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실습
* * *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로부터 2주 후.
마침내 실습 시간이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다.
그 사이, 이예은은 의외로 잠잠하게 지냈다.
고작해야 며칠 만에 나를 다시금 찾아오지도 않았고, 그렇다 해서 내 욕을 주워섬기며 분위기를 망치지도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 내뱉은 말을 지키겠다는 듯 보다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하기까지 했다.
물론 당장 눈에 띌 만한 차도는 없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능력만을 믿고 반쯤 방치하던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건 확실히 긍정적인 징조였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이예은의 신체 능력은 나쁘지 않다.
실제로 체력 단련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거두기도 했고.
그러나.
그녀의 능력에 비하면 역시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여하간, 이제 막 헌터가 된 자하연에게도 뒤떨어질 정도였으니.
순위를 매기자면 능력은 탑.
체력은 학생들 중에서도 상위요, 순수한 백병전은 평균이거나 이를 조금 밑도는 수준이라 말할 수 있겠다.
문제는 지금 이예은이 사용하는 전법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백병전 기술이라는 점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게 체력, 능력은 제일 나중.
중요도를 따라 나열하면 이렇게 되겠지.
요컨대, 그녀의 적성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전법이라 할 수 있겠다.
벼락과 염력이라는 상이한 능력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야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질 수밖에.
여하간.
내가 부임한 이상, 중학교 때처럼 능력으로 밀어붙이면 어거지로 이길 수 있을 만한 환경을 제공할 생각 따위는 없다.
애시당초 몬스터가 상대라면 불가능한 전법이고.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속내야 어쨌든 지금 그녀가 손에 넣은 변화는 썩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그 부분이 아니었지만.
"괜찮겠냐?"
"뭐가요?"
운동장이었다.
본격적인 실습 시작을 앞두고,아카데미에 속한 모든 학생들은 운동장에 모여 있었다.
다소 부산스러운 광경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겠지.
게이트의 조정과 관리는 쉬운 일이 아니다.
애초에 안전하다고 확답할 수도 없고.
그만한 물건을 실습에 이용하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오히려 이 정도로 부산스러운 게 딱 좋을 정도였다.
실제로 최승준 또한 만약을 대비해 단상 위에서 대기하고 있는 판국이었으니.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학생들을 신속하게 대피시킨다.
그걸 위한 포진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불만은 없었다.
아무리 평화의 시대가 찾아왔다고는 하나, 게이트는 게이트.
무언가 잘못되기라도 했다간 순식간에 대형 참사로 번질 수도 있다.
하루만에 모든 실습을 마쳐야 하는 이 스케줄 또한 같은 이유였다.
막말로, 며칠에 걸쳐 게이트를 개방하느니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일정을 마치는 게 더 낫다.
귀찮은 건 사실이지만, 목숨과 비교할 순 없는 법.
때문에, 나 또한 우리 반을 이끌고 운동장으로 내려온 상황이었다.
전교생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의 운동장은 비교적 한산했다.
물론 프로젝트 특성 상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었지만.
아무리 내로라하는 차세대 헌터들을 초빙했다 해도, 채 백 명이나 될까 싶은 게 현실이니.
적막한 운동장 사이로 감도는 바람이 영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그런 상황에서도 내 말에 담담히 대답하고 있는 건 물론 자하연이었다.
어차피 하숙집에서 따로 상담할 수 있는 만큼, 지금은 면담이라는 명목으로 이렇게 이야기나 나누고 있는 셈이다.
물론 내가 심심하다는 이유로 이러고 있는 건 아니고.
여하간, 그녀가 헌터라는 사실을 자각한 건 고작해야 2개월 전.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몬스터를 상대로 한 실습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걱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연이는 이상할 정도로 담담했다.
아니, 오히려 태연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여유롭게 준비 운동까지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첫 실습이잖니."
"걱정되세요?"
"그야 당연히 그렇지."
원체 무슨 일이 생길 줄 모르는 게 바로 이 업계다.
고작해야 E랭크 게이트를 상대로 S랭크 헌터인 최승준을 붙여놓은 이유 또한 그 때문이고.
여하간, A랭크 헌터조차 방심하면E랭크 몬스터에게 사지박살 장기자랑 프릭쇼 당하는 세상이고.
하물며 그녀는 진짜배기 몬스터와 마주한 적도 있다.
