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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5화 (15/371)

〈 15화 〉 이예은

* * *

"왜 너희들이 헌터라고 불리는지 알고 있냐?"

결국,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학생들의 전반적인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말하자면, 학생들의 능력을 그래프로 표기했을 때 원에 가깝도록 다듬는 일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사람마다 능력에 차이가 있는 만큼, 모든 학생들의 그래프가 엇비슷한 크기가 되리라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디에도 모난 데 하나 없이 능력을 다듬어둔다면 적어도 어디 가서 비명횡사할 일은 없겠지.

능력의 본격적인 단련도 나쁘지 않겠지만, 그런 건 살아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고.

이런 이념 하에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했다.

다른 것보다 문제가 되는 건 학생들 간의 능력이 균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능력의 총량도 그렇지만, 문제가 되는 건 당장에 학생들이 특화된 방향성 쪽이다.

정필연을 기준으로 수업을 진행하려면 먼저 헌터로서 각성한 능력을 다듬어주는 게 좋겠지.

하지만 대다수 아이들은 일단 신체 능력을 단련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정필연이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제 수준엔 별로 부담조차 되지 않을 체력 단련이나 하고 있는 건 아무래도 낭비가 심하다.

지금은 자원자에 한해 수업이 끝난 뒤에도 능력을 사용한 교습을 진행하는 등, 어떻게든 편법으로 떼우고 있었지만 이 또한 머잖아 한계에 봉착하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했다.

'애시당초 도대체 뭘 기준으로 반을 나눈 거야?'

처음부터 학생들의 특징에 따라 반을 나눴다면 차라리 편했을지도 모른다.

얘네는능력만 줄창 사용한 쭉정이들이니까 능력반, 얘네는 죽어라 푸쉬업만 조진 애들이니까 단련반 하는 식으로.

물론, 내 방식에 맞추어 아카데미의 방침을 수정하는 건 당장으로선 힘들겠지만.

때문에, 나는 교사들에게 주어진 상담 시간이라는 기회를 유효 활용하기로 했다.

여타 고등학교와 달리, 이 헌터 아카데미에서 상담 시간이 가지는 의미는 상당히 달랐다.

보통 고등학교처럼 학생들의 앞날이나 가정 문제에 대해 담임 교사가 조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아무리 그래도 얼마 전까지 업계 최전선에서 뛰다 왔을 전직 헌터들에게 정신 상담을 부탁하지는 못할 테고.

뭐, 아카데미 안에 상시 대기중인 정신과 의사와 달리 담임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계이기에 털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 또한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아니, 담임이니 뭐니 해도 내가 학생들과 만난 건 고작해야 1주 남짓. 반년도 안 된 지금, 신뢰가 어쩌고저쩌고 하기엔 아무래도 부족한 점이 있었다.

"뭘 물으시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요."

"응? 아니, 말 그대로란다. 왜 이 직종이 하필이면 헌터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까? 뭐라도 좋으니 한 번 생각해 보렴."

그래서.

매 학기마다 필수적으로 제공되는 이 상담 시간에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하면, 물론 진로 상담이었다.

단, 장차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될까 하는 평범한 진로 상담이 아니라 학생들의 전법 등 전술면에 대한 상담이었지만.

때문에, 교실에서는 한층 도덕 수업이 진행되고 있을 이 와중 나는 그녀와 이렇게 마주보고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는 셈이었다.

장소는 상담실.

그리고 상대는 나 또한 익히 알고 있는 이준구의 여동생, 이예은이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연이에게 그런 말을 들은 다음 날 나는 곧바로 그녀를 호출해 상담에 들어갔다.

물론, 기세만으로 결정한 건 아니다. 내가 이준구와 아는 사이이긴 했지만, 그렇다 해서 특별 대우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지금 당장 이예은이 상담 대상으로 선정된 이유는 단 하나.

성적순이다.

나는 잘 몰랐지만, 아무래도 이예은이라는 이름은 학생들은 물론이요 교사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모양이었다. 이준구의 여동생이라는 네임 밸류를 제외하더라도, 입학 전까지 남학생에 정필연이 있다면 여학생엔 이예은이 있다는 식으로 알려졌던 모양이니까.

공식적인 헌터 교육 기관이 출범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 해도, 헌터들 사이에서의 개인 과외는 적잖게 있었다. 아무래도 헌터라는 고급 인력이나 노하우를 차출하게 되는 만큼 정부로서는 썩 내키지 않았겠지만, 그렇다 해서 막을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그리고 이런 헌터들 사이에는 나름대로 모종의 네트워크가 생기기 마련.

