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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0화 (10/371)

〈 10화 〉 입학 준비

* * *

"네 놈이 정녕 미쳐버린 게로구나?"

껄렁껄렁하게 건넨 제안을 받아, 여신의 눈초리가 홱 치켜올라갔다.

하긴, 어처구니없을 만도 했다. 객관적으로 말해, 내 위치는 딱 그 정도였으니까. 은총을 내리기로 결정된 자리에서 갑자기 여신의 뿔을 자르고 도망친 불한당. 그렇게 자취를 감추었던 놈이 어느 날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가운데, 하는 말이라는 게 대뜸 저런 이야기여서야 과연 웃음이 나올 법도 했다.

만일 이 자리에 그녀의 고견 한 마디를 얻고자 몇 날 며칠을 기다린 이들이 있었다 해도 마찬가지였겠지. 이런 내 태도에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리는 게 고작이었을 터다.

하지만 나로서는 진심이었다.

지금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내 이력서에 여신의 은총을 받았다고 경력을 위조하기 위해서였다.

아니, 정말로 그 뿐인 건 아니지만.

당연하지만, 고작해야 그런 이유로 여신을 독대할 수는 없다. 아무리 이준구의 입김이 있다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나는 일찍이 저 여자의 뿔을 자르고 도망친 전적까지 있지 않던가.

사실 나 또한 그 정도라면 경력 없는낙하산 소리 듣고 말 테고. 갑갑하기 그지없는 방독면을 고쳐 쓰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기에, 이준구는 내 뜬금없는 부탁에 적당한 명분을 붙여 주었다.

혹은, 녀석에게 있어 본론은 처음부터 이 쪽이었을지도 모른다. 여하간, 헌터를 떠난 녀석으로선 도저히 여신과 접촉할 만한 사유를 찾을 수 없었을 테니까. 인류 최강의 헌터로서가 아닌, 일개 신입 국회의원 이준구로선 아무래도 여신을 상대로 독대를 청할 수 없었다.

물론 녀석의 이름값이 어디 가는 건 아닌 만큼 못 할 건 또 없었겠지만, 녀석은 이런 부분에 있어선 지독하리만큼 원칙주의자였다.

"별 시시콜콜한."

핀잔을 주듯, 여신은 그리 말했다. 허나, 동시에 별로 개의치도 않는 태도로 내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저걸 그대로 붙잡아 분지르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나는 곧 이번에 협회를 방문하며 목에 걸고 있던 등록증을 빼내 휙 하고 내던졌다.

그걸 받아든 여신이 두어 번 정도 이를 확인하더니, 내 증명 사진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리는 것으로 종료.

조금 빡치긴 했지만, 녀석이 다시금 되돌려 준 등록증엔 확실히 여신의 힘이 담겨 있었다.

무언가 물리적인 효과가 있다기보다는 문자 그대로 여신의 힘이 담겨 있음을 증명하는 정도였지만, 이걸로 여신의 축복 운운해도 거짓말은 아니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변덕스럽긴 하지만, 이런 부분에선 시원스러운 녀석이다.

주섬주섬 챙겨온 집게를 꺼내 녀석이 내민 등록증을 집었다. 그대로 미리 준비해 두었던 납뗌한 상자를 열어 그 안에 투입. 상자를 잠그고, 호일로 감싸 비닐에 넣고 묶는다.

이걸로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다. 다시 꺼내야 할 땐 아무래도 귀찮겠지만, 그래도 저토록 흉측한 물건을 그대로 들고 다닐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그럼, 본론인데."

"흠. 확실히, 네 녀석이 궁금해 할 만한 사안이기는 했지."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던 여신의 눈동자를 찌를까 말까 잠시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내 손가락이 너무 불쌍해서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나는 예의 본론을 입에 올렸다.

방금 전 여신은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내 본론은 이미 끝났으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준구의 본론이다.

여하간, 저 여자가 저렇게까지 말할 만한 명분이란 바로 이번 사건이었다.

예의 소녀, 자하연과 관련된 일련의 사태.

솔직히 나로서는 상당히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그 사건은 이미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영역을 진즉에 넘어섰으니.

하물며 이번 방문으로 그녀가 몬스터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사실이 확실시된 이상, 내 목적은 거진 달성한 셈이었고.

무엇보다도, 당시 내가 말했던 것처럼 이는 어디까지나 높으신 분들이 고민할 만한 주제였다.

문제는, 이번 일로 내게 여러 편의를 봐 준 이준구가 바로 그 높으신 분이라는 점이었다.

"흥."

