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5화 (35/371)

〈 35화 〉 재개

* * *

주말이 지나, 마침내 월요일이 찾아왔다.

아무래도 이래저래 바빴던 탓일까, 수업을 위해 다시금 찾은 교실 속 풍경이 퍽 낯설게 느껴졌다.

학생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수선한 분위기. 그 이상으로 흘끔거리는 시선이 교실 안을 가득 채웠다.

단순히 주말을 보낸 후유증이라기엔 조금 지나친 면도 있었지만, 나 또한 이해할 수 있었던 만큼 크게 꾸짖지는 않았다.

"자, 조용. 출석 부른다. 류지희?"

"네!"

"정필연."

"예."

"황윤하."

"네."

월요일.

윤하가 학교로 돌아왔다.

*

갑작스러운 윤하의 귀환에 아이들이 쑥덕대는 건 실로 당연한 귀결이었다.

바로 며칠 전 통째로 학교를 빠진 것 치고는 너무나도 태연하게 나타난 윤하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수업을 시작하려는 내 모습 때문이었다.

물론 저 애들 입장에선 신기할 수밖에 없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담임이 주말 내내 줄빠따라도 친 건가 하는 이야기는 조금 너무하지 않나 싶다.

내가 그렇게 꽉 잡는 이미지도 아닐 텐데 말이지.

하긴, 그렇다고 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하나 떠벌리며 설명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자, 자. 집중! 수업 들어간다, 얘들아."

그렇다 쳐도, 꽤 효과가 좋구나. 설마 곧바로 등교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어제, 아저씨들과 나눈 협상은 다행히 잘 끝났다.

제 2차 대침공이 종료됨에 따라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한들, 이는 어디까지나 헌터들에 한한 이야기.

오랜만에 만난 아저씨들은오히려 일이 늘었다고 푸념 아닌 푸념을 토해내곤 했다.

당연한 소리였다.

절대적인 공급량이야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작금의 해체소들은 협회와의 계약 하에 운영된다.

헌터 개개인과 주먹구구식으로 아다리를 맞추던 과거에 비하면 아무래도 잡음이 덜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현재 해체소들이 소재를 공급받는 장소는 각 기관 산하의 게이트.

밀집된 마력을 소비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몬스터를 솎아내야 하는 그들은, 해체소에겐 안정적으로 몬스터들의 사체를 공급해 줄 수 있는 공급원이었다.

소재 총량은 줄어들었지만, 대신 유통에서 편의를 보고 있다고 말하면 좋을까.

개인 사업자였을 때와는 딴판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오히려 해체사들의 공급이다.

일부를 제외하면, 대다수 해체사들은 하위 헌터의 아르바이트로 이 업계에 발을 들인다.

그러다 자신의 적성에 맞으면 아예 해체사로 전업하는 식이다.

하지만, 제 2차 대침공 이래 게이트의 발생이 현저하게 감소했다는 건…… 다시 말해 그 영향을 받은 헌터들의 발생 또한 줄어들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무리 대기 중에 녹아든 마력이 있다고 한들, 마력의 밀도로 게이트를 상회할 수는 없으니까.

하물며 드물게 헌터로 각성한 이들도 이제 와서 몬스터들과 부대끼며 싸울 일은 거의 없는 상황.

아이러니하게도, 안정적인 수입을 손에 넣은 해체사들은 정작 그 때문에 업계의 미래가 어두워졌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현직 해체사들이야 쌍수를 들고 반길 일이었지만, 고위 헌터와 계약해 일확천금을 획득한 해체사 신화가 사라진 이상 일반인들에게 해체사는 별로 매력적인 직업이 아니었다.

때문에, 오랜만에 찾아간 해체소엔 저랭크 몬스터 소재가 썩어날 만큼 쌓여 있었다.

고랭크 소재야 찾는 이들도 많으니만큼 우선적으로 현직 해체사들이 배당되었지만, 저랭크 소재는 아무래도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하를 꽂아넣을 수 있었던 것 또한 그 덕택었다.

단순한 인맥만으로 누구 하나 꽂아넣을 수 있을 만큼 해체사 업계는 만만한 게 아니다.

업무 강도도 장난 아니고, 그런 만큼 도저히 못 해먹겠답시고 도망치는 녀석들 또한 부지기수였으니까.

'수입은 꽤 세지만.'

아마도 윤하 또한 안정적인 수입이 생겼으니 한층 마음을 놓을 수 있었던 거겠지. 본디 지갑의 두께는 곧 마음의 여유로 이어지는 법이다.

그렇게 윤하가 가공한 소재를 포함한 저랭크 몬스터들의 소재는 만일 구매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이 쪽에서 매입하기로 했다.

윤하를 꽂아주기 위함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학생들이 사용할 장비를 만드는 데에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최승준 또한 여기까지 생각하진 못했던 모양이고.

저랭크 몬스터 소재의 품귀 현상.

