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입학 준비
* * *
헌터 협회 최상층에는, 도면상으론 존재하지 않는 층이 있다.
절묘한 공사 실패의 산물인지, 그렇지 않으면 높으신 분들이 갑자기 영화 속 비밀 조직에 꽂히기라도 했던 건진 이제 와선 알 수 없다. 허나, 각 층의 높이를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깎아낸다는 쓸데없는 노력 끝에 협회는 건물 옥상과 대외적으로 알려진 최상층 사이에 바깥에선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비밀 공간을 만들어 둘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비밀 공간.
협회의 최상층 너머에 도사린 가장 깊은 치부. 협회의 높으신 분들 중에서도 고르고 고른 이들만이 감히 그 존재를 어림할 수 있는 이 장소엔, 언제나 그녀가 있었다.
무수한 목적을 가지고 그녀와 접촉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그녀가 정확히 누구라 답할 수 있는 자들은 드물었다. 하물며 그녀가 언제 잠에 드는지, 어떻게 끼니를 해결하는지 알고 있는 이들까지 가면 더더욱 그러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숨겨진 층을 방문할 때마다, 그녀는 언제나 플로어 한 가운데에 자리한 소파에 앉아 권태로운 모습으로 방문자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설령 아침이나 새벽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가끔씩 찾아와 이 층계를 청소하는 청소부들은 농담삼아 그렇게 말하곤 했다.
이 방의 안주인께서는, 잠도 식사도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마치 사람이 아닌 것처럼──.
허나, 과연 그들 또한 짐작할 수는 없었겠지.
아름다운 미모. 독특한 기풍. 그리고 그 이상으로 기이한 그녀의 생활을 보고 농담처럼 주워섬긴 잡담들이, 설마 한없이 진실에 가까울 거라고는.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다. 협회의 일부만이 알고 있는 비밀 방. 그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인이 있으며, 어떻게 취식을 해결하고 있는지 그조차 알려진 바가 없다…….
어딜 어떻게 봐도 납치 감금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관련된 천박한 가십거리가 떠돌지 않는 것 또한 같은 이유였다.
협회의 고위 공직자도, 특종을 찾아 헤매는 언론인도 결국엔 사람의 아이.
수천 년 전부터 사람의 위에 군림하길 당연시했던 여신과 견술 수 있을 리 없었다.
"싹퉁바가지 밥 말아 쳐먹은 꼬라지 보소."
그리고 지금.
사람의 신앙과 숭배를 먹으며 살아가는 여신은, 다른 그 무엇보다도 면회를 신청한 주제에 방독면을 쓰고 있는 저 놈팽이에게 예절 운운하는 소리를 듣고 있어야 하는 자신의 꼬락서니에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
헌터 협회, 그 최상층.
모든 벽을 허물어뜨린 광활한 방은, 넓다기보단 오히려 아득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릴 정도로 황량했다.
그토록 휑한 플로어의 한 가운데에는, 치우는 걸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덩그러니 놓인 소파가 있었다.
여자는 바로 그 소파에 몸을 싣고 있었다.
우아한 모습이었다. 길게 뻗은 다리를 마치 학처럼 꼰 채, 한껏 턱끝을 치켜세운 여자. 이에 맞추어 흐드러지는 머리카락은 불꽃조차 이러할까 싶을 정도로 선명한 적주색으로, 그토록 화려한 머리칼이 고개를 흔들 때마다 새하얀 다리 위로 피고 지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날, 그 때처럼 방자하기 그지없는 태도였으나…… 동시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눈 앞에 있는 여자는, 그토록 거만한 태도를 취할 자격이 있는 존재라고.
허나, 그 이상으로 내 주의를 잡아끄는 두 가지.
하나는 머리카락 너머로 자리잡은 거대한 뿔이요, 또 다른 하나는 언젠가 본 적 있는 드래곤의 눈동자처럼 세로로 주욱 찢어진 자줏빛 눈동자였다.
용이며 여신.
괴물이며 대지가 된 자.
단순히 그 이름을 사칭하고 있을 뿐인지,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모종의 관계가 있는 건진 여전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시시콜콜한 일을 입에 올리는 대신 우리는 서로를 향해 그 날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시선을 흩뿌리고 있었다.
저게 바로, 여신 티아마트.
메소포타미아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들의 대적자이며, 동시에 자식들의 칼날 아래 쓰러진 신들의 어머니.
문자 그대로, 지상에 강림한 성좌였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 헌터 협회가 숨기고 있는 가장 큰 비밀이었다.
동시에, 만일 다른 나라가 이를 알게 된다면 전쟁조차 불사할 정도로 중대한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헌터들의 각성 방법은 크게 두 가지. 게이트로 대표되는 고밀도의 마력과 접촉, 이에 적응한 신체가 체내에 마력 운용 기관을 생성할 때까지 기다리거나…… 혹은 타인의 마력 운용을 보고 독자적인 마력 운용법을 깨닫는 것이라고들 하지.
