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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8화 (18/371)

〈 18화 〉 이예은

* * *

"왜냐하면 걔, 나랑 같은 실험실 출신이거든."

그리 말하며, 이준구는 공연히 제 앞에 놓인 찻잔을 휘휘 휘저었다.

……나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리기도 잠시.

멋쩍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인 이준구는,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어 다시금 설명을 시작했다.

이를 한 귀론 듣고 한 귀론 흘리며, 나는 천천히 내 몫으로 나온 찻잔을 들었다.

자연스레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아니, 진짜로?'

방금 전, 녀석이 한 말에 전혀 짐작이 가질 않았기 때문이다.

씨발, 실험실이 뭔데 씹덕 새끼야.

공교롭게도, 이 시대가 다 그랬다.

섣불리 부모님 안부라도 물었다간 불꽃 패드립이 되어버리는 시대.

사람들은 점차 서로에게 가족이나 지인들의 안부를 묻지 않게 되었고,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내가 녀석의 가족사에 대해 알고 있는 거라고는 아마도 부모님이 없지 않을까 하는 정도.

이예은의 존재를 포함해도, 딱 둘이다.

게다가, 그조차도 확실하지는 않다.

녀석이 부모님을 잃은 이유 따위, 내가 알 턱이 있나.

하물며 실험실 운운하는 단어는 더더욱 그렇다.

'것보다 저 새끼, 말투 왜 저래?'

숫제 나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듯한 말투였다.

아니, 몰라. 모르니까 알려줘, 설명해 줘……!!

도대체 저 새끼가 생각하는 나는 뭐 하는 놈인 걸까.

곤혹을 삼키기 위해 들어올린 잔 너머로 커피를 핥짝이며, 나는 천천히 표정을 관리했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이 나라도 게이트로부터 안전했던 건 아니야."

"음."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긴 했지만, 사실 녀석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완전히 이해한 건 아니었다.

다만,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실험실 출신.

거기에, 국가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라면 모르기도 힘들다.

"우리는, 그런 상황에서 국가가 주도해 만들어진 실험체들이야."

헌터 제작 실험.

확실히, 그런 소문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괴담이라고 해야 할까.

게이트 발생 초기.

각국의 수뇌부들이 인공적으로 헌터를 양성하기 위한 인체 실험에 발을 담갔다는 괴담이다.

문제는, 여타 음모론과 달리 정말로 저런 일을 시행한 국가들이 더러 있었다는 점.

지금이야 어느 정도 익숙해지긴 했지만, 대침공 당시 몬스터란 일종의 자연재해나 다름없는 존재들이었다.

언제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 사람을 찢어 죽이려 들지 알 수 없는, 살아있는 자연재해.

때문에, 정치인들이 인공 헌터 프로젝트에 손을 뻗은 건 어떤 의미로는 당연한 행동이었다.

당시 혼란스러운 세계 정세에서 단박에 우위를 점하기 위한 투자.

혹은, 국내 정치판을 휘어잡기 위한 이슈.

물론 그런 사정을 제외하더라도, 인공적으로 헌터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대 몬스터 전선에 크나큰 도움이 되리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실제로, 지금까지 세계 각국은 인공적으로 헌터를 발생시키기 위한 각성제 따위를 연구하고 있는 실정이었고.

뭐, 성과는 시원찮지만.

애초에, 연구 윤리나 여러 부작용 따위를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래도 개발 기간이 장기화될 수밖에 없겠지.

이에 대해, 연구 윤리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고 대답한 국가들 또한 더러 있었다는 이야기다.

사실, 다들 쉬쉬하고 있을 뿐 제 1차 대침공이라는 미증유의 재난을 앞둔 대다수 나라들은 좋든 싫든 불법적인 일에 손을 댈 수밖에 없는 처지였기도 하고.

다만.

그렇다 해서 정당화될 수 있는 일이었느냐 묻는다면, 역시 그건 아니겠지.

하물며 당사자에겐 더더욱.

"대상은, 당연히 고아들이었어.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썩어날 정도로 넘쳤으니 말이야."

말 그대로였다.

그렇게 말해도, 나로서는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어렸을 적 이야기지만.

그러나.

게이트가 발생한 이래, 이 나라의 고아 발생률은 늘어나기만 했지 줄어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덕분에, 이제 와서 녀석의 말을 곱씹을 필요는 없었다.

녀석이 다음으로 할 말 또한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다기보다, 골자 자체는 음모론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

애시당초 세계 각지에서 폭로된 사실을 근거로 만들어진 소문이었기 때문일까?

"인공적인 마력 운용 기관 제작, 능력 한계 실험……. 당사자인 내가 말하기도 뭣하지만, 비윤리적인 실험도 거의 밥먹듯이 일어났고."

"허어, 잘도 그런 게 허가가 났구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허가가 난 건 아니야. 관련되서 옷 벗은 사람들도 꽤 있거든."

그럴 만도 했다.

방금 전, 녀석이 한 말도 범상찮은 건 아니었으니까.

