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실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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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 시간에서 점수를 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그렇게 고민할 만한 문제도 아니었다. 여하간, 이 정도 게이트라면 시험할 수 있는 내용도 한정적일 수밖에 없으니. 보나마나 게이트 안에서 침착함을 잃지 않는가, 혹은 몬스터를 상대함에 있어 부족함이 있는가 살필 요량일 게 뻔했다.
그리고 그 뿐이라면, 이예은은 지금 당장에라도 합격점을 받을 자신이 있었다.
여하간 정말로 사생결단을 벌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 당장 게이트를 공략하라던가 하는 조건이 내려온다면 과연 그녀 또한 곤란하겠지만, 상대는 어디까지나 충분히 솎아낸 몬스터. 이들을 상대로 대처하는 정도라면 이번 실습 시간이 끝날 때까지도 버틸 자신이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녀에게 부과된 조건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가 박우찬과 한 내기 때문이었다.
박우찬이 내건 조건은 실로 모호했다. 이번 실습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더 이상 그런 말은 하지 않으마. 아니, 오히려 이 쪽에서 사과를 할 수도 있다. 원한다면 네가 그런 식으로 싸울 수 있도록 교습도 해 주겠다…….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적어도 그녀에겐 그랬다. 여하간,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단 일합. 뭐가 뭔지도 모르는 사이, 그 정필연을 일격에 제압한 입학식 당시 박우찬의 모습을.
때문에,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너무나도 대단한 오라비를 둔 덕분일까? 어릴 적부터 수많은 헌터들을 보아 온 그녀의 심미안은, 저 후줄그레한 담임 교사가 여태까지 그녀가 보았던 모든 헌터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임을 여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허나, 오히려 그렇기에 불안한 점도 있었다. 틀림없이, 이예은은 우수한 헌터다. 동년배 중에선 정필연과 함께 차세대 헌터 필두라 불리는 그 능력은 겉멋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이기에 다른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남학생들에게 정필연이 있다면, 여학생들 중에는 이예은이 있다.
그렇게 일컬어지곤 했지만, 사실 그녀가 정필연을 앞선 적은 단 한 번도 없음을.
조건은 대등했다. 아니, 그 이상으로 유리했다. 여하간 상대는 그저 그런 검도장 출신. 그에 비해, 어렸을 적부터 영웅인 오빠를 뒷배로 둔 자신은 헌터가 되기에 그 누구보다도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필연을 이기진 못했다.
사실, 그녀가 근접전을 소홀히 한 데에는 정필연의 영향 또한 없잖아 있었다. 정필연을 상대로 도저히 가망이 보이지 않는 백병전에 치중하는 대신, 자신의 풍부한 능력을 살려 다른 이들을 압박한다…….
당시 그녀를 지적하기 위해 박우찬이 꺼냈던 말은, 어떤 의미로는 더할 나위 없이 정확했다. 잔혹할 정도로. 말하자면, 그는 그녀의 오라비는 물론이요 그녀가 정필연에게 품고 있던 열등감까지 한번에 싸잡아 겨냥한 셈이었다.
동시에, 그러니만큼 더더욱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상대는 그 정필연조차 단박에 내동댕이친 박우찬이다. 그런 그가 보기에, 이번 실습 동안 적당히 버티는 건 '좋은 성적'이라 말할 수 있을까?
절대 그럴 리 없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정도는 정필연도 할 수 있다. 반대로, 이번 실습이 끝난 뒤 그녀가 정필연 대신 전위를 맡아야 할 이유가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이예은으로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조건 자체가 애매모호한 만큼 억지를 부리는 건 가능하겠지만, 이예은 본인부터가 절대로 납득할 수 없으리라.
"터주를 잡아야겠어."
이예은의 발언은 바로 그런 관점으로부터 기인한다.
터주. 다시 말해, 게이트의 우두머리. 마력을 뿜어대며 수많은 몬스터들을 방사하는 게이트가 직접 지정한, 해당 게이트 내의 최강종이다. 여타 몬스터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마력을 품고 있는 터주들은, 말하자면 게이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존재였다. 몬스터 측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의 지휘관이요, 헌터들 측에서 보자면 게이트의 난이도를 끌어올리는 주범인 셈이니.
