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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47화 (47/371)

〈 47화 〉 중간고사

* * *

중간고사를 맞아, 학교는 때 아닌 손님들로 붐볐다.

내년, 본격적인 아카데미 운영을 앞두고 각 방송사에서 취재를 위해 달려든 것이다.

여기서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면 내년 입학생이나 교직원들을 확보할 수 있겠지만, 자칫 잘못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역으로 구설수에 오를지도 모른다는 최승준의 말이 떠올랐다.

때문에, 시험을 앞둔 지금 교사들은 다 함께 체단실 앞에 모여 만에 하나라도 잘못되는 일이 없도록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본래라면 나 또한 저기에 끼어 있었겠지만, 지금 당장엔 그럴 수도 없었다.

교직원 대다수가 체단실 앞에 몰려 있다는 건, 반대로 말해 본교사 측의 방비가 허술해진다는 뜻.

내가 혼인회라면 십중팔구 이 때를 노리겠지.

그렇기에, 나는 본교사 구역의 정찰을 핑계로 자연스레 체단실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었다.

"존나 심심하네."

솔직히, 조금 처량한 기분이기도 했다.

다른 반 선생들은 시험 잘 보라고 응원까지 해 주고 있는 마당에, 나 혼자 여기 있는 꼴이라니.

아니, 우리 애들이야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만요…….

[생각보다 빡빡한데.]

[진짜로? 귀찮게 됐구만.]

귀에 꽂아 둔 통신기 너머로, 최승준이 그리 뇌까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카데미의 교장이라는 신분 탓에 기자들과 어울려야 했던 최승준이지만, 어떻게든 중간에 빠져나올 수 있었던 모양이다.

문제는, 생각보다 기자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었다는 점이다.

어지간한 일이라면 묻어줄 수 있다고 최승준 본인도 말이야 했지만, 그렇다 쳐도 소란 하나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낫겠지.

하물며 이번 일은 밖에다 대놓고 떠벌릴 수 있을 만한 물건도 아니지 않은가.

명분이야 이 쪽에 있겠지만, 그조차 예의 헌터를 나포하고 있다는 사실이 들키기라도 한다면 순식간에 뒤집힐 수 있다.거수자라 붙잡아뒀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제대로 장소를 잡아 싸워야 한다는 건데…….

[노력은 해 보겠지만, 너무 기대하진 마라?]

상대는 거인 혼혈 비스므리. 경험은 나 이상. 장소는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도 없고, 최대한 조심하면서 싸워야 한다.

이런 조건으로 소란 하나 일으키지 않는 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말 그대로, 여유가 있으면 시도나 해 보겠다 수준인 게 현실적이겠지.

[상관 없어. 그보단 승리를 중시하자고.]

[제압은?]

[여유가 있으면.]

뭐, 이 쪽에는 최승준이 있다.

모르긴 몰라도, 결과가 좋으면 좋을수록 녀석은 이를 어떻게든 활용하려 들겠지.

요컨대, 이번 방위 작전은 하이 스코어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클리어하는 건 어렵지 않겠지만, 높은 점수를 달성하면 달성할수록 더 훌륭한 보수가 기다리고 있을 터.

영 좆같은 조건이지만, 내가 힘을 낼 수 있는 것 또한 바로 이 때문이다. 다른 건 몰라도, 기업인으로서의 능력은 믿을 수 있는 녀석이니까.

[중요한 건 잡다한 인원들이 아니라, 남상원인가 하는 그 양반이지.]

[그래.]

[당연하지만, 난 자리 못 비운다. 그 쪽은 네가 맡아야 해.]

[옹야.]

거기까지도 예상한 대로다.

결국, 이번 방위전의 중심은 남상원이라고 하는 양반을 상대로 어디까지 전과를 낼 수 있는가.

요컨대, 내게 달렸다는 거다.

요 며칠 사이, 지희에게 들었던 혼인회의 습격 계획을 반추하며 몸을 푼다. 언제든 신호가 오면 당장에 튀어나갈 수 있도록.

