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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45화 (45/371)

〈 45화 〉 시험 기간

* * *

"이상한데."

그리고.

내 보고를 들은 직후, 최승준은 딱 잘라 그리 말했다.

장소는 교장실. 예의 고민 상담이 끝난 뒤, 나는 곧바로 최승준에게 달려가 방금 전 있었던 일에 대해 상세히 털어놓았다. 아카데미 습격에 대해 상의하기 위함도 물론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내 선에서 생각하기 귀찮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최승준이 아닌 내게 접촉한 시점에서 녀석에겐 비밀로 해 달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내가 저 쪽 집단 대변인도 아니고 아무려면 어떻겠냐 싶어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이상한가?"

"그래."

"어떤 부분이?"

"다른 것보다, 태도가 수상쩍어."

실제로, 나와 달리 최승준은 벌써부터 눈에 밟히는 점을 거론하고 있었다.

딱, 딱.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원목 가구. 일개 교장실 비품이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화려한 물건을 가볍게 두드리며 조용히 뇌까리는 최승준의 모습은, 아카데미의 교장보단 재벌가의 상속자에 가깝다. 때문에, 다음 순간 입을 연 최승준의 발언이 교육자보단 기업가에 가까운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 또한 쉬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일에서, 우리들은 어디까지나 피해자. 그렇지?"

"거야 뭐, 그렇지."

"물론 우리도 이번 일을 묻어두기로 결정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들 내부 사정 때문이지 저 쪽과 합의한 사항 따위는 아니란 말이야."

"그래서?"

"모가지가 빳빳해. 이상할 정도로 말이지."

의외로, 녀석은 지희의 태도를 언급했다.

이제 와서 그런 일에 신경 쓸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녀석은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개인적인 자리라면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니니까. 적어도 사과하러 온 태도는 아니지."

"하긴."

정말로 사과할 생각이었다면, 최소한 이번에 납치당한 윤하에겐 개인적인 사의를 표해야 마땅하다.

허나, 저들은 마지막까지 단 한 번도 윤하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물론, 대외적인 이미지를 중시하는 혼혈 인권 신장 위원회로선 쉬이 인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을지도 모르지.어쩌면 자신들과 상관 없는 일부 조직의 폭주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그 쪽 사정이고~

아무리 비공식적인 자리였다고는 하나, 한 집단의 대표라기엔 기묘할 정도로 방약무인한 태도였음은 부정할 수 없다.

요컨대.

"저 쪽의 본 목적은 사과가 아니다?"

"그렇겠지."

뭐, 말이야 저렇게 해도 딱히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집단과 집단 사이의 관계란 대개 그런 법이니까.

문제는 정작 저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허면.

"앞으론 어쩔 거냐?"

"일단 대비하기는 해야지."

신뢰할 수는 없다. 신용도 얻지 못했다. 하지만, 믿어서 손해 볼 것도 없다.

만족스러운 얼굴은 아니었지만, 최승준은 그렇게 결론 내린 듯했다.

물론 때 아닌 추가 근무에 교직원들은 불평을 토하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최승준에겐 그런 불만을 찍어누를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양의 돈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순 없지. 앞으로도 저 쪽이 먼저 접근할 테니, 목적을 캐 봐. 내 이름을 팔아도 좋고."

"뭐, 나야 상관 없지만……."

"음?"

"아니, 너는 괜찮냐?"

"뭐가?"

"까놓고 말해서, 혼혈 말이지."

막말로 나야 무심코 죽여버리고 싶을 뿐이지만, 학사 차원에선 어떨지 모르고.

헌터로 위장 입학한 지희의 처우나 아카데미 측에서 바라보는 혼혈에 대한 입장 등, 최소한 그런 부분은 이야기를 맞춰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런 내 질문에 대해 최승준은 능청스레 어깨를 좁힐 뿐이었다.

"중요한 건 종족이 아니야. 능력이지."

"무서운 새끼."

듣기엔 좋은 말이었지만, 도움이 되지 않을 경우 인권이고 나발이고 전부 무시하고 내칠 거라는 소리였다.

역시 이 새끼도 재벌가란 말이지. 가끔 보면 생각하는 차원이 다르구나, 싶다니까.

아니,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정치적인 부담은?"

"신경 쓸 필요 없어. 만약 일이 생겨도 어떻게든 묻어 주지. 해라."

"권력의 맛 달달하고~"

낄낄거리며 손사래를 쳤다.

뭐, 혼혈을 상대해 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뭐든 부담을 덜 수 있다면 고마울 일이지.

그렇게, 다소 미묘한 오월동주가 시작되었다.

*

그 뒤로도, 지희는 태연하게 얼굴을 내밀었다.

하긴, 이제 와서 갑자기 모습을 감춰도 곤란할 뿐이다만.

