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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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강단 위에 서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난생 처음 보는 게이트를 앞두고 위축된 애들을 상대로 기운을 북돋아주는 등 이리저리 쏘다니고 있었지만, 그조차도 게이트 앞에 선 실습 인솔교사들에게 맡긴 지금은 달리 할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먼저 들어가보고 싶은 기분이기도 했다.요 며칠동안 줄곧 몬스터들을 썰어댄 탓에 지금은 조금 나은 편이었지만,게이트를 볼 때마다 오한 · 발한 · 어지럼증 삼종 세트가 일어나는 건 여전히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내가 운동장에 남아 있는 이유는 단 하나.
헌터 아카데미의 교장이자 지금은 내 상사라 할 수 있는 최승준의 부탁 때문이었다.
"몬스터 잡는덴 네가 나보다 낫잖냐."
딱히 틀린 말도 아니긴 했고.
물론 최승준이 남아있는 시점에서 이미 과잉 전력이었지만, 애시당초 게이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주장한 건 나였다. 때문에, 다소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자리에 남아있던 나는 게이트 너머로 들락날락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아주 인기인이신데."
그에 비해, 최승준은 달랐다.
뭐가 그리도 여유가 넘치는지, 말로만 들었던 S랭크 교장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에 쑥덕거리고 있는 학생들을 향해 손까지 흔들어줄 정도로 태연자약하기 그지없는 모습.
나도 모르게 딴죽을 올리고 말았으나, 정작 당사자인 최승준은피식 하고 입가에 웃음을 머금을 뿐이었다.
"네가 할 말이냐?"
그리 말하는 녀석의 반대쪽 손엔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단, 거기에 비치는 건 세계 각국이 자신들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죽을똥 살똥 유지하고 있는 인터넷 사이트 따위가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날이 선 어조로 설전을 주고받던 이예은과 자하연의 모습이 화면 위로 뚜렷하게 잡혔다.
아무리 최승준이라 한들 내부 상황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게이트 너머에 도사린 몬스터들만을 따로 골라 쳐죽일 수는 없다. 그렇기에, 이번 실습에 앞서 최승준은 자신의 핸드폰과 게이트 내부를 미리 연동시켜 둔 것이었다.
문제는 정작 그렇게 준비한 시설이 날 놀리는 데에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고.
"이야……. 방금 들었나, 박 선생? 자하연 학생이 그러더군. 선생님한테 반말하지 말라고. 그런 말 들으실 분 아니시라는데?"
"씨발아."
아니, 하연아. 그렇게 생각해준다니 정말 고맙다. 고마운데, 제발 그만두면 안 되겠니?오빠 죽을 맛이다 지금…….
이 새끼 어떻게 갑질 관련으로 못 찌르나? 물론 아무리 실습이라 하나 게이트가 상대인 이상 필요한 행동이었다는 건 틀림없고, 이미 학생들에게 따로 고지까지 한 시점에서 이런 걸로 뭐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옆에서 이죽대는 꼴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그럼 넌 여기 남아 있던가. 아니면 혼자 나가도 상관없고. 나 혼자 잡고 올 테니까."]
["너 미쳤어?"]
그러는 와중에도 화면 너머로부터 들려오는 갈등은 한층 더 첨예해지고 있었다. 저런 저런, 아무리 그래도 저래서야. 나도 모르게 쯧 하고 혀를 차고 있자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실실 쪼개고 있던 최승준 또한 어깨를 으쓱할 수밖에 없었다.
"해서?"
"뭐가?"
"저 둘, 어떻게 생각해? 저번에 이준구 여동생이랑 내기도 했다면서."
아아, 그 얘긴가.
그 말에 잠시 턱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사실, 그렇게 할 것까지도 없었다. 지금 저 모습만 봐도 대답은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불합격이지."
다른 건 몰라도, 상황 파악이 너무 물러터졌다.
아무리 실습이라지만 고작해야 두 명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추가로 나뉘자는 의견을 내질 않나, 이번엔 터주를 잡으러 가자고 하질 않나.
어느 쪽이든, 저런 태도로 게이트에 발을 들였다간 그 날로 줄초상이나 치를 게 뻔한 일.
하물며 상대는 안 그래도 파티를 찢어놓고자 갖은 수를 쓰는 몬스터들이다. 그런 몬스터들이 벌떼마냥 도사린 게이트 속에서, 달리 무언가 시도하기도 전에 멋대로 내분을 일으키다니.
십중팔구 자충수, 심하면 자멸이다.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닐 테고."
"설마."
내가 이번 실습을 앞두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 또한 바로 거기에 있었다.
자각하고 있을진 모르겠지만, 이예은에겐 다소 지나칠 정도로 독단적인 면모가 있었다. 거기에 어느 정도 우수하기까지 한 만큼, 최고 성적을 노리기 위해 터주 사냥을 시도하리라는 것쯤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사실, 일시적으로 우두머리를 두는 건 헌터들 사이에서도 비교적 흔한 일이다.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책임을 지고 다른 이들을 지휘할 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게이트 너머는 십중팔구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기기 딱 좋은 구조였다.
