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혼혈
* * *
그 결과.
"아악!! 자, 잠깐. 살려, 살려주십쇼!! 마, 말하겠습니다. 말하겠습니다요!! 말하게 해주십쇼!!"
이렇게 되었다.
한밤중의 강변. 그 어귀에 서서, 칼날을 낚싯대처럼 늘어뜨린다. 비록 잡으려는 건 물고기가 아니라 정보요, 미끼로 사용한 건 지렁이가 아닌 고아원 원장이었으나 그 효과는 확실했다.
"제발, 제발!! 살려만 주십쇼,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아니, 거 참. 말 한 번 섭섭하게 하시네……. 누가 들으면 내가 협박이라도 한 줄 알겠수. 안 그런감?"
"아, 예!! 맞습니다, 맞고요.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협력, 선의의 협력이죠!! 예!!"
"캬, 역시 뭘 좀 아시네!"
내가 생각하기에도 참으로 평화로운 협상이었다.
쭉 내밀고 있던 칼날을 잡아당기며, 짐짓 요란스레 팔을 흔든다. 그러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원장이 다 죽어가는 소리를 터트렸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낄낄거리길 잠시, 머잖아 그는 다시금 아스팔트 바닥 위에 발을 붙일 수 있었다.
"헉, 허억!"
다만, 발을 붙였다고 표현하기엔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이긴 했다.
바닥에 널부러진 채 거칠게 숨을 고르는 원장. 나를 올려다보는 그 시선엔 어째서 이런 일을 하는 거냐는 의문과 사소한 원망이 담겨 있었다.
물론, 나 또한 할 말은 있었다.
"그러게 원생 신상 정보는 왜 빼돌립디까그려."
쯧쯧, 혀를 차며 그리 말하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던 원장의 시선이 한풀 꺾였다. 본인도 부끄러운 줄은 알고 있는 모양이다.
아니, 나도 처음에는 이야기만 들을 생각이었는데 말이지~
그러기에는 눈 앞의 원장 선생님께서 늘어놓는 이야기에 너무 영양가가 없었다. 하연이는 조용한 아이였다는 둥, 별다른 문제 하나 일으키지 않았다는 둥…….
틀린 말은 아니었겠지만, 내가 알고 싶었던 사실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 고아원 또한 수상쩍기는 매한가지다. 솔직히 말해, 심증만 따지면 반 이상 저 쪽의 끄나풀이라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사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개학 이래, 하연이의 신병을 노리고 있는 이들은 거의 달에 한 번 빈도로 사건을 일으키고 있다. 허나, 그런 저들이 유달리 조용했던 시기가 있었다.
나와 하연이가 만나,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까지 얼마간.
첫 만남부터 대뜸 A랭크 몬스터 셋에 S랭크 몬스터 하나를 쳐박았던 이들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들은 완고하게 침묵을 견지했다.
저번에 추론한 바에 따르면, 저들이 내 정체를 눈치챈 건 잘 해도 아카데미에 나타난 악마를 도살한 이후. 때문에, 당시 저들이 나를 경계해 몬스터를 보내지 않았을 리는 없다.
허면, 저들은 어째서 그 기간동안 하연이에게 별다른 수작을 부리지 않은 것인가?
거기에 대해, 나는 보다 단순하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아니, 그냥 걔가 어디에 있었는지 몰랐던 거 아니냐?
그렇게 생각해 보니 상황이 한층 명료하게 느껴졌다. 애초에, 내가 옆에 있었다고 해서 저들이 일을 벌이지 않았던 적도 없지 않았나.
처음에는 내가 끼어든 거라 쳐도, 내가 있는 아카데미 한 가운데에 S랭크 몬스터를 떨어뜨리거나 나 하나 떼어놓을 생각으로 학생까지 납치하던 녀석들이다. 저 친구들이 나를 높게 쳐 움직이지 않았다는 건,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별로 고려할 가치가 없는 추측이었다.
허면,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문제점이 생긴다.
그렇다면 저들은 어떻게 하연이가 아카데미에 입학했다는 사실을 알아낸 걸까?
설마 하연이가 헌터라는 이유로 아카데미 입학생 목록을 뒤져본 건 아니겠지. 애시당초 나와 만나지 않았다면 하연이는 지금쯤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대신 공사판에서 공구리나 치고 있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저들은 하연이가 아카데미에 입학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 실습을 틈타 몬스터를 보냈다.
하필이면 아카데미 생도 목록을 주욱 훑어보고 있던 누군가가 마침 딱 하연이의 이름을 발견한 게 아니라면, 십중팔구 저들에게도 독자적인 정보망이 존재한다는 뜻이겠지.
문제는 나와 하연이가 처음으로 만났을 당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이준구가 손수 함구령을 내렸다는 점에 있었다.
협회에 올라갈 보고서도 적당히 가필된 시점에서, 하연이가 아카데미에 들어갔다는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건 단 둘.
첫 번째는 당시 드래곤들의 사체 처리에 협력한 협회 쪽 인력이요, 두 번째로는 하연이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합법적으로 관공서에 조사를 부탁할 수 있는 사람.
