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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4화 (14/371)

〈 14화 〉 첫 수업

* * *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줄창 뺑뺑이만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체력이 딸리는 녀석들이 있다면 반대로 능력이 딸리는 녀석들 또한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학생들을 어떤 분야에서든 평균 이상은 할 줄 아는 헌터로 만드는 것. 정확히는 제 전문 분야가 아닌 부분에서도 C랭크 헌터에 준하는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당연히 현 시점 학생들의 실력을 이해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무작정 달리기만 시킬 게 아니라, 체력이 부족한 녀석에겐 달리기를 시키되 능력 개발이 부족한 녀석들에겐 능력의 활용성을 넓히도록 지시하는 식으로 말이다.

조금 마음에 걸리는 건,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점.

못 할 정도는 또 아니지만, 반대로 지나치리만큼 교사의 능력에 의존하는 면이 있다. 학생들의 능력을 파악하고 단점을 보완하며 장점을 부각시킨다? 말이야 좋지, 사실상 시작부터 끝까지 교사의 재량에 달렸다는 뜻이니까.

나야 그렇다 쳐도, 다른 교사들에게 가능할까 물으면 아무래도 회의적인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으리라.

'그 물건 몇 대 들여놓을 수만 있으면 획기적으로 편해질 텐데.'

협회에 있던 그 물건. 분명, 마력 검사기랬나?

물론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심정이기는 했다. 헌터의 등급을 대략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그 성질 때문에, 국가가 쌍심지를 켠 채 감시하고 있는 물건이다. 아무리 이 프로젝트에 정부 또한 한 손을 거들고 있다 한들, 어지간해선 들여놓기 힘들 테지.

애초부터 저걸 사 오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내 교육법이 차세대 헌터 아카데미에 적합한지 증명해야 할 필요가 있고.

요컨대, 지금 담당하고 있는 학생들이 전선에 나설 때까지 못 해도 3년은 걸린다는 뜻이다.

자신은 있다. 적어도 내 방법이 국가가 바라는 차세대 헌터의 육성엔 가장 큰 도움이 되리라는 확신이.

그러나, 정부로서는 예 그렇습니까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도 없는 노릇이겠지.

때문에, 지금도 자신과 같은 처지에 속한 교사들은 자율성이라는 이름 하에 포장된 책임을 짊어지고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커리큘럼을 짜고 있었다.

"네가 보기엔 어떠냐?"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나는 다른 교사들보단 나은 상황이었다.

여하간, 내게는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정보원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정작 우리 학생 측 첩자, 다시 말해 자하연 양은 내 말에 퉁명스러운 어조로 대답할 뿐이었다.

"뭐가요?"

"아니, 애들 분위기는 어떤가 해서."

"다들 한 마음 한 뜻으로 오빠 뒷담 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응? 진짜로……?"

조금 쇼크였다.

다른 게 아니라, 네가 없을 때 호박씨 깠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에 깃든 환멸감 때문이다.

"그럼 그렇게 애들 뺑뺑이 돌리고도 욕 한 마디 안 먹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당연히 그래야지, 이게 다 하늘같은 스승의 은혜인데."

물론 처음 할 때야 당황스럽고 욕도 나오겠지만, 나중엔 이거 어디 가서 돈 주고도 못 배운다.

뻔뻔스러운 태도로 그렇게 대꾸하자, 그녀 또한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사실 별다른 말은 안 나오고 있어요."

"어? 왜? 나라면 분명 쌍욕 박았을 텐데."

"……걔들이 오빠보다 착해서 그런 건 아니고, 저번에 정필연인가? 걔랑 대련했었잖아요."

"아아, 걔? 실력 괜찮더라."

"그 때 모습 때문에 다들 납득하는 것 같아요. 실력도 있으니까. 정필연 걔는 더더욱 그렇고요."

들어보니 남자애들 쪽은 딱히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다. 하긴, 그 나이면 주먹 센 놈이 무조건 최고지.

"여자애들은?"

허면, 문제가 되는 건 여자애들 쪽이다.

물론, 다른 애들과 비교했을 때 이제 막 헌터가 된 그녀에게 주변을 살필 만한 여유가 있었으리라 생각하긴 어렵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녀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배우는 게 빨랐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머리가 좋았던 것도 있겠지. 내가 알려주는 지식들을 탐욕스레 흡수하는 모습은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난생 처음 이 업계에 발을 들인 요 계집애가 고된 훈련을 앞두고도 게으름 한 번 피우지 않은 건 천성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었다.