그야 뭐, 저번에 본 도마뱀 새끼들보단 상대하기 편하겠다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또 그리 쉬운 물건이 아니잖은가.
까놓고 말해서, 게이트에 휘말린 경험 때문에 몬스터를 앞에 두기만 하면 몸이 굳어버리는 헌터들 또한 더러 있을 정도니.
결국 그런 양반들은 언젠가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
빨리 은퇴하고 사람 구실하나 팔다리 날려먹고 늦게 깨닫나 하는 차이지.
트라우마라는 물건이 원체 그렇다.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도 없겠지만, 반대로 극복할 수 있다 확답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내게는 인연 없는 일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긴 했지만, 속으론 어떨지 모르고.
"걱정 마세요. 오빠가 걱정할 일은 없을 테니까."
"야, 야. 여기선 그렇게 부르지 마."
갑자기 튀어나온 호칭에 떨떠름하니 대답했다.
어쩔 수 없는 사정 탓에 지금은 그녀와 동거하고 있는 처지이긴 했지만, 사회적으론 지탄받기 딱 좋은 처지.
거기에 스승과 제자, 날백수와 여고생이라는 관계가 더해지면 더더욱 그렇다.
처음이야 어쨌든, 지금은 달에 한 번이나마 몬스터를 꼬박꼬박 공급해 주는 신의 직장이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점검이라는 명목으로 게이트 뺑뺑이를 돌고 왔던 나로선 혹시나 싶어도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 모습에 피식 하고 자하연이 웃음을 터트렸다.
어쭈, 하는 감상이 먼저 나왔다.
이젠 제법 여유롭게 미소짓는 모습이 처음 만났을 때와는 퍽 다른 태도였다.
'하긴, 내가 뭐라고 하겠냐.'
괜찮다면 괜찮은 거겠지, 그리 생각하며 목덜미를 어루만진다.
다행스럽게도, 게이트의 상태 또한 지금은 썩 괜찮아 보였다.
하긴, 그렇지 않으면 요 며칠동안 게이트에서 구른 의미가 없지.
비록 나 자신을 위해서라곤 하나, 덕분에 몬스터라는 형태로 끊임없이 마력을 배출한 게이트는 상당히 안정적인 상태였다.
허면, 역시 문제가 되는 건 게이트보다는 사람 쪽이겠지.
이번 시험은 2인 1조 내지 3인 1조 체제로 이루어진다.
마음 같아서는 정말 실전처럼 4인 1조나 5인 1조 등으로 편성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 반에 스무 명이나 될지 싶은 인원수를 고려하면 어쩔 수 없었다.
저래서야 조를 늘리기 위해선 다른 반과의 협력이 필수불가결하다.
문제는, 아직 같은 반 학생들과 합을 맞춘 적도 드물다는 점.
스스로의 능력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병아리들에겐 버거울 거라는 발언엔 나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 실습 수업은 사실상 맛보기에 지나지 않았다.
몬스터와 조우하는 체험 자체에 의의를 두었다고 해야 할까.
본격적인 실습이 시작되는 건 아마도 이렇게 몇 번 같은 반 학생들과 연계를 연습한 이후의 이야기겠지.
어느 정도 숙달되었다 싶으면 반을 섞거나 하는 식으로 변화를 줄 수도 있을 테고.
이 업계가 다 그렇지만, 고정적인 파티라도 짜지 않는 한 언제나 원하는 이들과 출진하는 건 불가능하다.
아니, 설령 그런 식으로 파티를 구성한다 할지언정 언제 구멍이 뚫릴지 모르는 게 바로 이 쪽 업계 사정이다.
헌터가 뒈져나가는 건 둘째치더라도, 사람이 살면서 사정 하나 없긴 힘든 법이니.
때문에, 조 편성은 전적으로 교사들의 뜻에 따랐다.
친한 친구나 중학교 때 이미 패거리를 이룬 학생들은 떼어놓는 작업 또한 병행되었다.
각 조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각 반의 담임들은 제 반의 편성에 손을 댈 수 없도록 하는 조치까지 이루어질 정도였으니.
이 정도면 주먹구구식 분배 치고는 꽤 공평함을 기했다 평해도 좋으리라.
그리고.
이 쪽 사정을 모르는 교사들이 보기에, 이예은은 어디까지나 훌륭한 우등생이었다.
영웅의 여동생이라는 네임 밸류도 있다.
단정한 외모와 되바라진 태도는 구김살을 산 적도 없다.
