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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2화 (12/371)

〈 12화 〉 개교

* * *

헌터 아카데미.

대한민국 정부와 헌터 협회가 손을 잡고 야심차게 시동한 이 교육 기관은, 겉으로 보기엔 어디까지나 평범한 고등학교처럼 보였다.

재학 중인 학생들의 연령대부터 그렇거니와, 국어나 수학 등이 즐비한 시간표만 봐도 그렇다.

이는 물론 평화의 시대가 찾아왔노라 굳게 믿고 있는 일반인들에 대한 위장이다. 허나, 본질적으로 이 헌터 아카데미는 어디까지나 국가에 귀속된 준 군사기관이었다. 정부와 협회의 협력이라고 말은 했지만, 헌터 협회가 사실상 국가에 소속된 헌터들의 노동 조합에 가까운 구조라는 걸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랬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면, 저런 평범한 수업들에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사실, 협회가 헌터들을 교육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바로 저런 일반 교양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날뛰는 몬스터가 상대라면 대비할 수라도 있지, 윤리 도덕 없이 갑자기 미쳐 날뛰는 헌터는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그러나.

결국 헌터 아카데미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준 군사 기관.

다시 말해, 차세대 헌터들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 기관이었다.

"오늘부터 이 1학년 A반의 담임이 된 박우찬이라고 한다. 잘 부탁한다."

당연히, 각 반의 담임은 전직 헌터.

다시 말해 체육 선생들이었다.

물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여하간, 교사 자격증은커녕 고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한 내가 역사 따위를 가르칠 수 있을 리도 없고. 결국 내가 담당하는 과목은 평범한 고등학교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비대화한 체육 시간 정도였다.

'그렇다 쳐도…….'

스윽, 반 안을 훑는다. 처음 들었을 때 예상했던 바와는 달리, 반의 분위기는 썩 무난했다. 인원은 대략 10명 정도. 무슨 기준으로 반을 나눈 건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당장에 모난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긴, 상대는 이제 막 헌터가 되려는 햇병아리들. 누구 하나 사연 없긴 힘든 시대였지만, 반대로 모든 이들이 벌써부터 눈에 지독한 살심을 품고 있진 않았다.

"오~"

"멋있다~"

"선생님 오늘 수업 안 하죠?!"

오히려 저런 식으로 장단을 맞추기도 했다.

좋은 일이겠지. 아무리 몬스터 죽이는 방법이나 가르치는 게 일이라 해도, 이 나이대 애들이 우중충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보기 안 좋은 법이다. 아니, 이 애들도 나한테 그런 말을 들으면 곤란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을 삼키며 출석부 속 사진과 학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대조한다. 어떤 애들이 배속되었는지 대충 듣기야 했지만, 그래도 담임을 맡은 이상 얼굴 정도는 외워둬야겠지.

물론 이미 알고 있는 얼굴도 있었다.

당연히, 지금 이 쪽을 향해 슬며시 손을 흔들고 있는 우리 자하연 아가씨다.

눈이 마주치자 샐쭉 눈웃음치는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코끝을 씰룩였다. 요 며칠, 기초 체력이라도 쌓는답시고 힘껏 굴려댄 탓일까?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그녀는 퍽 마음에 여유가 생긴 모양이었다.

고작 첫 날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실제로 딱히 모난 모습을 보이지도 않는 듯했고.

"자, 자. 진정들 하고. 그래, 아무리 그래도 첫 날부터 수업 들어갈 생각은 없다."

"오~"

"단, 이건 어디까지나 내 이야기니까 다른 선생님들한텐 알아서 양해들 구하고."

"에이~"

언제 봤다고 저리 합을 맞추는 건지 모르겠네. 결국 나 또한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처음엔 엉겁결에 떠맡은 일이기도 했던 만큼 거부감 또한 없잖아 있었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냥저냥 귀여울 뿐이다.

"보자, 이제 와서 자기 소개 따위 하자고 해도 시간만 아깝겠지?"

"네!"

"그럼 이 시간은 선생님한테 질문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사실 선생님도 이런 건 건 처음이라 좀 떨리거든? 선생님 원래 헌터였다는 건 들었지?"

이번엔 대답 없이 웃기만 한다. 그런 학생들의 모습에 나 또한 어깨를 으쓱이는 걸로 질문을 재촉했다.

뭐, 딱히 특별한 질문은 없었다. 몬스터를 잡아본 적 있냐던가, 실제로 몬스터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냐던가. 역시 헌터 아카데미라고 해야 할까? 업계에 관련된 질문이 많았다. 가끔씩 여자친구 있냐던가 하는 식으로 전혀 관계 없는 질문도 나오곤 했지만.

물론 이 쪽이 염두에 두던 질문도 나왔다.

"그런데 어떻게 교사가 되신 거에요?"

"아, 맞아! 선생님 이름 검색해 봤는데 아무 것도 안 나와요!"

"낙하산 아니야, 낙하산?"

왁자지껄 장난스레 터져나오는 웃음소리.

지금이야 장난처럼 말하고 있지만,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아무래도 영 곤란하겠지? 나도 그렇지만, 저 애들 또한 말이야.