때문에, 나 또한 별로 탐탁찮은 기색이나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에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여신의 고갯짓 너머로,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사실 별다른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툭 터놓고 말해, 여신이니 뭐니 요란하게 떠들어봤자 그 정체는 몬스터. 육체를 얻어 강림한 이래, 대부분의 시간을 이 최상층에서 허비하고 있을 그녀가 알긴 뭘 알겠냐는 심정이었다.

솔직히 슬슬 힘들기도 했고.

내게 있어 몬스터들은 결국 과다 발육한 바퀴벌레나 다름없다. 눈 앞에서 얼쩡댄다면 철저히 박멸할 테고, 도망치려 한다면 확인사살할 때까지 쫓아가기도 하겠지. 하지만 적극적으로 집 안 어딘가에 있을 바퀴벌레를 찾아 나서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정작 눈 앞에 바퀴벌레가 남아 있는 상황이잖아 지금은.

"의태하고 있던 몬스터라, 없지는 않지."

허나,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내 예상과는 썩 달랐다.

솔직히 말해서 무언가 들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여하간, 나나 이준구 또한 머리를 싸매고 있는 판국에 아마도 이준구 등을 통해 건너건너 사정을 들었을 이 여신이 달리 무언가를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나 이준구가 천성이 싸움꾼이라곤 해도, 그건 이 여신도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무얼 그리 놀라지? 설마, 평소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모를 리도 없을 터인데."

다만, 그리 말하는 걸 듣고 있자니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하긴,세상에서 가장 회의적인 무신론자조차 신의 실존을 부정할 수 없는 시대다. 허나, 눈 앞에 있는 여신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세계 각지에서 숭배하고 있는 성좌들의 정체는 결국 몬스터에 지나지 않는다.

눈 앞의 여인 또한 마찬가지. 지금은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취하고 있긴 했지만, 그 본질은 어디까지나 의태하고 있던 그 드래곤들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하나 없는 존재다.

말하자면, 지금 그녀의 모습 또한 일종의 의태라 할 수 있으리도 모른다.

사회에 녹아들었다고는 농담으로도 말할 수 없었으나, 몬스터라 칭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친밀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니.

"애시당초, 네 녀석도 짐작하고 있지 않더냐?"

"뭘 말이지?"

"의태라는 건, 생각보다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이었다.

일찍이 언급했던 바와 같이, 몬스터들의 의태라는 건 도저히 써먹을 수 있을 만한 물건이 아니다. 피부 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던 게 역사적 관점으로 보자면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 해야 할 판국에, 다른 종족으로 의태하는 게 쉬울 리 없다.

때문에, 의태라는 말을 처음 들은 이들이 으레 상상하는 것처럼 사람과 똑같은 모습을 한 몬스터가 아무도 모르게 사회 속으로 스며드는 일은 아무래도 있기 힘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이번 사례는 아무래도 이상하단 말이지."

"흠?"

"듣기로는, 그 녀석들이 인간의 옷을 입고 있었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랬던가?

확실히 그런 말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준구가 건네준 당시 현장을 정리한 리포트에 그런 말이 있었던 듯도 하다. 아니, 적당히 넘겨서 잘 기억은안 나지만.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핏덩이가 되어 있던 놈들이라고.

이제 와서 내 손으로 쳐죽인 놈들을 하나하나 기억할 리도 없지 않는가.

결국 나로서는 아리송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내 모습이 우습게 보이기라도 한 건지, 여신은 짧게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무어냐. 은퇴했다고 듣기는 했다만, 정녕 무뎌지기라도 한 게냐? 그 악명 높던 도축업자가?"

"씨발, 저 놈의 도축업자."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튀어나오고 말았다. 아니, 도축업자가 뭐야 도축업자가?

왜 이준구는 뇌신인데 나는 도축업자인 거지? 하다못해 도살자라거나, 조금 더 그럴듯한 표현도 많지 않나?

나도 모르게 투덜거리길 잠시, 싱숭생숭한 기분을 억누르며 여신의 발언을 재촉한다.여하간, 협회 최상층에 쳐박혀 시간을 허비하고 있던 이 여신이 말한 건 확실히 나로서도 놓치고 있었던 점이었으니까.

"이는 다시 말해 녀석들이 인간 사회에 충분히 익숙해졌다는 뜻이니라."

"그건 척 보면 알아."

"호오, 정녕 그리 생각하더냐? 저 오만하기 그지없는 용들이, 인간의 언어를 배우고 인간의 의복을 걸쳤다는 사실이?"

거기까지 듣자, 나 또한 생각이 닿았다.

