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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2화 (22/371)

〈 22화 〉 실습

* * *

게이트 너머의 세상은 아득하리만치 넓고 그 이상으로 광활하다.

비록 지금은 보기 힘들어졌다 하나,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게이트는 그야말로 어디서든 그 모습을 드러냈다.

허공에 뚫린 구멍처럼 나타나 끊임없이 몬스터를 토해내던 천재지변.

현실의 물리법칙을 깨트리고 남은 흔적처럼, 공간 위로 뻥 뚫린 게이트는 문자 그대로 이 세상에 남은 상흔처럼 보이기도 했다.

도대체 누가 처음으로 게이트 안에 발을 들일 생각을 했을지, 거기까진 알 수 없다.

아무래도 복수에 눈이 먼 초창기 헌터들 중 한 사람 아니겠느냐 추측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설령 그 추론이 사실이었다 한들, 뼈 한 조각 추스르지 못할 몰골이 되었으리라는 건 쉬이 짐작할 수 있다.

그 안에 발을 들인 모든 이들은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게이트 너머.

현실과는 문자 그대로 한 차원 유리되어 있는 틈새로 향한 헌터를 가장 먼저 반기는 건, 황량하기 짝이 없는 풍경이다.

끝을 모를 수해.

바닥을 모를 심해.

심지어 가끔씩은 머나먼 하늘 위로 동떨어지는 경우조차 있다.

그러나.

그토록 다양한 게이트 너머의 풍경은, 모두 하나같이 말라 비틀어진 듯 척박하다.

대지는 말라붙어 쩍쩍 갈라지고 있으며, 바다는 애초에 고여 있는 것이 물이긴 한지 그조차 의심스럽다.

하늘의 빛깔마저 가끔씩 독특한 모습으로 그 빛깔을 바꿀 정도였으니, 그 혼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이 안에선 어떠한 물리법칙도 그 의미를 잃는다.

게이트 밖, 우리들의 세상이 가지고 있는 법칙이 당연히 통용될 거라는 망상은 허락되지 않는다.

중력이 사라지는 건 예사요, 해가 뜨고 지는 방향이 다른 경우조차 더러 있을 정도니.

개중에서도 가장 최악인 건 공간 자체가 특정한 개념이나 성질을 지니고 있는 경우다.

대기와 접촉한 수분은 얼어붙는다, 수준이면 차라리 귀엽지.

고작해야 긁힌 상처 하나로도 치명상일 뿐이니까.

살아있는 생물은 죽는다 따위의 효과를 내거는 게이트도 있을 정도니.

때문에, 수많은 연구자들은 게이트 너머의 세상을 그렇게 부르기도 했다.

이계.

문자 그대로, 우리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법칙이 통용되는 별세계.

게이트 너머에서 헌터들을 기다리고 있는 함정이란 바로 그런 부류였다.

마주하는 세상 자체가 적이다.

그렇기에, 게이트의 공략에는 자연스레 수많은 인력이 소비되곤 했다.

각종 대책과 연구.

이를 수도 없이 겹친 후에야 헌터들은 게이트 안으로 발을 들일 수 있었다.

게다가, 그조차 완벽하진 않다.

수많은 사전 실험을 통해 게이트 너머를 관측해도, 예상과 다른 질서가 도사리고 있는 건 거의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물론 이런 노력들도 게이트를 공략하는 데에 있어선 단순한 전제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각 게이트가 지닌 고유한 성질이 질 나쁜 함정이라면, 이후부터 시험받는 건 순수한 사냥꾼으로서의 실력이다.

게이트는 몬스터를 낳는 요람이요, 몬스터의 둥지이기도 하다.

당연히 게이트에 도사리고 있는 몬스터들의 숫자는 바깥과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게이트 공략 시, 게이트 랭크보다 한 단계 이상 높은 헌터들을 파견하는 이유 또한 바로 거기에 있었다.

밤낮은커녕 시간이라는 개념조차 존재하긴 하는 건지 알 수도 없는 게이트 속에서, 파도처럼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처리한다.

몬스터들의 흐름이 파도라 한다면, 이를 구성하고 있는 개별적인 몬스터들은 물방울 알갱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게이트 공략이란 몰아치는 파도에 맞서 물방울 하나 맞아선 안 되는 고난이다.

그렇게.

천천히 나아가는 발걸음조차 버거워지고, 온 몸을 덮고 있는 피부조차 더할나위 없이 무겁게만 느껴질 즈음.

헌터들은 세상의 끝을 목도하게 된다.

질 나쁜 음모론자들의 이상향을 구현해놓은 듯한 풍경이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으레 상상하곤 하는, 세상의 끝.