여하간,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애들 또한 헌터 지망생. 여러모로 생각하는 바가 있으니 이 아카데미에 발을 들인 걸텐데, 그런 상황에서 제 담임이 낙하산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도저히 유쾌한 기분은 못 될 게 뻔했다.

그렇다 쳐도, 내 입으로 현역일 땐 어땠다느니 하는 식으로 말해 봐야 제대로 된 증거 하나 없는 공치사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를 대비해 예의 여신의 처소를 찾았던 거기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담임이란 양반이 성좌에게 선택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닌다는 건 조금 그렇겠지.

이래서 사람이 실제로 뭘 할 수 있느냐보다 자격증을 우선시하는 시대가 온 모양이다.

"글쎄?"

"어어, 빼는 거에요?"

"진짜 낙하산인가봐, 어떡해!"

뭐, 그거야 어쨌든.

사실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던 질문이기도 한 만큼, 대답 또한 정해져 있었다.

"너희같은 병아리들 가르치는 데에는 그 정도로도 충분하니 그렇겠지?"

넉살 좋게 대답을 돌렸다.

정확히는, 그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던진 대답에 반향은 돌아오지 않았다.

묘한 정적.

갑자기 찾아온 침묵에 내가 코끝을 씰룩이고 있을 무렵, 다음 순간 폭소가 터져나왔다.

"오, 우리 담임 멋있다!!"

"자신감 넘친다!!"

"박 우 찬!! 박 우 찬!!"

그러더니 이제는 꼴사납게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한다.

솔직히 말해 좀 쪽팔렸다. 아니, 내가 저 나이 땐 저렇게 요란스럽진 않았던 것 같은데. 내 기억으론, 저 나이 때 나는 누구보다도 침착하고 온화하게 몬스터들을 발라내고 있었다…….

"실력 한 번 보여줘라!!"

심지어 저런 말까지 할 정도였다. 끽연하는 오랑우탄마냥 쾅쾅 책상을 내리치면서 말이다.

아니, 실력을 보여달라고 해도…….

"음, 나야 상관은 없지만. 어떻게?"

그야 눈 앞에 몬스터가 나타나기라도 하는 날에는 실력을 보여주다 못해 아예 작살을 내놓겠지만, 지금 당장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 따윈 있지도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 문득 학생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리는 게 느껴졌다.

시선을 따라가 보자, 곤란한 듯 떨떠름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남학생이 보인다. 훤칠한 인상. 그 이상으로 날카로운 안광. 거기에 교복 너머로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탄탄한 근육까지. 모르긴 몰라도, 제 몸뚱아리 하나 못 가누는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힘깨나 쓰겠다는 인상이 있었다.

누구야, 그래서?

잘 모르겠는데, 학생들 사이에선 유명한가?

"선생님, 정필연 쟤도 한 실력 해요!"

"둘이 실력 한 번 보여 주세요!!"

다행스럽게도, 내가 꼴사납게 묻기 전부터 대답을 준비한 학생들이 있었다.

……아아, 과연.

그 이름을 듣자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정필연. 처음 헌터로 각성한 날 목검 하나만 들고 C랭크 몬스터를 회쳤댔던가?

비주얼도 나쁘지 않고, 세간에서는 차세대 헌터들 중 한 명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것도 같다. 아직 학생인 주제에 몬스터 토벌 경력이 있어서 기억하고 있었지.

그렇다 쳐도, 차세대 헌터인가.

'확실히 평화롭긴 하구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재능 자체는 나쁘지 않다. 최승준같은 생태계 교란종을 제외하면 최고급이라 할 수 있겠지. 적어도, 하루 종일 E랭크 몬스터랑 사투를 벌인 나보다야 훨씬 낫다.

아마 지금도 어느 정도 교육만 마치면 어지간한 헌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어지간한 수준으로는 안 된단 말이지.'

애초에 이 학교의 교장이 누구인가. 바로 그 최승준이다. 저 녀석도 만만찮지만, 놈은 처음으로 각성한 바로 그 날 제 집 앞마당에 생긴 게이트를 박살내고 그 게이트의 터줏대감이었던 A랭크 몬스터를 단독으로 공략했다.

단순한 재능으로 따질 시 이준구는 최승준을 훨씬 밑돈다. 것보다, 그 놈만큼 재능 없는 헌터를 본 적도 없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최승준조차 능가하는 인류 최강의 헌터라 일컬어지곤 한다.

그런 시대였고, 그럴 수밖에 없는 시대였다.

실제로 당시 최전선에서 싸우던 헌터들에게 있어 재능이란 딱 카테고리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말하자면, 이 녀석이 한때는 천재라고 불렸고 한때는 범재였으며 한때는 둔재라고 불릴 정도였다는 분류표.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재능이나 노력이라는 단어만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건 잘해도 A+랭크 정도.

S랭크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선 무엇이든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니, 이렇게 말하니까 꼭 꼰대 같긴 한데.'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은 그런 이야기.

단순한 재능만으로 차세대 헌터 소리를 듣는 시대가 왔다고 한들, 이 헌터 아카데미가 양성해야 하는 건 그런 평화로운 시대의 헌터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럴까?"

