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개교
* * *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사실, 달리 할 일도 없었다. 여신과의 밀담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내가 손을 쓸 수 있을 만한 일도 없었으니까. 때문에, 이번에 정리한 정보를 이준구에게 보낸 이후로 나는 하릴없이 시간만을 때우고 있던 참이었다.
물론, 비단 한가하기만 한 건 또 아니었다. 교과서도 내 식으로 편집해야 했고, 학사 일정 따위를 확인해두어야 할 필요성도 있었다. 처음엔 얼떨결에 떠맡은 일이었지만, 나보다 어린 꼬맹이들의 목숨이 달린 일. 대충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자하연, 그 애를 키울 필요도 있었다. 아무리 정식으로 헌터가 되었다 한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때문에, 그녀를 나름대로 차세대 헌터라는 단어에 어울리도록 훈련시키는 데에 나는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했다.
드물기는 했지만, 간혹 아는 사람들로부터 연락이 오기도 했다. 물론 헌터 시절 친구들이 아니라, 지하 단칸방에 살면서 두문불출하던 날백수 박우찬의 지인들이었다. 평소 체납 한 번 없이 꼬박꼬박 집세를 납부한 덕일까? 집주인 아주머니께서는 취직했다는 내 말에 놀란 얼굴로나마 축하의 말을 건네주셨지만, 개중에는 드디어 내가 돌아버렸다고 곡을 하는 녀석도 있었다.
여하간.
이런저런 일 때문에 또 지루하지만은 않았던 시간이 지나, 마침내 입학식이 다가왔다.
"저희 헌터 아카데미는 여러분들의 입학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3월 2일.
조촐하게 거행되고 있는 입학식을 뒤로한 채, 나는 아카데미 본관 사무실에 와 있었다.
본디 지금쯤은 입학식에 얼굴이라도 비추고 있었어야 할 테지만, 아무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아카데미 안에서, 나는 어디까지나 일개 교직원.
그리고 일개교직원 된 몸으로 교장의 호출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다.
어쩌면 진즉에 방문했어야 할지도 모른다. 여하간, 지금 나는 이준구의 위광을 빌어 이 자리에 끼어든 낙하산. 녀석이 나를 꽂아준 걸 보면 아무래도 이준구 또한 이 프로젝트에 적잖이 관련되어 있는 모양이었다만, 아무리 그래도 직접 학교를 운영해야 하는 입장일 교장으로서는 아무래도 거부하기 힘든 청탁을 받은 기분이었을 테니까.
허나, 아무래도 내가 지금 이 자리에 불려온 건 그 때문이 아닌 듯했다.
응?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고?
"살다 보니 이런 일이 다 있군."
왜냐하면 지금 이 교장실에서 나를 맞이한 이 놈팽이는, 내게도 썩 익숙한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최승준.
게이트 발생 이후, 수도 없이 요동치던 대한민국 재계에서도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대재벌 총수의 손자. 동시에, 그 자신 또한 이 격동기 속에서 제 가업을 지키고 몇 단계나 그 영역을 넓힌 수완가이기도 했다.
허나, 내가 녀석과 구면인 건 그 때문이 아니다. 막말로, 일개 헌터가 대재벌 총수 일가와 마주할 일이 달리 어디 있겠는가? 하물며 내가 협회의 높으신 분들과 연줄이 있는 쪽도 아니고.
때문에, 내가 녀석과 마주친 건 어느 재벌 일가의 결혼식장 따위가 아니라…… 어떤 전장에서였다.
가족은 대재벌, 본인은 벌써부터 그 수완을 인정받고 있는 사업가임과 동시에 최상위 헌터.
단순한 전투력이야 어쨌든, 협회의 평가를 기준으로 S랭크.
다시 말해, 녀석은 수치상으론 그 이준구와 동등한 수준의 실력자였다.
실제로, 이는 단순히 철없는 재벌가 도련님이 억지를 써서 따낸 랭크가 아니었다. 애시당초 헌터 협회의 랭크 측정 기준은 그런 식으로 따낼 수 있는 물건도 아니었던만큼 더더욱.
그리고 이 녀석은 그 힘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뿐이다.
여태까지 수많은 헌터들을 보았던 나로서도 이만한 재능 덩어리는 본 적이 없었으니까.
각성하자마자 A랭크 몬스터를 처리했다 전해지는 무훈. 그리고 그만한 능력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몇 시간에 걸쳐 구사할 수 있는 출력과 총량.
어느 쪽이든, 순수한 재능으로 보았을 때 이 놈은 가히 전 세계에서도 첫손에 꼽을 만한 괴물이다.
