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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6화 (36/371)

〈 36화 〉 재개

* * *

그 뒤로도, 우리들은 자주 해체소를 찾았다.

소재를 보급받기 위해서도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아직 게이트 조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이번 조사의 본질은 결국 뭐라도 좋으니 이상한 점을 하나라도 색출하기 위한 작업. 수상한 점은 없음, 여전히 게이트는 안정적……. 그런 평가 하나 달았다고 끝날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때문에, 우리는 실질적으로 이를 노가리 까는 시간으로 활용하곤 했다.

낮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오후에는 게이트를 조사한다는 핑계로 거리를 이리저리 쏘다니는 나날. 평소 하는 일도 없이 방구석에 쳐박혀 있기만 하는 여신은 물론이요, 하연이 또한 썩 나쁜 기분은 아닌 듯했다.

그렇게 주변 가게를 들쑤시거나, 사고 싶은 게 있다면 망설임 없이 카드를 긁는 식으로 시간을 허비하길 얼마간.

마침내 찾아온 밤, 마지막으로 걸음을 돌려 방문한 해체소에서 윤하와 만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오, 가고일이네."

오늘 윤하가 매달리고 있는 소재는 프랑스의 C랭크 몬스터, 가고일이었다.

고대부터 악령을 쫓기 위해 문고리나 처마 끝에 장식한 괴물 모양의 조각품을 진짜배기 몬스터라 해석해 만들어진 착각의 산물. 혹은, 거기에서 한층 더 나아가 돌로 이루어진 괴물의 석상을 보고 '혹시 괴물이 돌로 변한 게 아닐까?' 하고 상상한 결과물이기도 했다.

소소하지만, 프랑스 헌터들이 질투를 사는 요인들 중 하나이기도 하고. 딱히 강한 몬스터는 없는 주제에, 소재 가치는 랭크를 뛰어넘는 녀석들이 부지기수였으니까.

가장 큰 특징은, 특정한 자극을 가할 때마다 생물과 석재를 오갈 수 있다는 점.

가공하기도 편하고, 운반하기도 편하다. 하물며 조금만 손을 쓰면 원하는 석재로 바꿀 수 있다는 압도적인 편의성까지. 이러한 특성으로 말미암아, 지금은 건축계의 떠오르는 신소재로 각광받고 있는 물건이다.

지금 윤하가 떼어내고 있는 건 바로 그런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는 환부였다. 이미 건축에 사용한 물건을 외부에서 다시 생명체로 돌려놓을 수 있다면 어마어마한 사고가 발생할 건 불을 보듯 뻔한 일. 때문에, 가고일 소재를 사용하기 위해선 이를 미리 절제해 둘 필요가 있었다.

소재가 된 몬스터의 랭크에 비해 솜씨 좋은 해체사만이 가고일 소재를 가공할 수 있는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이다. 만일 실수라도 했다간 사라지는 목숨이 한 두 개가 아닐 테니.

비록 지금은 석재를 어떻게 다루면 될지 몰라 낑낑대고 있긴 했지만, 저랭크 몬스터 소재만 다듬는다는 조건으로 계약한 윤하가 이에 손을 대고 있다는 시점에서 상당히 인정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

내 이름값도 없잖아 있겠지만, 윤하의 솜씨도 나쁘지 않다. 특히 이번과 같이 딱딱한 소재를 다루는 데에 있어선 더더욱 그랬다.

윤하의 능력은 신체 강화. 개중에서도 견고함에 중점을 둔 신체의 경질화다. 문자 그대로, 가고일처럼 육체를 단단하게 바꾸는 것이다. 어쩌면 비슷한 능력을 사용하고 있는 만큼 특히나 손에 익은 걸지도 모르겠다.

"어우, 보기만 해도 빡세다. 나중에 좀 더 떼달라 그래."

"안 그래도 그러려고요."

억척스레 대답하는 그 모습이 이젠 퍽 익숙하다.하긴, 아무래도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하교 직후부터 줄창 여기 쳐박혀있는 모양이던데 익숙해지지 않으려야 않을 수도 없겠지.

소재와 씨름하듯 우왕좌왕하고 있는 윤하의 모습을 보며 적당히 주변에 걸터앉았다. 저번처럼 시범을 보여주는 것도 좋겠지만, 이번에는 관두기로 했다. 아카데미에서 진행하고 있는 수업과 마찬가지로, 돌로 변한 가고일 소재를 상대로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는 것 또한 윤하의 성장에 도움이 될 터였다.

"잘 해 봐, 인마. 어쩌면 가고일 방패 들게 될지도 모르니까."

저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상, 몬스터 토벌에 있어 윤하의 역할은 십중팔구 전위가 되겠지. 소위 말하는 탱커 포지션으로, 아군들을 몬스터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게 될 것이다.