당연하지만, 어느 쪽이든 미칠 듯이 어려운 일이다. 전자는 몬스터라 불리는 직관적인 위협이 존재하며, 후자는 자신에게 맞는 마력 운용법을 찾아내는 데에 최소 10년은 걸린다는 말이 농담처럼 나돌아다니고 있을 정도니.
하지만.
성좌들은 이러한 전제를 뒤집을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성좌의 축복'.
문자 그대로, 자신이 눈여겨 본 이에게 가호를 내리는 능력이다.
축복의 종류는 실로 다종다양. 문자 그대로,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민간인이었던 이를 헌터로 각성시키거나 한 단계 높은 경지로 끌어올려주는 등 여태까지 보고된 것만 해도 기적이라는 이름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물건들 뿐이다.
개중에서도, 눈 앞의 여자가 지닌 힘은 한층 더 특별하다.
여하간, 내가 알기론 육체를 가진 채 이 지상에 강림한 신 따윈 눈 앞에 있는 이 여자 뿐이었으니까.
수많은 이들이 몬스터들의 발톱 아래 갈가리 찢겨나가고 있을 때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는 '별자리의 신' 이래, 머나먼 밤하늘 너머에서 인간을 굽어보고 있다는 존재.
그렇기에 성좌Constellation.
허나, 설화 속 신처럼 강대한 그들은 그 이상으로 변덕스러웠다.
백만의 죽음 앞에선 침묵하면서도, 한 명의 부름에 응하는 일 또한 부지기수.
그렇기에, 성좌를 상대로 교섭을 진행할 수 있는 현 대한민국의 상황은 다른 나라 입장에서 보자면 눈이 돌아갈 정도로 엄청난 이점이라 할 수 있다. 여하간, 교섭에 성공한다면 대한민국은 인위적으로 헌터를 양성할 수 있는 첫 번째 국가가 딜 테니까.
비록 그 변덕 탓에 여태까지 유의미한 변화는 없었지만,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하다못해 남의 손에 들어간다면 더더욱.
뭐, 애시당초 나하고는 별로 상관 없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성좌라는 거, 사실 몬스터거든.
아니, 대중적으로 알려진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기보다, 대중적일 수도 대중적이어서도 안 되는 이야기다. 여하간, 대다수 헌터들은 물론이요 일반인들에게 있어 성좌란 인간을 긍휼이 여겨 그 손을 내민 구세주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몬스터 냄새가 난단 말이지~'
내가 저 년을 만나게 된 것 또한 바로 이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A+랭크 몬스터를 쳐죽였을 때였던가? 당시까지만 해도 끊임없이 내게 접촉하던 협회가 마침내 나와 저 년의 만남을 주선했다. 당시 전력 고갈에 시달리던 협회로서는 나를 포섭할 겸, 성좌의 가호를 내려 협회에 묶어둘 생각이었던 거겠지.
별다른 이유 하나 없이 어쩌다 보니까 협회 주변을 겉돌고 있던 나로서는 쾌재를 지를 일이었다.
문제는 이 년과 처음으로 만나게 된 바로 그 자리에서, 나도 모르게 이 년의 뿔을 자르고 말았다는 점이다.
이를 내가 눈치챘을 땐 이미 협회 옥상에서 다이빙하고 있는 참이었다.
왜냐하면 눈 앞의 저 년에게서 몬스터 특유의 좆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헌터 협회가 내 포섭을 포기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당연히 나 또한 이후 협회 가입을 사실상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아, 씨발~ 몬스터였으면 말을 하던가~'
당장에 내가 방독면을 쓰고 있는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몬스터랑 같은 공기를 마시긴 싫기도 했거니와, 이런 자리에서 또 다시 반대쪽 뿔이라도 자르고 도망치면 썩 곤란하지 않겠는가.
물론 저 년은 그런 내 기분도 모르고 이 쪽의 노력을 폄하하고 있었지만, 이는 내 딴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이라 감히 자신할 수 있었다.
뭐, 자세한 사정 따윈 모르겠지만 신화적으로 보자면 그렇게 드문 이야기도 아니니. 각종 신화에서, 신들과 괴물은 보통 같은 혈통이다. 괴물이 그토록 강대한 건 일찍이 신이었기 때문에 그렇고, 신들이 저토록 위대한 건 일찍이 괴물들을 쓰러뜨린 끝에 이 세상의 패권을 차지했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제우스가 그런 식으로 제 가족들을 티탄이라는 이름 하에 내치고, 북유럽 신화의 오딘이 혈통을 따지면 처음부터 거인이었듯이.
멀리 보자면 메소포타미아 신화 또한 마찬가지고. 신들의 어머니이며 괴물들의 어머니. 그게 바로 여신 티아마트니까.