하지만 이예은은 그런 문제로 다른 아이들과 상의를 할 만한 성격이 아니었고, 때문에 설령 공략에 나선다 한들 이는 전적으로 이예은 본인의 주장에 의한 것일 공산이 컸다.
상의하지 않고 멋대로 우두머리를 자처한 시점에서 일단 1점 감점.
거기에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지금이야 하연이가 어느 정도 제 힘을 발휘하곤 있지만, 본질적으론 어디까지나 벼락치기에 지나지 않는다. 터주란 무릇 게이트의 정점에 군림하는 절대강자. 이제 막 헌터가 되었을 뿐인 하연이의 능력은 먹히지 않다 못해 도리어 튕겨져나갈 가능성조차 있었다.
어쩌면 예상보다 쉽게 몬스터들을 사냥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자신감이 붙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타 몬스터들과 터주 사이에는 최소 한 단계 이상의 격차가 있었다. 아니, 하연이의 능력을 고려하면 최소 두 단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전제로 전략을 입안한 시점에서, 공략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전력 산정에 오판이 있었던 시점에서 추가로 1점 감점.
무엇보다도,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하연이는 그런 그녀의 억척스런 주장에 동의하지도 않았다. 그 시점에서 단념하면 좋았을 것을, 억지로 제 의견을 강행하다 못해 파티를 찢어놓으려 하는 그 모습이란!
타당한 반대 의견 묵살. 파티 내의 내분 초래. 이 시점에서 추가로 1점씩, 도합 2점 감점.
이래서야 좋은 평가를 주고 싶어도 도저히 줄 수 없을 정도다. 마지막 감점 사항이야 우연히 하연이와 한 조가 되었을 뿐, 다른 아이가 상대였다면 조금 달랐을 수도 있노라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러면 추가 감점이다.'
애초에 이 실습의 저의부터 그렇지 않은가. 누차 말했다시피, 헌터인 이상 언젠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이들과 파티를 짜야 할 때도 오는 법. 이번 수업은 이를 미리 체험하기 위한 시간이기도 했다. 이번엔 어디까지나 체험이라 그랬다, 실전에선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리 말할 수야 있겠지만, 같은 반 학생을 상대로도 호흡 하나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녀석이 난생 처음 만나는 헌터와 함께 짝을 이룰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지금까지는 아슬아슬하게 급제점. 하지만 만일 저러다가 정말로 둘이 갈라서거나터주 공략을 강행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낙제점을 면할 수 없겠지.
말하자면, 이예은이 그런 내기를 걸었던 시점에서 그녀의 패배는 정해져 있었던 셈이다.
그런 내 설명을 들으며, 감탄한 듯 고개를 주억거리던 최승준이 문득 입을 열었다.
"여고생 성격 분석이라니, 생각 이상으로 기분 나쁘다 너. 스토커냐?"
"아니, 씹새끼야~"
이 새끼가 진짜,내 넘치는 교육열에 감탄하지는 못할 망정.
뭐, 어느 쪽이든 거둬가는 건 있을 거다. 이예은도 이번 실습을 통해 자신의 독선적인 면모를 개선할 수만 있다면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을 테고, 하연이 또한 이러니저러니 해도 충분한 경험이 되었겠지. 다른 애들이야 어쨌든, 이제 막 헌터가 된 그녀에게 있어 이런 시간은 일분 일초가 소중하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머릿속으론 이런저런 교육 계획을 가다듬던 중.
다음 순간, 쿵 하는 소리가 지축을 울렸다.
땅이 뒤흔들렸다. 가벼운 흔들거림이 발밑을 부산스레 건들고, 그에 맞추어 운동장으로부터 흙먼지가 넘실거렸다. 동시에, 때 아닌 모래바람을 덮어쓴 학생들로부터 어어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허나, 딱 거기까지였다. 그 뒤로도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때문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지진이라도 났나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학생들이나 여타 교사들 또한 윽박을 지르며 소란을 가라앉힐 뿐 제대로 대처하는 모습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사실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정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처하라느니 뭐라느니 해도 이래서야 생색내기가 될 뿐이겠지.
그렇기에.
당장 반응할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단 두 명.
다시 말해, 나와 최승준 뿐이었다.
"선생들! 학생들 진정시키고 대기. 무슨 일인지 파악해! 주변 경계하고, 뭐라도 수상한 거 있으면 찾아! 방심하지 말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앉아 있던 의자를 박차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쪽은 도저히 그럴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최승준 쪽이었다. 교장이라는 직위와 S랭크 헌터라는 실적, 양 쪽을 이용해 벽력처럼 내린 호령이 교사들을 질타한다.
