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뒷처리
* * *
쿵, 무거운 소리와 함께머리를 잃은 악마의 육체가 무너져내렸다.
다시 한 번 도구를 조작해 열어젖힌 공간 너머로 무기를 던져넣는다. 이것으로 싸움이 끝났다는 일종의 의식, 루틴이다. 그제서야 나는 천천히 숨을 가다듬으며 심호흡을 거듭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백 년 묵은 칡뿌리마냥 텁텁했던 공기가 점차 달짝지근한 향을 풍기기 시작했다. 몬스터가 쓰러졌다는 징조였다.
아무래도 몬스터들 중에선 불사신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놈들 또한 더러 있다 보니 생긴 습관이었다. 실제로, 완전히 죽였다고 생각한 몬스터가 사실은 살아 있었다…… 혹은 정말로 확인 사살까지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에서 일어난 새끼들 때문에 죽음을 맞이한 헌터는 또 몇이던가.
허나, 지나칠 정도로 날카로운 내 마력 감응 능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몬스터들의 숨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렇기에, 한시라도 빨리 몬스터들을 갈아버리랍시고 길길이 날뛰는 감각이 침착함을 되찾을 땐 도리어 안심할 수 있다는 신호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가볍게 몸을 푼다. 오랜만에 본격적으로 뛴 탓일까? 뻐근해진 몸이 영 쑤셨다. 동시에, 사고를 사냥꾼에서 교사로 전환. 이후 체조를 마무리한 뒤에야 나는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다행스럽게도, 고생한 보람은 있었다. 와들와들 떨고 있는 코트. 그 위론 흙먼지 정도를 제외하면 흠집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괜찮냐?"
제대로 붙들고 있지도 못하던 코트를 집어들고 어깨에 걸쳤다.
그러자 도저히 눈 뜨고 못 봐줄 몰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몬스터를 쓰러뜨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 경련을 반복하는 소녀들. 이래서야 원, 혼절하지 않은 걸 다행이라 해야 할지.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헌터 예비군.
방금 전까지 게이트 안을 잠식하고 있던 위압감이 가시자, 점차 그녀들의 동공에도 빛이 돌아오는 게 보였다.
"역시 네가 빠르구나."
둘 중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자하연이었다. 아무래도 A랭크 몬스터, 그것도 드래곤과 접해 본 적 있기 때문일까?
찬찬히 고개를 들어 이 쪽을 바라보는 진주빛 시선 위로, 점차 엷은 미소가 걸렸다.
"이기셨네요."
"옹야."
하지만,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아무래도 이 이상 대화를 나누기에는 상황이 썩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어떻게 된 일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도 있거니와, 무엇보다도 하연이 또한 눈에 띄게 지친 상태였다.
휘청휘청, 비틀대며 몸을 일으키는 꼴이 영 불안하다. 아무래도 쉬고 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작 본인이 고개를 저으니 어쩔 수도 없었다.하긴, 나라도이런 장소에서 쉬고 싶지는 않겠다만.
보나마나 실습은 중지되겠지. 아무리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실습을 계속하자 말하는 미친 놈이 있을 리가 있나. 하물며 지금 바깥에서는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당황하고 있을 게 불을 보듯 뻔했다.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전원이 무사하다는 걸 알려야 할 때.
그리 판단했지만, 문제는 이예은 쪽이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이예은이 몬스터와 접촉한 경험이라 해 봐야, 방금 전까지 마주쳤던 E랭크 몬스터들 정도겠지. 하물며 그조차도 하연이의 능력으로 약화된 상태. 말하자면, 고위 몬스터와 정면으로 맞부딪힌 적이 있을 턱 없었다.
그런 상황에 더해, 추가로 A+랭크 이상의 몬스터가 발산하는 위압감까지?
오히려 혼절하지 않은 걸 칭찬해야 할지도 모른다.
"……선생님?"
"그래, 선생님이시다."
간신히 풀린 혀끝을 놀려 내뱉은 말에도, 이전과 같은 패기는 없다.
한층 혼탁해진 하늘빛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일어서기는커녕 제 몸을 가누기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들었다. 결국, 나지막이 한숨을 내쉰 나는 조용히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내가 내쉰 한숨에 맞추어 어깨를 좁힌 이예은의 몸을 조심스레 안아들었다.
"으, 어?"