노리는 건 물론 남상원 및 남상원이 들어올 거라 예상되는 진로. 아카데미에 기습을 건 혼인회를, 이 쪽에서 역으로 기습하는 것이다.

[마침 왔군.]

그리고.

마치 지나가는 듯한 어조로, 최승준은 그렇게 말했다.

물론, 뒤이어 일어난 일은 전혀 간단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변화도 없었다. 조금 쌀쌀하지 않나 싶은 기분이 들 뿐. 그러나, 나는 그것만으로도 녀석이 제 역할을 다했다 확신할 수 있었다.

엄동설한.

그렇게 일컬어지는 최승준의 능력이다. 효과는 냉기 제어. 말이 냉기 제어지, 지금 이 학교에 발을 들인 대다수 습격자들을 일격에 쓰러뜨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하고 범용성 높은 능력이다.

건물 부지 내에서 원하는 인원만을 골라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정밀성. 이만한 거리를 사이에 두고도 순식간에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을 만한 출력.거기에, 학교 전역을 범위에 넣고도 숨소리 한 번 흐트러지지 않는 용량까지.

바야흐로, 세계 최고봉의 재능에 어울리는 성능이다.

보나 마나, 예의 습격자들 대부분은 지금쯤 최승준의 능력에 당해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겠지. 그렇게 얼어붙은 혼혈들을 미리 대기시킨 인원들이 회수하고 있을 테고.

남상원 측을 제외하면, 사실상 상황 종료다.

거기까지 짐작한 나는, 가볍게 발을 굴렀다.

축지.

최승준이 능력을 행사한 덕택에, 한 순간 아카데미 내의 마력 농도가 짙어졌다. 일개 개인이 벌인 일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마력의 잔흔을 짓밟으며, 다음 순간 나는 지정된 포인트에 도착했다.

무기는 이미 꺼내두었다. 워밍업도 끝냈다. 능력은 예열할 필요조차 없다.

"자, 얼굴 한 번 구경해 보실까."

제 1차 대침공 시절부터 지금까지, 혼인회를 이끌었다는 거인 전사.

어지간한 신화 속 영웅들을 상대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타이틀을 상기하며, 나는 천천히 주변 지형을 눈에 넣어두었다.

그렇게 1분.

2분.

3분.

5분.

10분.

"……응?"

아니, 안 오는데요?

무어라 형언하기 힘든 막막함에, 나는 잠시 턱밑을 쓸어내렸다.

*

그리고.

아카데미 지하, 게이트 어귀.

남상원은 거기에 있었다.

편한 여행은 아니었다. 온 몸에 달라붙은 서리와 그을린 자국은, 거인의 힘을 받은 그에게도 잔상처를 남길 정도였다.

반대로 말하자면, 잔상처 뿐이었다.

만일 아카데미의 방위 체계에 대해 들어두지 않았다면 상당히 귀찮아졌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여기까지 오는 것조차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의외로 어떻게든 됐군. 속으로 그리 중얼거린다.

이 아카데미에 붙잡혀 있을 거라는 헌터가 어디에 있을지 예상하는 건 쉬웠다. 여하간, 교사라는 직업은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기 마련.A랭크에 준하는 헌터를 무분별하게 방치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십중팔구 학교 내 어딘가에 쳐박아뒀을 가능성이 높다.

허면, 학생들이나 다른 교사들 눈에 띄지도 않으면서 만에 하나 정신을 차린 헌터가 날뛰어도 문제 없는 장소.

여기까지 고려하면, 지금은 임시 폐쇄되었다는 게이트 쪽이 가장 가능성이 높았다.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당장 눈에 밟히는 건 없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는 옛말처럼, 일부러 눈에 띄지 않게 사람들을 물려둔 거겠지.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아무 방비 하나 없을 거라 생각하긴 힘들다. 게이트 안에는 십중팔구 헌터를 감시하기 위한 인원이 상주하고 있을 테고, 남상원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이들과 부딪혀야 하겠지.

