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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8화 (38/371)

〈 38화 〉 납치

* * *

그리고 황윤하는 눈을 떴다.

정신이 멍했다. 마치 구름 위를 두둥실 떠다니고 있는 듯한 묘한 고양감이 그녀를 감쌌다. 때문에, 황윤하는 자신이 어째서 지금 이런 몰골로 흙바닥을구르고 있는 건지 단박에 떠올리지 못했다.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었던 건 역시 박우찬과의 마지막 인사다. 설마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단박에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담임인 박우찬이 돌아가고 난 이후, 간신히 어떻게든 형태를 잡아 둔 가고일 소재를 갈무리하길 잠시. 다음엔 작업 반장 아저씨들한테 조언을 구하는 것도 괜찮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해체소를 나섰던 걸로 기억한다.

"아주 성실하네."

그런 윤하의 모습을 본 작업 반장 아저씨는 그리 평했다. 이 나이대 애들이 으레 그렇지만, 머잖아 때려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투였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열심인가? 자신의 태도를 되돌아본 윤하는 본인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일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평소에 비하면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다. 딱 받는 만큼만 하자고 생각했던 다른 아르바이트 등과 달리, 여기서는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까 여러모로 궁리해 보거나 질문을 던진 적도 있었다.

어째서 그랬던 걸까. 황윤하는 자신에게 그리 자문해보았다. 담임인 박우찬이 말했듯이, 미래의 직업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일까?

아니, 내심 황윤하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말을 하긴 조금 그렇지만, 황윤하 자신은 근시안적인 사람이다. 미래를 위해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 틀림없지만, 반대로 고작해야 그런 이유 때문에 적극적으로 행동을 달리할 만큼 자신이 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때문에.

만일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역시 그 사람 때문이겠지.

박우찬.

말마따나 지독히 근시안적이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어주고, 탈선한 자신에게 지금 이 자리를 소개해 준 은사. 황윤하는 그런 박우찬 앞에서 마치 들으라는 듯이 무작정 제 사정을 늘어놓은 과거의 자신이 부끄러웠고, 그렇기에 한시라도 빨리 한 사람 몫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다른 아르바이트도 모조리 정리했다. 여태까지 자신이 수업을 빼먹은 시간만큼, 그 이상으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자신을 믿어 준 스승을 위해 보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윤하는 믿었다.

그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까?

그 날, 해체소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남자의 말을 거절하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가씨, 괜찮은 벌이가 하나 있는데. 관심 있나?"

그래.

진득하게 그림자가 깔린 달밤 아래, 어딜 어떻게 봐도 수상쩍기 그지없는 사내가 건넨 그 말을…….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문득 윤하는 깨달았다.

'씨발, 존나 수상하네.'

뭘 거절하지 못한다고?

지금 상기한 것만 해도 존나게 수상하잖아.

그제서야 뒤늦게 황윤하는 제 혓바닥을 씹어 보았다. 평소와 달리, 다소 둔한 맛이 났다.

약이다. 그렇게 직감했다.이 또한 박우찬이 알려준 노하우였다.몬스터를 해체하다 튄 독소에 닿았을 경우, 그 독성을 간략하게 측정할 수 있는 방법.

'하긴, 씨발~!'

내가 아무리 빡대가리여도 그런 수상한 말에 넘어가진 않지. 그제서야 황윤하는 안심할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속 보이는 말에 넘어갔으면 자신은 오랑우탄 이하다. 누군가 자신에게 약물을 사용했다는 사실에 오히려 안심하는 여고생이 그 자리에 탄생했다.

천천히 몸 상태를 확인한다.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 걸 보니, 독의 영향은 아직까지 남아 있는 모양이다. 분명히 이런 형태의 독을 사용하는 몬스터도 있다고 들었는데…….

박우찬에게 들었던 지식을 뒤적이며 팔다리를 확인해 보지만, 역시 구속되어 있었다. 십중팔구 헌터조차 구속할 수 있는 물건이겠지. 신체 강화 계통 능력을 보유한 윤하에게도 유효한 독을 구비해 둔 납치범이, 이제 와서 허술하게 그런 준비를 빼 놓았을 리도 없다.

"일어났나?"

그렇게 낑낑대고 있던 윤하에게, 문득 누군가 말을 걸었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그녀 또한 아직은 고등학생. 상황에 맞지 않는 농담을 떠올리며 진정하려 했지만, 흠칫 어깨가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는 사내의 눈빛은 지나칠 정도로 차분했다. 약물을 사용해 여고생을 납치한 변질자라곤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너에게 위해를 끼칠 생각은 없으니까. 가만히 있어준다면 말이지."

반항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윤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쏟아낸 남자는, 마치 지나가듯 그리 덧붙였다. 허나, 한 사람의 죽음을 입에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담담하기 그지없는 그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윤하 또한 이 남자가 진심이라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왔군."