"뭘 그리 놀라. 가만히 있어, 임마."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기라도 한 건지, 자신도 모르게 버지럭대던 이예은에게 핀잔을 주었다.그러자, 퍽 우스운 몰골로 팔다리를 휘적이던 그녀 또한 스스로의 추태를 깨달은 듯 순식간에 햄스터마냥 얌전해졌다.
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려버리길 잠시. 점차 날카로워지는 이예은의 눈초리와, 그에 비례하듯 달아오르는 그녀의 얼굴로부터 시선을 돌린 나는 혹여라도 흔들리는 일 없도록 자세를 가다듬은 뒤에야 하연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하연아, 슬슬 가자. 혹시 모르니까 코트는 네가 입고……."
"네, 선생님."
자신도 모르게 말꼬리를 흐리는 내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생긋 웃음지은 하연이는 내 어깨에 걸친 코트를 가져가 제 몸 위에 덮었다.
그런 하연이의 동작에는 묘한 웃음기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단, 대상은 내가 아닌 이예은 쪽이었지만. 일종의 과시라고 해야 할까? 그렇지 않으면 뿌듯함이라고 해야 할까. 이에 가까운 감정을 담아 바라보는 시선을 피하지 못하고 슬쩍 고개를 돌리는 이예은. 동시에, 그 모습을 보며 한층 더 자신만만한 얼굴로 승리감에 도취된 미소를 짓는 하연이가 보였다.
"뭐하니, 너희?"
"아무 것도 아니에요. 돌아가죠, 선생님!"
뭐, 재촉하는 말씨에 나 또한 어깨를 으쓱이고 말았지만.
상쾌한 분위기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걷는 동안 별다른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하긴, 나야 어쨌든 이 둘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피곤한 경험이었겠지. 하물며 방금 전까진 고위 몬스터가 발휘하는 압력에 노출되어 있던 참이었으니. 내기는커녕 실습조차 머나먼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질 판국에 부산을 떨 힘이 남아있을 리도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기습은 없었다. 본래 이 게이트에서 살고 있던 몬스터들 또한 갑자기 난입한 외래종 탓에 혼란을 금치 못하고 있는 걸까. 어느 쪽이든, 이 둘에게는 좋은 일이다. 평소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나 또한 지금은 고위 몬스터를 토벌한 덕택에 어느 정도 마음에 여유가 있는 실정이었고.
'응?'
어라?
평소엔 저랭크 몬스터 퇴치, 그리고 이번엔 고랭크 몬스터 퇴치.
생각해 보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퇴치할 몬스터 하나 없이 골골대던 꼬락서니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풍족한 환경 아닌가?
'혹시 여기가 천국인가?'
그런 시덥잖은 생각으로 시간을 떼우며, 마침내 우리는 게이트 너머로 발을 딛을 수 있었다.
헌터 아카데미, 그 지하.
운동장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장소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게이트로부터 모습을 드러내자 작은 환성이 일었다. 십중팔구 소요를 억누르는 데에 성공한 최승준이 협회에 연락을 넣어 쥐어짠 예비 병력일 터다.
허나, 이 환성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었다.
아니,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 또한 저 이름 모를 헌터들이 아니었다.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내가 봤을 때 다친 곳은 없어 보이긴 했지만, 지금 상황만 해도 그녀에겐 불안하기 그지없을 테니까.
하지만.
"늦었잖아, 새끼야."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는 말해줘야겠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감정을 갈무리하는 대신, 나는 안아든 이예은을 조용히 내밀었다. 그러자 녀석 쪽에서도 팔을 뻗어 그녀를 받아들어…… 돌연 무릎을 꿇었다.
"다행이다."
아, 깜짝이야.
몸무게 드립 치는 줄.삐져나올 뻔한 웃음을 억누르며 녀석을 내려다보자, 어느새 그 눈가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초조, 혹은 불안. 내가 알고 있는 남매들 사이에선 쉽사리 엿보기 힘든 감정을 토해내며, 녀석은 제 여동생을 향해 천근추라도 썼냐는 둥 농담을 건네는 대신 절박한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오, 빠?"
"그래, 오빠야. 예은아, 오빠야."
거 참, 사람 무안하게시리.
그 이상 헛소리를 주워섬기는 대신, 나는 뒤쪽에 사열한 헌터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지금 내 뒤에서 세상 다 떠나가라 흐느끼고 있는 인류 최강의 헌터 양반을 대신해 아직까지 주둥이를 쩍 벌리고 있는 게이트를 향해 턱짓했다.
