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0화 (30/371)

〈 30화 〉 문제아

* * *

"윤하 말씀이세요?"

그 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생각난 김에 핸드폰을 사러 가기로 했다.

먼저 준비를 마치고 방 밖에서 기다리는 하연이가 지루하지 않도록 적당히 화제를 던지는 중이었다. 분명히 처음엔 저번 실습 당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을 텐데,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덧 우리들은 오늘 우리 반에서 화제가 된 문제아에 대한 화두를 입에 올리고 있었다.

황윤하.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시원스레 학교를 땡땡이치기 전까지만 해도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그 이상으로 모난 부분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다른 학생들과도 두루두루 원만하게 잘 지냈고, 수업 도중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다. 달리 전과가 있었던 것도 아니며, 얼마 전까진 수업에도 열성적이었던 친구다.

지금은 아예 학교를 통째로 빼먹는 문제아지만.

뭐, 무슨 일이든 해결하려면 정보 수집은 필수다.

말이 나온 김에, 이예은 때 얻은 교훈을 살려 이번에도 하연이에게 그리 물어봤지만 대답은 영 신통치 않았다.

"글쎄요? 사실 윤하랑 눈에 띄게 친한 애들도 없거든요. 아, 사이가 나쁜 애들도 없지만."

하긴, 내가 기억하기로도 그랬다.

솔직히 말해, 윤하는 반에서 다소 겉도는 아이였다. 묘하게 접근하기 어렵다고 해야 할까? 고작해야 스무 살도 안 된 애들한테 사용할 만한 단어는 아니지만, 독특한 아우라를 풍기는 타입.

날카로운 인상도 이에 한 획을 더한다. 길게 내리기른 머리칼을 말총 머리로 틀어올린 채, 퀭한 눈동자를 들어 이리저리 굴리는 윤하의 모습은…… 전형적인 양아치처럼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묘하게 대하기 어려운 인상이라고 해야 할까? 나 또한 남말할 수는 없는 처지였지만, 나름대로 차세대 헌터라 불리던 녀석들까지 어영부영 시선을 피하는 모습이 눈에 밟히긴 했다.

하물며 지금은 양아치라는 평가에 달리 반박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

먼저 나서서 무언가를 주도하진 않아도, 함께 하는 일이 있다면 뒤로 빼지도 않는다. 먼저 말을 붙이지는 않아도, 말을 걸면 별다른 문제 없이 잘 응대해 준다. 굳이 말하자면 반에 한 둘은 있기 마련인 다소 어른스러운 학생이, 어쩌다 보니 문제아로 암흑 진화를 한 모양인데…….

문제는 그 원인이 당장에 짐작이 가질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니, 보통 이런 일이 있으면 보호자에게 전화라도 해 보겠지만 말이지.

'아카데미가 다 그렇지 뭐.'

윤하는 고아였다.

뭐, 이젠 익숙한 일이라 따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우리 반에 있는 애들부터 대부분이 고아인 형편이고. 거 참 편의주의적이라고 해야 할지, 그렇지 않으면 제 2차 대침공이 남긴 상흔은 그토록 거대했다고 해야 할지.

하긴, 잘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고작해야 열 일곱. 아직 스물도 안 된 녀석들이 헌터가 되고자 마음을 굳힐 계기가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몬스터에게 가족을 잃어 그 복수를 하고 싶다거나, 가족들 중 헌터가 있다거나. 보통은 이 둘 중 하나겠지.

허나, 그처럼 그럴듯한 이유도 삶에 여유가 있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다.

윤하는 달랐다.

돈.

아마도 그 아이는 돈을 벌기 위해 헌터가 되었으리라.

대략적으로 암기해 둔 아이들의 신상 명세가 주루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개중에서 윤하의 가정사가 적힌 파일을 꺼내 곱씹어 보면, 그러한 추측에 한층 신빙성이 더해졌다.