덕분에, 그녀는 일찍이 내가 걱정했던 바와 달리 반에서 나름대로 입지를 다지는 데에 성공했다.

거기에는 물론 정필연과 함께 내 무지성 뺑뺑이를 마지막까지 견뎠다는 간판도 한 몫 했겠지만.

사실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캐릭터이기도 했다. 여태까지 이름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신입이, 나름대로 내로라하던 차세대 헌터들도 나자빠지는 수업을 태연한 얼굴로 소화한다?

'심지어 비주얼도 나름대로 받쳐주고 말이지.'

반의 중심 인물이 되기엔 충분한 요소다.

다른 녀석들이 이만큼만 해 줘도 나 또한 상당히 편해지겠으나, 아무래도 그건 너무 과한 기대겠지. 그러니까 이렇게 뺑이치고 있는 거고.

"그러고 보니, 그런 얘기가 있긴 했어요."

"무슨 얘기?"

"이예은이라고 있죠? 우리 반에."

"아아, 걔? 알긴 알지."

여러모로 이목을 끌게 된 탓일까? 하연이 또한 들은 게 있었는지,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칼을 배배 꼬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예은이라.

기억을 뒤적일 필요도 없었다. 여하간, 그만큼 선명하게 기억에 남은 신입생도 드물었으니까.

남학생들 중에 정필연이 있다면, 여학생들 중에는 이예은이 있다.

입학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일컬어진 차세대 헌터들 중 한 명이다. 어쩌다 보니 지금은 자하연 양께서 관심을 끌어모으고 있지만, 본래라면 가장 주목받는 여학생이 되었겠지.

아니, 사실 지금도 충분히 눈에 띈다.

허리춤까지 길게 늘어뜨린 레몬색 머리칼. 잘 무르익은 밀밭처럼 샛노란 머리카락 위로 차분히 존재감을 주장하는 하늘색 눈동자. 거기에, 학생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기품까지.

한 마디로 말해…….

"존나 웃기게 생기긴 했더라. 그 와꾸로 한국인이래."

낄낄거리며 그리 말하자, 그녀는 조용히 눈매를 좁혔다. 아니, 그 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독특한 제 머리카락을 붓처럼 쥔 채 휙휙 흔들어대는 게 아닌가.

위협 아닌 위협에 나도 모르게 시치미를 떼자, 그녀 또한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늘어뜨리곤 마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정말로 그런 생각만 하고 계신 건 아니죠?"

"뭐, 그렇지."

저것도 본심이긴 하지만, 반대로 그 뿐만은 아니었다.

애초에 정필연의 이름조차 모르던 내가 이제 와서 유망주 이름 따위를 외우고 있을 리가 없잖나.

"걔, 이준구 동생이잖냐."

인류 최강의 헌터, 이준구.

다시 말해, 이예은은 내게 이번 일을 떠맡긴 그 개자식의 여동생이었다.

"겁나 안 닮긴 했더라."

"……어느 쪽 보고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누군가의 명예를 위해 묵비권을 행사하마. 그거야 어쨌든, 걔가 왜?"

"확실한 건 아닌데, 조금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돌더라구요."

"엉?"

이어진 그녀의 말에 나 또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문제라니?

이준구에 대해 알고 있는 나로선 아무래도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준구 그 놈이 제 여동생한테 뭔가 문제가 있다는 판국에 헌터 해도 된다고 내버려 둘 놈은 절대 아닌데.

허나, 다행스럽게도 그녀가 들은 바에 의하면 녀석의 여동생에게 무언가 신체적인 장애가 남은 건 아니라는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내게는 더 큰 문제일지도 모르겠지만.

"저도 듣기만 한 거라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중학교 시절 다른 헌터들한테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응? 그게 왜?"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상대는 이준구 그 놈의 여동생이다. 재능이 있을 것 같진 않지만, 반대로 영웅의 여동생이라는 네임 밸류가 있다면 침 한 번 발라두려는 녀석들은 그야말로 수두룩할 테지.

무엇보다도, 이준구 본인 또한 그런 일에 돈을 아끼는 성품은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말없이 그녀의 대답을 재촉했다.

그리고.

"그런데, 여태까지 걔를 가르친 헌터들 중 3개월을 버틴 사람이 없대요."

씨발.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려던 욕지거리를 간신히 억누른다. 아무리 그래도 애 앞에서 욕이나 찍찍 내뱉을 수는 없지.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눈 앞의 소녀가 없었다면 시원스레 욕 한 사발 쏴갈기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니,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당연하지만, 업계 최상위 헌터들에게 있어 돈이란 썩어날 정도로 남아도는 물건이었으니까. 적어도 내게는 그랬고, 협회 소속이자 공식 인류 최강인 이준구라면 더더욱 그렇겠지.