이 정도면 정필연과 함께 A반의 기둥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예를 들면, 고작해야 두 달 전 각성한 동급내기 여동생을 이끌어주기 딱 적합한 인재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이예은과 자하연은 이번 실습동안 같은 조가 되었다.
방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A반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과 이제 막 헌터가 된 아이를 한 조로 배당하겠다는 명분 하에.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서류상으로 보면 딱 적절한 배치이기도 하고.
실력이나 실적 또한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능력의 조합 또한 나쁘지 않았다.
만능에 가까운 범용성을 자랑하는 염동력.
그 특성 상 적들을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운용할 수밖에 없는 저주.
나야 이런저런 촌평을 달고 있긴 하지만, 이 정도면 실습 체험 정도는 손쉽게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하연이의 실력 또한 요 최근 정말로 많이 늘었고.
기초 체력이야 원래부터 괜찮은 편이었지만, 능력에도 점차 익숙해지고 있으니.
그러므로, 부득이하게 정정해야 하겠다.
문제는 사람. 문제는 조 편성.
허나,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역시 문제가 되는 건 이예은 쪽이었다.
제 오라비와 달리 차근차근 엘리트 코스를 밟은 아가씨.
하지만 요 최근 생각하지도 못한 패배를 겪어 흔들리고 있다.
거기에 추가타까지 넣은 탓인지, 다소 혼란스러워하는 기색도 없잖아 있고.
단순히 연습에 매진하고 있을 뿐이라면 좋겠지만,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협력이 가능할까 물으면 심히 걱정되는 것도 사실.
물론 이번 실습이 그런 문제점을 잡아내기 위한 장소이기도 하다지만…….
아무래도 당사자인 하연이 쪽에선 그렇게 생각하기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흘끔, 그 옆얼굴을 살핀다.
아무래도 그녀로서는 내가 이번 실습을 틈타 짐을 떠넘긴다 생각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요 며칠, 좋든 싫든 이예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으니.
뭐, 지금까지 지켜본 바에 따르면 정작 하연이 쪽은 별로 상관 없는 모양이긴 한데.
"얘기는 해 봤어?"
"누구랑요?"
"거 왜, 네 짝지."
"아뇨, 아직. 애초에 걔 요샌 반에서 자주 떠들지도 않아요."
……격려하려고 했더니 한층 더 불안해지는 이야기만 듣고 말았다.
살짝 한숨.
무어라 말하고 싶은 기분도 없잖아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이상은 너무 주책이지 싶어 입을 다물었다.
나 원 참, 팔불출 다 됐군 이거.
시선을 던지면, 제비뽑기에서 이겼다는 이유로 우리 반보다 먼저 게이트에 들어간 옆 반 학생들이 비척비척 기어 나오고 있었다.
개중에는 처음 만난 몬스터의 모습에 눈을 빛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영 맥을 못 추곤 비척대는 이들 또한 있었다.
정작 그 앞에서 학생들을 인솔하던 교사는 안절부절하고 있었지만.
하긴, 그럴 만도 하지.
몬스터를 썰어본 적이야 없잖아 있겠지만, 학생들을 가르친 건 이번이 처음일 테니까.
피식, 그 모습에 웃음을 터트린다.
"슬슬 이 쪽도 시작하겠다. 얘들아, 준비하자!"
짝짝, 손뼉을 치며 호령하자 그때까지만 해도 반쯤 늘어져있던 애들도 슬슬 몸을 가누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 모습을 살핀다.
전의를 불태우거나 장비를 준비하는 등, 나름대로 각오를 다지고 있는 모습이다.
너무 힘이 들어간 애들도 적잖게 있었지만.
그러다 문득, 이예은과 시선이 마주쳤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하늘색 눈동자에 새초롬한 빛이 깃들었다.
동시에.
'어쭈.'
도대체 무슨 생각을 떠올린 건지, 다소곳이 늘어뜨리고 있던 아미에 힘이 들어갔다.
아니, 이제는 아예 홱 고개를 돌리기까지.
'이건 뭐.'
걱정을 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네.
끓어오르는 한숨을 간신히 목구멍 너머로 끌어내린다.
어느 쪽이든, 실습엔 문제가 없다.
장비나 게이트 또한 마찬가지.
최승준이나 내가 붙어있는 시점에서, 일이 잘못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아니, 잘못되는 일 없도록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있다.
허나,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는 묘한 예감이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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