여느 때와 같이 장난스러운 태도로 수업을 듣는 지희의 모습을 보며, 머릿속으론 최승준에게 조사를 부탁한 혼혈 인권 신장 위원회에 대한 정보를 곱씹는다.

혼혈 인권 신장 위원회. 줄여서 혼인회. 어째 결혼 정보 회사같은 이름이 되었지만, 하고 있는 일은 오히려 전형적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혼혈들의 인권 신장을 위한 시위나 토론 등이다..

정부의 인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변함없지만, 지금이 전근대도 아닌 이상 인권 운동까지 통째로 탄압할 수도 없는 노릇. 때문에, 말이 비공식 단체지 사실상 공식 단체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개중에서도, 남상원이라는 양반은 상당한 유명인이었다.

신상 자체는 지희가 이야기한 것과 얼추 비슷하다. 단, 남상원 본인은 단순한 과격파 행동대장 수준이 아니었다.

여하간, 이 나라에서 혼인회에게 섣불리 제동을 걸지 못하는 이유 또한 바로 남상원 때문이었으니.

이런 집단이 으레 그렇듯이, 혼인회 한국 지부 또한 혼혈 혐오자들에게 습격당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혼혈 따위를 받아들이자니 제정신이냐, 차라리 몬스터에게 당한 사람들을 돕자고 해라…….

심지어 개중에서는 혼혈들을 키메라라 비하하는 이들조차 있을 정도였으니, 어떤 참사였을지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겠지.

남상원이 두각을 드러낸 게 바로 그 때였다.

연일 혼인회를 덮치던 습격자들의 만행에 마침내 꼭지가 돌아버린 남상원이 역으로 그들을 쓸어버린 이후, 이러한 습격 사건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필이면 습격자들 중 극렬한 반 혼혈주의 헌터까지 있었던 판국이니, 협회 또한 섣불리 혼인회에 손을 댈 수 없었다.

바야흐로 혼인회의 수호신이라 할 법했다.

적어도 단순히 써먹기 좋은 선동가나 무식쟁이는 아니라는 거다.

그런 남상원이 혼인회 중에서도 과격파라 분류되는 건 바로 그의 주장 때문이었다.

혼혈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시민권 인정.

지나칠 정도로 급진적인 사상이다.

……당연하지만, 국민 정서를 고려할 때 단박에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원치 않게 혼혈아들을 낳은 이들이 대부분인 지금은 더더욱.

허나, 남상원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층 더 과격한 주장에 불을 당겼다.

만일 대한민국 정부가 그들을 인정해 줄 경우, 자신을 포함한 혼인회 전원이 협회에 등록할 용의가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나쁜 제안은 아니다. 여하간, 정부 입장에선 군을 제외한 다른 무력 집단을 방치하고 싶지 않을 테니까. 지금도 헌터나 민간인들의 반대만 없었다면 혼혈들 또한 협회로 끌어들이고 싶은 심정이겠지.

대놓고 이 나라의 헌터 품귀 현상을 언급하는 배포. 제 2차 대침공이 종식된 지금이라면 모를까, 언젠가 찾아올 제 3차 대침공을 앞두고 언제까지 안심할 수 있겠느냐 되묻는 실무적 감각.

동시에, 자신은 그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다는 발언까지.

'캐릭터 한 번 확실하네.'

과격한 사상 탓에 주목받지 못하고 있을 뿐, 어떻게 잘 다듬으면 정치권이라도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주장하는 내용 또한 마찬가지다. 혼혈 인권 선언. 반감을 가질 수는 있어도, 대놓고 반대한다고 말하긴 어려운 내용 아닌가.

'적어도 단순무식한 행동파는 아니라 이거지.'

혼인회 내부의 혼혈들을 동원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선언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말이 좋아 헌터 등록제지, 실제로는 국가에 의한 감시라는 걸 모를 양반도 아니다. 아니, 다른 건 둘째치더라도 사실상 군대 가자는 이야기인데 이걸 받아들이는 녀석들이 대다수라는 시점에서 혼인회 내부의 남상원 일파가 얼마나 되는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단순히 싸움만 주고받는다고 해서 어떻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 더더욱 의문이었다.

헌터를 영웅시하며 국론을 하나로 끌어모으는 데에 성공한 이 대한민국에도, 혼혈 헌터가 없지는 않다. 허나, 몬스터와의 싸움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헌터 협회의 특성 상 그런 이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일은 드물었다.

실제로도, 혼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CF를 찍었던 기업이 기업 이미지 손상을 이유로 광고를 내려달라는 말까지 하는 판국 아닌가.

요컨대, 이 양반을 포함한 혼인회는 이 업계에서도 상당한 비주류라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3차 대침공의 존재를 예견할 만큼 나쁘지 않은 통찰력을 지니고 있는 양반이다. 정치적 감각도 나쁘지 않고, 내걸고 있는 공약도 단순한 공염불은 아니다.

