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도수공권
* * *
눈 앞의 남자, 박우찬의 추론에는 옳은 점도 있고 틀린 점도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본인도 알고 있겠지만, 별다른 근거 하나 없이 찍어 맞춘 거나 다름없는 이야기니까. 말하자면 어디까지나 음모론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히려, 단순한 감으로 거기까지 때려 맞춘 박우찬의 직감을 상찬해야 할지도 모른다.
허나, 야성이라 칭해야 할 박우찬의 육감에도 한계는 있다. 그리 생각하며, 황윤하를 납치한 사내는 허리춤에 매달아놓은 도끼를 와락 하고 움켜쥐었다.
그에게 이름은 없다. 임무를 위해 사용한 가명은 있지만, 그조차 얼마 전 버렸다. 가족 따위는 만든 적도 없거니와,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에게 있어 자신을 이루고 있는 모든 구성 요소는 언제든 버리거나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이었고, 실제로도 이번 일을 위해 얼굴까지 갈아치우기까지 했으니까.
주로 맡는 일은 블랙 옵스.
말 그대로, 필요할 때 아무 말도 없이 죽어주기 위한 직업이라 할 수 있다.
그게 바로 그와 그의 동료들이 속한 직장이었다.
무엇을 위해서?
글쎄, 그렇게 물으면 참으로 할 말이 없다. 누군가는 단순히 돈을 위해, 누군가는 일찍이 사장된 애국심이라는 이름의 신앙을 들먹이며 무명의 헌신을 강조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그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건, 자신에게 이번 지시를 내린 어떤 분을 위해서였다.
무슨 의도가 있는 건지, 거기까진 모르겠다. 아니, 애초에 궁금해한 적도 없었다. 다소 낡아빠진 태도였지만, 그런 걸 하나하나 시시콜콜 캐묻는 건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이처럼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는 그에게, 그 분 또한 씁쓸한 어조로 유감을 표한 적이 있었다. 협회에 들어가면 A랭크 헌터로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양반이 이렇게 고생하는 게 퍽 안타깝다는 어투였다.
딱히 상관은 없었다.
영광을 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아니, 그 분과 함께하는 삶이야말로 영광된 것이라 여겼다. 감히 자신을 그 분의 심복이나 오른팔이라 칭할 수는 없었으나, 그 분이 쓰다 버릴 버림말이 되더라도 이 몸을 사석 삼아 그 분의 뜻에 토대가 될 수 있기를 바랐다.
어쩌면 거기에는 여러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만한 실력자가 이념이나 사상 대신 개인에게 충성토록 한 어떠한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르고, 오로지 하늘 아래 그들만이 알고 있는 은원이 오갔을지도 모른다.
박우찬이 알 바는 아니었다.
때문에, 내딛는 발걸음에 망설임은 없었다. 솔직히 말해, 다소 도가 지나칠 정도였다.
사실, 박우찬을 여기까지 끌어내는 데에 성공한 시점에서 더 이상 그가 해야 할 일은 없었다. 만일 이 자리에서 즉각 참수당한다 할지라도, 해야 할 일은 전부 이루었노라 말할 수 있겠지.
허나,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목을 내밀고 죽어줄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보기에, 박우찬의 돌격은 막무가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지형은 밀림. 때 아닌 열대야가 아주 인상적인, 무더운 수해가 그들을 둘러싸고 있다. 이런 장소에서, 저토록 우악스러운 거병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물론, 헌터 특유의 초인적인 근력이 있다면 나무 채로 베어내는 것 또한 못 할 건 없겠지. 별다른 차질도 없을 거다.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자그마한 빈틈은…… 일반인이라면 모를까 같은 헌터를 상대할 땐 치명적인 악수가 되어 다가온다.
특히나, 그와 같은 사람 잡는 헌터가 상대라면 더더욱.
그렇기에, 사내는 이를 받아넘길 준비를 마쳤다. 첫 번째 공격을 흘러넘기고, 그대로 파고들어 목덜미에 일격. 그걸로 끝이다. 그 뒤 찾아올 정치적인 여파 등은 그가 고려할 사항이 아니었다.
이에 반해, 박우찬이 선택한 건 처음부터 전력을 다한 풀 스윙이었다.
역시 괴물이나 잡던 놈들이 다 그렇지, 사내는 내심 조소를 머금었다. 같은 뒷세계라 해도, 남자와 박우찬이 서 있는 장소는 달랐다. 그런 그에게 있어, 지금 박우찬의 모습은 실로 어리석게 보였다. 아니, 사실 대다수 헌터들이 마찬가지였다.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막무가내로 큼지막한 무기를 휘두르던 헌터들은, 종래엔 그가 조용히 쑤셔넣은 세 치의 단검에 유명을 달리하곤 했다.
사내는 이번에도 그리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도리어 조금 의아했던 건, 박우찬의 공격이 이상할 정도로 느리게 다가왔다는 점이다.