순간적이었지만 적절한 판단이었다. 단지, 지시하는 내용이 썩 애매한게 아무래도 녀석 또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지는 못한 듯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반응할 수 있었던 시점에서 우수하다 말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이 또한 아마도 녀석이 타고난 재능 중 하나…… 단순한 직감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S랭크 헌터로서 수도 없이 다양한 사선을 넘으며 단련된 경험 덕택일 테지.
나는 아니다.
이 순간, 나를 충동질하기 시작한 건 내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잘나신 재능이나 경험론 따위가 아니었다. 시야가 핑 하고 돌면서, 전신에 땀이 비 오듯 흐르기 시작한다. 을씨년스러운 3월의 봄바람이 목덜미를 어루만지는 게 지나칠 정도로 생생하다. 그 정도로, 지금 나를 덮치고 있는 이 감각은 실로 오싹하기 그지없었다.
오한 · 발한 · 어지럼증.
거기까지 판단이 섰다면, 더 이상 망설일 필요도 없다.
"그리고 박우찬 헌터는……."
자연스레 나를 교사 대신 헌터라 칭하며 권위를 실어주려던 녀석의 말이 끊겼다. 어느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내가 그 몸을 날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 판단은 끝났다. 이제 와서 하나하나 의견을 나누고 있을 시간 따윈 없다. 녀석이 가장 먼저 선생들을 호명한 순간, 대략적인 역할 분담도 끝났다.
즉, 녀석이 밖.
그리고 내가 안이다.
"만약을 대비해 교전 준비!"
과연 녀석 또한 삽시간에 상황 파악이 끝난 모양인지, 뒤로는 그런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게 어렴풋이 들렸다. 개중에서는 어어 하고 내 모습을 보며 진정하라는 듯 손을 뻗는 동료 교사들의 모습 또한 있었지만, 녀석의 제지에 다들 갈 길을 잃은 손을 허공에 허우적대며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하는 게 고작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말릴 필요조차 없긴 했다.
축지.
하늘과 대지를 타고 흐르는 마력을 문자 그대로 '밟아 넘는' 내게 손을 댈 수 있는 이들은 적어도 교사진 중엔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그 쯤 되자 과연 학생들 사이에서도 웅성거림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드디어 지금 이 상황이 단순한 실습 따위가 아닌, 실제 상황임을 깨달은 듯했다.
다행스럽게도, 동요는 없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들은 사회 각 계층에서 끌어모은 차세대 헌터들. 언제든지 이런 일에 대응할 수 있도록 훈련받은 몸이었다.
물론 실제로 이런 상황과 맞닥뜨리는 건 처음이었던 만큼 어쩔 수 없는 어색함이 배어 나오고 있긴 했다. 하지만 그 정도라면 문제는 없다. 우왕좌왕하며 이 쪽의 발목을 잡지 않는 한, 녀석들에게 피해가 가도록 내버려 둘 생각은 없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말할 만한 자신이 있었다.
그러므로.
최승준 내지는 교사진의 통제에 의해 학생들 또한 침착함을 되찾아가고 있는 지금, 문제가 되는 건 단 하나.
하필이면 게이트 너머에 잔류하고 있는 자하연과 이예은 뿐이다.
결론은 나왔다.
그렇다면 해야 할 행동 또한 대략 감이 잡힌다.
여기까지 대략 2초 남짓.잠깐의 사고를 통해 스스로를 헌터 아카데미의 교사에서 사냥꾼으로 전환하며,아직까지도 주둥이를 쩌억 벌리고 있는 게이트를 향해 나는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다.
……전신을 간질이는 이물감은 도저히 익숙해 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요 며칠 사이 몬스터들을 박살내며 간신히 진정시킨 보람도 없이, 가슴 속이 불안한 예감으로 술렁대는 게 느껴졌다.
알고 있다.
이 감각은 모종의 재능이라 칭할 만한 부류가 아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알레르기나 마찬가지. 그리고 땅콩 알레르기인 사람이 섭취한 땅콩의 양에 따라 단순히 피부가 달아오르는 선에서 끝나거나, 그렇지 않으면 발작을 일으키는 것처럼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바로 어제, 수만 마리나 되는 몬스터들을 쳐죽였다기엔 지나칠 정도로 부산을 떠는 감각.
도저히 E랭크 게이트에서 느껴질 만한 감각이 아니다.
하물며, 그 감각은 시시각각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제 줄창 도살했던 E랭크 수준이었던 게, 어느 순간 D랭크. 그리고 C랭크, B랭크, A랭크──.
누군가는 믿기지 않는 일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이론 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떠들어댈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길어도 사반세기조차 되지 못한 마력 공학 이론 따위보단 이 빌어먹을 감각을 신뢰했다. 왜냐하면 이 빌어쳐먹을 새끼는 내가 제 말을 신뢰할 때까지 내 신경줄을 가지고 현악기라도 뜯는 것마냥 온갖 지랄 발광을 부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나는 다른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헌터 아카데미 지하에 비치된 E랭크 게이트에서, A랭크 이상의 몬스터가 출몰했다.
심지어 그 감각은, 아직까지도 시시각각 강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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