아카데미에 헬스 트레이너를 들여놓자는 내 말엔 미묘한 반응을 보였던 최승준이었지만, 이번에 내가 물어온 사업에 대해선 감탄을 토하며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하긴, 그 놈이 제 손으로 직접 몬스터를 해체해 봤을 리가 있나.

당연히 해체사들의 현황 따윈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게 뻔했다.

그래서, 그렇게 모은 소재로 뭘 할까 하면…….

"다들 책상에 놓인 거 확인했지?"

물론, 수업이다.

첫 만남 이래 거의 한 달 만에 교실에서 수업을 진행하겠다는 나를 보며 의문을 표하던 애들 또한 시선을 내렸다.

학생들의 책상 위. 그 위에는 묘하게 생긴 공구들과 함께, 기묘한 짐승의 가죽이 놓여 있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하연이의 도움을 받아 준비해 둔 물건들이다. 나는 손대기 싫었거든.

"그리스의 몬스터, 코드네임 네메아의 가죽이다."

그 말에 학생들의 눈초리 또한 날카로워졌다.

그리스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자 형태의 몬스터, 코드네임 네메아.

신화 속 엄청난 인지도에 힘입어, 이 대한민국까지 아주 잘 알려진 몬스터다.

통칭 '네메아의 사자'라 불리는 이 A+랭크 몬스터의 가죽은, 신화 속에서 언급되는 바와 같이무기에 대한 절대적인 면역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 증거로, 내 말에 놀란 학생들이 옆에 놓인 공구로 이리저리 사자 가죽을 찔러보고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날이 박히지 않았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몬스터들 중에는 이런 식으로 특정한 방법을 사용한 공격을 무시하거나…… 혹은 반대로 특정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한 데미지를 입힐 수 없는 종 또한 존재한다. 허면, 이런 부류의 몬스터와 마주쳤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주욱 시선을 돌려 학생들의 얼굴을 훑는다. 말로만 들었던 고랭크 몬스터의 절대적인 방호 능력을 눈 앞에 두자 아무래도 풀이 죽는 모양이었다.

개중에서도 가장 심하게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건 역시 정필연이었다.

녀석의 능력은 무장 구현. 다시 말해, 실시간으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무기를 불러내는 힘이다.

모든 무구를 무시하는 몬스터 앞에서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지, 그야 곤혹스러울 법도 했다.

"예를 들어, 이 네메아의 사자와 비슷한 몬스터가 우리 눈 앞에 나타났다고 해 보자. 무기는 먹히지 않고, 능력도 마찬가지.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손 놓고 죽을까?"

"맨손으로 공격하면 됩니다."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한 건, 이번엔 이예은 쪽이었다. 유명한 몬스터인 만큼,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말대로, 코드네임 네메아의 가죽에는 그런 약점이 있었다.

거진 한 달 내내 이 괴물과 맞서 싸운 끝에, 고대 그리스의 종합 격투기 판크라티온을 창제했다는 헤라클레스의 일화처럼 말이다.

이는 수많은 학자들이 몬스터의 정체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다시 말해, 몬스터들이 모종의 이유로 신화 속 괴물들과 비슷한 면모를 지니게 된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몬스터들의 정체가 신화 속 괴물인 것인가.

네메아의 사례와 같이, 얼추 비슷한 경우라 치고 넘어가기엔아무래도 지나칠정도로 유사한 사례가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뭐, 여신 티아마트나 네메아의 사자처럼 신화 속에선 이미 죽음을 맞이한 녀석들도 멀쩡히 활보하고 있는 이상 나로서는 반반이 아닐까 싶은데.

"정답이다."

어쨌든, 지금은 수업이다.

순순히 칭찬하자, 썩 자랑스러운 얼굴로 턱끝을 들어올리는 이예은의 모습이 보였다.

피식 치밀어오르는 웃음을 억누르며, 나는 단상 위에도 놓인 네메아의 가죽을 피해 턱 하고 손을 짚었다.

"하지만, 그 외에도 다른 방법들이 있지."

전설에 따르면, 헤라클레스는 자신을 향해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네메아의 사자의 주둥이에 자신의 상징인 몽둥이를 쑤셔넣었다고 한다.

이후, 목을 졸라 죽인 사자의 가죽을 벗기기 위해 사자의 발톱을 사용했다고 하지.

그와 같았다.

네메아와 같은 방호 능력을 공략하는 방법, 그 두 번째.

가죽에 덮이지 않은 내부를 공격하는 것.

당연히, 첫 번째 방법보다 어려우면 어렵지 쉬운 길은 아니다.

그렇기에, 실질적으로 헌터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세 번째.

"지금 들고 있는 공구 말고, 책상 안에도 공구가 있을 거다. 그걸 써 봐라."

내 말에 책상 속에서 공구를 꺼내든 학생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까지 사용하고 있던 공구와 별로 다를 것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리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어?"

재빠르게 가죽을 건드린 학생이 돌연 그런 소리를 내뱉었기 때문이다.