다행스럽게도, 굳어있던 혀를 풀어 질문을 던질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키는 남자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저 멀리서부터 홀로 다가오고 있는 박우찬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

지정된 장소는 본디 윤하가 아르바이트를 뛰고 있던 해체소에서 적잖이 거리가 있는 장소.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른 해체소에 할당된 게이트였다.

그 안으로 발을 들이자, 끕끕한 기분이 나를 감쌌다.

아카데미에 부속되어 있는 게이트와는 달리, 말라 비틀어진 나무들이 시야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장소였다.

열대 우림에 멸망이라는 단어를 덧칠하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은 풍경 속.

친절하게도, 나를 불러낸 녀석은 이미 내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알아보기는 쉬웠다. 바로 옆, 그 발밑엔 쓰러진 채 구속당한 윤하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크하하하하!! 혼자 나오라고 말은 했지만, 설마 정말로 혼자 올 줄이야! 대담한 건지, 아니면 바보 같은 건지!"

거 씨발, 여고생 납치한 변태 새끼 주제에 대사 한 번 전형적이네.

그렇게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지금은 일단 잠자코 들어주기로 했다.

그러자 녀석은 제 말에 자신이라도 붙은 양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떠벌거리기 시작했다.

"처음 들었을 땐 아무래도 믿을 수 없었지. 설마 그 '도축업자'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니 말이야!"

십중팔구 게이트 안에 투신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투로 그리 말하는 사내의 모습은 마치 광대처럼 보였다.

조롱하는 게 아니다. 한껏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양 팔을 좌우로 내던지며 그리 포효하는 사내의 모습은 마치 제 몸을 과장하기 위해 깃털을 세우는 뱁새 같았다.

"이 쯤 말했으면 이해했겠지?! 그래, 나 또한 너와 같은 비 인가 헌터다!! 빌어먹을 협회 새끼들에게 숙청당한 동지라고 할 수 있지!!"

흥이 오른 듯 노호하는 사내. 문자 그대로, 서브컬처 속 말 많은 악역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삐져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었으나, 그 사이에도 남자의 일장연설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 때는 어쩔 수 없었지. 내게도 힘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네가 있다면 다르다. 어떤가, 도축업자?! 나와 함께, 지금의 타락한 협회 놈들을 숙청하지 않겠나?!"

"……뭐, 그래. 감동적인 연설 잘 들었고, 질문 좀 해도 되나?"

"물론이지!! 미래의 동지인 도축업자가 묻는다면, 대답해주지 못할 게 어디 있겠나!! 만일 네가 이 몸의 대업에 함께한다면, 이 여학생도……."

"누가 시켰지?"

뚝, 하고.

마치 누군가 지금 이 장면을 녹음한 테이프를 어색하게 편집한 것만 같았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어색한 적막이, 우리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뭐라고?"

"내가 바보로 보이냐?"

공교롭게도, 게이트에서 몬스터들이 튀어나와 사람들을 찢어 죽이는 이 미친 세계가 게임 속 세상이 아니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또한 서브컬처 속 무대가 아니다.

아직 이 쪽이 협력하겠다는 말도 하지 않은 이 시점에, 저토록 신나서 노골적으로 제 의도를 어필하는 녀석이 있을 리 없지. 만일 있다고 쳐도, 그런 녀석이라면 내 시선을 피해 윤하를 납치할 수도 없을 터다.

위화감.

그래.마치 자신의 목적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라는 듯, 동네방네 사방팔방 포효하는 사내의 모습을 보며 줄곧 느끼고 있었던 건 바로 그런 부류의 위화감이었다.

혹은, 확신이라고도 말한다.

말했다시피, 지금 이 상황에서 윤하가 납치당할 만한 이유는 별로 없다.

허면, 반대로 생각해 보자.

입학 전.

실습 당시.

그리고 지금.

고작해야 반 년도 안 되는 시간동안, 몇 개나 되는 사건들이 일어났지?

한 번이라면 우연이라고 넘길 수도 있겠지.두 번이라면, 있을 수 없는 정도는 아니다.하지만, 세 번이라면?

아무리 그래도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 모든 사건들 사이에 일련의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최근 3년 동안 별다른 일 하나 없이 말라비틀어져가던 나로서는 아무래도 이 쪽이 훨씬 더 합리적인 추론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번 일을 획책하고 있는 세력의 사고도 대강 읽을 수 있다.

처음에는 용 세 마리를 보냈다. 폴리모프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을 만큼 격 높은 녀석들이었지만, 어느 날 돌연히 사망.

다음으로는 악마 한 마리. 마찬가지로, 아카데미의 학사 일정 등을 노리고 파견한 녀석이었으나 내 손 안에서 무사히 토벌 보수로 전생 완료.

"그래서? 물량으로도, 스펙으로도 안 된다는 걸 깨달았으니 이번엔 헌터인가?"

