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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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윤하의 실종을 내게 알린 건 그녀의 동생들이었다.
활기찬 목소리로 내일 보자 말한 것 치고는 퍽 시원스럽게 학교를 빼먹은 윤하 때문이다.
사실, 별로 걱정하고 있지는 않았다. 여하간,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쾌활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나. 아무래도 무리하게 가고일 소재를 다듬다 피곤해서 뻗어버린 게 아닐까? 그리 추측할 뿐.
뭐,만일 윤하에게 다시 한 번 심경의 변화가 생겼다 한들 달리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안타깝긴 하겠지만, 이 이상 돌봐주는 건 역시 편애라는 말을 피할 수 없을 테니.
선생이라고는 해도, 내 역할은 어디까지나 학생들을 어엿한 헌터로 길러내는 것. 이 이상의 심리 상담을 기대해도 곤란할 따름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만큼, 내가 무언가 미심쩍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건 퇴근할 시간이 되어서였다.
수업에서 사용한 몬스터 소재를 정리하고, 교무실에 마련된 내 자리로 향했을 때.
이미 그 자리엔 선객들이 와 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애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눈에 익은 모습이라 생각하는 자신이 있다. 나이는 중학생 정도나 되었을까? 남자애 쪽은 서글서글한 인상인 게 퍽 유순해 보였으나, 여자애 쪽은 아무래도 기가 드센 듯 안절부절하고 있는 남자애를 향해 윽박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남매일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나 또한 짐작이 가는 게 있었다.
"혹시, 윤하 동생들이니?"
다가가며 그리 묻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우왕좌왕하고 있던 꼬마들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설마 윤하가 늦잠 잤다고 동생들을 대신 보냈을 리도 없을 텐데.
피식, 어처구니없는 상상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한 생각이었지만, 윤하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어쩐지 그럴듯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무슨 일이니? 윤하가 불렀어?"
다시 한 번 그리 되묻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고 있던 둘이 불현듯 시선을 교환한다.
그러더니, 이제는 마치 짜기라도 한 양 동시에 입을 모아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바, 박우찬 선생님이세요?"
"응, 맞아. 윤하 담임 선생님. 윤하가 집에서도 말했나 보네?"
"도와주세요!"
숫제 비명을 짜내듯 토로하는 목소리. 이에 놀라 둘을 바라보니, 어느새 두 꼬마의 얼굴에는 그 나이대에 어울리지 않는 절박함이 매달려 있었다.
"누나가 어제부터 돌아오질 않아요!"
뎃?
거의 울음을 터트리듯 그리 고백하는 남자애의 말에 나 또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정작 그렇게 외친 남학생은 나 이상으로 당황하고 있는 듯했다. 갑자기 터져 나온 목소리. 이에 몰려드는 시선. 자신도 모르게 외치고 말았던 건지,허둥지둥하는 모습이 눈에 밟혔다.
"……음, 잠깐 자리 좀 옮길까?"
다만.
방금 전 튀어나온 말은, 아무래도 웃어넘길 수 없었다.
아이들을 향해 날아드는 시선을 가로막으며 그리 제안하자, 아이들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의아해하는 시선이 우리를 향했지만, 그에 내색하지 않고 걸음을 재촉한다.
그렇게, 교직원 휴게소.
사람 한 명 없이 텅 빈 장소로 아이들을 데려오자, 그제서야 조금 마음이 놓인 듯 어색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하긴, 이 나이대 아이들에게 고등학교란 완전히 별세계처럼 느껴질 테지.
마치 남의 일처럼 그리 말하긴 했지만, 사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중졸이 다 그렇지 뭐.
"앉으렴."
아직까지 멍하게 고개를 휘적대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리 권하자, 애들 또한 멋쩍은 태도로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허나, 그 이상으로 그들의 동작에선 묘한 초조함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니?"
때문에, 지체 없이 그렇게 물었다. 재촉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럴 만한 화두였으니까.
윤하가 아예 돌아오질 않았다니?
차라리 학교를 때려치기로 했다면 이렇게 놀라진 않았겠지. 바로 어제, 가족의 무게에 대해 이야기하던 윤하의 모습을 떠올린다.
고작해야 열 일곱의 나이에 이 아이들의 인생까지 책임져야 하는 윤하가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런 만큼 이에 대해 말 한 마디 남기지 않고 자리를 비우거나 가출할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내 생각과는 별개로, 아이들의 설명은 이러했다.
역시 이 둘은 윤하의 동생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의 말에 의하면, 아무래도 윤하는 집에서도 내 이야기를 종종 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좋은 분위기가 아니었던 듯하지만. 둘은 어떻게든 이를 얼버무리려 했지만, 나 또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렇다기보다, 본인한테 직접 들었고.
