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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3화 (13/371)

〈 13화 〉 첫 수업

* * *

솔직히 말해, 정필연은 당시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새로 부임했다는 담임 교사나 왁자지껄한 교실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소란스러운 걸 좋아한다곤 도저히 농담으로도 말할 수 없는 성격이었지만, 만일 그 뿐이었더라면 정필연 또한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을 터였다.

허나, 누군가 장난처럼 담임의 경력을 언급한 순간 그의 기분은 단박에 가라앉고 말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여기로 왔다. 만약 또래 애들이랑 노닥거릴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입학하지도 않았겠지.

때문에, 그는 여타 동급생들과 달리 담임의 경력을 도저히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헌터로서 제대로 된 경력 하나 없다니? 요컨대, 몬스터 한 마리도 해치워 본 적 없다는 소리 아닌가?

물론, 모든 명감독이 뛰어난 플레이어였던 건 아니다. 어쩌면 담임 또한 그런 부류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한들 자신이 현역 시절 삼류 선수였다고 떠벌리는 감독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도발 비스므리한 야유에 내심 짜증이라도 났던 걸까?

다른 학생들의 제안에 응한 담임은 제 실력을 보여주겠다고 나섰고, 그 대련 상대로 정필연이 지목되었다.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이 업계에서 정필연이라는 이름은 나름대로 유명했다. 차세대 헌터, 그 명제에 가장 잘 어울린다 해도 과언이 아닐 유망주. 실제로, 각성과 동시에 몬스터를 참살하는 그 모습엔 현직헌터들조차 입을 모아 감탄을 토할 정도였다.

어느 정도 공치사는 있었겠지만, 초행에 C랭크 몬스터를 살해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 당시 소년의 모습을 목격한 헌터들은 물론이요, 정필연 또한 자신이 못해도 B랭크…… 어쩌면 A랭크 헌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 정도 재능은 있다. 노력을 아끼지도 않았다. 때문에, 담임인 박우찬의 태평함이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리라.

그렇게 검을 맞대길 2초.

정필연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했다.

사실 이 또한 정확한 표현은 아니었다. 여하간, 실제로는 제대로 검을 맞댈 수도 없었으니까.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정필연은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으로 노린 건 중단 찌르기. 아무리 그래도 대련이었던 만큼 급소를 노리진 않았지만, 충분히 위협적이라 할 만한 공세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정필연 본인에게는 그랬다는 소리다.

손에 쥔 회초리를 가볍게 튕겼다 싶었는데, 어느새 자신이 나가떨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땐 오랜만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심지어 다친 데도 없었다. 만일 어딘가 부딪히기라도 했다면 상처를 더듬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추측이라도 해 볼 수 있었겠지만, 이래서야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는 다시 말해 정필연과 박우찬 사이에 어마어마한 격차가 있음을 뜻했다.

자신과 현역 헌터 사이엔 이토록 아득한 도랑이 있었던 걸까?

아무래도 그건 아니겠지. 정필연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단순한 자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자신은 몇 번이나 현역 헌터들의 싸움을 본 적이 있었다. 개중에서도, 최상위 헌터인 A랭크 헌터들의 움직임은 확실히 따라가는 것조차 버거웠다.

달리 말하자면, 버거울 뿐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정필연은 언젠가 자신 또한 저 영역에 오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말하자면, 정필연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 이상으로 자신이 언젠가 A랭크 이상의 헌터가 되리라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박우찬에게선 그런 확신을 느낄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이는 다시 말해 박우찬이 현역 헌터들보다 훨씬 더 높은 경지에 있음을 뜻했다.

협회의 눈은 장식인가?

정필연으로서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저만한 실력자가 여태까지 대단한 실적 하나 없다니, 뭐가 어떻게 된 걸까? 언제나 헌터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협회원들의 투정은 당최 뭐였던 걸까.

단지, 그런 정필연이 보기에도 확실한 건 한 가지.

좌천이라도 당한 건지 아니면 편벽한 은거 기인이라도 되는 건진 몰라도, 저만한 헌터에게 사사할 수 있다는 건 정필연은 물론이요 다른 학생들에게 있어서도 크나큰 행운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마음먹은 정필연이라 해도 지금 이 상황은 견디기 힘들었다.

"존나 힘드네에에에엑!!"

헌터 아카데미 입학, 그 다음 날.

예의 대련 이후, 박우찬이 처음으로 진행한 수업은……무지성 운동장 뺑뺑이였다.

*

그리고 지금, 내 앞에는 지쳐 널부러진 학생들이 턱끝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며 헉헉대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내가 학생들에게 지시한 건 단 하나였다. 일단 달려라. 정말로 더 이상 못 하겠다 싶으면 자체 열외해도 상관은 없지만,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진 달려라.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친절한 과제다. 그렇지 않은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몇 초 안에 다녀오라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허나, 아무래도 녀석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아니, 첫날부터 이게 무슨……."