문득, 언젠가 최승준이 지나가듯 언급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카데미 반대파가 시위라도 벌일 거라 생각했지, 설마 S­랭크 몬스터가 튀어나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확실히, 당시 우리들 또한 그렇게 확신했다. 아무리 그래도 대한민국 상층부의 절반도 안 될 반대파가, S­랭크 몬스터를 제어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그러나, 이쯤 되면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눈 앞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흐름으로 볼 때, 저 놈은 대략 A랭크 이상.

이만한 헌터를 수족처럼 부릴 수 있고, 아카데미의 학사 일정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으나…… 반대로 내가 악마 새끼를 토벌하기 전까진 박우찬이라는 놈이 도대체 뭐 하는 놈인지 모르고 있었을 누군가.

다시 말해, 현장에서 다소 거리를 두고 있는 협회의 높으신 분이 될 수밖에 없다.

거기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랭크 몬스터를 동원하던 모습을 떠올릴 경우.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하나다.

아마도, 예의 협회의 높으신 분조차 일련의 사건들을 일으킨 '누군가'에게 있어선 단순한 끄나풀에 지나지 않는 거겠지.

내가 생각하기에도 어처구니없는 음모론이다. 설마, 협회의 높으신 분들이 몬스터 따위에게 끈을 대고 있다니?

허나, 만일 그 음모론이 사실이라 할 경우 설명할 수 있는 일들은 실로 다양하다.

하연이와 만난 그 날 이후, 이준구로부터 별다른 연락이 없었던 시점에서 수상쩍게 여겼어야 할지도 모르지. 저 추론대로라면, 협회 내부에 내통자가 있다는 뜻이니까.

내가 몬스터의 출몰을 감지하지 못한 일 또한 그렇다. 정녕 사람과 몬스터가 손을 잡고 있다면, 아카데미 일정을 꿰뚫고 있을 예의 누군가로서는 미리 사람 한 명을 보내두면 그만이다.

게이트 안에 잠복하고 있던 사람이, 내가 사용하는 물건과 비슷한 공간 계통 능력 도구를 사용해 폴리모프한 몬스터를 불러들인다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손을 쓸 수 없겠지.

과연 이런 일에 손을 대고 있는 양반이 누구일지, 거기까진 과연 모르겠다.

뭐, 애초에 이런 걸 조사해야 할 건 내가 아니라 이준구나 최승준이고.

그리 생각하며, 나는 끄나풀의 끄나풀일 눈 앞의 남자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너, 제정신인가?"

내 음모론에 정신이 어질어질한 듯,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가가대소를 터트리던 사내가 정색하고 그리 물었다.

저 태도부터 내게는 더할나위 없는 확신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 이상 시시콜콜한 말싸움이나 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사실 아무래도 좋긴 해."

왜냐하면,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었으니까.

내게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윤하의 안위. 그럴듯한 이론이나 증거 같은 건 사법부 놈들에게 가서 찾아라.

적당한 추론, 말도 안 되는 음모론.

어느 쪽이든, 내가 납득할 수 있었으면 그만이다.

저 반응을 보건대, 정답도 얼추 비슷한 모양이고.

무엇보다, 제정신이 아니면 어떻고 진심이 아니면 또 어떻단 말인가?

"어이, 멍청한 친구. 미안하지만 내게는 힘이 있다."

"뭐?"

"내 무력을 말하는 게 아니야.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힘이지……."

일찍이 나는 이 힘들 중 하나를 행사해 윤하를 구해내려 한 적이 있었지.

그렇다면 지금은 나머지 하나를 사용해야 할 때다.

"딱히 별다른 근거는 없지만, 지금부터 너를 줘패겠다."

"뭐라고?"

"만약 내 착각이었다면 나중에 사죄하지. 정 안 되면 이준구 이름 써서 뭉갤 거니까 그냥 합의해 주렴."

"아니, 잠깐. 헌터가 그래도 되는──."

"씨발 닥쳐!! 납치범 새끼가 뭐 이렇게 말이 많아!! 내 뒤에는 최승준의 돈과 이준구의 이름값이 있다!! 이게 자본주의 사회의, 아니, 우리들의 유대의 힘이다!! 복종해라 쓰레기!!"

"아니, 듣자 듣자 하니까 뭐 이런 미친 새끼가!!"

"그리고 씨발 연기를 할 거면 제대로 해!!! 벌써부터 그러면 싫어도 눈치챌 수밖에 없잖아!!!"

안 그래도 이 쪽은 상대가 몬스터가 아닌 시점에서 충분히 빡쳤단 말이다, 쓰레기가!!!

"가스불 잠갔고 기도 마쳤고 할 말 다 했고 유언 없고 유서 받아볼 사람 없고 기타 등등 아무래도 좋아!!! 준비는 끝났으니 덤벼라 쓰레기!!!"

그리 외치며, 나는 당황하고 있는 녀석이 정말로 달려들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선빵필승의 정신으로 먼저 칼을 꼬나쥔 채 덤벼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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