철이 들었을 때부터, 윤하에겐 부모님이 없었다. 너무 어렸을 때의 일이라 자세한 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필시 몬스터에게 당한 건 아니었겠지. 왜냐하면, 그녀의 밑으로는 둘이나 되는 동생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윤하가 여타 고아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윤하는 고아였으며, 동시에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했다.

헌터가 되고자 하는 데에는 틀림없이 그런 사정 또한 어느 정도 지분을 차지하고 있으리라.

당연하지만, 헌터는 타 직종에 비해 수입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몬스터 소재가 돈이 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제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게 일이었기 때문이다.

돈이라도 주지 않으면 그 어느 누구도 나서서 맡으려 하지 않는 꽝패.

그게 바로 헌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었다.

말하자면, 헌터들이 받는 어마어마한 금액의 보수는 곧 미끼나 다름없다. 사회가 무너지고 치안이 붕괴하던 대침공 직후야 어쨌든, 지금은 헌터라는 직종에 종사하는 것 자체가 이득보다는 일종의 미덕이라 여겨지는 시대다.

당연한 일이었다. 게이트 발생 초기엔 몬스터로부터 제 몸을 지키기 위해 헌터가 되고자 했던 이들이 바글바글했다. 헌터 사회나 헌터 계층 등의 용어 또한 이 때 만들어졌을 정도니.

하지만 사회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헌터라는 직업은 어느새 다소 경원시되는 입장에 처했다. 제 목숨을 내놓고 몬스터와 사투를 벌여야 하는 직업. 말로는 헌터들의 부를 시기하는 이들이 더러 있었으나, 그런 이들조차 몬스터와 싸워야 한다는 말에는 난색을 표하곤 했다.

멋있고 대단하기는 한데, 저렇게 살기는 싫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어쩔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물며 대침공과 같은 재난이 발생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국가에 의해 강제로 동원되기도 하는 게 바로 헌터들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군역을 선호하는 이들은 없다. 각성을 경험하고도 협회에 이름을 올리지 않으려는 비 인가 헌터와, 인권 침해라는 오명을 쓰면서까지 강제로 헌터들을 협회에 등록시키고자 하는 국가 사이의 알력 다툼은 이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뭐, 나한텐 완전히 남의 나라 이야기였긴 한데.

반대로, 그토록 기피당하는 만큼 헌터들은 이 말세에서조차 남부럽지 않게 한몫 챙길 수 있는 직업이기도 했다. 위험하기 그지없는 업무 내용에도 불구하고, 헌터라는 직종이 유지될 수 있었던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다. 몬스터에게 무력하게 살해당하는 사람들을 보고 솟아오른 정의감과 얼마 되지 않는 애국심, 그리고 그 이상으로 많은 돈.

비록 제 2차 대침공이 종료된 이후 게이트 발생이 급감했다고는 하나, 헌터들의 몸값은 여전했다. 헌터들이 쌓아올린 무력이나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장소는 여전히 다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을뿐더러, 아직까지 국가의 관리 하에 존속하고 있는 게이트 또한 더러 존재했기 때문이다. 대침공 시기에 비하면 아무래도 수익 감소를 피할 순 없었으나, 그렇다 쳐도 어마어마한 돈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은 셈이다.

홀로 두 명의 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소녀 가장 입장에서 보자면 이토록 매력적인 이야기도 없다.

무엇보다, 그녀에게는 나름대로 자질도 있었다. 능력도 나쁘지 않고, 다른 학생들과 달리 중학생 때부터 탄탄대로를 달리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소질도 상당히 훌륭한 편이라 할 수 있겠지. 비주얼도 괜찮은 만큼, 헌터가 될 수 있다면 상당히 많은 돈을 만질 수 있을 터였다.

그녀 또한 머릿속으로 이런 주판을 튕겨본 뒤 입학을 결정했겠지.

다행스럽게도, 헌터 아카데미는 국가 주도 프로그램. 고등 교육이라는 단어가 사치의 일환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 미래의 산업 역군이 되고자 자발적으로 찾아온 친구를 쳐내지는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우리 반의 학생이 되었다.