어쩌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나칠 정도로 많은 돈. 거기에 오빠라는 양반은 대한민국의 영웅에 인류 최강의 헌터. 성격이 뒤틀리기 딱 좋은 여건이다.

다만.

"뭔가 이상한데?"

아무리 그래도 이해하기 힘든 점이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이준구가 오빠의 이름을 빌어 깝죽대는 여동생을 가만히 내버려 둔다고?

도저히 상상이 가질 않는다.

내가 알고 있는 이준구라면 그 날로 여동생의 다리 몽뎅이를 부러뜨려 놓거나, 사회에 환원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해버릴 놈이었으니까.

비 등록 헌터들이 저지른 일로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자, 나를 찾아와 윽박지르던 이준구의 귀신같은 형상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비록 그 이후 어찌저찌 오해를 풀긴 했지만, 내가 헌터들의 직업 윤리 운운하는 데에는 당시 분노한 이준구가 저지른 짓거리를 목격한 영향 또한 분명히 있었다.

'그런 녀석이 제 가족이랍시고 싸고돌 것 같진 않은데.'

힘을 합쳐 예의 범죄자 헌터 집단을 토벌하던 날, 비 등록 헌터들의 사지로 꽃꽂이를 하던 이준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밖에서는 목에 힘주고 다녀도 정작 집 안에선 한없이 나약해지는 기러기 아빠들의 숙명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이준구가 그런 부류라고 생각하는 건 다소 모양 빠지는 게 없잖아 있었다.

"일단 내가 기억하기론 학생부엔 별 문제 없었거든. 이준구 그 놈도 정계 투신했으니까 여동생 갑질 문제 터졌으면 내가 모를 리 없는데……."

"오빠, 저희 TV 없잖아요."

"아, 맞다. 나중에 따로 하나 사자. 어쨌든, 왜 그랬는지 이야기 나도는 건 없고?"

"있긴 있는데, 저도 듣기만 한 거라서 확실하지는 않아요. 괜찮으세요?"

"상관 없어, 상관 없어. 나 도와준다고 생각하고 말 좀 해 보렴."

내 말에 골똘히 생각에 빠지는 자하연 양.

나 원 참, 이렇게 헌신적인 피보호자가 있어야 굴러갈 수 있는 교직 생활이라니. 도대체 다른 반 담임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 걸까? 익숙치 않은 교사 생활에 치여 하루하루 시체가 되어가는 직장 동료들에 대한 애환이 늘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따로 시간이라도 내서 회포를 풀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식으로 열악한 직장 환경에 대해 씹어대고 있자니, 마침내 그녀 또한 무언가 떠오른 듯 작은 탄성을 토했다.

"듣기로는, 다들 그 애의 전법에 손을 대려고 했대요."

"씨발."

결국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뚱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 찰싹 주둥이를 때려두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속내는 바뀌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내가 하려는 일이야말로 바로 그런 지적의 총체였으니까.

학생들의 단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살린다.

……단순히 이전 선생들에게 실력이 없었을 뿐이라면 괜찮겠지.

하지만, 만일 그 애를 가르친 모든 헌터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할 만큼 엉망인 전법을 고수하고 있는 거라면?

그리고 이를 지적하는 헌터들을 무차별적으로 내쫓았던 거라면?

"어이가 없네, 진짜."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다른 반 담임들을 동정하던 내 앞에, 문득 바위산이 나타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준구 이 새끼,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집안 사정은 알아서 단속해야 할 거 아니야.

'아무래도 뭔가 단단히 꼬인 것 같은데.'

자신도 모르게 삐져나온 투덜거림을 억지로 끊는다. 어쩐지 상당히 골 때리는 사안을 떠맡은 듯한 기분이 들지만, 그렇다 쳐도 지금 당장에 어찌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딱, 혀끝을 퉁기며 의식을 전환했다. 여하튼, 당장에 걔한테만 집중할 수도 없으니.

"말해줘서 고맙다, 하연아."

"으응, 뭘요. 도움은 되셨나요?"

"옹야."

"그럼 다음엔 좀 살살하세요. 반에서 오빠 욕 먹는거 보고 있는 제 기분은 어떻겠어요?"

"……그래. 선처하마."

결국, 당장은 떨떠름한 어조로 그리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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