헌터가 되고자 기껏 입학한 아카데미. 그러나, 매일같이 뺑뺑이만 돌리는 선생. 실습 시간을 기점으로 폭발한 윤하. 허나, 어느 순간 다시금 박우찬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기 시작한 언니. 나름대로 괜찮은 선생이라는 말로 시작했던 윤하의 토로는, 그러나 며칠 안에 은인이라는 말을 입에 담고 살았다고 했다.
면전에서 듣기엔 아무래도 낯부끄러운 소리였다. 바로 어제, 윤하가 저리 말한 게 아니었다면 나 또한 이 둘이 되지도 않는 아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겠지.
"폐를 끼쳐서 죄송해요."
이 둘이 나를 찾아온 것 또한 바로 그 때문인 듯했다.
방금 전, 똑부러지는 인상의 여자애가 말한 대로였다. 보통 이런 일은 경찰이 맡아야 할 테니까. 뒤늦게 그런 사실을 떠올리기라도 한 걸까? 다소 침착해진 그녀의 귓볼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허나, 동시에 이해할 수는 있었다.
보통은 경찰에 신고하는 게 옳겠지. 하지만, 신고한다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 십중팔구 경찰은 이를 윤하의 가출로 처리할 텐데.
경찰이 무능하다는 게 아니다. 윤하가 짊어지고 있는 짐이 문제다. 이제 17살. 고작해야 17살의 여아가 짊어지기엔 너무나도 버거운 책무에 마침내 인내심이 다한 윤하가 도망쳤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실제로 나 또한 제 3자로서 이번 일을 들었다면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단지, 나는 알고 있었다. 아마 이 애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윤하가 가족이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 어떤 얼굴과 음색으로 입에 담는지. 어떤 생각으로 가족이라는 단어를 대하고 있는지.
이 둘이 보기에도 당장에 윤하가 가출할 리는 없었던 거겠지. 때문에, 이 둘은 경찰이 아닌 나를 찾아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언니가 은사라 칭하기까지 한 선생님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도 확실히 이번 일에는 다소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일단 윤하가 가출했다는 전제는 제외.
허면, 윤하는 어째서 지금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걸까?
무언가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겠지.
당장에 떠오르는 건 도저히 좋은 생각이 아니다. 납치, 상해, 폭력. 허나, 어느 쪽이든 윤하에게 무슨 일이 있었으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했다.
문제는, 윤하가 헌터라는 점이다.
아무리 햇병아리라 한들 헌터는 헌터. 도대체 지금 윤하에게 무슨 일이 생겼기에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걸까? 의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윤하의 능력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윤하의 능력은 신체 강화, 개중에서도 한층 더 방어에 치중된 경질화. 수많은 능력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내구형일 윤하가 지금까지 연락 하나 없다니?
상대가 헌터라도 되지 않는 이상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볼까.'
역으로, 상대가 헌터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윤하는 헌터가 동원된 일에 말려들었음이 분명했다.
문제는,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벌였느냐는 점이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나는 해체소 양반들한테 특히나 귀여움을 받던 입장이었다. 설마 해체소에 몸담은 양반들이 손을 댔을 리도 없고.
그럼,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해체소를 찾은 다른 헌터와 싸움이 붙었을 경우다. 하지만 이 또한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여하간, 내가 아직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해체소를 들락날락할 적 소재 관련 문제로 거하게 패싸움을 벌인 적이 있기 때문이다.덕분에 지금은 해체소 근처에서 헌터들끼리 치고받는 건 금지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모르긴 몰라도 내가 데려온 애한테 손을 댈 만한 얼간이는 없겠지. 설령 이를 모르고 손을 올리려 했다 한들 누군가는 경고했을 테고.
허면?
비 인가 헌터들 또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제 2차 대침공이 끝난 이후, 헌터들의 일자리는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일찍이 나 또한 그 영향을 받은 적이 있었을 정도니.
다행스럽게도, 협회의 적절한 대처 덕분에 별다른 소요는 없었다. 여기에는 평생 쓰고도 남을 돈을 벌어들인 헌터들이 여유를 부린 덕도 없잖아 있었다만…….
협회의 영향력이 미치는 건 어디까지나 협회 소속 헌터들.
아무리 그래도 비 인가 헌터들에게 돌아갈 정도로 일자리가 넉넉하지는 않았다.
하물며 이런 시대다. 나같이 특이한 경우가 아닌 이상, 헌터들 대부분은 이미 협회에 발을 들인 상황. 아니, 나조차 협회에 가입한 지금 협회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헌터는 십중팔구 협회에 의해 제명당한 헌터일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범죄자들이다.
설령 손이 남는다 한들, 협회가 그런 녀석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해 줄 리 없지.
내가 생각하기에도 썩 나쁘지 않은 추론이었다. 실제로도, 이제 와서 비 인가 헌터들이 일할 수 있을 만한 장소를 찾으려면 해체소가 첫 손에 꼽힐 테니.