말하자면, 이번 임무는 게이트 안에 들어가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할 수 있다.

시간 내에 감시하고 있는 인원들을 때려눕히고, 헌터를 탈취해 도망친다.

어느 쪽이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더 이상 그에게 다른 길은 없었다.

손을 뻗어 게이트 앞을 성의 없게 둘러친 쇠사슬을 붙잡았다. 그것만으로도 손에 쥔 사슬이 힘없이 바스라졌다. 장갑 안에 남은 쇳조각을 이리저리 살피길 여러 번, 흔적을 특정할 수 없으리라는 확신이 선 뒤에야 사내는 어깨 너머로 파편을 내던졌다.

챙그랑, 얇고 높은 금속음 소리.

그 너머로, 우아한 구둣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깔끔하죠? 아저씨."

남상원에게 있어선 익숙한 소리였고, 동시에 지금 듣고 싶진 않은 목소리였다.

천천히 사내가 고개를 돌리자, 저 너머로부터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지희의 모습이 보였다.

"시험을 치르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아아, 그거요? 어차피 지금 당장 치르는 것도 아니라서, 잠깐 빠져나왔죠."

자그마한 비행을 들킨 것마냥, 지희는 짧게 쿡쿡 하고 웃었다. 그에 맞추어, 은빛 머리카락이 반짝이며 흔들렸다.

그 모습에, 남상원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 세수를 했다.

"시험은 제때제때 치러야지. 돌아가거라."

제 1차 대침공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남상원은 교사 지망생이었다.

우등생 같은 남상원의 말투에 지희는 딴청을 부렸다. 숫제 지루하다는 투였다. 그러나 남상원이 완고하게 자신을 바라보자, 곧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좁힐 수밖에 없었다.

"고맙다는 말은 안 하세요?"

"뭘?"

"여기 사람들, 제가 치워 놓은 거거든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남상원은 단박에 이해할 수 없었다.

허나, 뒤늦게 따라온 이해가 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설마 일개 학생에 지나지 않는 지희가 여기에 있던 헌터들을 모조리 치워버렸다는 건 아닐 테지.

때문에, 상상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지희가 이번 습격 계획을 아카데미 측에 유출한 것이다.

아마도, 잘못된 정보를 섞어서.

이 시점에서 이미 혼인회에 대한 배신이나 다름없는 행위였지만, 문제는 아카데미의 교사들이 일개고등학생에 지나지 않는 지희의 말을귀담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하긴 힘들다는 점.

요컨대, 지희는 십중팔구 이를 위해 자신의 정체를 공표했으리라.

정말로 일개 고등학생이라면 모를까, 상대가 혼인회의 내부 고발자라면 아무래도 무시할 수 없었을 테니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니?"

"어라, 칭찬 안 해주세요?"

"설마 칭찬을 들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진 않았을 거라 믿는다."

"뭐, 그건 그렇죠."

조용히 어깨를 좁히는 지희의 모습에, 남상원은 한층 더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 이 계획에 손을 거들기로 했을 때, 자신은 분명 지희에게 그리 못박아두었다. 쓸데없이 끼어들 생각일랑 하지도 말라고.

솔직히 말해, 승산이 높은 계획이라고는 할 수 없었으니까.

때문에, 그로서는 아무래도 내키지 않았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다른 녀석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토록 허술한 계획을 위해 고작해야 약관의 나이도 되지 못한 꼬마들을 위협에 노출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하물며 지희처럼 아직 정체를 들키지 않은 혼혈이라면 더더욱.

허나, 지희는 그런 남상원의 경고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아카데미와 접촉했다.

사람들을 불러들일 걱정이 없었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호통을 치고 싶을 지경이었다. 뭘 한 거냐고,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고는 있는 거냐고.네가 지금 저지른 일은 네 앞날을 떼어다 팔아먹은 거나 다름없는 행동이라고.