정필연과 이예은은 그 안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름이었다고 한다.

유망주. 차세대 헌터. 영웅의 여동생과, 영웅의 옛 모습이 떠오르는 젊은 헌터.

이런 평가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알음알음 퍼져나갔고, 때문에 이번 아카데미 프로젝트에 발을 담근 대다수는 개교 전부터 둘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뭐, 나는 몰랐지만!'

애초에 가장 대표적인 헌터들 사이의 네트워크라 할 수 있는 협회조차 이제 막 가입한 게 나다.

그런 애들 사이에 도는 소문까지 어떻게 하나하나 주워듣고 산담?

무엇보다, 소문 자체도 그렇게 믿을 건 못 된다.

다른 건 몰라도, 젊을 적 영웅의 모습이 떠오르는 헌터라니.

피식,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리고 만다. 방금 전, 이준구의 낯짝을 떠올리고 만 탓이다.

뭐, 확실히 그렇게 회자될 만은 했다.

내가 지향하는 바와는 별개로, 둘의 능력 자체는 확실히 학생들 사이에서도 군계일학이었으니까.

이예은의 경우, 저번 체력 단련에선 하연이에게 밀리긴 했지만…….

'능력까지 포함하면 그 이상이지.'

말하자면, 보유하고 있는 능력의 총합치 자체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

그런 만큼, 다른 애들에 비해선 다소 여유가 있다.

스스로가 헌터라는 사실을 비교적 최근 깨달은 탓에, 아직 스스로의 능력을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고 있는 하연이와 비교하면 더더욱.

그렇기에, 다른 애들이 아직까지 내 요구 조건에 부합하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는 사이 나는 그녀를 가장 먼저 호명한 셈이었다.

"글쎄요, 몬스터를 사냥하는 게 일이니까?"

"정확해."

그렇게.

어찌저찌 독대하게 된 그녀의 첫인상은, 솔직히 말해 상당히 낯설었다.

도대체 어디가 한국인이냐 싶은 외모에 대해선 이미 이야기했지만, 인상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이준구는 쓸데없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언제나 태평한 분위기를 두르고 있는 남정네였다.

하지만, 눈 앞에 있는 그녀는 달랐다.

냉엄하다기보다는 냉정.

가까이에서 본 그 하늘빛 눈동자는, 일찍이 사진 속에서 보았던 것과는 달리 겨울철의 서릿발을 닮았다.

담겨 있는 감정은 귀찮음. 혹은, 무관심 내지 지긋지긋함.

특유의 단아한 외모와 되바라지게 갖춰 입은 교복 덕에 입만 다물고 있으면 가련한 아가씨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었지만, 도저히 이준구의 여동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새끼, 도대체 뭘 어떻게 하고 있길래 여동생이 이런 성격으로 자란 거야?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런 말을 해야 할 건 비단 성격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 시선으로부터 눈을 돌리듯 창밖을 향해 시선을 던지곤 말을 이었다.

"그래. 사람들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결국 그런 거지. 괴물 잡는 사냥꾼 말이야."

"하아."

"틀린 말은 아니야. 결국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는 몬스터를 사냥하는 거니까."

그렇기에, 사람들은 우리를 사냥꾼Hunter이라 부른다.

웹소설 등에서 우리가 하는 일을 헌터라 불렀기 때문이 아니라.

능력을 각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 하나 깨달은 바는 없다.

사람을 능가하는 힘을 가졌으나, 사람을 초월한 존재?人라고 말할 수는 없다.

헌터들의 공적을 칭송하며 영웅시하는 이들은 많으나, 정말로 영웅??이라 불릴 만한 이들은 잘 없다.

바로 그렇기에, 이 햇병아리들에겐 영웅이라느니 각성자라느니 하는 이름보단 헌터라는 명칭이 훨씬 더 잘 어울렸다.

그리고.

내가 일말의 당황과 함께 짜증을 느끼고 있는 이유 또한 바로 거기에 있었다.

누군가는 복수를 위해. 누군가는 생활을 위해.

각자 다른 이유로 싸우고 있는 이 세상에서, 적어도 녀석만큼은 영웅이라 불릴 자격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영광을 위함이 아니라 몬스터의 습격 속에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헌터가 되었고, 그 끝에 고통받는 헌터들을 위하여 정계에 투신한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제 여동생을 이렇게 될 때까지 방치해 둔 건지 나로서는 도저히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실망.

