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낙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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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헌터 협회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유능했던 모양이다.
제 2차 대침공 종료로부터 3년. 인류는 여전히 몬스터를 상대로 꾸준한 승전보를 올리고 있었다. 기업 측에서 관리하고 있는 게이트나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소규모 게이트 등에선 꾸준히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지만, 그 또한 억누를 수 있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근거 없는 낙관론자들이 등장하기엔 최적의 상황이었다는 뜻이다.
허나, 대한민국 정부는 방심하지 않았다.
제 2차 대침공 당시, 대한민국이 존속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잘나서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이준구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제 2차 대침공이 끝을 맺은 지금.
대한민국 정부는 몬스터들이 언젠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낼 거라는 확신 하에 모종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었다.
내가 이번에 맡은 이야기 또한 그 일환이었다.
"헌터 아카데미라."
요컨대, 대한민국 정부는 정식으로 차세대 헌터 육성 기관을 설립할 생각인 듯했다.
갑작스러운 연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류가 준비되어 있었던 건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사실,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몬스터들을 토해내며 수많은 도시를 평지로 만들어버렸던 게이트가, 이제 와서 잠잠해졌다 한들 믿을 수 있기나 할까.
언젠가 찾아올 제 3차 대침공을 대비할 필요는 있었다. 제 2차 대침공 당시, 제 1차 대침공 이후로 쌓아 온 인적 자원을 내던지다시피 소비하며 이준구가 나타날 때까지 숨죽이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이 나라는 더더욱.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이 헌터 아카데미 프로젝트는 나름대로 적절한 안배라고 할 수 있겠다.
두 번에 걸친 대침공 탓에, 여태까지는 헌터들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시도할 수가 없었다. 제 1차 대침공 당시 헌터가 된 1세대 헌터들은 어떠한 선례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몬스터와 싸울 수밖에 없었고, 스스로 선례를 만들다 못해 선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제 2차 대침공 당시 헌터가 된, 나나 이준구같은 2세대 헌터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선배님들의 희생을 통해 쌓아올린 노하우조차 국가의 존속을 위해 반쯤 거덜난 상황.
한 쪽에서는 인류의 승리를 노래하며 크게 나팔을 불고 있었지만, 그 실체는 어디까지나 반쪽짜리 승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문자 그대로, 인류는 제 살을 내주고 뼈를 깎으며 승리를 거머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요컨대, 제 2차 대침공 종결 이후 인류에게 주어진 이 시간은…… 정말로 얼마 되지 않는 기회인 셈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헌터에 대한 교육법이 확립되지 않았다는 점.
암암리에 마력을 어떤 식으로 운용하는 게 좋다던가, 특정 종류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에는 특정 방법이 효율적이라던가 하는 식의 노하우 정도는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실질적으로, 나라에서 헌터들에게 제공할 수 있었던 교육이라고는 몬스터에 대한 브리핑 내지는 정훈교육 정도가 한계였던 상황.
대한민국 정부는 그런 주먹구구식 운영 대신, 본격적인 헌터 육성법을 정립하고 싶은 모양이다.
문제는 그 강사로 나를 고용하려 한다는 점인데──.
뭐, 자신은 있었다. 어영부영 비슷한 짓을 몇 번 정도 해 본 적도 있었거니와, 익히고 있는 전법이 전법인 탓에 나는 상대적으로 다른 헌터들의 전법에도 상세한 편이었다.
근데 이건 내 사정이고.
다시 한 번 서류를 들춰 확인해 봐도 서류에 기입된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나 또한 나지막이 한숨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라고?"
그 말대로.
이번 헌터 아카데미 프로젝트의 대상이 되는 건 바로 고등학생들이었다.
사실 이해할 수는 있었다. 아니, 오히려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아직 신체가 완성되지 않은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을 데리고 훈련을 시킬 수도 없고, 그 이상이라면 3년 전까진 대략 고등학생 나이…… 다시 말해 이미 현역 헌터로 활동하고 있을 터였다.
이미 전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현역 헌터들을 상대로 시범 운용 따위를 했다가 못 쓰게 만드는 것보다야 훨씬 합리적인 이야기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내게 문제가 되는 건 크게 두 가지.
첫째로는 내가 중졸이라는 점이요, 둘째로는 당연히 교대 자격증도 뭣도 없다는 점이다.
"이준구 이 새끼 미친 거 아니냐?"
하필이면 한참 감수성 풍부할 나이대라니.
자신이 특별한 인간이라고 한창 믿고 있을 나이에, 정말로 특이한 능력을 각성한 꼬마들이랑 어울려야 하다니.
게다가 정작 꼬마들을 가르쳐야 할 나는 어딜 어떻게 봐도 낙하산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무경력 헌터다.
이준구의 설명에 의하면, 이번 제안을 수락할 시 내게는 아카데미 교원이라는 이름으로 헌터 협회에서 등록증이 발행된다는 모양이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내가 협회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과거까지 바뀌는 건 아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헌터 협회에서 조회해 볼 수 있는 내 경력은 텅텅 비어 있겠지.