눈 앞에 놓인 가죽에 흠집 하나 내지 못한 첫 번째 공구와 달리, 두 번째 공구는 너무나도 손쉽게 사자의 가죽을 저며냈다.

저게 바로 세 번째 방법.

어느 정도 이상의 날카로움이 보장된 무기 중, 칼슘 함량이 56% 이상인 것을 사용하는 것이다.

사자의 발톱을 사용한다는 방법과 맨손으로 공격한다는 방법이 사실은 같은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학자들이 수많은 실험 끝에 밝혀낸 비율이다.

현재, 각 공방에서 판매하고 있는 무기들은 기본적으로 이 옵션을 추가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학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골몰한 끝에 밝혀낸 금속과 몬스터 소재의 배합식.

단순한 강철 이상의 경도와 강도를 자랑하는 꿈의 신소재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가공된 무기로 가죽을 찌르면, 가죽의 방호를 돌파할 수 있지."

가죽을 보호하는 법칙이, 골재가 담긴 무기를 멋대로 '생물의 육체'라 판단하는 것이다.

나로서는 어느 정도 애증이 담긴 주제이기도 했다.

몬스터 뼛가루가 담긴 무기를 쓰기 싫다는 이유로 어떻게든 우회할 방법을 찾아 골몰했던 게 지금도 기억에 선명할 정도였으니까.

모르긴 몰라도, 공방 거리 기술자 양반들은 아직까지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 정도니.

"선생님, 그럼 전 어떻게 합니까? 무기를 바꿀 수도 없잖습니까."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네가 의식해서 무기 배합 비율까지 바꿀 수 있게 연습해야지."

곤란하다는 얼굴로 내게 질문한 정필연이 한층 더 절망적인 얼굴을 했다.

이처럼, 헌터와 몬스터의 싸움은 단순한 힘겨루기로 끝낼 수 있을 만한 물건이 아니다.

몬스터가 발휘하는 법칙성을 파악하고, 이를 공략하는 것.

머나먼 고대와 달리, 우리가 영웅이 아닌 사냥꾼Hunter이라 불리는 이유 또한 바로 이 때문이다.

고작해야 몬스터 한 마리를 공략하기 위해 과거의 기록이나 심지어 신화 속 전승까지 찾아봐야 하는 게 우리들이었으니까.

내가 해야 할 일 또한 그렇다.

이런 몬스터들 사이의 공통점을 분류해 사용할 수 있도록 정리한다. 그렇게 정리한 정보들을 이 녀석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때려넣어, 그 파해법을 습득시킨다.

극단적으로 말해,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서 몬스터보다 강해질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

몬스터를 죽일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 죽여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물론 어쩔 수 없이 맞서 싸워야만 하는 상황도 있으니만큼, 훈련 또한 게을리할 수는 없겠지만.

허나, 내가 이 녀석들에게 가르칠 건 기본적으로 이런 기술들이다.

이번엔 거래를 맺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어쩔 수 없이 내 창고 속에서 썩어가던 물건을 사용했지만, 안정적으로 소재를 확보할 수 있게 되면 학생들의 실력에 걸맞는 소재들도 다룰 수 있겠지.

그렇게 가공한 소재들은 이 녀석들이 장비를 만들 때 사용할 수 있을 테고.

이 정도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선순환이 아닐까.

몬스터를 상대하는 기술도 쌓을 수 있고, 다소나마 용돈벌이도 될 테니까.

슬쩍, 시선을 돌려 윤하를 살피자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윤하에게도 이 정도면 만족스러웠을까?

과연 거기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쁘지는 않았던 듯싶다.

하연이 또한 그런 윤하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으니.

"오늘은 첫 수업이니까 간단히 이 정도만 하겠는데, 다음부터는 다른 몬스터들의 소재도 가져올 거다. 너희들은 그걸 어떻게 해야 가공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볼 거고. 어떻게든 손을 댈 수 있었으면 통과지만, 손도 못 쓰면 당연히 불합격이니까 많이 연습해 보렴."

"네? 다른 몬스터요?"

"그럼. 실습도 취소됐으니까 이 정도는 해야 수지에 맞지 않겠니?"

"아니, 너무 어려운 거 아니에요?!"

"그런 말 안 나오게 잘 조정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선생님도 도와줄 테니까. 필요한 정보는 다 줄 거고.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짝짝, 박수를 쳐도 학생들의 당황한 표정은 풀리질 않았다.

아무래도 저 친구들로서는 고작해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줄창 뺑뺑이만 돌리던 내가 갑자기 이런 수업을 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그러나 어찌하리오. 헌터란 본래 이런 직업인 것을.

세간에는 일확천금의 상징처럼 알려진 헌터지만, 본질은 결국 사냥꾼.

그리고 무릇 사냥에 화려한 필살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수많은 시험과 시행 착오.

사냥꾼이란 본래 그런 직업인 것이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