인공적인 마력 운용 기관이라는 건, 말 그대로 인공 제작한 마력 운용 장기를 체내에 삽입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자연적으로 발생한 마력 운용 기관과 달리, 이런 의체를 삽입하기 위해선 당연히 체내의 장기를 들어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물리적으로, 빈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 빈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고아들에게 무슨 일을 저질렀을 것인가.

……굳이 생각하고 싶은 일은 아니다.

능력 한계 실험 또한 마찬가지다.

말이 한계 실험이지, 요컨대 죽을 때까지 강제로 능력을 사용케 했다는 뜻이니까.

문자 그대로, 능력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한 실험.

능력 또한 일종의 신체 기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자살할 때까지 숨을 참으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 도대체 예의 실험실 안에선 무슨 일이 자행된 걸까.

심지어, 녀석의 말에 따르면 이조차 아직 윤리적인 편이라고 하니.

어째서 세계 각국이 이에 대해 쉬쉬하고 있는건지, 나조차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뭐, 나는 열등생이었지만."

그 말에, 나는 녀석의 능력을 다시 한 번 상기했다.

제 주인마저 바삭바삭 구워버릴 정도로, 지나치게 난폭한 전격.

실로 강렬하며, 그 이상으로 비효율적인 놈의 능력은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도저히 자연 발생했다 말하기 힘들 정도로 부자연스러웠다.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뜬 초능력.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헌터들의 능력이란 결국 신체 능력의 연장선상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최승준의 능력인 얼음은 엄밀히 말하자면 갑자기 각성한 초능력이 아니다.

최승준이 가지고 있던 얼음을 다룰 수 있었던 재능이, 마력과 접촉하며 개화한 셈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심장을 중심으로, 당사자조차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전압을 흘리는 능력은 도대체 어떤 자질로부터 유래한 걸까.

……실험실이라는 단어에서 떠오르는 불온한 상상을, 억지로 털어냈다.

여하간, 녀석에게 지금 당장 중요한 건 그 부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은이는 아니었고."

"그럴 것 같더라."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이예은의 능력은 확실히 정제되어 있었다.

어느 거리에서도 안정적인 출력.

그리고 그 이상으로 풍부한 총량.

최승준과 비교하긴 힘들어도, 그 정도면 충분히 훌륭한 재능이다.

대상이 아직 현역 헌터조차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랬다.

까놓고 말하자면, 이준구처럼 미친 야생마같은 능력은 아니라 이거다.

"그래서 더더욱 주목받는 입장이었지."

그럴 만도 했다.

일반적인 헌터보다 훨씬 우수하며, 실험체들보다 훨씬 안정적인 능력.

만약 이 기술을 정상적으로 상용화하는 데에 성공했다면, 대한민국이 헌터 강국으로 우뚝 선 이유에 확실한 근거를 댈 수 있으리라.

허나, 적어도 나는 그런 소문은 듣지 못했다.

요컨대.

"그냥 걔가 특이했던 거지?"

"글쎄? 정확히는 잘 모르겠어. 정말로 예은이가 재능이 있었던 건지, 아니면 우연히 예은이한테 주입된 약물만 효과가 좋았던 건지……."

"그 쪽에서도 싸고 돌았겠네."

"뭐, 내가 배정될 정도였으니까."

못 당하겠다는 듯이, 녀석은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단순한 재능이라면 그걸로 좋다.

우연히 고아들 중 한 명이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을 뿐.

그렇게 끝낼 수 있는 이야기니까.

허나, 만일 그녀에게 배급된 각성제가 우연히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 거였다면?

배합할 때 불순물이 섞여 들어간 건지, 아니면 마침 그녀와 상성이 좋았던 건진 모른다.

다만, 전자라면 그 배합을 알아낼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후자라면 본격적인 헌터 각성제 개발에 박차를 가할 힌트가 될 수 있었겠지.

때문에, '실험실'도 그녀를 특별 취급하기 시작했다.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가족을 붙여준 일 또한 마찬가지다.

막말로, 저딴 환경 속에서 가족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이 얼마나 큰 특권이었을 것인가.

나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어쩌면, 열등생이라 자언했던 이준구가 여태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또한 그 일환이 아닐까 어렴풋이 짐작할 뿐.

어느 쪽이든, 저들로서는 실로 당연한 판단이었을 테지.

쓱싹 하고 해부해 단박에 무언가 알아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으면?

간신히 손에 넣은 기회다.

자신이 책임을 질 테니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보자 제안하는 미치광이는 없었다.

그런 점에서 말하자면, 녀석은 참으로 탁월한 보호자였다.

도저히 연구에 도움이 되진 않을 듯한 능력.

시간을 빼앗아도 문제는 없다.

거기에 더해, 저런 상황에 처하고도 아직까지 모난 데 하나 없는 성격을 유지하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당시 연구자들에겐 안성맞춤이었겠지.

남매이기도 했거니와, 무언가 수작을 부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능력도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이예은의 오빠로서, 이준구는 그녀의 보호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관계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예의 실험실이 무너지고.

국익을 위해 실험체가 되어야 했던 소년이 헌터가 된 끝에.

마침내 영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지금까지.

"허어."

당장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딱 그 정도였다.