아무리 그래도 첫 공격 치고는 지나치게 느리지 않냐는 생각이 문득 그의 머리를 스쳤을 때.
콰아아아앙!!
강철이, 울음을 토해냈다.
"첫 수를 흘려넘기고 반격, 그렇게 생각했지?"
저릿저릿한 통증이 손목을 물어뜯는다. 방금 전, 꽉 움켜쥐고 있던 도끼가 단 일격에 손을 떠났다.
그런 그의 귓가를, 박우찬의 코웃음치는 목소리가 간질였다.
"방금 전 늘어놓은 잡소리 말인데,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
"내가 봐도 협회 기준은 너무 허벌창이거든."
동시에, 사내의 등이 바닥에 쳐박혔다.
척추를 타고 오르는 고통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제서야, 사내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깨달을 수 있었다.
방금 전, 박우찬이 첫 수로 선택한 건 단순한 풀 스윙이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젖먹던 힘까지 모조리 짜낸 일격.
도저히 차수로 이어갈 수 없을 만큼 혼신의 힘을 다한 강검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박우찬 본인조차 제어하지 못한 위력에 의해, 휘두른 대검이 손 안에서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허나, 이를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그렇게 빈 손을 뻗어 사내의 멱살을 붙잡은 박우찬은 그대로 기세를 살려 사내를 내던진 것이다.
'미친 건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무기를 사용하기엔 아무래도 불리한 상황이었기 때문인가, 무기를 포기한 박우찬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잘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내가 첫 수를 받아넘길 생각이었기 때문에 성립한 도박. 만약 사내가 처음부터 적극적인 공세로 나섰다면…….
아니, 거기까지 생각하던 사내는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첫 수를 받아넘기고자 생각한 게 아니다.
박우찬이 자신의 수를 유도한 거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뒤를 생각하지 않는 듯한 풀 스윙. 초등학생의 텔레폰 펀치와 마찬가지인 공격이었지만, 그런 만큼 더더욱 공격의 범위 안으로 몸을 던지는 데에는 크나큰 용기가 필요했다.
심지어 환경은 박우찬에게 불리한 우림. 그렇기에 누구나 자연스레 생각하고 만다. 첫 공격을 흘려넘기고 카운터. 그게 초장부터 큰 호흡을 내지른 박우찬을 상대하기 위한 정석이요 필살수가 될 테니까.
그렇게 유인했다.
사내가 첫 수를 받아내도록. 기세와 흐름, 거기에 불리한 환경까지 이용해서……!
이 시점에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하나 뿐이었다.
'이 새끼, 격투기를 배웠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헌터들에게 있어, 격투기는 그리 대중적인 기술이 아니다. 격투기는 어디까지나 인간을 상대로 하는 무술. 당연하지만, 거인종 따위를 상대로 관절기를 걸 수도 없는 노릇인 이상 이를 배우는 헌터들은 드물었다.
허나, 헌터들이 격투기를 경시하는 건 또 아니었다.
몬스터를 쳐죽이기 급급해 배울 시간이 없을 뿐,오히려 고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야 하겠지.
당연한 일이었다. 헌터란 결국 몬스터를 도살하는 직업. 언론에서 고상하게 포장하고 있을 뿐, 그 본질은 어디까지나 싸움꾼이다. 용을 상대로 테이크다운을 시도할 순 없겠지만,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기술까지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까.
하물며, 그들은 헌터.
사람을 넘어선 초인들이다.
손끝으로 불꽃을 일으키는 시대다. 충분히 숙련된 달인이라면, 용이나 거인을 상대로도 업어치기를 먹이지 못할 이유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때문에, 헌터들 중에서도 무술 등을 연마한 끝에 마력의 움직임을 깨우친 자들은 설령 같은 등급이라 해도 그 실력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박우찬이 격투기를 배운 것 또한 같은 이유였다. 그의 능력은 어디까지나 마력 감응. 능력 하나만 가지고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을 만큼 폭발력이 있는 물건은 아니다.
그렇기에, 박우찬은 소싯적 정말로 많은 기술에 손을 대었다.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습득한 발골 기술을 어떻게든 활용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 이토록 막나가는 무기를 다루게 되었다.몬스터 또한 생물이라는 이유로 진짜배기 사냥꾼에게 기술을 사사한 적도 있었다.
무술 또한 마찬가지였다. 비록 몬스터가 주먹에 닿을 때마다 몰려드는 역겨움 때문에 사냥에서 활용할 기회는 없었지만, 제 몸을 움직이기 위해 습득한 무술은 이런 상황이 올 때마다 톡톡히 제값을 했다.
물론 이는 사내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사람 잡는 헌터였던 그는 어지간한 헌터들보단 훨씬 더 무술에 자세했다. 말했다시피, 무술은 결국 사람을 상대로 하는 기술이었으니까.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세를 잡은 건 박우찬 쪽이었다.