그나마 E랭크 헌터보다는 낫겠다만, 내 토벌 경력을 본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아니, 이준구 이 새끼는 이런 걸 왜 나한테 맡겨?"
씨발, 나한테 뭐 원한이라도 있나?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반려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솔직히 말해, 협회 내부에서의 대우가 좋아지고 어쩌고 해 봐야 실감 드는 부분도 없고. 내게 있어 헌터 협회 등록증은 있으면 편하겠고 없으면 불편할, 딱 그 정도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씁."
이번 일로 먼저 연락한 건 어디까지나 나였다. 그것도 자그마치 3년 만에.
애시당초 내가 헌터 협회에서 받는 눈총을 생각해 보면 이 또한 순탄했을 리는 없다.
거기에 갑자기 안면에 내던진 A랭크 몬스터 출몰 현상.
이런데도 놈은 귀찮은 내색 하나 않고 오히려 내게 직장까지 소개해 준 셈이다.
물론 그 근간에는 인력 부족이라는 현실적인 사정이 있었지만, 여하간 이 쪽이 폐를 끼친 것 또한 사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겐 필요 없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하긴 했지만, 여기서 그냥 받아 쳐먹기만 하고 입을 싹 닦는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몬스터 새끼겠지.
때문에, 나는 실로 십 년만에 좌식 생활 중이었다. 손에 든 건 녀석이 참고용으로 보내 둔 교보재.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헌터 양성용이라기보다는 어디까지나 군용 헌터의 운용법에 대해 적힌 메뉴얼이었다.
사실 내겐 꽤 익숙한 내용이기도 했다. 이 내용을 저술한 군 소속 헌터, 청준필 준장과 아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거 참, 그 아저씨도 바쁜 모양이구만."
뭐, 아는 사이라고 해 봤자 실제로는 비공식적인 작전에 몇 번 협력한 정도였지만.
당시 전법 문제로 다른 헌터들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구하고 있었던 나는 현 대한민국의 헌터 운용법을 정립했다 일컬어지는 청준필 준장의 헌터론 또한 들을 수 있었고, 덕분에 이 교재 또한 어떻게 활용하면 될지 다소 감이 잡혔다.
이건 빼고, 이건 넣고…….
그렇게 얼마간 내 입맛에 맞게 교재 내용을 편집하고 있었을 때였을까.
"상당히 열심히시네요."
낯설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반지하 단칸방 안을 울렸다.
이 단칸방에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대략 3년 만의 이야기. 낯설다 못해 다소 당황스럽게 느껴지는 상황에, 나 또한 고개를 들어올려 방금 전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야 말았다.
소녀는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좀 미안할 정도였다. 지루함을 달랠 만한 TV나 책은커녕 제대로 된 의자 하나 없는 방 한 가운데에 방치되어 있는 소녀. 그 앞에는, 방금 전 내어줄 게 없을까 고민한 끝에 적당히 받아주었던 수돗물이 마찬가지로 쓸쓸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바닥까지 늘어진 머리칼은, 여전히 독특한 푸른색.
허나, 기분 탓일까? 그 풍성한 머리카락이 지금은 다소 풀이 죽은 것처럼 보였다.
자하연.
이번 사태의 목격자이며 당사자. 동시에 피해자라 할 수 있을 이 아이는, 어쩌다 보니 내가 맡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더럽게 수상하군. 하지만 내게도 변명할 시간을 주었으면 한다.
물론 나로서는 전적으로 그녀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던 게 사실이다. 왜냐하면, 정말로 내 추측마냥 그녀가 게이트란 게이트는 모조리 닫힌 이 상황에서 세 마리나 되는 A랭크 몬스터를 끌어들일 수 있을 만한 능력이 있다면 더할나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이준구의 이름을 빌어 협회에 보호를 신청, 만일 이 요청이 통과되면 적당히 그녀와 연락을 주고받을 생각이었다. 여하간, 나 또한 이번 몬스터 난입 사태의 참관자라 말하지 못할 것도 없었으니까.
이는 이준구의 제안에 의해 내가 협회에 속하게 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허나,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잘 생각해보면, 지금 이 상황에서 A랭크 몬스터가 나돌아다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섣불리 공론화할 수도 없지 않은가?
대대적으로 공개하면 나야 속은 시원하겠지. 하지만 그건 다시 말해 요 3년 동안 평화를 누리고 있던 이들에게 언제 터질지 모를 핵폭탄이 우리 근처에 있다고 말해주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평화라는 타성에 젖는 건 경계할 필요가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다짜고짜 터트리기엔 지나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다.
아마도 녀석이 직접 걸음한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겠지. 그렇기에, 나 또한 이번 일을 묻어두자는 말에 동의할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였다면 미쳐 날뛰었을지도 모르는 결정이었지만, 오랜만에 몬스터들을 썰어댄 덕일까? 마음에 한층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당연히 보안 문제가 생긴다.