"거, 안에 잡아둔 놈 한 마리 있으니 확인이나 해 주쇼."
*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최승준의 대처는 실로 적절했다. 비록 중간에 인류 최강이 난입하는 불상사가 있기는 했지만, 실질적인 피해는 없었다.
실습은 그대로 종료. 상황을 통제하던 최승준의 말 몇 마디에 그 때까지 운동장에 서 있었던 학생들은 삼삼오오 해산했고, 대관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궁금해하던 교사들 또한 그 말에 귀가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는 예외다.
본격적으로 이번 사태를 조사하기 위한 참고인 자격으로 출두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출두라고 해 봐야 연구자들의 질문에 대답해 주는 정도겠지만.
뭐, 실질적인 조사는 나같은 저학력자가 아니라 높으신 분들이나 현장 연구직들의 업무이니만큼 그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조사 결과, 내가 처리한 몬스터는 S랭크로 판명되었다. S랭크에 준하는 강함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낯선 환경에 홀로 동떨어져 게이트의 지원을 받지 못했던 점. 그리고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시간이 없었던 점 등이 참작되었다고 했던가.
때문에, 나는 곧바로 S랭크 헌터가 되었다.
다른 나라야 어쨌든, 한국 헌터 협회의 등급 분류 기준은 썩 심플하기 때문이다. 국제 사회의 기준에 맞추어 기본적으로 E~A랭크를 매기되, 별도 기준에 따라 S랭크를 별첨한다. 이후, 이를 토벌한 헌터를 해당 랭크로 셈한다. 거기에 하자가 있을 경우 마이너스, 안정적으로 해당하는 랭크에 속한 몬스터를 토벌할 수 있을 경우 플러스를 부여하는 식이다. 즉, 협회 기준으로 S랭크에 해당하는 몬스터를 별다른 차질 없이 쓰러뜨린 난 S랭크 헌터라 불리기에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그렇다 쳐도, 면허 등록 이후 반년도 안 돼서 S랭크인가.
'처음부터 이랬으면 좀 좋아.'
모종의 감개보다는 먼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몬스터가 어떤 경위로 아카데미 내의 게이트에 출몰한 건지, 제대로 된 건 무엇 하나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본격적인 조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해당 게이트 또한 실질적으로 폐쇄할 수밖에 없을 테고.
나로서는 더럽게 빡치는 일이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 며칠 전이었다면 이유고 나발이고 아무튼 모르겠다고 생떼를 부렸을지도 모르겠다만, 오랜만에 고랭크 몬스터를 썰어댄 덕택에 기분이 좋은 내게 있어선 납득할 수 있는 판단이었다.
사실 다른 녀석들이야 어쨌든 당시 상황 검증에도 어울려줘야 하는 나로선 게이트 안에 들락날락해야 할 필요성도 있었으니,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입장이기도 했다. 게다가, 어차피 연구직들도 줄곧 쏘다녀야 할 거 아닌가? 그 사이 호위라도 자청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마음도 있고.
문제는 악마의 소재 쪽이었다.
소위 말하는 웹소설과는 달리, 실제 몬스터는 마석이라 불리는 마력원 따위로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그러니만큼, 당연히 마석인지 뭔지를 제거한다 한들 몬스터의 시체가 눈 녹듯 사라지는 일 또한 없었다.
헌터 사회가 존속할 수 있는 이유 또한 이 때문이었다. 무슨 수렵 시대도 아니고, 아무리 효율이 좋다 해도 목숨 걸고 사냥할 때마다 차출되는 부산물 따위로 일국의 경제를 지탱할 수는 없는 법이다. 때문에, 헌터들은 필연적으로 몬스터를 사냥한 뒤 발생한 몬스터의 사체에서 일부 소재를 뜯어내 판매하는 식으로 연명했다. 세간에서 말하는 헌터 사회란,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그렇게 뜯어낸 희소 소재와 이를 분석해 만들어낸 다소의 마력 화합물 위에서 재건된 세상을 뜻했다.