그런 단어가 이토록 정확하게 들어맞는 장소가 달리 있을까.

수많은 헌터들은 그 모습을 그리 술회하곤 했다.

창창하던 바다가.

끝없던 하늘이.

바스라진 대지가.

어느 순간 뚝 하고 끊기는 장소가 나타난다.

기묘하게도, 그 순간조차 바다는 아무 것도 없는 경계 너머에서 쏟아지는 물살을 받아 제 몸으로 삼는다.

만일 이를 의아하게 여기는 이가 있다면,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을 테고.

헌터들이 게이트 안에 발을 들이고 있는 그 순간에도, 게이트 안의 세계는 점차 확장되고 있다.

문자 그대로, 게이트 너머.

아무 것도 없는 허공 너머로 세상이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게 바로 몬스터들을 싸지르는 구멍이 게이트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세상과 통하는 관문Gate.

게이트란, 문자 그대로 하나의 세계다.

이예은과 자하연이 발을 들인 장소 또한 마찬가지였다.

헌터 아카데미, 지하.

운동장과 통하는 복도 너머에 자리잡은 게이트는,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지극히 안전한 물건이었다.

성질은 공략자들의 성향에 따라 게이트 내부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이 바뀐다는 점.

공략 당시에야 지옥같은 게이트 중 하나로 악명이 높았지만, 지금은 다소 귀찮은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몬스터를 솎아내고 있는 만큼, 튀어나오는 건 잘 해도 D랭크나 하겠지.

물론 그 특성 상 제어에 실패하면 곤란한 물건이긴 했다.

하필이면 이 위에 아카데미를 건설한 이유 또한 마찬가지.

만에 하나를 대비해 헌터를 상주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자그마치 S랭크 헌터인 최승준이 교장으로 부임한 까닭 또한 적잖이 관련되어 있겠지.

뭐, 그조차도 어째서인지 이상할 정도로 성실하게 몬스터를 솎아내고 있는 교사 덕택에 이미 옛말.

폭주할 가능성 따위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장소였다.

그렇기에, 그녀들의 걸음에도 차질은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달려들던 몬스터 세 마리가 이예은의 손아귀 안에서 박살나던 참이었으니까.

덕분에, 자하연도 이예은을 차분히 관찰할 만한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하연이 보기에 이예은은 다소 미묘한 인상이었다.

물론 이야기는 들었다.

보다 정확히는, 이예은이 아니라 그 오라비인 영웅 쪽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아니, 후자 쪽은 심지어 직접 본 적도 있으니.

이예은 가족에 대해선 어지간한 소문보다야 훨씬 자세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하지만 그런 그녀가 보기에도 이예은에겐 딱히 모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인형같은 아이였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허리까지 넘실대며 길게 내리기른 금발도, 옅은 하늘빛으로 반짝이는 눈동자도.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을 거라곤 상상하지도 못했던 자신과 달리, 몸에 걸친 교복 또한 자연스러웠다.

양갓집 규수. 귀족 아가씨.

그런 표현이 어울리는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고아였던 자신과 비교하자면 사는 세상 자체가 다른 느낌?

동년배에게 이런 말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우아하다는 단어가 참으로 잘 어울리는 인상이었다.

성격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떤 의미로는 답다고 해야 할까.

박우찬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인이라는 게 농담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외모.

안 그래도 이질적인 외양에 더해, 평소부터 접근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두르고 있으니.

'건드리기 힘들어.'

그리 평할 수밖에 없었다.

……딱히 그녀가 다가오는 사람을 배척했다 말할 생각까진 없다.

단지.

그녀는 필요 이상으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길 꺼리는 듯했다.

다른 이들을 은연중에 무시하고 있다거나, 거리를 두고 있다거나.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그녀는 달리 바쁜 일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말하자면, 굳이 주변에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은 듯한.

굳이 표현하자면 그런 느낌이었다.

자신이 헌터가 되지 않았다면, 그리고 이번에 같은 조가 되지 않았다면 대화를 나눌 일도 없었을 듯한 관계.

때문에.

자하연은 어째서 박우찬이 이예은에게 그토록 신경을 쓰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처음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며칠 있다 보면 눈치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예를 들면, 박우찬이 이예은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다던가.

본인으로서는 나름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한 모양이지만, 그녀가 보기엔 다소 눈에 밟혔다.

아니, 교무실에서 박우찬 선생이 이예은 학생과 싸웠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싫어도 눈치챌 수밖에 없었겠지만.

개중에서도 그녀의 주의를 끈 건 이예은을 휴게실까지 불러들인 박우찬이 성적을 핑계로 그녀에게 질 나쁜 요구를 했다는 소문이었다.