그러니 그녀가 다른 신들과 달리 육체를 얻고 지상에 내려올 수 있었던 것 또한 근간이 몬스터라서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할 따름이다.
하필이면 중동 지방의 여신인 그녀가 만리타향이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과 손을 잡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지금 그 땅에서 성행하고 있는 신앙 때문이라지만.
이슬람 존나 세.
"싹퉁바가지 밥 말아 쳐먹은 꼬라지 보소."
"그게 방독면 쓰고 있는 놈이 할 말이냐?"
여하간, 그런 만큼 내게 성좌들을 향한 경의 따위를 기대해도 곤란할 따름이다. 몬스터 새끼들 살려두고 있으면 됐지, 뭘.
애시당초 성좌들의 정체를 고려해 보면 성좌의 축복이라는 녀석도 영 수상쩍기 그지없다. 까놓고 그냥 될 때까지 마력 쏘는 거 아니야, 이거?
만약 그렇다면 나는 소위 말하는 성좌의 선택을 받은 헌터들을 동정할 수밖에 없다. 씨발, 몬스터 따위가 평생 나를 따라다니도록 내버려둬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역겹기 그지없군.
아마도 이 여자가 저번의 무례에도 불구하고 내 면회 요청을 거부하지 않은 것 또한 이와 관련되어 있겠지. 저 녀석에게도 눈이 있고 귀가 있다면 내가 뭐 하는 녀석인지 알아봤을 게 뻔하다. 허면 못해도 내가 녀석의 정체를 눈치챘다는 사실쯤은 저 쪽도 깨달았을 게 뻔했다.
오월동주라고 하기엔 다소 미묘하지만.
"허나, 뻔뻔스레 꼬리를 말고 도망치던 것 치고는 꽤나 늦지 않았더냐?"
"누가 들으면 사과하러 온 줄 알겠군."
여신의 아미에 조용히 힘줄이 솟았다.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갑자기 대면한 상황에서 칼을 휘두른 건 보통 죽을 죄가 맞다. 맞지만, 남의 집에 초대받은 참에 악어가 덤벼든 거나 다름없는 내 입장도 조금은 참작해 줘야 하지 않을까?
솔직히 말해, 신인 척 하면서 인간 사회에 잠입하고 있는 시점에서 칼침 맞을 걸 몰랐을 리도 없고.
오히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남의 집 악어라고 칼질을 멈춘 시점에서 칭찬을 들어도 부족하다고 본다.
아무렴, 그러니 저 년 또한 이 이상 투덜거리진 않는 거겠지만. 나 또한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진 않았고.
하지만, 아직까지 녀석이 꽁해있다는 사실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벌써 몇 년 전 상처를 아직까지 재생하지도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겠는가. 재생 방지 독초를 뿌린 것도 아닌데.
상대는 여신. 단독으로 S랭크 몬스터에 필적하는 괴물이다. 다른 놈들이라면 몰라도, 이제 와서 재생할 만한 힘이 없다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재생 방지 약초를 뿌린 것도 아니고.'
꼴에 양심 좀 찔러보겠다는 건가?
애석하게도 그런 애들 놀음에 어울려 줄 생각은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당장 칼을 휘두르지 않는 시점에서 내게 있을 수 있는 자비란 자비는 모조리 가불하고 있는 셈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내가 이준구의 인맥까지 동원하며 다시금 여길 찾은 건 이런 기싸움이나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런 내 시선을 받자, 여신은 짧게 코웃음을 쳤다.
"해서, 무슨 일이더냐? 나 또한 한가한 것은…… 맞다만, 아무리 그래도 네 녀석을 앞두고 여유를 부리고 싶진 않구나."
"저거 저거, 말하는 싸가지 좀 보소."
"처음 들었을 땐 귀를 의심할 뻔했지. 설마, 첫 만남의 장에서 그렇게 뛰쳐나간 미치광이가 다시금 내게 면회를 청했을 땐 말이다."
숫제 귀머거리처럼 내 말을 흘려넘기는 솜씨가 썩 범상치 않았다.
허나, 이번에는 아무래도 내가 지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말마따나, 먼저 면회를 신청한 건 나니까. 다시 말해, 아쉬운 입장인 건 어디까지나 나라는 소리다.
나 또한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무심코 저 년의 사지를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번엔 어떻게든 참을 수 있었다. 휴, 방독면을 챙기지 않았으면 꽤 위험했겠어…….
천천히 호흡을 고르려다 내 입으로 저 년의 날숨이 들어갈 수도 있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 입을 닫았다. 결국, 내가 입을 열 수 있었던 건 한층 복잡하기 그지없는 기분을 속으로 완전히 갈무리한 뒤의 이야기였다.
"야."
"흠, 들으마. 어디 한 번 말해 보거라. 이번엔 또 무슨 헛소리를 할 셈이냐?"
"네 이름 좀 쓰자."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저 아니꼬운 태도는 배알이 꼴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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