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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5화 (25/371)

〈 25화 〉 이변

* * *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공교롭게도, 그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여기에 없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완벽히 파악하고 있는 이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심상치 않은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정도로, 눈 앞에 내려앉은 존재는 압도적이었다.

우두둑, 섬뜩하기 그지없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에 찬 비명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일격.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냥할 수 있느니 없느니 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게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괴물은 너무나도 손쉽게 허둥지둥 뛰쳐나온 터주의 머리통을 물어 부쉈다.

비현실이 일상이 된 이 시대에서조차 낯설기 그지없는, 순수한 폭력.

도대체 언제 다리가 풀린 건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갑자기 일어난 지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갑작스런 흔들림에, 혹여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주변을 둘러보길 잠시. 마력을 갈무리하던 그녀의 시야에 잡힌 건 마치 해일처럼 솟구치던 몬스터들의 무리였다.

마치 게이트 안의 모든 몬스터들이 몰려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압도적인 물량. 한순간이나마 머리가 새하얗게 질려버리고 말 정도로, 수평선을 가득 채운 몬스터들의 모습은 실로 장관이라 할 수 있었다.

그토록 압도적인 풍경이 붕괴하기까지, 실로 1초 남짓.

애시당초, 저토록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들이 한데 움직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만일 자신들을 공격하기 위함이었다 한다면, 어째서 모습도 숨기지 않은 채 저토록 노골적으로 발소리를 울리며 다가오는 것일까.

수평선 너머로부터 갑작스레 솟아오른 짐승의 모습은, 그에 대해 주어질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인 해답이었다.

한 번 손발을 휘두를 때마다 몬스터들로 이루어진 무리에 구멍이 생긴다. 한 번 꼬리를 휘두를 때마다 수평선에 금이 가며 벌판이 드러난다.

이미 제압된 게이트라 하나, 자신들의 둥우리에서 도망쳐야 하는 기분은 어떠할까.

공교롭게도, 그녀에겐 이에 대해 대답할 수 있을 법한 지식이 없었다.

단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깨달았다.

어째서 담임은 그들에게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설파하였는가.

저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무리 그녀라 해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은가.

충분한 힘. 단련된 능력. 축적된 경험. 헌터로서의 지위…….

저토록 압도적인 폭력 앞에서, 그딴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얄궂게도, 그녀를 가르친 담임의 의도와는 달리 가장 먼저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마는 자신이 있었다. 동시에 이해했다. 어째서 두 번의 대침공을 겪었다는 이들이, 언젠가 다시금 몬스터들의 침공이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사실로부터 애써 눈을 돌린 채 평화의 시대를 찬미하고 있는가.

눈 앞에 나타난 포학을 보며 그녀는 이를 체감했고, 그렇기에 일찍이 그녀와 같은 상황에 처했던 선구자들이 그러했던 것과 같이 자연스레 떠오른 의문을 입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저건 무엇인가.

저 생물의 모습을 한 폭력 앞에서, 사람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고작해야 20년. 벌써부터 20년. 아직 사람들이 게이트 너머에서 찾아온 불친절한 이웃들의 모습에 익숙해지지 못했을 적, 수도 없이 떠올렸던 질문이 경종을 울린다.

동시에.

"아직 늦진 않았군."

깨닫는다.

고작해야 20년. 벌써부터 20년.

첫 번째 게이트가 발생해, 두 번의 대침공을 겪은 인류가 어떻게 아직까지 멸망하지 않을 수 있었는가.

저토록 지독하기 짝이 없는 괴물들을 상대로, 인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에 대한 대답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래.

괴물 잡는 사냥꾼Hunter이다.

*

다행스럽게도, 어찌저찌 시간엔 맞출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 보고 있었던 영상을 토대로 계집애들을 찾아내는 건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여하간, 지나칠 정도로 소란스러웠으니까. 문제는, 내가 도착할 때까지 계집애들이 버틸 수 있느냐는 점이었지만…… 아무래도 그 또한 몬스터 제군들의 적극적인 협력 덕택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던 듯싶다.

역시 사람은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 이거 봐, 매일같이 찾아와서 놀아 주니까 이 녀석들도 은혜를 갚잖아. 그렇지?

되지도 않는 농담을 주워섬기며, 나는 아직까지 주저앉아 있는 둘의 모습을 슬쩍 확인했다.

사실 그렇게 할 것까지도 없었다. 멍하니 풀린 눈동자. 거기에, 제어도 되지 않은 상태로 넘실넘실 새어나오는 마력. 어딜 어떻게 봐도, 둘 다 이 자리에서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소위 말하는 피어Fear다.

