적이 찾아왔다.

이래서 이야기하기 싫은 거라니까, 나도 모르게 속으로 그리 투덜거리고 만다.

허나, 입을 연 이상 이제 와서 멈출 수도 없었다.

"나, 여태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혼혈 죽여본 적 없걸랑요."

그리고.

우리 둘 사이에 무어라 말하기 힘든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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