그런 터주를 사냥한다면, 아무리 박우찬이라 해도 그녀의 성적에 흠을 잡을 수 없으리라. 설령 정필연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한 게이트에 터주는 한 마리. 거기에 정필연은 아직 실습을 치르지 않았다. 요컨대, 지금 그녀가 터주를 사냥할 수 있다면 이번 실습의 최고 성적은 다름 아닌 그녀가 되리라는 계산이었다.
실제로 여태까지 다른 애들 또한 터주를 사냥하지 못했다. 아니, 처음 들어와 보는 게이트 안의 풍경에 넋이 나간 애들이 대다수다. 오히려 충분히 사냥할 수 있을 몬스터를 앞에 두고도 당황해 실수를 연발하는 이들까지 나올 정도니, 만일 터주를 잡을 수 있다면 내기는 이미 따놓은 당상이나 다름없었다.
"왜?"
문제는, 이번 실습이 2인 1조였다는 점이다.
여하간, 터주를 사냥해야 하는 건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이예은 본인의 사정이다. 다른 애들에게는 이미 충분하고도 남을 성적을 거두었고, 그조차도 사실 절실하지는 않을 상황. 이를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고가 필요할 터였다.
사실, 다른 애들과 짝이 됐다면 그 정도로 신경을 쓸 일도 아니었으리라. 예를 들어 류지희라면 그녀가 정필연에게 설욕하고자 함을 짐작해주었을 테고, 설령 다른 애들이라 해도 이에 크게 토를 달진 않을 터였다.
영웅의 여동생. 동시에, 차세대 헌터라 주목받는 유망주.
동년배 헌터 지망생들에게 있어, 이예은은 일종의 카리스마적인 존재였으니까.
문제는, 하필이면 상대가 자하연이었다는 점이다.
이예은에게 있어, 자하연은 다소 껄끄러운 상대였다. 여하간 첫 수업부터 자신을 제치고 여학생 중 1위를 기록한 이름이니만큼 껄끄럽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이렇게 한 조를 짜고 나서야 알 수 있는 사실 또한 있었다.
아마도 그런 일이 없었다 한들, 이예은은 자하연을 껄끄러워했을 거라고.
실력이 부족한 건 아니다. 오히려 어째서 여태까지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건지 신경이 쓰일 정도다. 아마도 어지간히 스승의 실력이 뛰어났던 거겠지. 적어도 그녀가 보기에, 자하연은 단순한 체력은 물론이요 마음가짐이나 능력의 활용성 또한 이미 합격점 수준이었다.
필시 선생님들은여태까지 이름 한 번 들어보지 못한 아이와 자신을 짝지어 줄 생각이었을 테지만, 솔직히 말해 반칙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일단 침착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당황하지 않는다. 난생 처음 보는 몬스터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란 이예은이었지만, 그러나 자하연은 일말의 동요 없이 자신의 능력으로 몬스터를 약화시키고 이예은에게 거들어주기를 청할 정도였다.
능력 또한 우수하다. 저주. 처음 들었을 땐 어떤 능력인지 잘 감이 오지 않았지만, 거의 자신의 염력과 비슷할 정도로 만능이 아닌가 싶은 능력이었다. 단순한 근력이나 민첩성은 물론이요, 반응 속도나 내구력마저 저하시키는 종합 선물 세트. 거기에, 이를 적절히 다루어 피아가 뒤섞인 난전 도중에도 정확히 적들을 붙들어 놓는 자하연의 실력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자신보단 못해도, 또래 평균보단 우수하다.
그게 자하연에 대해 이예은이 내릴 수 있는 평가였다.
어쩌면 터주를 잡자는 자신의 발언 또한 그녀를 의식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뒤늦게나마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이예은은 찬찬히 그 시선을 들어올렸다.
물론, 아군이 우수하다는 이유로 불편하다 말하는 건 아니다. 단지, 그녀가 보기에 자하연은…… 무언가 동떨어진 면이 있었다.
무엇에 대해?
그렇게 물으면 이예은 또한 망설일 수밖에 없겠지.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답하기 멋쩍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예은이 보기에, 자하연은 마치 세속에서 동떨어진 듯했다.
나쁘지 않은 실력. 거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이름 하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까지. 어쩌면 이 두 가지 사실이 뒤섞여 필요 이상으로 자하연의 그림자를 의식하게 만드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이예은이 카리스마적인 존재라고 한다면, 자하연은 미스테리한 존재라고 해야 할까. 적어도 이예은이 보기에, 자하연은 또래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일은 커녕 앞으로 자신의 인생을 결정할 헌터 아카데미에서의 활동조차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것만 같았다.