문자 그대로, 고위의 몬스터가 내뿜는 포효. 이는 사람의 몸을 경직시키고 마력의 제어조차 불가능하게 만든다. 무언가 주술적인 처리가 되어 있기 때문은 아니고, 일반인이 맹수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몸이 경직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생태계에서 포식자의 위치에 있는 존재의 울음소리는, 그것만으로도 피식자들의 얼을 빼 놓는 것이다.

개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드래곤 피어. 다시 말해 용의 안광이다. 용이란 무릇 몬스터들을 포함한 생태계에서조차 정점에 위치하는 생물. 그렇기에, 모든 용종은 스스로의 기백만으로도 다른 생물체들을 무릎꿇릴 수 있는 힘을 지닌다.

괜히 수많은 설화 속 임금님들이 용의 둥지를 공략하기 위해 소수 정예만을 파견하는 게 아니다. 상대가 용이라면, 잘 훈련된 군세 따위는 의미가 없다. 용의 앞에서도 망설임 없이 움직일 수 있는 건 용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강자들 뿐. 덩치만 큰 군대 따윈 어디까지나 용의 한 끼 식사에 지나지 않는 법이다.

요컨대, 지금 이 자리에서 움직일 수 있는 건 오로지 나 혼자 뿐이라는 소리다.

딱딱, 가볍게 둘 앞에서 손가락을 튕긴다. 그에 맞추어 움직이는 시선. 허나 아무래도 정신을 차리기까진 시간이 좀 걸리지 싶었다.

"선생님……?"

"그래. 좀 쉬고 있어라."

적당한 대답과 함께 어깨 위로 걸친 코트를 벗어 그녀들에게 건넸다. 패션 아이템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겉보기와는 달리, 하나하나가 진은이나 현철 등 전설 속의 광물들을 풀어 짠 물건이다. 직접적인 공격이라면 모를까, 주변에 튀는 여파 정도는 어떻게 막아줄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할꼬."

문제는 저 새끼다.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녀석 또한 곧바로 달려들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신을 눈 앞에 두고도 멀쩡히 움직이는 사냥꾼을 향해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포악하게 몬스터들을 찢어발기던 놈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덕분에 나 또한 충분히 녀석을 관찰할 수 있었다.

황소마냥 굳건한 다리. 채찍처럼 두터운 꼬리. 그리고 맹수의 얼굴을 일그러뜨린 듯한 주둥아리와 쌍판떼기. 거기에 더해, 그 위로 돋아난 뿔은 구부러진 모습조차 실로 우악스럽다.

허나, 그 이상으로 압도적인 건 역시 등 뒤에 돋아난 날개였다.

저토록 큼지막한 몸뚱이조차 능히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살덩이가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이리저리 뒤틀리는 건 징그럽다 못해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발광하는 거미의 다리마냥 달그락거리는 피막. 제 딴에는 날개를 갈무리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봐도 내겐 역겨운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덕택에 정체를 추론하기는 쉬웠다.

'악마인가.'

성좌들과 마찬가지로, 몬스터들 또한 문화권에 따라 그 성질이 다르다. 같은 악마라 해도 동양이라면 소위 말하는 수라나 나찰같은 부류가 대부분이며, 서양의 악마라면 기독교적인 풍조가 강하기 마련.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눈 앞의 몬스터는 중동 부근에 가까웠다. 두 발로 걷는 황소. 당장에 떠오르는 건 성경 등으로도 유명한 몰록 정도였으니까.

중동의 악마들이 가진 특징은, 다른 그 무엇보다도 다채로운 성능에 있다. 강인한 육체에 더불어, 특이한 힘을 지닌 안광. 거기에 불숨을 토하거나 한여름에 성에를 끼게 하는 등, 다소 전형적이면서도 강력한 능력들이다.

한 마디로, 대책 없이 부딪히기엔 상당히 귀찮다는 건데.

축성을 받은 성수라도 있다면 다소 편해지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런 걸로 불평을 토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

하지만.

'도대체 뭐야?'

아무리 나라 해도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지나칠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처음부터 느껴지던 위화감은, 이제 와선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제 몸을 불린 상태였다. 중동이라니? 이 대한민국 땅에 어째서? 그 여신처럼 터를 옮기기라도 했단 말인가?

눈 앞에서 느껴지는 기백 또한 마찬가지였다. 직접 마주치기 전에도 A랭크에 가까웠던 기백은 이미 그조차 넘어섰다. 못해도 A+, 잘하면 그 이상. 적어도 그 날 골목길에서 마주쳤던 도마뱀 세 마리보다는 강하다.

문제는 어쩌다가 이런 새끼가 E랭크 게이트 안에서 튀어나오게 된 건지 전혀 짐작이 가질 않는다는 점이다.

게이트의 랭크는 어디까지나 게이트가 잉태할 수 있는 가장 강한 몬스터, 다시 말해 터주를 기준으로 매겨진다. 이 게이트에선 최대 이만큼이나 강한 몬스터가 튀어나올 수도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그런 의미다. 그리고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이 게이트는 고작해야 E랭크에 지나지 않았다.