일단 이번 사태의 당사자인 나와 그녀는 어쩔 수 없다. 함구령 정도는 감당해야겠지만. 이번 제안의 발안자인 이준구나, 녀석이 몬스터의 사체를 은폐하기 위해 움직인 요원들까지는 필요 경비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이번 사건을 알고 있는 이들을 늘리는 건 위험하다는 게 나와 녀석의 공통된 판단이었다.
문제는, 원칙적으로 국회의원이 타 직업을 겸직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때문에, 녀석은 이를 정말 심플한 방법으로 해결했다.
그렇게, 나는 눈 앞의 그녀…… 자하연의 호위가 되었다.
아니, 못 할 건 또 없긴 하지. 서류가 올라간 이상, 나 또한 일단은 협회 소속 헌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이상 이번 사건에 대해 퍼트릴 생각이 없다면, 당연히 내부적으로 해결하는 게 옳다.
거기까지면 상관 없겠지만, 공교롭게도 현재 그녀에게는 제대로 된 주거지가 없었다. 대침공 이후, 지나치게 불어난 고아들을 수용하기 위해 보육원들의 퇴소 연령이 20세에서 16세로 낮아진 탓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노숙은 논외다. 도의적인 설명을 제외하더라도, 보호하기 힘드니까. 무엇보다도, 만일 그녀에게 정녕 몬스터들을 끌어들이는 능력이 있다면 더할나위 없는 재앙이 되기 십상이다.
때문에, 나로서는 그녀를 여기까지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집 한 채 얻어주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하지만 저번에도 생각했듯 대뜸 그런 일을 해 봤자 무언가 속셈이 있지는 않을까 경계를 살 뿐이다. 이전이었다면 모를까, 호위 대상과 호위자가 된 이상 그런 마찰은 지양해야 할 일이었다.
지금도 바깥에 널리고 널린 수많은 광고들을 뚫고 부동산까지 향할 자신이 없었기도 하고.
아, 새끼. 이 정도는 알아서 좀 처리해 주지.
"괜찮아.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알고 있는 너라면, 틀림없이 저 아이 또한 마음을 열어주겠지."
아니 씨발아~ 그딴 말이나 할 거면 집 한 채 얻어주고 가~
돈은 언제든지 내 줄 수 있는데 말이지. 그런 투덜거림을 삼킨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방금 전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호위자와 호위 대상이 떨어져 있어선 안 된다던가, 만에 하나 거리를 두었다가 그녀가 머무르는 곳에 몬스터가 출몰할 경우 대처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던가…….
그렇다 쳐도, 남자랑 여자애 아니냐?
조금쯤은 신경 써 줘라, 개자식아.
"그래. 혹시 불편한 점은 없고?"
"네, 없어요."
"그, 그러니?"
다행스럽게도, 손이 많이 가는 편은 아니었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랬지만, 굳이 따지자면 조용한 아이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까지 편해지지는 않는다.
'겁나 불편하네.'
솔직히 말해, 내 개인적인 공간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부터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렴 저 애만 하겠나 싶어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하물며, 저 나이대 계집애랑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가출하기 전이었으면 모를까, 현직 27세 아저씨 헌터 박우찬에게 있어 여고생이라는 생물은 지나칠 정도로 낯설었다…….
게다가 더더욱 크나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이 불편한 동거가 언제 끝나게 될지 누구 하나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여하간, 이번 사태부터 전례가 없는 일이었으니.
일단 나로서는 최대한 가까운 시일 내에 헌터 협회에 들를 생각이다. 만일 몬스터들을 끌어들인 그 능력이 헌터로서의 각성 징조였을지도 모르는 이상, 측정해 볼 필요는 있었다.
그리고 만일 측정 결과 그녀가 헌터로 각성한 것이었다는 결론이 나올 경우, 그녀 또한 십중팔구 예의 헌터 아카데미에 입학 절차를 밟게 되겠지.
협회의 보호 시스템이란 무릇 그렇다. 대상에 대한 철저한 보호를 약속하는 이상, 필연적으로 대상의 거취에도 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 이번 경우로 따지면, 내가 아카데미의 교사로 차출된 이상 그녀 또한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밖에 없듯이.
만일 그녀가 헌터가 아니었을 경우엔 다소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내가 보기엔 그런 걱정까지 사서 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은은히 새어나오는 마력도 그렇고, 그녀는 십중팔구 헌터일 테니까.
단지, 본인이 아직까지 자각하지 못했을 뿐.
'문제는 그 경우 이 불편한 동거도 상당히 길어질 거라는 점이지.'
고작해야 며칠만에 결과가 나올 만한 문제도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
어쩌면 앞으로 보호자와 피보호자가, 혹은 학생과 교사 사이가 될지도 모르는 생판 처음 보는 아저씨와 같은 방에서 머무르게 되었다기엔…… 그녀는 지나칠 정도로 낯빛에 변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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