물론 당사자에게 물으면 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겠지만, 어쨌든.
신선이라기보다는 요정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속세를 벗어나 나래짓하는 나비를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헌터들 중에서도 보기 힘든 외모가 그 위에 이채를 더했다. 일반적으로 사람에게서 나올 수 없다고 일컬어지는 진주빛 눈동자. 그리고 사람은커녕 자연에서 보기 드문 새파란 머리카락…….
어디까지나 그녀가 아닌 그녀의 오라비 때문이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좋든 싫든 그녀의 위광 앞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어렸을 적부터 철저한 교육을 받은 덕택에 이를 악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러한 모습들은 자연스레 그녀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이예은 본인의 재능도 있었다. 헌터로서의 능력은 물론이요, 타고난 외모 또한 마찬가지다. 덕분에, 그녀는 오만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틀림없이 고압적인 성격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때문에, 이예은은 자하연 앞에선 반대로 움츠러드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하연은 기묘할 정도로 이예은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헌터 업계에 발을 담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예은이라는 이름을 이제 막 알았다는 듯이 행동하는 건 예사다. 오히려, 그녀는 이예은은커녕 이준구라는 이름조차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이준구 또한 결국 한 명의 사람이요, 헌터다.
그렇게 말하는 듯한 태도였다.
만일 TV에 나오는 연예인이 상대였다 한들 대범하기 그지없는 태도에 도리어 이예은 쪽에서 속이 탈 정도였다. 어떻게 그렇게 눈치가 없냐고, 그래서 사회 생활이나 할 수 있겠느냐고 윽박지르며 자신의 오빠가 누구인지 하나하나 알려주고 싶은 욕망을 간신히 억누른 날에는 자신이 이렇게 오만한 성격이었나 내심 풀이 죽을 정도였다.
이 기묘한 학우는 그런 사람이었다.
언제나 멍한 듯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선, 정작 그 맹하기 짝이 없는 얼굴과는 달리 누구보다 초연하다. 거기에 누구나 대하기 어려워하는 자신과의 거리감을 성큼 하고 좁힐 정도로 배짱도 있다.
한 번도 상대해 본 적 없는 타입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하연을 대하기 어려웠다.
"딱히 그럴 필요까진 없잖아? 선생님도 그리 말씀하셨고."
그녀의 진주빛 눈동자처럼, 옥이 굴러가는 듯한 소리가 그리 지저귄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실습 체험. 실제 상황처럼 생각하되, 어디까지나 체험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 상황이라 하기엔 고작해야 두 명이서 터주를 공략하자는 발언 자체가 무모하기 짝이 없었고, 체험이라 하기엔 굳이 그래야 할 이유 또한 없었다.
결국 이예은 또한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수긍, 혹은 납득의 표현이었다.
"사실 개인적인 사정이 좀 있거든."
그렇다 해서 빈 손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말하자면, 방금 전 한숨은 그런 뜻이었다. 다소 껄끄럽긴 하지만, 이 애를 설득할 수밖에 없겠구나.
물론 개인적인 사정이라 한들 자하연이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뭔데?"
"응?"
"뭐냐니까, 그 개인적인 사정이."
그런 사정이 있는데, 도와줄래?
그런 의미로 던진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질문을 던지는 그녀의 모습에 이예은은 다시 한 번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저번 한숨이 어쩔 수 없다는 뜻이었다면, 이번엔 아무래도 껄끄럽다는 탄식에 가까웠다.
"있어, 그런 게. 박우찬…… 선생님한테도 말했고."
거짓말은 아니었다. 적어도 이예은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번 실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는 조건으로 내기를 한 이상, 이 쪽이 다소 과감한 수를 쓰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허나, 자하연은 단호하게 말했다.
"거짓말."
"으, 응?"
"선생님이 그러실 리가 없잖아. 다른 것보다 살아남는 게 우선이라는 분이셔. 그런 분께서, 고작해야 두 명으로 터주를 공략하겠다는 말을 허락하셨다고?"
정확했다. 실제로도 그녀의 말을 들은 이예은 또한 정곡을 찔린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순간 이예은의 가슴 속을 간질인 건 자하연의 말 안에 담긴 모종의 확신이었다.
만난 기간이라고는 고작해야 한 달밖에 되지 않은 관계다. 헌데, 저 확신은 뭘까. 아니, 그렇다기보다 저 감정은 뭘까. 박우찬이 그런 말을 할 리가 없다는 확신에 더해, 마치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그녀를 어처구니없이 보는 듯한…….