다시 말해, 하연이가 신세 지던 고아원의 원장 뿐이다.
때문에, 협회 측 인원들의 조사를 둘에게 맡긴 난 그대로 이 고아원으로 향했고…… 몇 번 정도 떠 본 결과 노골적으로 수상한 태도를 보이던 원장 선생님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잘 됐네, 잘 됐어.
"해서, 뭐가 어떻게 된 거요?"
주욱 훑어보긴 했지만, 이 고아원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적어도 내 감지 범위 내에서 수상쩍은 기척이 느껴지지도 않았고.
허면, 이 다음부터는 철저하게 원장 쪽을 캐 볼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원장은 퍽 협력적인 태도를 고수했다. 역시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면 안 될 게 없다니까. 진솔한 대화가 최고다.
"사실 그 애는 평범한 고아가 아닙니다."
"요즘 세상에 평범한 고아가 어디 있다고……."
"크흠!"
"거, 알겠수다. 말이나 계속 해 보쇼."
재촉의 의미를 담아 턱짓하자, 원장 또한 흥이 올라 묻지도 않았던 일까지 줄줄이 토해내기 시작했다.
"제가 그 애를 맡은 건 17년 전 겨울이었습니다요."
"17년 전이라."
"뭐, 그렇습죠. 눈이 오던 날이었는데, 몇몇 젊은이들이 다가와 애를 한 명 맡기겠다는 게 아니겠습니까?"
"흠, 그래서?"
"뭐 어쩌겠습니까, 이게 제 일인데. 맡기로 했습죠. 만약 부모라도 됐으면 예의상 한 번쯤은 말려보기라도 했겠습디다만, 것도 아니었고."
"응? 부부가 아니었다니, 그걸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게 남정네들 뿐이었거들랑요."
"아하."
거 참 머쓱한 대답이었다.
"뭐, 내버려 두면 애 하나 얼어 죽을 판국인데 어쩔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알겠다고 했는데, 이게 아무래도 이상하더군요."
"아니, 그렇게 말해도 모르겠으니 설명이나 해 보쇼. 뭐가 그리 이상했는데?"
"애를 맡길 사람이 할 법한 행동이 아니었다, 이거죠. 처음엔 어디서 버려진 애를 주워오기라도 한 건가 했는데, 별 시시콜콜한 걸 다 묻지 뭡니까?"
"시시콜콜한 거라니?"
"열 여섯까지 애를 돌봐준다는 말을 들었다, 틀림 없느냐? 여기 시설은 어떻냐. 뭐 이런 것들이었죠."
확실히, 다소 묘한 이야기였다.
아니,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애를 맡기는 경우도 있으니 시설에 관심을 가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허나, 늙으수레한 원장 양반이 털어놓은 이야기는고작 그 정도가 아니었다.
"그렇게 몇 번 묻더니, 이젠 또 만족해서 여기 맡기겠다 하더군요."
"그냥 인사치레 아녀?"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죠. 하지만, 그렇지 않더군요."
"그렇지 않았다니? 뭐가?"
"돈을 주덥디다."
참으로 경우 없는 소리였다.
무심코 웃음이 삐져나오고 말았다. 허나, 눈 앞에 있는 양반은 아무래도 진지한 듯했다.
"사실 이런 경우가 없는 건 아닙디다. 자기는 버리고 가겠지만, 그래도 애는 잘 키워달라 이거죠. 뭐, 진심으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제 양심을 달래려는 건진 잘 모르겠습디다만."
"꽤 신랄하신데."
"이런 세상이니까요."
"그래서? 그 말대로라면 딱히 특별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예. 하지만 그 치들은 그런 말을 하지 않더군요. 당신을 고용하겠다, 열 여섯 살까지 잘 키워줄 거라고 믿는다……. 그리 말하더랍디다."
"수상한데."
"그렇지요? 그래서 혹시 무슨 사정이라도 있는 건지, 어떤 대우를 바라는 건지 물으니 그건 또 아니라고 그럽디다. 다른 원생들이랑 똑같이 대우해 주라더군요."
말로만 들으면 단지 그 뿐이다.
허나, 그 뒤로도 이상한 일이 계속되었다.
그 날, 하연이를 맡기고 사라진 사내들은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그 날을 기점으로 매년 겨울마다 누군가 원장의 통장에 거액의 돈을 입금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수상하게 여기지도 않았수? 듣기만 해도 겁나 수상하구만."
"거, 미안한데 이런 시대에 고아원 원장 노릇 하고 있으면 정말로 못 볼 경우 빼고 다 봐요. 어디 누구 회장 사생아라던가 그런 거 말이오. 이번에도 그런 건줄 알았지."
때문에, 누구 하나 설명해 주는 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장은 알 수 있었다.
당신을 고용하겠다.
하연이를 맡기던 그 날,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말하자면, 이는 그들이 원장이라는 아이 돌보미에게 주는 수고비였다.