사실 지금 윤하가 입고 있는 교복만 해도 이런 특수 소재를 가공한 것이니만큼 몬스터를 상대로도 어느 정도 방어력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정식으로 헌터가 되고자 한다면 따로 자신만의 장비를 갖출 필요가 있다. 남이 쓰던 장비를 사용하다 방어구 틈새 사이로 독이라도 들어오는 날에는 농담도 되지 않을 테니.

"만약 나중에 따로 장비 발주 넣을 생각 있으면 선생님한테 말하렴. 좋은 곳 알고 있으니까 소개해 줄게."

다른 건 몰라도 내 학생이 몬스터 소재 쓰는 건 못 참지. 나처럼 특수 광물 소재나 쓰라고 해야겠다.

생각해 보면 최승준 이 자식도 난 놈은 난 놈이란 말이야. 도대체 어떻게 전교생 분 교복 계약을 따낸 거지? 그것도 당장 실습에 사용할 수 있을 만한 품질이라니. 비록 가성비 때문에 몬스터 소재를 사용하진 못한 듯했지만, 나로서는 오히려 고평가하고 싶은 점이었다.

그런 생각을 주워섬기는 와중에도 윤하는 여전히 말 한 마디 없었다.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어 그 얼굴을 살피고 있자니, 윤하는 문득 입을 열어 그렇게 말했다.

"왜 이렇게 잘해 주세요?"

"엉?"

"모를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헌터한테 전속 장인이랑 해체사가 얼마나 귀중한지,저도 그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

"솔직히 좀 당황스럽기도 해요. 왜 이렇게까지 해 주시는 건지."

아니, 네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잖아.

그렇게 말할 뻔한 걸 간신히 억눌렀다. 막장 드라마고 뭐고, 지금 저건 내가 들어도 빡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허나, 아주 틀린 말은 또 아니었다.아무래도 윤하는 어째서 자신과 같은 문제아에게 이토록 신경을 써 주는 거냐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데,갑자기 주변에서 고랭크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것도 아니요 제 오빠가멋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몸에 맞지도 않는 전술을 사용하지도 않는다. 이 정도면 아주 착한 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착한 애는 떡 하나 더 주고 싶은 게 바로 사람 심리인 법이다.

"음, 혹시 부담스럽니?"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정말로. 감사드려요."

그래도 조금 신경은 쓰인다, 그런 거겠지.

뭐, 그럴 만도 했다. 나야 어차피 돈을 모아도 쓸 데 하나 없으니 이렇게 여유로운 거지, 일반적으로 돈 문제라고 하면 다 큰 선생들도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문제이니만큼 더더욱.

한 사람을 키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부양한다는 건 그만한 무게를 지니고 있는 말이니까.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삶을 살고 있는 나로서는 그 나이에 벌써부터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입장에 처한 그녀가 도대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할 수조차 없다.

하지만, 상상해 볼 수는 있다.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윤하는 헌터로서 별다른 교육을 받지 않았지. 달리 말하자면, 그녀의 주변인들 또한 중학생 때까진 헌터로 각성한 윤하와 함께 학창 생활을 보냈을 거라는 뜻이기도 하다.

따돌림 따위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비록 햇병아리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상대는 헌터. 아무리 협회가 헌터의 범죄 행위에 엄격하다곤 해도, 헌터 범죄를 100% 예방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막말로 윤하를 심하게 놀리다 날아온 헌터 펀치에 목이 부러지기라도 하는 날엔 아무리 보상을 받는다 해도 쓸모없지 않겠는가.

아마도 주변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딱히 윤하를 핍박할 생각은 없었겠지. 아니, 오히려 조금은 부러워했을지도 모른다. 어린 아이들은 헌터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에, 선생님들은 월급쟁이 노릇이나 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에 빗대어.

어쩌면 가끔씩 헌터라니 대단하다는 칭찬 뒤로 부럽다는 말을 덧붙였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9년이다.

다른 사람들 입장에선 지나가듯 한 번씩, 윤하 입장에선 그렇게 9년.

가슴 속에 켜켜이 쌓인 성의 없는 말들이, 어느새 두텁게 말라붙어 딱지가 앉았나.

헌터로서 짊어진 책무와 몬스터를 상대로 싸워야만 한다는 두려움, 그리고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동생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부담감…….

온갖 감정에 시달리며 살아온 그녀에게 있어, 피로는 평생의 동반자요 평온은 사치일 뿐이었으리라.

그러니만큼, 아마도 자신에게 처음으로 실질적인 도움을 준 선생이 고마우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 거겠지.

앞으로 헌터가 되어 자신보다 훨씬 많은 돈을 거머쥘 애한테 아르바이트 따위를 소개해 준 교사가 있을 리도 없고, 애시당초 헌터가 할 만한 아르바이트를 일개 선생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기도 어렵다.

무엇보다도, 그녀에게 있어 인생이란 자신이 홀로 감당하는 게 당연한 거였을 테니까.

"글쎄. 선생님도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네?"

"굳이 말하자면, 윤하 네가 내 학생이니까 그런 게 아닐까?"