오오, 하는 환성이 터져 나온다.

허나, 정작 녀석은 영 내키는 얼굴이 아니었다. 하긴, 그렇게 나대는 성격도 아닌 듯했고.

어쩌면 단순히 불쾌한 걸지도 모른다. 사실 협회 실적으로만 따지면 저 친구한테도 뒤떨어지는 게 지금 내 처지였으니까.

이제 막 협회에 발을 들인, 27세 무경력 헌터.

녀석이 보기에, 나는 딱 그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게 뻔했다.

음, 이렇게 생각해 보니 애들 참 착하네. 나였으면 실력도 없는 낙하산 주제에 나대기는 엄청 나댄다고 들이받을 것 같은데.

"그으럼…… 체육관으로 가나요?"

"아니, 뭐 그렇게까지. 그냥 여기서 하자."

정필연의 미간이 눈에 띄게 구부러졌다.

내가 단상 안에 비치된 회초리를 꺼내들자 그 표정은 한층 더 심각해졌다. 으음, 어쩌면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말이지~'

아무리 그래도 이 나이에 애들이랑 부대끼면서 힘자랑하는 건 좀 부끄럽지 않겠냐.

고작해야 가벼운 대련 한 판. 진검을 꺼내는 것도 영 그렇고.

"자, 언제든 와도 괜찮아."

그렇게, 교실 안에서 때 아닌 싸움판이 벌어졌다.

어느새 다른 학생들은 책상을 밀어 나와 정필연 사이에 길을 만들어주었다. 마찬가지로 단상을 저 멀리 밀어둔 나는 회초리 끝을 가볍게 까딱였다.

와 보렴.

그 모습에, 정필연의 눈매가 한층 더 날카로워지고──.

다음 순간, 정필연의 모습이 앞으로 쏘아졌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목검을 어느새 뽑아든 채, 정면으로 달려드는 소년. 확실히, 아직 학생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 빠르다. 게다가, 몸을 움직이는 데에도 망설임 하나 없다. 비록 C랭크라고는 하나, 몬스터를 토벌해보았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라는 거겠지.

초보 헌터들 대다수가 자신의 능력이나 몬스터들에 대한 공포심 이상으로 무기를 휘두른다는 사실에 망설임을 느낀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훌륭하다 해도 될 정도였다.

어쩌면 평소부터 검도라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발디딤도 나쁘지 않고. 도저히 실내화에 교실 바닥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충실한 무게 분배다.

뭐,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녀석의 검은 세찼고, 그 이상으로 실력도 있었다. 지금 이 일합만 해도 동 랭크의 헌터나 몬스터들에게는 충분히 유효한 타격이 될 수 있으리라.

망설임이 없는 점도 좋다. 어느새 내 가슴팍까지 다가온 목검을 보며 그리 생각했다.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망설임이 없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될 정도다. 야야, 아무리 그래도 선생님 상대로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니냐?

사실 눈이나 목을 노렸다면 더더욱 좋았을 테지만, 일단은 담임 선생인 나를 향해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투덜거림이 삐져나왔다.

'제대로 갈고닦으면 좋은 사냥꾼이 될 수 있겠는데.'

재목은 나쁘지 않다.

그리 판단하며, 나는 회초리를 흔들었다.

…….

"어?"

그리고.

다음 순간, 정필연은 마룻바닥에 주저앉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렇게 말해도, 딱히 뭔가 엄청나게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진 않았다.

나를 향해 쇄도하는 목검을 회초리로 받아넘겼을 뿐.

요컨대?

흘리고, 쳐냈다.

그 결과, 정필연의 손에서 헛돈 목검이 빠져나가고…… 정필연 본인은 엉덩방아를 찧을 수밖에 없었다.

요란한 소리도 뭣도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마룻바닥에 학생을 쳐박아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힘 조절에도 꽤나 주의했고.

덕분에 정필연 또한 그 자리에서 멀뚱멀뚱 눈을 끔뻑거릴 수 있었다.

곧바로 일어서서 검을 줍거나 주먹질이라도 시도했으면 좋았겠지만, 벌써부터 거기까지 기대하기엔 아무래도 조금 버거운가.

뭐, 방금 전 교환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이는 어디까지나 본인에게 달렸겠지.

그리 생각하며, 나는 손목을 튕겨 그의 정수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자, 끝."

마침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애들도 만족했겠지? 속으로 그런 셈을 마치며, 나는 밀어두었던 단상 위에 놓인 출석부를 간단히 정돈했다.

"그럼, 질문은 여기까지 받는 걸로 하고……. 자, 다들 수업 준비 하렴. 책상 다 원위치로 해 두고. 안 해 두면 선생님한테 혼난다?"

아직까지 어리둥절한 태도로 일어서지 못하고 있는 정필연을 회초리 끝으로 일으키자, 당황한 녀석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이고, 곧 수업인데 애들 얼 빼놨다고 한 소리 듣겠네.

결국, 나로서는 정신 차리라는 의미에서 녀석의 어깨를 두어 번 정도 두들겨준 채 교실을 뒤로할 수밖에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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