심지어 잘생긴데다 기럭지까지 길다니. 듣기로는 헌터 협회에서 잡지 표지 모델로 섭외하려 했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였으나, 그조차 망설임 없이 까버린 이 자식은 그 뒤로도 헌터이자 기업가라는 이미지 마케팅을 바탕으로 이 시대에서 가장 유명한 헌터들 중 한 명으로 손꼽히고 있었다.
그런 최승준이, 이제는 헌터 아카데미의 교장직까지 맡고 있다니.
'제발 꼬추는 3cm…….'
뭐 이런 시발 새끼가 다 있지?
녀석의 스펙을 떠올릴 때마다 울적한 기분에 빠져든다. 여타 헌터들과는 달리, 헌터로서의 재능이라는 단어를 크게 신봉하지 않는 나조차 놈을 앞두곤 감히 그리 말할 수가 없었다. 아니, 헌터로서의 재능이야 어쨌든 나랑 동년배라는 놈이 저런 와꾸에 대기업 상속자이기까지 한데 사업적 감각까지 가지고 있다는데 당연히 억울하지 않겠나?
나도 모르게 저리 기도해버린 것 또한 당연하다 할 수 있겠다. 암, 그렇고말고.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자, 녀석의 뒤에 기립하고 서 있던 비서가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는 게 느꼈다.
내 기억으로는 헌터 시절부터 데리고 다녔던 계집애인데. 소꿉친구랬던가?
아무래도 불온한 생각을 하던 게 들킨 모양이다.
하긴, 꼬추가 3cm라면 저 아가씨에게도 영 미안할 노릇이긴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이유로 기도문을 취소하는 대신 마지막까지 정갈한 마음으로 기도를 마쳤다. 왜냐하면, 곰곰히 생각해 본 결과 옆에 미녀 소꿉친구 여비서를 데리고 있다는 건 꼬추가 3cm면 3cm여야 할 일이지 내 분노를 피할 만한 까닭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승준 꼬추 제발 3cm!!
"설마 그 도축업자가 내 밑으로 들어올 줄이야."
뭐, 그런 농담이야 어쨌든 자리 자체는 그리 편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았다. 내게 있어선 앞으로 상사가 될 인물이었지만, 애초에 나부터가 이 직장에 그리 크게 구애받고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최승준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말로 하진 않았지만, 무슨 속셈이냐는 듯 눈매를 좁히는 게 훤히 보일 정도였다.
물론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아니,그딴 별명은 도대체 누가 붙이는 거야? 협회? 협회 윗대가리들이 대머리 맞대고 이 놈은 뇌신으로 합시다 이 놈은 엄동설한으로 합시다 이러는 건가?"
"헌터 영웅화 작업의 일종이지. 그런 마케팅이라도 없다면 사람들이 두 발 쭉 뻗고 잠이라도 잘 수 있겠나?"
"쓸데없이 진지한 답변. 뭐 하나 변하질 않았구만, 넌."
"그러는 너는 꽤나 변한 것 같군."
그리 말하며 녀석은 천천히 제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올렸다. 방금 전, 비서 년이 내 앞에 내려놓은 것과 완전히 동일한 물건이었다.
"처음 들었을 땐 무슨 헛소리인가 했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네가 아카데미 교사 자리를 수락했다니."
"그 놈이 청탁 넣었다고 놀란 게 아니고?"
"이제 와서 무슨. 헌터 인권 운운하면서 정계에 투신한 놈이야. 독배를 마실 거라면 그릇까지, 그 정도 기개는 보여 줘야지. 오히려 안심했다."
흥, 코웃음치며 최승준은 그리 단언했다. 확실히, 재벌가 놈이라 그런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나랑은 영 다르다.
그러나, 장난스레 말하긴 했어도 결국 이준구가 한 일이 청탁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나야 내 실력에도 자신은 있지만, 그렇다 쳐도 세간의 시선은 무시할 수 없는 법이니까.
"좀 아니꼽진 않았냐?"
"없잖아 있었지. 하지만, 내가 아니꼬웠던 건 그 부분이 아니야."
"어……. 그럼 뭔데? 이준구 그 놈 쌍판? 하긴, 그 새끼 좀 패주고 싶게 생기긴 했어."
"너다."
이 쪽의 말을 시원스레 무시하며, 녀석은 그리 단언했다.
그러더니만, 정말로 아니꼽다는 듯 손에 들린 잔을 내려다보는 게 아닌가. 말마따나, 최승준이라는 인물에겐 어울리지 않는 그 반응은 마치 짜증을 부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제 와서 그런 제안을 받다니.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던 거지?"
"글쎄?"