"이게 말이 돼요?!"

특히나 강하게 불만을 토로한 건 역시 후위직. 다시 말해, 원거리 공격수들이었다.

무기를 사용하든 능력을 사용하든, 후열에 서서 몬스터들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퍼붓는 게 역할인 녀석들이다.그런 만큼 당연히앞에서 무기를 들고 싸우는 전위직보다 체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고, 부족해도 되는 녀석들이니만큼 아무래도 불평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저 녀석들보단 나을 뿐, 전위들 또한 투덜대긴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이 아카데미에 입학한 건 어디까지나 헌터가 되기 위해서지, 마라토너가 되고자 했던 건 아니라는 논지였다.

심지어 저번에 어루만져 준 정필연까지 어느 정도 저런 생각에 동의하고 있는 판국이었으니, 실질적으로 이 반에선 단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불만을 품은 셈이었다.

당연하지만, 그 남은 한 명도 우리 자하연 아가씨고. 그조차도 요 한 달간 내가 비슷한 방법으로 굴린 탓에 익숙해졌을 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학생들 전원이 징징대고 있는 셈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자하연 또한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다른 애들보다 여유가 있기는 했지만, 설마 여기까지 와서도 같은 일을 시킬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거겠지. 아무래도 남은 시간 동안 뒤늦게 각성한 자신과 다른 애들의 차이를 메꾸고, 입학 이후 본격적인 전투 훈련에 들어갈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어쩌냐, 난 앞으로도 계속 이럴 건데.

"야, 야. 체력이 국력이다, 얘들아~"

"그게 뭐에요!"

"아, 진심. 말도 안 나와."

낄낄대는 웃음 위로 조롱을 한 스푼 얹자, 반응들이 참으로 감미로웠다.

물론, 대책 없이 일단 뛰고 보자는 식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여하간, 내 역할은 어디까지나 교사. 앞으로 3년, 이 녀석들을 어엿한 헌터로 만들어야 하는 게 내게 주어진 책무였다.

"그래, 나도 너희 불만 다 안다. 여기 들어오면 멋지게 싸우는 법 배울 줄 알았다 이거지?"

"네!"

"그럼 포기해, 이것들아. 앞으로 1학기는 기초 훈련만 할 거야."

너무나도 당당하게 그리 선포하는 내 말에, 녀석들은 어안이 벙벙해 제대로 된 반대 하나 표출하지 못했다.

아니, 뭐. 나야 편해서 좋긴 한데.

"너희들 얘기는 그거지? 왜 이제 와서 갑자기 체력 단련이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멋들어지게 몬스터랑 싸우고 싶다! 뭐 그런 거."

"네!"

"당연히 안 되지, 인마. 만약 그러면 너희 다 뒤져~"

갑자기 튀어나온 폭언에 아이들의 얼굴이 당황으로 젖었다.

허나, 정작 그 중에서도 이 말에 섞인 진솔함을 눈치챈 녀석은 없는 듯했다.

"너희들이 알고 있는 게이트 공략은 어떠냐? 서로 확실하게 역할을 나눠서, 척척 하고 제 할 일을 마친다. 그런 모습들만 봤을 거야, 그렇지?"

"그럼 아니에요?"

"당연히 아니지! 애초에, 너희가 몬스터라고 생각해 봐라."

영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 녀석들. 그 모습에 갑갑한 나머지 가슴을 두들기고 만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녀석들은 무엇이 이상한지 눈치채지 못했다.

서로 역할 분담 잘 해서, 그러면 좋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눈에 밟힐 정도였다.

사실 꼭 틀린 말도 아니었다. 한 사람이 뭐든 떠맡는 것보다 각기 제 할 일을 하는 분업 쪽이 효과가 더 좋은 건 당연지사. 실제로, 이 녀석들이 접할 수 있을 법한 매스컴 속 헌터들은 언제나 그렇게 효율적인 모습으로 사냥에 나서곤 하니까.

사람이 쓸 수 있는 시간은 결국 하루 24시간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하루의 태반을 능력 개발에 할애한 녀석과 전반적인 연습에 쏟는 녀석 중 누가 더 강력한 능력을 지닐 수 있겠는가?

당연히 전자가 될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말해서, 지금 내가 하는 말들은 게임으로 따지면 망캐를 만들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아마도 녀석들에게 있어선 낯설다 못해 이질적인 발언으로밖에 들리지 않겠지.

하지만.

"사냥은 게임이 아니다. 현실이지."

"……?"

"A랭크가 됐다고 E랭크 몬스터의 공격을 무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D랭크 헌터라고 해서 B랭크 몬스터를 잡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이 말이야."