그런 애 앞에서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돈은 많아서 그렇다고 대답하는 건 아무래도 조금 그렇지, 응.

마음의 부담으로부터 시선을 돌리며 적당히 포장한 말을 꺼낸다. 전형적이긴 했지만,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대답이 아닐까.

"오."

"응? 왜?"

"아니, 선생님 방금 좀 멋있지 않았어요? 목소리 착 깔고, 네가 내 학생이니까. 다른 이유는 없어. 그걸로 충분해."

"잠깐, 윤하야. 선생님이 듣기엔 뭔가 이상한 대사가 추가된 것 같다, 윤하야!"

이준구도 안 할 대사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니, 얘 진짜 왜 이래…….

그런 내 반응에 한바탕 웃음을 터트린 윤하는 곧 호탕한 태도로 내 등을 퍽퍽 두드렸다.

"괜찮아요, 괜찮아. 다 그런 거지 뭘~"

"미리 말해두는데, 선생님은 저런 부끄러운 말 따윈 살면서 단 한 번도 한 적 없어요. 알겠지?"

"에이, 그렇게 부정하니까 더 수상한데?"

이젠 대놓고 낄낄대는 윤하. 이래서야 원, 누가 선생인지 모를 태도였다.

"고맙다는 건 정말이에요."

"알아, 인마."

"나중에 시간 되면 제 동생들도 소개해드릴게요."

"왜 또 갑자기. 서로 부담스럽기만 할 텐데."

"응? 왜요?"

"왜긴 왜야, 나야 네 담임이지 걔네 담임은 아니잖아."

"그래도 평생의 은인인데. 걔들도 양심이 있으면 알아 뫼셔야죠."

평생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과장인데.

그렇게 말하자, 윤하는 다시 한 번 더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처음 보았을 때에 비하면 완연히 나은 모습이었다.

그 뒤, 우리들은 정말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예를 들면 동생들 중 누가 뭘 좋아한다더라, 무슨 일로 싸웠다더라 등.

아무래도 나로서는 가족 이야기를 하기 뭣한 것도 있어, 자연스레 화두는 나나 윤하 누구에게도 부담스럽지 않은 아카데미 쪽으로 흘렀다.

물론 윤하가 정말로 궁금해하던 실습 수업 당시 이야기까지 꺼낼 수는 없었지만, 이를 제외해도 우리가 이야기를 나눌 만한 주제는 차고도 넘쳤다.

학생들 사이에 돌고 있는 소문. 옆 반 선생님과 아이들. 첫 시도답게 이래저래 난항을 겪고 있는 아카데미 수업. 이 와중 어떻게든 헌터 출신 교직원들을 발빠르게 확보한 S랭크 헌터 최승준의 수완에 대해 감탄을 토해내는 윤하와 이를 보고 무심코 웃음을 터트릴 뻔한 나…….

"그러고 보면, 결국 하연이랑은 무슨 관계에요?"

"무슨 관계긴 무슨 관계야, 조금 사정이 있어서 돌봐주고 있는 거지."

"에이, 그런 것 치곤 너무 붙어 다니시던데?"

"큰일 날 소릴. 그런 말 함부로 하고 다니지 마라, 선생님 짤려."

"진짜요? 그럼 조심해야겠네. 아, 그럼 그 사람은요? 그 빨간 머리 언니. 엄청 예쁘던데, 선생님 여자친구?"

"설마 학업 스트레스가 그렇게 심할 줄이야……. 윤하야, 조금만 더 빨리 말해주지 그랬니."

말 그대로, 시시하기 그지없는 잡담. 소일하기 딱 좋은 신변잡기에 지나지 않았다.

"슬슬 가 봐야겠다."

"아, 가시게요?"

"옹야. 너도 슬슬 작업 들어가야지. 아까부터 반장 아저씨 겁나 째려보더라."

"선생님 때문일걸요?"

"야, 인마. 내가 이래 봬도 여기 막둥이였어. 얼마나 귀여움 받았는지 알긴 아냐?"

"하긴, 아저씨들도 맨날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그렇게 들으니 좀 징그러운데? 하여튼, 슬슬 간다. 선생님 없다고 뒷담 까면 안 돼."

"생각 좀 해 볼게요!"

씨익, 유쾌한 얼굴로 웃어 보이는 윤하. 그 모습에 짤막한 한숨과 함께 고개를 도리질 치던 나를 향해, 그녀는 상쾌한 어조로 이리 외치기까지 했다.

"내일 학교에서 봐요!"

어느 정도 고민을 내려놓았기 때문일까, 확실히 구김살 하나 없는 모습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조차 없었을 정도로 해맑은 모습이었다.

아마도, 그렇기에 더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거겠지.

다음 날.

윤하가 실종되었다.

가출했다던가, 학교를 빼먹었다던가 하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나와 대화를 나눈 그 날 저녁 이후로 윤하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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