아니 근데 시발 왜 갑자기 땡땡이 치냐고~

자질 좋음. 능력 나쁘지 않음. 담력 또한 괜찮은 편이고, 아카데미에서 배우면 못해도 중견 헌터가 될 수 있을 법한 소질은 있다. 그리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녀를 포함한 학생들 전원을 고작해야 중견 헌터 수준에서 끝낼 생각 따윈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마음을 먹어도 정작 당사자의 의지가 부족해서야 어찌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돈 때문인가?'

당장에 떠오르는 건 딱 그 정도였다. 분명히 나름대로 주판을 튕긴 끝에 입학하기로 결정했을 그녀가 고작 1개월 만에 수업을 때려치울 만한 이유는 그 정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급전이 필요해져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던가?

내가 생각하고도 어처구니없는 발언이기는 했다. 고작해야 한 달만에 가계가 기울 만한 일이 뭐가 있다고.

주식이라도 한 건가?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칠 정도였다.

동시에, 안타깝기도 했다. 제 2차 대침공이 공식적으로 종결된 이후, 헌터들의 일자리가 축소된 건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국가가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헌터 아카데미의 졸업장이 업계에 도움이 되면 됐지 있어서 손해 볼 일은 또 없지 않겠는가. 성적이 우수하면 우수할수록 더더욱 그렇고.

그렇기에 그녀가 어째서 이런 행동을 취하는 건지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설마 애들 수준 보고 이미 견적이라도 내 본 건가? 대충 졸업장만 따는 식으로?

있을 법한 판단이었다. 자기랑 다르게 중학생 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은 애들이 부지기수인 상황에서, 평소처럼 의욕을 낼 수 있을까 물으면 과연 답하기 곤란했으니까.

'때 아닌 청춘물이라도 찍어야 하나.'

위축되지 마. 넌 할 수 있어! 네 노력이 다른 애들의 재능을 이길 수 있다는 걸 보여줘!!

적당히 그런 대사를 떠올리다 고개를 저었다. 농담처럼 말하긴 했지만, 사실 저 정도면 아직 괜찮은 편이라 할 수 있겠지. 오히려 문제가 되는 건, 아예 이쪽 업계에서 마음이 떠나버렸을 경우다.

예를 들어 한 달 해 보니 도저히 헌터 일이 몸에 맞질 않았다던가. 그렇지 않으면 실습 때 얼핏 본 몬스터의 기척에 지레 겁을 집어먹고 말았다던가.

어느 쪽이든, 타인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물며 나름대로 국가 주도 사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출범한 이 헌터 아카데미가, 과연 중도 포기자에게 어떤 태도를 보일까.

자칫 잘못하면 퇴학까지 있을 수 있다.

……뭐, 이 이상 넘겨짚는 건 역시 지나치겠지. 거기까지 가면 과연 나 또한 어찌해 줄 수 없겠지만, 결국 단순한 추측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 막말로 이 다음부터는 내 망상이 아니라 윤하와의 상담을 통해 생각해 봐야 할 일이었다.

부정적으로 흘러가던 사고에 고삐를 채우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 나는 마저 고개를 끄덕인 뒤 환복을 마쳤다. 여하간, 이 이상 하연이를 기다리게 하는 것도 미안한 일이다. 핸드폰이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고.

여하간, 이번 실습과 같은 경우도 있다. 아무리 나라 해도 하루 종일 하연이에게 붙어있을 순 없는 노릇이니까.

사실 평소 하는 일도 없이 빈둥대는 내 모습을 생각해 보면 붙어있지 못할 건 또 뭐냐 싶기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사정이고. 아무리 그래도 현역 여고생에게 나같은 아저씨가 24시간 붙어 있다는 사실은 불쾌할 수밖에 없으리라.

하물며 이 좁아터진 방구석 뿐이라면 또 모를까, 나로서는 만일 하연이가 친구와 약속이라도 잡았다 하면 그녀의 뒤를 밟아야 할 필요도 있었다.

스토커 아니냐, 이거?