막말로, 인간이 개미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서 인간의 몸을 버리고 개미가 되려 할 리 없지 않겠는가.

"몬스터가 인간으로 의태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적응 기간이 생기기 마련이니라. 하물며, 상대는 용. 오만하기 그지없는 놈들이지."

"너처럼?"

"……그런 용들이 설마 헌옷 수거함을 뒤적이기라도 했겠느냐? 보나 마나, 달리 옷을 구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 두고 있을 테야."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현대 사회에서 옷을 사기 위해선 옷을 입고 있을 필요가 있었다.

어떤 의미로는 현대 사회의 모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이 모순성에 대해 토론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공교롭게도 그녀가 말하려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꽤나 깊게 뿌리내린 모양이로구나."

"흠."

"인간으로 의태한 용들이 옷을 구할 수 있을 만한 여유. 거기에, 인간의 언어를 발음하는 데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니."

"얼마나 필요할 것 같지?"

"족히 10년은 있어야겠지."

과감하게도, 여신은 그리 단언했다.

거기에, 이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결론은 그렇게 간단한 물건이 아니었다.

말이 10년이지, 이건 단순히 용들이 인간의 문화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재었을 뿐.

용들이 인간의 언어를 배우기 위한 수단.

거기에 인간의 의복을 구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하기까지.

"실질적으론?"

"적게 잡아도 15년. 어쩌면 대침공 초기부터 있었던 걸지도 모르지."

몬스터들 중 일부가, 어느 정도 정착에 성공했다.

이번에는 나 또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용들이 저토록 자연스레 사회에 녹아들었다는 말은, 다시 말해 놈들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인프라를 어느 정도 갖추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방금 전 내심 부인했던 이야기를, 이번엔 정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사회엔 이미 몬스터들이 스며들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가장 우수하다 칭송받는 용들이.

"나 또한 정정해야겠군."

그리 생각하고 있던 나를 향해, 여신은 문득 그렇게 말했다.

뜬금없는 말에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린다. 그러자, 조소를 걸친 여신은 여유있는 태도로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아무래도 무뎌지진 않았던 모양이구나."

다소 미묘한 기분으로 얼굴에서 힘을 풀었다. 지금 자신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얼빠진 모습으로 낯가죽을 더듬거릴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정보는, 생각 이상으로 크다.

첫째, 용들이 이 대한민국 사회에 숨어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점.

둘째, 여신 티아마트의 추론에 의하면 이들은 족히 10년 이상 전부터 사회에 잠복하고 있었을 거라는 점.

셋째, 그렇게 잠복한 용들이 어째서인지 자하연을 노리고 있다는 점까지.

어느 쪽이든, 일개 자영업자인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소한 이준구에게는 알려야겠지. 쥐잡듯 헌터들을 돌려 잠복하고 있는 용들을 찾아내야만 한다. 아니, 심지어 잠복하고 있는 게 전부 용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몬스터 한 마리 찾을 수 없어 골골대던 경험이 있는 만큼 이 근처에 다른 몬스터들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몬스터들을 찾아내면?

물론 두말할 것도 없지. 그 자리에서 토막 치면 된다. 애초에 그걸 위해 신청한 보호 감찰 아니던가.

사회 안에 숨어든 몬스터들이 본성을 드러낼 경우, 얼마나 되는 피해가 나올진 나 또한 감히 짐작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라도 한시라도 빨리 몬스터들을 색출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틀림없이 지금 이 상황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터무니없는 위험 수위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가가 씰룩거리는 걸 막을 수 없었다.

하연아! 확실히 네가 내 복권이었던 모양이구나! 고맙다!!

"이 정도면 되었겠지?"

뒤늦게 들린 목소리에 한껏 치솟으려던 기분을 강제로 가라앉혔다. 확실히, 이번 사례는 이 녀석이 없었다면 상당히 곤란했을지도 모르겠다. 역시 그 빌어쳐먹을 몬스터 새끼들의 사정을 아는 데에는 당사자 만한 게 또 없구나.인정하긴 싫지만, 틀림없이 도움이 되었다.

어쩌면 이 또한 다른 헌터들은 여신의 지혜라고 포장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박우찬은 오랜만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여신에 대한 찬사를 보내기로 했다.

"너도 어디에 쓰려면 쓸 데가 있긴 하구나."

"진심 존나 얄미워."

다음 순간, 자신도 모르게 여신은 그렇게 뇌까리고 말았다.

만일 이 방을 들락날락하는 다른 사람들이 들었다면 그 자리에서 까무러칠 만큼 경박한 어조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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