"염병!!"
욕지거리를 내지르며 낙법을 취한 남자가 그대로 제 몸을 되튕겼다. 허나, 그 사이 접근한 박우찬은 무심한 태도로 로킥을 갈겼다.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채찍처럼 휘갈긴 박우찬의 다리가, 그대로 사내를 걷어차 온 몸을 한 바퀴 돌려버렸다.
동시에, 허공에 떠오른 사내의 면상을 움켜쥐곤── 초크슬램.
우두둑!! 섬뜩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눈 앞에 번갯불이 튀는 감각을 억누르며, 전신을 날린 사내가 자신을 움켜쥔 박우찬의 팔에 매달렸다. 암바. 그러나, 정작 박우찬은 이에 대해 우는 소리 한 번 없이 손아귀에 힘을 불어넣었다.
아이언 클로라고 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폭력적이었다. 머리를 조른다기보단 두개골을 압착하고 있다 표현해야 할 악력으로 사내를 붙든 박우찬이 천천히 다리를 벌렸다.
그리고.
박우찬 또한 지형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더 이상 사내를 바닥에 내려칠 수 없게 된 이 상황을 보고 사내 채로 팔을 휘둘러 우림을 벌채하기 시작한 그 모습을 '지형을 활용했다'는 다소곳한 표현으로 서술할 수 있다면 말이다.
우지끈!!
시야를 가득 채운 고목들이 힘겹게 넘어간다. 비록 속이 썩어 문드러졌다 한들, 이토록 굵은 나무들이 잔가지마냥 뚝뚝 부러지는 건 예사 힘이 아니었다.
하물며, 박우찬의 팔에 매달리다 못해 벌채용 도끼가 되어버린 사내의 고통은 더했다.
"크아아아악!!"
결국 사내 또한 암바를 풀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사내를 '휘둘러' 숲을 베어넘기는 박우찬의 행동에 힘이 겨웠다.
다만, 사내 또한 이대로 당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암바를 풀며 여유가 생긴 몸을 휘둘러, 자신을 붙들고 있는 팔에 무릎차기. 아슬아슬하게 눈치챈 덕분에 피할 순 있었지만, 박우찬 또한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거리를 벌리자, 공교롭게도 처음 대치하고 있을 때와 얼추 비슷한 간격이 잡혔다.
단, 상황은 달랐다.
처음과 비슷한 태도로 여유롭게 손목을 풀고 있는 박우찬. 그에 비해, 잔상처 가득한 모습으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사내.
'밀도가 달라.'
사내의 생각도 당연했다. 진짜배기 무술가 출신 헌터보단 못하다 해도, 박우찬이기술을 대하는 태도는 다른 헌터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으니까.
다른 헌터들은 살아남기 위해 기술을 배운다. 어쩌면 돈을 위해, 복수를 위해 헌터가 된 자도 있겠지.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 기술을 배운 자들 또한 없잖아 있을 것이다.
박우찬은 다르다.
박우찬은 숨을 쉬기 위해 기술을 배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회가 게이트 너머에서 찾아온 불친절한 이웃들과의 동거를 받아들인 시점에서, 박우찬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신에겐 평범하게 살아갈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공부가 싫다거나, 머리가 나쁘다거나 하는 일차원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이 하늘 아래에서, 몬스터 따위와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박우찬에게는 도무지 참을 수 없을 만큼 불쾌했다.
그러니까, 박우찬의 기술은 밀도가 달랐다.
돈을 위해.
복수를 위해.
살아남기 위해.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
여타 헌터들과 달리, 박우찬은 그런 이유로 기술을 배운 게 아니었으니까.
물론 살아가는 데에 있어 돈은 필요하다.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선 힘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으며, 몬스터를 죽이고 싶은 건 박우찬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눈 앞에 몬스터가 나타나기만 해도 온 몸의 신경줄이 배배 꼬이는 듯한 이 감각 앞에선, 어떤 이유를 붙여도 불순물처럼 느껴지고 만다.
말하자면, 절박함이 차원이 달랐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처음으로 몬스터와 조우한 이래 박우찬은 단 한 번도 숨을 쉬기 편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거, 슬슬 눈치챘겠지만."
그러나.
이런 사정을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해 주는 대신, 박우찬은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큼지막한 무기를 쓰는 건 평범한 무기론 그냥 이빨도 안 박힐 때가 많아서 그런 거고."
애초에 헌터들이 하나같이 거대한 무기를 붕붕 휘두르고 다니는 것 또한 바로 그 때문이다.
단순히, 그 정도가 아니면 씨알도 먹히지 않을 만큼 헌터와 대형 몬스터 사이엔 엄청난 체급 차이가 있으니까.
"난 테크니션이야, 이 양반아."
그리고.
사내에게는 공교롭게도, 박우찬은 고작해야 무기 하나 봉했다고 이길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상대도 아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