하지만, 지희는 오히려 뺀질대는 고등학생처럼 그리 말할 뿐이었다.

"아저씨, 제가 안 나섰다면 무슨 일이 있었을지 생각해 본 적 있으세요?"

"생각해 본 적 없고, 앞으로도 생각할 예정 없구나. 돌아가라. 얼른!"

"만약 제가 움직이지 않았다면, 아저씨는 여기서 '도축업자'랑 부딪혔을 거에요."

"……너희 담임 말이냐?"

"네, 아저씨가 말씀하신 그 도축업자요."

물론 남상원 또한 그 이름은 알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조금이라도 협회 밖의 사정에 귀를 기울인 적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들어보았을 테지.

그렇기에, 이 학교에 그 악명 높은 도축업자가 있으며 심지어 지금은 지희의 담임을 맡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남상원은 거의 기절할 뻔했다.

처음 이 의뢰를 언급한 대변인 또한 그렇게 말했다. 괜찮겠느냐고. 도축업자의 악명은 자신 또한 알고 있으며, 그 도축업자에게 있어 당신들은 몬스터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신빙성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여하간, 그토록 귀기 어린 사내다. 모르긴 몰라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 이미 세 자릿수를 넘는 혼혈들을 도살했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지희를 이번 일에서 떼어놓고자 한 데에는 바로 그런 이유도 있었다. 자신과 같은 이들이라면 모를까, 고작해야 열 일곱의 나이에 벌써부터 살육전을 알게 하는 건 역시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하, 그렇게 생각하셨구나."

"그래. 그러니 지금이라도……."

"그럼, 제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그러나.

그건 지희에게 있어선 알 바 아니었다.

"세상에,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위험하다? 잘못되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데려가지 않겠다?"

"으, 으음."

"그럼 제 기분은요? 아저씨랑, 다른 사람들까지 다 죽으면 제 기분은 어떻겠어요? 그렇게 위험한 일인데, 다른 사람들 다 보내고 나 혼자만 가만히 있으라구요? 아저씨 죽인 사람 밑에서, 태연하게 수업이나 들으면서?"

문득, 지희는 언젠가 박우찬이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째서 너희들이 초인이나 영웅 대신 헌터라 불리고 있는지 알고 있냐?

그렇게 묻는 박우찬의 말에, 자신을 헌터라 생각해 본 적 없던 류지희는 내심 코웃음을 치곤 했다.허나, 이에 개의치 않고 박우찬은 그리 말했다.

그건 너희가 능력을 각성??했다 한들 깨달은 건 무엇 하나 없기 때문이며,사람을 능가하는 힘을 가졌다 한들 초인?人이 아니기 때문이요, 수많은 매체에서 너희를 영웅시한다 한들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한 너희들은 사실 영웅??조차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그 말대로였다.

날 때부터 혼혈이었으나, 살면서 깨달음을 얻은 적은 없었다. 사람을 능가하는 힘을 지니고 태어났지만, 사람을 능가하는 정신까지 손에 넣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하물며, 자신과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당장 죽어버릴지도 모르는 판국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시험이나 치르고 있을 자신 따위는 더더욱.

때문에, 지희는 여기에 있었다.

도축업자, 박우찬에게 거짓 정보를 흘리긴 했지만 이걸로 벌 수 있는 시간이래봐야 고작 10분 남짓.

그 10분 사이, 어떻게든 이번 일을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다.

'이길 수 있을까?'

자신은 없다. 솔직히, 승산도 희박하다. 애초에 아저씨를 어찌저찌 쓰러뜨린다 해도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곤 확신할 수 없다.

허나.

설령 그렇다 한들, 혼혈의 권리 따위를 위해 그들이 죽는 걸 감내하느니 차라리 숨죽이고 사는 게 훨씬 낫다고.

초인도, 영웅도 아닌 열 일곱살 계집애는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음이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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