공교롭게도, 몬스터가 즐비하는 이 세상은 게임이 아닌 현실이다.

그리고 현실인 이상, 게임처럼 알기 쉬운 레벨 제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방금 전 A랭크 몬스터를 사냥하고 왔다고 말하던 누님이, E랭크 볼퍼팅어한테 당해 피순대 파티를 벌이는 게 바로 이 업계니까.

하물며, 몬스터에게도 지능이 있다.

협회의 홍보 동영상처럼 역할을 분담할 경우, 확실히 효율은 오르겠지. 하지만 그 경우 당연히 몬스터들 또한 분단을 노린다.

헌터들 또한 사람인 이상, 언젠가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 호흡을 맞춘 헌터들끼리 모여 결성한 파티나, 엄격한 상명하복 체제 하에 성립되는 군이라 해도 이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그렇게 실수한 틈을 파고든 몬스터에 의해 파티가 분단될 경우, 지나치게 효율화된 파티는 십중팔구 전멸을 피할 수 없다.

말하자면 유리칼과 같다. 사람이 쓸 수 있는 시간은 결국 하루 24시간. 그렇다면, 하루의 태반을 능력 개발에 할애하는 이를 전반적인 연습을 중시하는 자가 따라잡을 수 있을 리 없듯이……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

동료를 지키는 일 외에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전사가, 홀로 몬스터들의 군세를 뚫고 자신과 따로 떨어진 파티원들을 구해낼 수 있을까?

전사 뒤에서 불꽃을 던질 줄만 아는 화염술사가, 파티와 분단된 상태에서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버틸 수 있을까?

그런 것이다.

실제로 이 아카데미의 교과서, 정확히는 군 소속 헌터들의 운용법에 대한 메뉴얼을 저술한 청준필 준장도 그렇게 말했다.

지금 자신이 저술하는 건 어디까지나 군용 메뉴얼.

여러 헌터들이 상명하복 체제 하에 하나의 생물체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때에야 효과를 발휘하는 방법이며, 그조차도 어느 정도의 피해를 전제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만일 이를 보고 어중간하게 따라했다간 오히려 피해가 더 커질 수도 있노라고 말이다.

……소위 말하는 영웅적 헌신이나 희생을 무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헌터란 곧 사냥꾼이다. 크게 한 방 터트리고 뒈져버리는 건 어디까지나 영웅의 역할. 우리들은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아남아 한 마리라도 더 많은 몬스터를 저승길로 보내야만 한다. 그러는 게 장기적으로 몬스터의 수를 줄이는 데에도, 헌터 업계에 있어서도 도움이 되는 일이니까.

때문에, 나는 이 녀석들을 그런 식으로 키울 생각이었다.

설령 칼잡이라 해도 몬스터들의 원거리 공격에 무력하게 나자빠지는 일이 없도록. 설령 활잡이라 한들 몬스터가 영거리까지 접근한 상황에서 맥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없도록.

먼 훗날, 손발이 맞는 헌터들을 구해 역할을 분담하는 건 상관 없다.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지 간섭할 생각은 없으니까. 하지만, 최우선 과제는 우선 살아남는 거다.

최전선 헌터들의 화려한 삶에 경도되어 멋들어진 마법사마냥 싸우고 싶다는 마음도 이해한다. 언뜻 보면 이런 식의 훈련은 지독히 비효율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길러내야 하는 건 어디까지나 차세대 헌터.

화려하게 피고 지는 영웅 나으리들이 아니라, 언젠가 찾아올 제 3차 대침공을 대비해 이 나라를 지켜낼 첨병들이다.

필요한 건 날이 잘 들되, 그 이상으로 쉽게 부러지는 유리칼이 아니다.

다소 추레하나마 살아남을 수 있는 사냥꾼이다.

"다들 알아들었지?"

"네!"

"좋아. 그럼 적당히 몸도 풀렸겠다, 슬슬 다시 뛰자."

이 다음엔 이렇게 측정한 각자의 기술이나 능력 등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방향성을 잡아줘야 할 때다.

썩 귀찮은 일이긴 했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 또한 화려하게 성과를 찔리다 허를 찔려 단번에 사망하는 얼간이들보단 어떻게든 살아남는 쪽이 낫다는 파.

무엇보다도, 지금은 내가 이 녀석들의 담임이자 스승.

비록 야매 교사나 다름없는 나라고 해도, 내 학생들이 줄줄이 죽어나가기라도 하는 날에는 아무래도 뒷맛이 씁쓸하지 않겠나.

당장은 죽을 맛이겠지만, 지금 고생하면 적어도 나중에 쉽게 까무라칠 걱정은 없으리라는 생각에 나는 망설임 없이 기절할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학생들을 재촉하기로 했다.

자, 힘 내라 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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