"설마 돈이 부족할 리도 없을 텐데. 아니, 돈이 필요했다면 처음부터 내 제안을 받았겠지."
불쾌하다는 듯이 그렇게 뇌까리는 최승준의 말에, 나는 무심코 표정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어째서 녀석이 이토록 유치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건지 이해해버렸기 때문이다.
동시에,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 진짜로 아무 것도 안 변했구만?!'
본인이 들었다면 화를 냈겠지만, 나로서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현역 시절부터 그랬다. 최승준. 재능이라는 단어에 축복받은 듯한 젊은 천재. 아니, 재능이라는 단어 자체가 그의 존재를 예측한 고대인이 만들어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온갖 분야에 있어 두각을 드러낸 이 젊은 청년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쪼잔했다.
거기에 소유욕도 더럽게 강했다. 녀석이 원체 부자인 탓에 물질에 대한 소유욕은 그리 눈에 띄지도 않았지만, 인재에 대한 소유욕만은 어떻게 해도 막을 수 없었다. 여하간, 전성기 땐 현찰 박치기로 헌터 협회를 양분해 자신만의 세력을 만들어버릴 뻔했던 녀석이니까.
때문에, 나 또한 녀석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떠올릴 수 있었다.
'아니, 시발아~ 그건 네가 윽박지른 거고~'
왜냐하면, 현역이었을 당시 나는 녀석의 제안을 까버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방금 전 언급한 사례와 마찬가지로, 제 기업 소속의 헌터가 되라는 제안이었다. 물론, 대한민국 정부가 헌터의 사유화 및 사조직화를 철저하게 방지하고 있는 이상 대놓고 그리 말할 수는 없었겠다만.
허나, 반대로 사회가 완전히 붕괴한 상황에서 모든 헌터들을 하나하나 쥐잡듯이 관리하는 건 역시 불가능했다.
그리고 최승준에게는 바로 그런 정부의 시선을 무마할 수 있을 만한 실력이 있었다.
도대체 뭘 계획했었던 건진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제 기업을 중심으로 두 번째 헌터 협회라도 만들 생각이었던 건지 뭔지.
하지만, 나는 녀석의 제안을 거절하기로 했다.
앞으로 찾아올 헌터 사회의 파국이나 대한민국 정부의 미래 따위를 고려해 내린 선택은 아니었다. 헌터들의 사유화, 그 시작점을 끊는 게 나는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솔직히 알 바는 아니었다.
이유는 단 하나.
녀석이 내게 그런 제안을 건네고자 주최한 파티에서, 사회적인 격차를 깨닫고 말았기 때문이다.
재벌가 양반들의 명예를 위해 미리 말해두자면, 딱히 그 친구들이 내게 텃세를 부렸던 건 아니다. 오히려 이 헌터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 그들은, 최승준이 눈독들이고 있는 헌터라는 말에 내게도 배려 삼아 적절한 화두를 던져주곤 했다.
문제는 내가 그 양반들이 던져주던 화두조차 받아먹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래.
으리으리하기 짝이 없던 메인 홀에서, 나는 깨닫고 만 것이다.
재벌가 새끼들이랑은 완전히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사실을──.
그리고 지적 능력에 차이가 있으면 애초부터 대화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그토록 물리적인 서술이었음을, 나는 그 날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영 안 내키냐?"
하지만 그거야 어쨌든, 녀석은 지금 이 학교의 교장이다.
아마도 최승준이 이제 와서 교장직 따위를 맡고 있는 것 또한 이 아카데미가 정재계와 헌터들 사이의 협력 하에 성립하고 있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이겠지.
그런 자리에, 이 녀석만큼 적임자는 달리 또 없다.
허나, 녀석은 어디까지나 사업가.
아무리 내겐 필요한 과정이었다고는 하나, 기업 이미지 등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내키진 않지만, 만약 녀석이 보기에 내 존재가 이번 프로젝트에 방해가 된다고 한다면…… 발을 빼 줄 수밖에 없겠지.
"설마."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건만, 녀석은 일언지하에 내 말을 부정했다. 아니, 오히려 이 쪽을 바보취급하며 헛웃음을 터트리는 게 아닌가.
하여튼, 새끼. 성격 한 번 더럽다니까. 어? 이 형님이 여기까지 배려해 주는 게 그렇게 흔한 일도 아닌데, 감사할 줄은 모르고 말이야.
"이준구가 정계에 들더니 눈이 멀어버린 게 아닌가 싶어서 불렀을 뿐이야. 내가 아는 넌 이런 제안을 받을 만한 녀석이 아니었으니까."