아무리 그래도 통장 번호 한 번 알려준 적 없는 사람들이 돈을 보내기 시작하면 의심해야 하지 않을까 싶긴 했지만, 저렇게 말하니 또 내가 할 말도 없고.
하긴,내가 생각해도 그런 답밖에 안 나올 것 같긴 하다.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아이를 맡기고 사라진 건장한 청년들. 그 날을 기점으로 매년마다 알려준 적도 없는 통장으로 입금되는 어마어마한 보수.
어딜 어떻게 봐도 입막음 비용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뭐, 다행히 별 일은 없었고. 그렇게 16년이 됐수다. 그 쪽 양반들이 뭐라고 한 적도 없으니, 당연히 하연이도 퇴소하게 됐고."
"그래서?"
"그래서 그런갑다 했는데, 어느 날 연락이 오지 뭡니까?"
나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잡았다.
자그마치 16년 만에 찾아온 연락이었으나, 원장은 귓가 너머로 들리는 숨소리에 16년 전 눈 내리던 그 날의 모습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상당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함 없는 억양. 당신을 고용하겠다고 말하던 그 느낌 그대로, 수화기 속 목소리는 당시 그들만이 알 수 있는 사실을 언급하며 원장에게 협력을 부탁했다.
"그래서? 저 쪽이 시키는 대로 하연이 신상까지 갖다 바치셨다, 이건가?"
"……그렇게 들으면 할 말이 없지만,처음엔 엇갈렸을 뿐이라 생각했습죠."
"엇갈려?"
"열 여섯이 됐으니 어련히 본가에서 데려갈 심산이려니, 하고 말입디다. 그게 어쩌다 보니 차질이 생겨서 부랴부랴 연락까지 넣은 거고."
물론 원생의 정보를 무단으로 유출하는 건 안 될 일이었지만, 그렇다 해서 입을 다물고 있을 수도 없었다. 막말로, 그러다가 원생 한 명 인생 망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원장은 그리 말했지만, 실제로는 어떨까. 어쩌면 진심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단순히 정체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권력자를 앞두고 지레 겁을 집어먹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도저히 당당하다고는 말 못 할 자신의 행동을 사내는 그렇게 합리화했다.
문제는 없었다. 여하간, 그에게 있어선 자그마치 16년 만에 찾아온 이름 모를 낯설 이의 전화 한 번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허나.
자신이 저지른 일 때문에 헌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도, 원장의 얼굴에는 죄책감 하나 없었다. 오히려 왜 이런 일로 자신을 귀찮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군.'
거기에 대해 무어라 첨언하는 대신, 나는 그리 결론짓기로 했다.
이를 통해 저들은 하연이의 입학 사실을 깨달았고, 일련의 사건을 저지른 결과 지금에 이른다.
다만, 미심쩍은 상황인 건 여전히 마찬가지다.
어째서 저들은 하연이를 고아원에 맡겼던 걸까? 그리고 16년이 지난 지금, 하연이를 다시 데려가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양육이 버거운 새댁이라기엔 아무래도 지나치다.
무언가 사정이 있다는 건 알겠지만, 결국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다는 느낌.
답을 듣기 위해 찾은 고아원이었건만, 정작 혹만 붙이고 온 기분이다. 결국 하연이에게 뭐가 있긴 있구나 하는 감상 외에는 남은 게 없었으니.
매년마다 들어왔다는 양육비 쪽도 조사해 보긴 하겠지만, 십중팔구 변변찮은 결과만 나오겠지. 머리에 담아두되,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으리라.
다만.
"거, 알겠으니 지금 이 고아원 후원하고 있는 재단이나 기타 등등 리스트 싹 뽑아서 가져와 보쇼."
"지, 지금 말입니까?"
"그럼 지금이지 또 언제야."
만약 내가 이번 일을 획책한 이들이라면, 기껏 확보한 고아원을 손 놓고 방치하지는 않았겠지. 인간 사회에 뿌리내린 드래곤들에게 옷을 챙겨준 것처럼, 달리 어떻게 사용할 방법은 없을까 궁리해 보았을 것이다.
뭐, 이렇게 말하는 나 또한 저들의 사정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사정이 있는 건 틀림없겠지.'
방금 전, 원장이 말했던 것처럼 무언가 엇갈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솔직히 말해, 하연이를 데려가려는 행동에도 낭비가 있고.
나라면 차라리 퇴소를 앞둔 하연이를 찾아가 회유했을 거다. 이 경우, 앞길이 막막했던 하연이 또한 십중팔구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을 테고.
물론, 녀석들의 사정 따위 내 알 바는 아니었다.
막말로, 몬스터랑 손을 잡는 미친 자식들 생각을 내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지금은 그 대신 닥치는 대로 수상한 점을 찾아 머릿속에 쑤셔넣을 때였다. 언젠가 이 또한 쓸모가 있겠지, 그런 생각과 함께.
이렇게, 그 날의 고아원 조사는 미래를 기약하며 막을 내렸다.
허나.
다음 날, 학교.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생각보다 빠르게, 입질이 찾아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