당연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믿은 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박우찬에게 도움을 받고 그런 생각을 했던 과거의 자신이 떠올랐던 탓이다.

단지.

궁금하기는 했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헌터들에게 있어 이예은은 상당한 유명인이다.

영웅의 여동생.

그 이상으로 화려한 아가씨처럼 보이는, 독특한 분위기.

그렇기에 박우찬 또한 알고 있을 터였다.

이예은과 접촉하다 보면 이래저래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 정도는.

여하간, 아카데미에 부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력서에 쓸 경력이 없다는 둥 온갖 고민을 하던 그라면 더더욱.

애시당초 그녀 자신만 해도 그렇다.

학생과 교사가 한 지붕 아래에 산다는 소문이 돌면 좋을 게 없다는 핑계로 이래저래 자신을 배려해주고 있지 않은가.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우찬은 이상할 정도로 이예은을 살피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자하연은 다른 무엇보다 바로 그 점이 신경 쓰였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영웅의 여동생이라는 점 때문에 무언가 편의를 주려는 건 아니겠지.

그 날 마주친 영웅 본인에게도 막말을 쏟아내던 박우찬이다.

애초에, 그녀가 알고 있는 박우찬은 그런 정치적인 행동이 가능할 만큼 눈치가 빠른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속내에 남은 건 묘한 위화감과, 다소의 불만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 사회에 있어, 이예은은 더할나위 없는 강자다.

학연이라는 단어가 증발하고, 지연과 혈연이라는 단어가 아는 사람 중에 헌터가 있다는 뜻이 된 게 어언 20년.

이예은은 이런 사회에서 인류 최강이라 불리는 오라비를 두었고, 덕분에 어떠한 고생도 없이 자랐다.

문자 그대로 아가씨라 할 수 있겠지.

모르긴 몰라도, 몇 달 전의 자신과 달리 앞으로 어떻게 해야 밥을 먹을 수 있을까 몸이라도 팔아야 하나 고민한 적도 없을 거다.

그 이전에, 지금 이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일 또한 당연하다 생각하고 있었겠지.

'나랑 달리.'

자하연이 보기에, 이예은은 자신과 사는 세상이 다른 생물이었다.

의문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자하연과 이예은 중 누가 더 불쌍하냐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그녀를 택할 테지.

……자신 또한 어지간한 사람들과 달리 박우찬이라는 기연을 만나 삶을 회복한 건 사실이다.

지금은 이렇게 헌터가 되고자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중 누가 더 걱정받아야 할 처지일까 묻는다면 역시 자신이 아닐까.

그렇지만.

박우찬은 밥상머리에서도 이예은에 대한 일을 묻곤 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자신의 상담 시간을 이용해 이예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야 뭐, 알고는 있다.

자신은 집에서도 충분히 상담을 진행할 수 있다.

아니, 애초에 자신은 박우찬에게 무언가 달리 요구할 수 있을 만한 입장이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앞날이 캄캄하던 자신의 처지에 들어온 한줄기 등불.

이조차 박우찬의 은혜라는 사실을 잊었을 정도로 그녀는 염치 없는 인물이 되지 못했다.

자신의 처지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고아들 중에선 제일 나은 편에 속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헌터로서 자립할 수 있도록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박우찬에겐 몇 번이나 감사해도 모자랄 지경이겠지.

다만.

이예은에게 감사해야 할 까닭은 없었다.

때문에, 의뭉스러운 기분은 자연스레 박우찬이 아닌 이예은에게 쏠렸다.

적어도 그녀가 보기에 이예은은 딱히 문제의 소지도 없었다.

품행 단정.

가정사에도 문제 없음.

실력도 보증되어 있다.

하지만.

얼마 전에 있었던 이예은과의 상담 이후, 박우찬은 꾸준히 그녀를 주목하고 있었다.

역시, 영웅의 여동생이라는 간판 때문일까?

그렇지 않으면 달리 무언가 이유가 있는 걸까.

냉정하게 생각하면 역시 후자겠지.

그렇게 믿고 싶었다.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외모는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실력도 가꿀 수 있다.

허나, 영웅의 여동생이라는 간판은 어찌할 수 없으니까.

그러므로, 그녀는 그리 대답했다.

조심하라던가, 주의하라던가.

혹은, 이예은과 한 조가 되었는데도 괜찮겠냐던가.

그렇게 묻는 박우찬을 향해, 아무렇지 않다고 답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자하연은 처음부터 이예은을 찬찬히 알아볼 기회를 살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이번 실습은 딱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적어도 그녀에게 있어,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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