"너희는 도대체 날 뭘로 보는 거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투덜거림에, 녀석은 대답 대신 티스푼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 뒤로는 정말로 소일거리였다.
개중에서도 가장 걸작인 건 역시 녀석이 남긴 말이었다.
"아직 프로젝트 초기지만, 학생들의 실력도 나쁘진 않아. 고르고 고른 원석들 뿐이지."
"시발, 꼬꼬마들이 괜찮아봤자 너만 하겠냐?"
적어도 최승준이 할 만한 말은 아니었다.
때문에, 그 날의 대화는 그런 식으로 끝을 맺었다.
*
탈칵, 교장실의 문이 닫혔다. 그리고 '도축업자'가 떠난 방에는 최승준과 그 비서만이 남게 되었다.
"……설마 정말로 박우찬이 제안을 받았을 거라곤 생각하지도 못 했습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난 이준구 그 놈이 사기라도 당한 건 아닌가 싶었다니까?"
그리 말하며 웃음을 터트리는 최승준에게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억누르고 억누르던 유쾌함이 머무르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최승준의 비서로서 어렸을 적부터 그를 수행한 그녀는 최승준이 어떤 인물인지 알고 있었다.
수집가.
단락적으로 말하자면 그리 표현할 수 있겠지. 아직도 호사가들이 입방아를 찧기 좋아하는 최승준의 헌터 매수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 시작되었다.
요컨대, 최승준은 자신이 손에 넣은 보석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고 있길 좋아했다.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었던 원석이, 자신의 손 안에서 빛을 발한다.
최승준에게 있어 그토록 짜릿한 일은 달리 없었다.
헌터 협회를 양분할 생각도, 자신만의 세력을 꾸릴 이유도 없었다. 단지, 최승준은 자신의 눈 앞에서 반짝이는 재능들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 그들을 빛내주고자 스카우트했을 뿐이다.
"아니, 됐다."
그런 그가 손에 넣지 못했던 유일한 인물이 바로 박우찬이었다.
퀭한 눈동자였다. 설령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더라도 내 알 바 아니라고 말하는 듯한, 거무칙칙한 눈동자.
여태까지 그 넘치는 재력을 바탕으로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최승준으로서는 정말 의외였다.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고 말하는 자들은 여럿 있었다. 하지만 최승준이 보기에, 그건 돈이 부족했을 뿐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던 사람들 또한 그보다 열 배, 스무 배 많은 돈을 앞에 두면 역시 거절하지 못했으니까.
돈으로 살 수 없는 건 있다. 하지만, 대개는 돈이 부족할 뿐이다.
최승준의 집안에 전해져 내려오는 가훈이었다.
그렇기에, 당시 박우찬이 내비친 확고한 거절은 최승준에게도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돈이 부족하다던가, 그런 문제가 아니다. 무슨 사정인진 몰라도 협회에 발 한 번 들리지 않았다는 이 실력파 헌터는, 단순히 최승준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듯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열중하고 있던 헌터 수집에 흥미를 잃은 것 또한 바로 그 때문이었다.가장 손에 넣고 싶은 걸 얻지 못할 판국에, 다른 걸 모아봐야 그 빛을 잃을 뿐이다.
물밑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협회가 그토록 경계했던 최승준의 독립 세력은, 그렇게 와해되었다.
허나, 박우찬의 말과는 다르게 최승준에게는 그 날 이후 달라진 점이 하나 생겼다. 이전까지만 해도 제 손으로 최고의 보석을 빛내길 즐기던 최승준은, 그러나 이젠 이미 완성된 보석이 발하는 빛 또한 나름의 맛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응? 뭐야, 설마 내 안목을 의심하는 거야?"
"설마 그럴 리 있겠습니까. 단지, 걱정이 되었을 뿐입니다."
여러 이권이 얽혀 시행된 프로젝트였지만, 그녀가 보기에도 이번 입학생들의 수준은 솔직히 상상 이상이었다.
영웅의 여동생. 처음 쥐어본 검으로 몬스터를 참살한 천재. 거기에 심상치 않은 추문이 따라붙은 이까지.
헌터로서의 능력이야 그 이후에도 몇 번이나 증명한 박우찬이었지만, 과연 그가 이 예비 헌터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
"글쎄? 벌써부터 알려주면 재미가 없지."
"……."
"하지만, 기대해도 좋아."
아무리 뛰어난 플레이어였다 한들, 명감독이 될 미래가 보장된 건 아니다.
허나, 저런 문제아들을 한 마디 말도 없이 모조리 박우찬의 반에 몰아넣은 뒤로도 최승준은 그 입가에 의뭉스레 웃음을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