단지.
'아무리 미래가 없어도 그렇지, 내가 데려온 애한테 손을 댄다고?'
나 또한 본래는 비 인가 헌터였던 몸. 협회와 달리비 인가 헌터들 사이에 서로 건드려선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 이름을 모를 리는 없을 텐데.
미치지 않고서야, 협회 물을 먹지 않은 놈들 중 내 비호 하에 있는 애를 건드는 자식들이 있을 리가 없다.
비 인가 헌터들 중에서도 최고는 나였으니까.
헌터란 좋든 싫든 초법적인 무력을 지니는 존재. 하물며 비 인가 헌터쯤 되면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까운 게 현실이다. 그러니 더더욱 얼굴 도장을 찍고자 찾아간 것도 있었고.
……그럼?
'정말로 가출인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겠지.
허면, 이번에는 관점을 바꾸어 생각해 보자.
반대로, 윤하에게 납치당할 만한 이유가 있을까?
헌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돈이다. 하지만, 윤하를 납치할 수 있을 만한 누군가가 돈이 궁하다는 이유로 헌터를 납치하고 다닐 것 같진 않았다. 설마 윤하가 아르바이트 하면서 번 돈이 필요해 납치하기라도 했겠나.
애초에 윤하는 한 집안의 가장. 윤하를 납치한다고 해서 돈을 받아낼 수도 없다.
역시, 몇 번을 생각해 봐도 같은 결론이 나온다.
윤하의 납치는 채산에 맞지 않는다.
'요컨대, 상대는 리스크와 리턴을 염두에 두고 윤하를 납치한 게 아니다.'
다시 말해, 단순한 돈이 아닌 다른 목적이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윤하를 납치한다고 해서 도대체 무슨 이득이 있냐는 건데…….
'잠깐.'
문득,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솔직히 말해, 내가 생각하기에도 합리적인 추론은 아니었다. 단순한 넘겨짚기.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발상이었으니까.
증거는 없다. 반대로, 근거 하나 없이 입 밖에 낼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내용도 아니다.
하지만, 내 목숨을 여태까지 몇 번이나 구해 준 직감이 뭉게뭉게 안개와 같은 확신을 퍼트리고 있었다.
이게 맞아, 그렇게 주장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한 번 걸어볼까.'
그럴 만한 가치는 있었다.
사고를 정리한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생각에 빠졌던 나는 머잖아 결론을 내렸다.
"좋아, 알겠어."
당황을 담아, 두 아이들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하긴, 이 둘에게 있어 나는 어쩔 수 없이 붙잡은 동앗줄이다. 일단 말이야 해 보기는 했지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스스로도 의심하고 있었겠지. 어쩌면 무단으로 학교를 빠진 누이가 이제 와서 가출했다고 해도 그리 마음에 와닿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기억하고 있다.
바로 어제, 평소와 같았던 밤하늘 아래에서 그녀가 마지막으로 내게 무어라 말했었는지.
"선생님은 잠깐 나가볼 테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래?"
마음 같아서는 다른 선생님들한테 맡기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없었다.
만일 이 쪽의 예상이 틀림없다면,지금은 아카데미 교사라 해도 섣불리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다행스럽게도, 이 학교에는 최승준이 있다. 별다른 문제는 없겠지.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고 문을 열자, 거기에는 누군가 서 있었다.
찰랑이는 푸른 머리칼. 평소처럼 묘한 빛깔을 띠고 있는 진주빛 눈동자에는, 그러나 평소와는 달리 결연한 의지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다른 애들한테 연락이라도 넣어볼까요?"
평소처럼 거리를 돌아다닐 생각으로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교무실에서 있었던 일을 듣기라도 한 건지.
방금 전 대화를 들었다는 사실을 숨길 생각조차 없이 이번에 산 핸드폰을 꺼내드는 하연이의 모습을 보며, 나는 너털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니, 넣어둬. 우린 평소처럼 행동하면 그만이야."
만일 내 추측이 맞다면, 오히려 지금은 평소처럼 굴 때였다.
걱정할 필요도 없다.
보나 마나, 상대의 목표는 윤하가 아닐 테니.
"가자."
여하간, 하연이 또한 관계 없는 상황은 또 아니니까.
실제로도 그랬다.
허겁지겁 준비를 갖춰 도착한 해체소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작업 반장이, 내 얼굴을 확인하고 팔을 흔든다.
"막둥아! 큰일 났다! 네가 소개해 준 그 애!"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태도로 그리 말하는 아저씨의 손에는, 범행 예고장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귀여운 편지지가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내용은 실로 간단.
네 학생을 데리고 있다. 돌려받길 원한다면, 지정된 장소까지 홀로 나와라.
황윤하의 납치가 확실시된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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