비웃음?
"그리고."
"……또 뭐야."
"선생님한테 반말하지 마. 그런 말 하실 분도, 들으실 분도 아니셔."
쏘아붙이는 듯한 어조에, 이예은의 눈꼬리가 씰룩 경련했다.
그 순간 그녀의 마음 속에 뛰어든 건 자그마한 당황과 그 이상의 확신이었다. 이런 말을 하긴 뭣하지만, 학생이 담임 교사 호박씨를 까는 건 거의 당연한 일 아닌가. 헌데도 저런 꽉 막힌 소리나 하고 있다니.
아니, 저건 그 이상이다. 단순한 불쾌감. 혹은, 그조차 넘어서는 경고. 방금 전, 자하연이 은연중에 내비친 감정은 틀림없이 개인적인 것이었다.
"어처구니가 없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자신도 모르게 이예은은 그런 말을 하고 말았다. 자하연의 눈썹이 찌푸려지는 게 한 눈에 보일 정도였지만, 이제 와선 신경이 쓰이지도 않았다.
박우찬과 자하연은 아는 사이다. 그것도, 아마 개인적으로.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이예은 또한 내키지 않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어쩌다 둘이 알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거의 도발에 가까운 말을 면전에서 들은 지금, 이예은에게 있어 자하연은 박우찬이 붙여 둔 감시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평소라면 일언지하에 코웃음치고 말 착각이다. 이런 말을 하기는 뭣하지만, 상대는 고작해야 학생. 거기에 이번 시간은 달에 한 번은 있을 실습 체험이다. 고작해야 그런 일에 감시원을 붙일 이유는 또 뭐란 말인가.
굳이 말하자면, 역시 상황이 나빴다.
최근 이예은에겐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정필연을 상대로 내심 패배감을 느끼길 3년. 그렇게 들어온 헌터 아카데미에서, 자신은 손도 발도 못 쓴 정필연을 단박에 제압한 교사를 만났다.
하물며 그 교사가 자신의 담임이라는 행운까지 겹쳤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정작 그 선생이라는 양반까지 나보고 안 어울리니 포기하란다.
심지어 박우찬은 이 기술이 그녀의 오라비인 이준구의 기술이라는 것조차 알고 있었다. 허나, 이미 검증된 성능에도 불구하고 박우찬은 그녀에게 이준구의 기술을 포기하길 거듭 종용했다.
왜?
자신이 이 기술을 쓰기엔 부족해서?
자격이 없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자, 이예은은 무어라고 말하기 힘든 기분에 휩싸이고 말았다. 아직 철없던 시절처럼, 자신과 오빠를 이어주던 연결고리가 부정당한 듯한 기분. 이에 눈을 돌리기 위해 한층 더 연습에 매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는 말하겠지. 고작해야 2주만에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길 바라는 건 너무 성급하다. 하물며 설령 자하연이 박우찬의 지시를 받아 그녀를 감시했다 한들, 딱히 그녀를 방해한 적은 없었노라고.
허나, 평소라면 모를까 지금 당장 이예은이 그런 생각을 떠올리기엔 아무래도 너무 각박한 처지였다.
"됐어."
"뭐?"
"그럼 넌 여기 남아 있던가. 아니면 혼자 나가도 상관없고. 나 혼자 잡고 올 테니까."
"너 미쳤어?"
과연 그런 말을 듣자 자하연 또한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물론 단순한 체험일 뿐이라지만, 그녀가 알고 있는 박우찬의 성격을 고려해 볼 때 고작해야 두 명밖에 없는 상황에서 추가로 나뉘어지는 건 도저히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할 게 뻔했다. 그리고 그 경우, 박우찬과 한 지붕 아래 사는 자하연으로서는 고개도 들지 못할 일이었다…….
아무래도 거기까진 좌시할 수 없다. 그리 생각하며 이예은의 어깨를 붙잡았지만, 다음 순간 이예은이 날카롭게 그녀의 손등을 쳐냈다.
그러면 자하연 또한 물러설 수는 없다. 자연스레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히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날카로운 콧대를 씰룩인다.
양자가 주변에 널린 마력을 각자 자신의 손아귀 아래에 예속시키기 시작하는 일촉즉발의 상황.
게이트가 진동하기 시작한 건 바로 그 때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