뭐, 덕분에 S랭크 헌터나 사냥할 수 있을 법한 고위 몬스터의 소재를 두고 헌터와 도축업자들 사이에 알력 다툼이 발생하는 거겠지만.단순한 무력이라면 모를까, 헌터들에게도 고위 소재를 가공할 수 있는 비법을 익힌 도축업자들의 존재는 소중하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하물며 몬스터의 시체를 노상에 방치하다 썩어 문드러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협회로부터 벌금 폭탄이 날아오기까지.때문에,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헌터들 쪽에서 짐꾼이나 도축업자들을 턱끝으로 부리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인생, 뭐든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내게 그런 연줄 따윈 없다. 그렇기에 나는 헌터가 되기로 결심한 직후 가장 먼저 몬스터의 시체를 갈무리하는 기술을 익혔고, 만약 협회 측에서 도축업자들을 제 시간 내에 섭외하지 못할 경우 내 손으로 직접 몬스터를 해체해야 할 처지였다.
기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몬스터한테 닿아야 한다는 점이 싫다.
솔직히 이제 와서 돈에 쪼들리는 것도 아니고, 소재 정도는 협회가 가져가도 된다고 선심 쓰듯 말해보기도 했지만…….
누군가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그리고 내게는 공교롭게도 그런 일은 불가능했다. 헌터 협회의 근간이 헌터의 권리 신장을 위해 출범한 터라, 갈취나 뇌물 수수로 이어질 수 있는 소재 유통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씨발, 대한민국 헌터 협회 철저해~
그렇기에 지금은 최승준에게 맡겨두기로 했다. 내 의사를 반영해, 정말로 소재가 필요한 부문에 한해 우선적으로 공급을 알선하는 대신 아카데미의 시설을 확충할 수 있겠느냐는 식으로 말이다. 만일 이번 협의가 성사되면, 드디어 아카데미에도 마력 측정기를 들여놓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당연하지만, 그런 부분에서 최승준을 따라갈 인재는 없고.
그러므로.
이번 사태 또한 대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말할 수 있을 이 시점에, 나는 때 아닌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당장에 내가 해야 할 일이남아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래도 심상찮은 사태였던 만큼 관련된 모두에게도 함구령이 내려졌고, 애시당초 내겐 이런 일을 떠벌릴 수 있을 만한 지인도 이유도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시간은 요 근래 바쁘고 즐겁게 살았던 내게 있어 정말로 얼마 되지 않는 휴가라 할 수 있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지루하다고도 말한다.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데에 나와 있겠냐마는.
이제는 썩 익숙하기까지 한 카페였다. 마침내 찾아온 평화의 시대, 이제는 아카데미 교사라는 이름으로 몬스터들을 주살할 권리를 손에 넣은 나였지만 여전히 이 카페는 내게 있어 얼마 되지 않는 마음의 안식처라 할 수 있었다.
주말의 여유를 즐기기에 이만큼 어울리는 장소도 달리 없다. 요 최근 여유가 생기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던 점인데, 하연이 또한 아직은 꽃다운 여고생. 곰곰이 생각해 보면 거의 아저씨뻘인 남정네랑 반지하 단칸방에서 사는 게 즐거울 리 없었다.
이런 부분에선 또 눈치 빠른 나. 괜찮다는 하연이의 만류를 뿌리친 채 한적한 카페 테라스를 점거하고 있는 데에는 바로 이런 이유가 있었다.
'나중에 따로 방 하나 잡아줘야겠다.'
보호자 자격으로 동거하고 있는 이상 너무 먼 곳은 안 되겠지만.
실제로 지금 이 카페만 해도 걸어서 3분, 축지까지 동원하면 1초 내로 오갈 수 있는 거리였다.섣불리 자리를 비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실제로 이렇게 밖으로 나와 있는 지금도 하연이의 마력을 감지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움직이고 있었고.
이렇게 말하고 보니 꼭 스토커같기도 한데, 아무튼.
그러나.
지금 내가 여기까지 나와 있는 건 그 때문이 아니었다.
이번 일로 내가 손을 써야 할 만한 부분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나, 마무리지어야 할 일은 아직 남아 있었다.
즉?
때 아닌 학부모 면담, 그 마무리다.
딸랑, 문짝에 달린 풍경이 영롱한 울음을 토했다. 딱히 돌아설 필요도 없었다. 마력을 갈무리하고 있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 감응 능력을 피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왔냐?"
바로 며칠 전, 제 여동생의 소식을 듣고 학교까지 찾아온 팔불출 학부모.
혹은, 이 시대에 있어 가장 유명한 국회의원.
다른 이름으로는, 인류 최강의 헌터.
그리고 내게 있어선, 얼마 전 제 여동생을 보며 질질 짠 이상한 새끼.
나를 지금 이 자리까지 불러낸 장본인이 문지방을 넘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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