어쩌면 내가 녀석에게 느끼고 있는 감정은 그렇게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능력 한 번 써 보렴."

갑작스러운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하연이의 말마따나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던 거겠지.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의 몸 주변으로 바람이 맴돌았다. 아니, 맴도는 건 바람이 아니다. 방출된 마력이, 그리고 그 마력으로 정제된 순수한 힘이 휘감기며 주변의 공기를 머금은 것이다.

염동력.

잘 쳐 줘도 박이부정이라 해야 할 내 능력과는 달리, 진정으로 만능이라 할 수 있을 법한 힘이다.

어떠한 형태도 형체도 없는 무형의 힘을 다룰 수 있는 능력. 방출할 수 있는 힘의 강도는 단련한 수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를 어떤 식으로 방출하고 가공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성질을 부여할 수도 있다.

단순한 편의성이라면 수많은 능력 중에서도 최상위.

문자 그대로, 만능이라 한들 과언이 아니다.

허나.

능력을 전개한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좁히고 말았다.

마치 갑옷처럼, 그녀의 신체를 중심으로 형성된 염동력 장벽.

말하자면, 그녀는 본인의 능력을 말 그대로 휘감은 상태였다.

능력 활용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만능이라 할 수 있는 염동력의 제대로 된 활용법이라 해도 좋겠지. 저렇게 전신을 휘감은 염동력은, 필요할 때 갑옷이 되기도 하고 방패가 되기도 할 테니까.

공방일체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문제는, 어째서 그녀가 이런 식으로 능력을 활용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출력 문제는 아니다. 기록된 바에 의하면, 그녀는 100m도 넘게 떨어진 대상을 향해 정확히 염력을 적중시킬 수 있었다. 그러고도 위력이나 정밀성은 무엇 하나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였다고 하니, 굳이 저런 식으로 능력을 다룰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

만일 원거리에서는 염력에 의한 견제를, 근거리에서는 염동력 갑옷에 의한 격투전을 선호하는 거라면 나 또한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겠지.

허나, 그녀는 의문스러울 정도로 백병전을 고집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격투전에 뛰어난 소질을 지니고 있냐면 그 또한 아니다. 아니, 그녀의 신체 능력은 잘 쳐 줘도 평균 수준. 아무리 하드한 스케줄을 소화했다지만, 고작해야 한 달 만에 하연이에게 따라잡힐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저 정도 신체 능력으로 염동력 갑주를 사용해 봤자,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할 수는 없다. 반대로 염동력 갑옷에 끌려다니게 되겠지.

애초에, 정작 당사자부터 근접전을 선호하는 것 같지도 않고.

만일 그 뿐이었다면 단순히 능력 활용법이 비효율적이라는 걸로 끝날 이야기.

실제로, 저런 패널티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능력 활용은 훌륭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하간, 또래 여학생들 중에서는 달리 비교할 수 있는 이가 없을 정도였으니.

때문에, 그녀의 가정교사를 맡은 헌터들은 그런 그녀의 비효율적인 능력 사용법에 아쉬워하곤 했다.

저토록 비효율적인 능력 활용법을 가지고도 저렇게 우수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제대로 능력을 사용할 시 어떻게 될까?

그 결과, 그녀와 여러 차례 마찰을 빚었을 테고 말이다.

허나.

내가 보기엔 달랐다.

저건 단순히 비효율적인 능력 활용법이 아니다.

아니, 비효율적이라면 물론 비효율적이겠지만.

그러나 내겐 여태까지 그녀를 거쳐 간 헌터들로서는 알 수 없는 점이 보였다.

"그럼,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뭐가요?"

"정말로 몰라서 묻는 건 아닐 텐데?"

뇌신?.

저 독특한 마력 운용법은, 이준구가 그런 이름으로 불리게 된 이유.

다시 말해, 이준구 그 녀석이 제 몸에 체득한 능력의 특수 활용법 중 하나.

"헌터는 어디까지나 몬스터를 사냥하는 직업이지."

"……네, 그래서요?"

"그래서? 너, 지금 네 모습이 정말 몬스터를 사냥하는 데에 적합하다 생각하고 있기라도 한 거냐?"

동시에.

그 자식이 제 몸을 문자 그대로 100번 이상 번갯불에 튀기며 개발한, 놈만이 사용할 수 있는 개인기.

제 몸을 버리는 시그니처Signature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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