헌데, 이런 양반이 아카데미 습격을 주도하고 있다니?

아무래도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서면상으로 확인한 남상원과 후폭풍을 무시하고 혼인회의 혼혈 부대에 의한 아카데미 습격을 추진하는 남상원. 둘 사이에는 무어라 말하기 힘든 간극이 있었다.

저 쪽이 다른 당근이라도 내민 걸까?

설득력 없는 주장은 아니다. 문제는 정작 그 당근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는 점이지만.

허나, 한 가지 확실한 점이 있었다.

'류지희.'

일단 저 계집애가 혼인회 대표로 나를 찾아왔다는 건 십중팔구 거짓말이겠지.

저만한 양반이 혼인회에 있는 이상, 온건파도 보다 스마트한 수법을 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이 쪽과 예의 헌터 관련으로 무언가 협상을 하자거나 하는 식으로.

여태까지의 행적을 볼 때, 남상원은 거의 혼인회의 수호자나 다름없는 입장. 잘 해도 절반이나 되면 다행일 온건파가, 이제 와서 남상원을 숙청할 수 있을 리도 없다.

아니, 권력에 눈이 돌아가면 뭐든 할 수 있는 게 또 사람이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건 물리적으로 무리다.

저만한 거물이라면, 설령 온건파 쪽에서 일방적으로 숙청하려 한들 이야기가 새어나갈 수밖에 없을 테니까.

요컨대, 류지희 저 앙큼한 계집애가 단순히 거짓말을 했거나. 혹은, 온건파 최상층 내부에서 결정된 사안이거나. 둘 중 하나다.

'중요한 건, 류지희의 목적과 과격파에게 내민 당근이겠군.'

머릿속으로 셈을 마친다.

그러는 와중에도 교실은 평화로웠다. 머잖아 혼혈들이 학교를 습격할 거라곤 도저히 생각하지 못하는 얼굴로, 학생들은 오늘도 얼마 뒤 시작될 중간고사에 대해 열을 올리고 있었다.

'씨발, 생각해 보니 어질어질하네.'

왜 나는 이런 고민이나 하고 있는 거지?

몸에 맞지도 않는 선생 노릇이야 어느 정도 감수하기로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정치극은 선 넘었지.

아직 이예은과 관련된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고, 윤하에게 설명할 말도 막막한 상황.

거기에 이제는 학생들 중 한 명이 사실은 혼혈이었으며, 자신이 소속된 혼혈 집단에서 학교를 습격할 예정이라 선언하고 자빠졌으니.

참고로 교사 일 시작한 게 고작해야 1개월 전, 반올림해도 이제 막 2개월째다.

심지어 하연이 쪽은 제대로 갈피조차 잡히지 않았고.

그런 상황에서 나는 혼인회의 습격도 대비하고 중간고사도 진행해야 한다.

"사표 쓸까."

"어, 선생님 사표 써요?!"

"갑자기 왜요?!"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던 말을 내뱉어버린 모양이다.

여태까지 나와 관련된 애들의휘둥그레진시선이 날아와 꽂히는 게 느껴졌다. 하연이는 물론이요 이예은이나 황윤하, 심지어 정필연까지.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 교실을 진정시키기 위해 손을 휘저으며, 나는 되는대로 입을 놀렸다.

"아니, 요새 일하다 보니 사표 쓰고 싶은 기분이다 이거지."

"에이~"

"진짜 사표 쓰는 건 아니죠?!"

반쯤 농담으로 아쉬워하는 녀석들 사이에 낀 류지희가 손나팔을 울리며 그리 묻는다.

나도 모르게 혈압이 높아지는 듯한 기분을 삼키며 애써 웃었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탈모 나면 그 날로 사표 쓴 다음 류지희 쟤는 용서 안 한다, 진심.

직접적으로 내게 해를 끼친 건 없고, 오히려 경고를 해 주러 온 입장이라지만 원래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법.

속으로 부득불 이를 갈며 그리 한탄하는 가운데, 녀석들의 아우성은 한층 더 높아졌다. 때문에, 나 또한 질린 투로 그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야, 그럼 안 힘들게 생겼냐? 실습도 중단되서 중간고사 처음부터 끝까지 다 뜯어고쳤는데?"

"그래서 결국 저희 시험 어떻게 보는데요?!"

"맞아, 알려줘요!!"

"감동적인 자식들. 안 그래도 그 이야기 하려고 했다!"

어떻게 내 걱정하는 놈들이 단 한 명도 없어, 그리 투덜거리자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다.

뭐,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드디어 중간고사 내용도 정해졌다는 거다.

"이번 중간고사는, 상황 대처 능력 평가."

말 그대로, 학교 측에서 제공하는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는지 살피는 시험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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