아니, 무슨 말인진 알겠어. 알겠는데, 단박에 소화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밀도 높은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사실 너희 남매는 국가 주도 생체 실험 대상자였다 이거지?"

"예은이는 아직 어렸을 때니까, 별다른 기억은 없었겠지만."

"확실해?"

"솔직히, 확실하진 않아. 어렴풋이 기억하곤 있을지도?"

꽤나 의존적이거든, 녀석은 그리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요컨대, 녀석이 하고 싶은 말은 결국 그거다.

확실히 놀라운 내용이긴 했지만, 이제 와서 내가 알아야 할 내용은 아니다.

막말로, 이 녀석이나 그 여동생이 생체 실험 대상자였다는 게 나랑 무슨 관계가 있다고.

동정이야 해줄 수 있겠지.

불쌍하다고 말해줄 수도 있다.

원한다면, 당시 프로젝트를 진행한 책임자들을 찾아가 옷 벗게 하는 건 가능할지도 모른다.

뭐, 녀석의 태도로 보건대 이미 나름대로 매듭지은 모양이지만.

즉.

"결국 네 입으론 만류하기 힘들다, 이거 아냐."

"하하하."

"쪼개지 마라, 쪼개버린다."

"미안."

그런 이야기다.

사실 그 능력은 엄청나게 위험한 거야.

내가 능력 개발할 때 대충 백 번 정도 튀겨진 적 있어서 잘 알거든?

그렇게 말하기도 버겁긴 매한가지다.

다만, 만약 그 뿐이었더라면 어찌저찌 어르고 달래 다른 기술을 익히게 할 수 있었겠지.

허나, 그러지 못했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예은 본인에게.

어렸을 적,가족과 떨어질 뻔한 아이들에겐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요컨대, 가족과 떨어지길 병적으로 싫어하는 습성이다.

가족이라 한들 언제든 멀어질 수 있는 관계. 나 혼자만 남겨질지도 모르는 현실.

그런 인식이 있다면, 가족과 떨어지라 말하는 이들에게 도리어 공격적인 모습을 내비칠 수도 있겠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물며 이 시대라면 더더욱.

설령 상대가 인류 최강이라 불리는 이준구라 해도, 당사자 된 입장으로선 무작정 안심하기 힘들겠지.

다른 헌터의 가족들처럼 불안할 게 뻔하다.

거기에, 최근 이준구는 정치인으로 전직하기까지 했다.

굳이 따지자면 안전해졌다고 할 수 있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변화가 없다는 건…….

'반대다.'

오빠가 위험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겠지.

단,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거기가 아니다.

만약 그 뿐이었더라면 최근 차도가 있었을 테니까.

물론 내가 보기엔 차도고 지랄이고 나발이고 오히려 더 악화된 모습 뿐이었다.

그야 그렇겠지.

대침공이 종식된 지금은 헌터보다 국회의원이 바쁠 수밖에 없을 테니.

그런 불안감은, 유일한 가족인 이준구가 제 집에 얼굴을 비추지 않는 이상 해결할 방도가 없다.

심지어 그조차 단순한 대증요법에 지나지 않고.

필시 이 녀석 또한 몇 번은 직접 말해봤을 테지.

어쩌면 혼낸 적도 있었을지 모른다.

물론, 그럴 때마다 이예은 그 아가씨에겐 오빠가 자신을 버리려 한다는 식으로 보였을 공산이 크다.

'본인한테 자각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오빠의 기술을 쓰지 말라 이야기하는 선생들 또한 마찬가지다.

추측컨대, 그 아가씨에겐 마치 자신과 오빠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모습처럼 비쳤던 게 아닐까.

으음~ 위험한 냄새.

"뭐,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겠다."

뭐, 그거야 어쨌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불쌍한 사정이 있다, 그건 뭐 알겠다. 직접 말하지 못하는 이유도 있다, 이해한다.

단지, 그렇다고 해서 내 결론이 바뀌는 건 아니다.

"사정은 딱하다만, 딱히 봐줄 생각은 없다."

오해는 풀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내 생각이 바뀌는 건 아니다.

그런 마음으로 있는 녀석을 헌터로 키울 수는 없으니까.

확실히, 그 재능은 아까울지도 모르지.

단, 우리들은 결국 사냥꾼Hunter이다.

결정적일 때, 몬스터를 죽이고 사람들을 지키는 대신 가족 놀이에 매몰될지도 모르는 녀석을 전선으로 보낼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예은에 대한 내 판단은 결국 거기에서 바뀌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이 자리는 내가 녀석들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게 된 걸 제외하면 별다른 소득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말한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

대한민국 최강의 헌터.

동시에, 지금은 정치가로 전직한 탓에 여동생의 증상을 한층 더 악화시켰을지도 모르는 놈팽이는 그저 만족스러운 얼굴로 미소 지을 따름이었다.

……도저히 헛걸음했다곤 생각할 수 없는 모습.

처음부터그 애를 헌터로 키울 생각은 없었던 건지, 아니면 정녕 어쩔 수 없다 생각한 건지.

어느 쪽이든, 결국 스스로 한 일이라고는 나한테 가정 교육 짬 때리기밖에 없었던 주제에 참으로 표표한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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