고작해야 하루만에 랭크가 오르기라도 했단 말인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수많은 헌터들의 목숨을 담보 삼아 게이트를 공략하는 이유 또한 바로 거기에 있었으니까. 게이트가 제 안에 담긴 영역을 넓히면 넓힐수록,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마력의 양 또한 늘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방출되는 마력을 소비해, 게이트는 몬스터를 잉태한다. 그리고 이렇게 탄생한 몬스터는 게이트를 공략하려는 헌터들을 영격하는 창이자 방패가 된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번 시간을 통해 게이트는 한층 더 확장을 거듭한다……. 빌어먹을 악순환이다.

허나, 당장 내가 보기에 이만한 놈을 잉태할 수 있을 정도로 농밀한 마력의 흐름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실제로 게이트의 모습 또한 며칠 전부터 죽돌이 짓을 했던 내가 보건대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고.

한국의 E랭크 게이트에서 나타난, A랭크 이상의 중동 몬스터.

삼류 영화에서도 안 나올 조합이다.

'뭐, 그건 그거고.'

거기까지 생각하던 나는 강제로 사고를 차단했다.

결국 이에 대해 적당한 이유를 찾아내야 할 건 헌터인 내가 아니라 잘나신 연구자들이다. 막말로 상대는 게이트. 어쩌다가 갑자기 랭크에 맞지 않는 몬스터가 튀어나왔을 뿐입니다, 라고 말해도 그런갑다 해야 하는 실정이니.

즉, 내가 해야 할 일은 어디까지나 사태 해결.

다시 말해, 눈 앞의 괴물 새끼가 어디에서 온 건지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건지 파악하는 게 아니라 놈을 찢어죽이고 그 두개골로 술잔을 만드는 일이었다.

천천히 상황을 점검한다. 당장에 녀석을 상대할 수 있을 만한 전력은 나 하나 뿐. 이예은도 자하연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설령 움직일 수 있다 해도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게 뻔했다.

밖으로 나갈 수 있다 해도 이는 마찬가지다. 이 새끼를 상대로 도움이 될 만한 건 교사진 중에서도 최승준 정도. 게다가, 놈은 지금 바깥의 혼란을 제어하는 데에 심력을 쏟고 있다. 거기에 몬스터까지 추가로 상대하라는 건 아무리 그래도 너무 상도덕이 없는 일이겠지.

심지어, 놈의 능력은 어디까지나 다수의 몬스터들을 쓸어버리는 데에 특화되어 있다. 1대 1도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저 괴물 새끼가 나를 뚫고 나갈 수 있다면…… 아마도 힘들겠지.

요컨대, 내가 뚫리면 전부 죽는다.

지금 내 뒤에 쭈그려 앉은 계집애 두 명은 물론이요, 아카데미에 속한 전원이.

현 상황에 있어, 최전선이자 동시에 최종 방위선.

그게 바로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었다.

"씨박, 현역 시절 생각나네."

거기까지 알았으면 됐다.

확실히 상황은 최악이다. 달리 방어구는 없음. 지금 입고 있는 정장 또한 외투와 마찬가지로 상당한 방어구이긴 했지만, 대 몬스터 전이 으레 그렇듯이 마음 놓을 정도는 못 된다. 화력 지원도 없고, 적의 데이터 또한 부재. 당연히 대책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살면서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을 만큼 절망적인 상황이냐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요컨대 내가 어찌저찌 잘만 하면 수습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거 아니야.

"──────!!!!"

악마가 포효를 내지른다. 짐승들 특유의 하울링. 스스로를 분기시키고, 적을 윽박지르기 위한 노성이 터져 나왔다.

하긴, 거지같은 건 저 놈 또한 마찬가지겠지. 여하간, 제 딴에는 나름대로 평화롭게 사람들을 학살하고 싶었을 터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저 포효 또한 고작해야 사람 좀 죽이고 싶을 뿐인데 왜 방해하려는 거냐고 부르짖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도 그래, 이 새끼야."

괜찮아. 나도 이해한다. 왜냐하면 나도 아무 생각 없이 너희만 죽이고 싶거든.

어차피 지금 당장 준비할 수 있는 일도 더 없다. 상대는 악마. 제대로 된 습성이나 패턴은 불명. 대략 A+랭크 이상 가는 괴물에, 성수도 없다. 퇴각할 수는 있겠지만, 그 경우 아카데미는 사실상 전멸……. 도저히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는 아니다.

도망도 안 돼, 함정도 준비 못 했어.

허면, 어차피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딱 하나 뿐이지 않은가?

전면전.

자, 결론은 나왔다.

그럼 슬슬 시작해야겠지.

수렵 개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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