내가 생각해도 추잡할 정도다. 하긴, 보호 감찰이라는 게 다 그렇지 뭐. 본래는 단기간, 그것도 당사자가 인식하지 못하도록 원거리에서 감시하는 게 협회의 보호 제도다. 그조차도 갑갑하다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와중에 이런 밀착 감시라니. 나나 하연이나 다소 특수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 정도는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마침 나 또한 슬슬 핸드폰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던 참이다. 여하간, 매번 이준구를 부를 때마다 카페 전화기를 빌리는 데에도 한계가 있으니까. 심지어 저번엔 카페 주인장 아저씨가 너한테 연락 왔다고 말씀해 주시더라니까?

'다음에는 이것도 건의해봐야겠네.'

지금이야 아무래도 초창기이다보니 학생들 대부분은 핸드폰을 지참하고 있었다. 그야 뭐, 이런 시대에 고등학교까지 다니는 애들이라면 핸드폰 정도는 구비하고 있겠지.

하지만, 앞으로도 꼭 그러리라고는 단언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최승준의 말에 의하면 차차 폭넓게 학생들을 받아들일 예정이라던데 그 학생들 전원이 별도로 핸드폰을 준비하고 있길 바라는 건 아무래도 사치였다.

하다못해 방금 전 이야기가 나온 윤하 또한 핸드폰은 없을 게 뻔했고.

문제는 역시 예산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더 간단한, 핸드폰보다는 통신기에 가까운 물건이라도 준비해두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학생들 사이에 원할한 연락이 가능하도록. 지금이야 금지되어 있긴 했지만, 머잖아 실습도 재개될 테고.

이런 저런 생각을 삼키며 환복을 마친 난 그대로 문을 열었다.

"하연아, 슬슬 가자. 준비 끝났다."

"네, 오빠……?"

다시 한 번 최승준을 갈굴 생각에 들뜬 목소리를 감추지 못한 채로 문을 열자, 나를 돌아보던 하연이의 시선이 문득 머뭇대는 게 느껴졌다.

그에 맞추어,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춘 나 또한 그 자리에서 하연이의 모습을 감상했다. 처음엔 한사코 이 이상 신세를 질 수는 없다고 사양하던 하연이었지만, 이 시대에서도 여고생과 핸드폰은 불가분의 관계임을 증명하듯 평소 이상으로 화사하게 갖춰 입은 모양새였다.

어색하다는 듯 교복 소매를 어루만지던 평소와는 달리, 자연스러운 사복 차림. 짧은 스커트 밑으로 드러나는 다리엔 검은 스타킹을 당겨 신고서, 그 위로는 가벼운 블라우스를 걸쳤다. 얼굴 위로는 간단한 화장. 한 듯 안 한 듯, 엷게 덧칠한 화장은 평소 그녀를 눈여겨보고 있던 사람이 아니라면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말 그대로 여고생다운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어딜 어떻게 봐도 그렇게 말하기 힘든 총천연색 머리카락을 제외하면 딱 그런 느낌이었다.

허나, 정작 나를 마주보는 그녀의 얼굴은 참으로 무어라 말하기 힘든 감정으로 얼룩지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변태 아저씨마냥 여고생 운운하던 내 설명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마치 못 볼 걸 보기라도 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가,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이다가, 혹시 잘못 본 게 아닐까 되묻는 것처럼 화장이 번지는 일조차 신경 쓰지 않고 눈을 부비더니, 이윽고 혼절할 듯한 표정이 되었다.

"……그건 또 뭐에요?"

때아닌 안면 기예를 선보이던 하연이가 조심스레 그리 되물었다. 숫제 정말로 묻기 싫지만, 묻기는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묻는다는 듯한 어조였다.

그러나, 나는 도리어 당황하고 말았다.

"NASA제 우주복."

응?

혹시 요즘 애들은 NASA가 뭔지 모르나?

소위 말하는 세대 차이를 느끼며 그리 대답하는 나를 향해, 그녀는 얼추 나와 비슷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요컨대, 황망해했다는 뜻이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