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낙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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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찬과 헤어지고 돌아온 이래, 이준구는 줄곧 제 입가를 만지작대고 있었다. 정치에 입문할 적부터 들였던 습관이었다. 자네, 다 좋은데 표정 관리가 너무 안 되잖아. 일찍이 그를 비서로 기용해주었던 야당 소속 정치가가 그에게 지나가듯 말해준 조언 덕택이었다. 비록 D랭크 몬스터 때문에 불귀의 객이 되어버리시긴 했지만, 그 조언만큼은 아직도 이준구 안에 버젓이 살아 있었다.
정치인으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에게 딴죽을 거는 이들은 없었다. 거기에는 물론 지금 이 대한민국에서 감히 이준구에게 딴죽을 걸 수 있는 게 누가 있겠느냐는 현실적인 문제 또한 있었지만, 그보다는 애초에 당파 싸움엔 관심도 없는 이준구를 공연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헌터의 인권을 위하여.
헌터와 대중이 어우러지는 사회를 위해.
그런 명제를 내걸고 정치계에 투신한 이준구는, 사실 정치권에서도 상당한 유명인이었다. 비록 헌터로서의 업적 덕분이긴 했지만, 반대로 그 덕을 보고 있는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허나, 만일 그에게 헌터로서의 실적이 존재하지 않았다 한들 오늘만큼은 별다른 핀잔을 듣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거 참, 말이 안 되긴 왜 안 됩니까? 막말로 여기에서 저 친구보다 업계 사정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아, 그 쪽만 헌터야?! 내 사위도 헌터야!"
"헌터같은 소리 하네. 그래서? 그 잘난 사위분께서 B랭크 몬스터라도 잡아본 적 있으쇼? 나 참, 말을 말지 내가."
"뭐가 어쩌고 저째?!"
그 정도로 난장판이었다.
신도심 속으로 높다랗게 자라난 건물들 중에서도, 한없이 위쪽. 비행형 몬스터들이 출몰함에 따라, 고층에 산다는 말이 곧 죽음조차 불사하리라는 뜻이 되어버린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최상층에 자리한 회의실은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당연히,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회의 한 번 할 때마다 죽음을 각오하고 회의실에 오르는 건 아니다. 말하자면 이는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전원이 몬스터조차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만큼 든든한 뒷배를 가지고 있다는 증명이나 다름없었으나, 당장 눈 앞에서 도떼기 시장판마냥 다투고 있는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정녕 이 사람들이 현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정치가들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게이트가 열린 이래, 수많은 헌터들이 제 명성을 바탕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마치 미국의 전쟁 영웅들처럼 말이다.
허나, 정치에 입문한 전쟁 영웅들이 으레 그렇듯이 헌터들 대부분은 제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인세의 각축장에 떠밀려 은퇴하고 말았다.
물론 이준구는 개중에서도 극히 드물게 정치판 위로 안착할 수 있었던 부류였지만, 그런 자신조차도 눈 앞의 소란을 보고 있자니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 기분이 무럭무럭 몰려드는 듯했다.
다만, 지금은 다른 때처럼 그런 식으로 현실도피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눈 앞의 혼란을 불러들인 건 어디까지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대답해 보세요, 이준구 의원!"
그렇게 말하며 그를 손가락질하는 건 현 여당의 거물 정치인이었다. 수준이 너무 다르다는 점을 제외하면, 야당에 속한 이준구와는 정적이라고 하지 못할 것도 없는 입장. 하지만 지금 저 눈꺼풀 너머로 번뜩이는 빛은 너무나도 유명한 전쟁 영웅의 명성에 대한 질시나 초보 정치가에 대한 핍박이 아닌, 순수한 짜증이었다.
"물론 이 쪽도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부탁드릴 수 있겠지요?"
이번엔 헌터 협회의 지부장이었다. 헌터가 아니었음에도 불구, 수많은 헌터들을 제 아래에 두고 부리는 정계의 실력자임과 동시에 아직 현역이었을 적에는 수도 없이 신세를 진 은인이다. 그러나 이준구에게 있어 전우라 할 수 있는 그에게 있어서도, 이번 일은 썩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사안이었다.
저들이 이토록 당황스러워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이번에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던 프로젝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자리들 중 하나를, 이준구가 제멋대로 친구에게 내어주었노라 선언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회의실은 난리가 났다. 이번 프로젝트에 있어, 이준구의 재량권을 인정해 준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허나 이는 이준구의 실력과 안목을 믿고 맡긴 것이지, 대놓고 코드 인사를 기용하라는 뜻은 아니었다.
물론 관행적으로 그런 일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관행은 어디까지나 관행. 이토록 당당하게 면전에서 언급해서야 과연 저 쪽 또한 물고 늘어질 수밖에 없다.
정치가라고 하면 협잡꾼에 믿을 수 없는 놈들이라는 이미지가 있으며, 실제로도 그런 오물을 쓰는 게 그들의 역할이기도 했다. 하지만, 인류가 게이트를 상대로 승리한지 고작해야 3년. 지금 이 나라엔 쓸데없는 논쟁으로 낭비할 수 있을 만큼 여력이 넉넉한 게 아니었다.
요컨대, 그들의 분개는 이준구가 보기에도 상당히 합리적이었다. 만일 그들이 모종의 이권을 위해 언성을 높였다면 이준구 또한 철면피를 쓰고 나섰겠지만, 아무래도 그렇지 않은 이상 이 쪽 또한 제대로 응대할 필요가 있었다.
애초에 이를 위해 준비한 자리였기도 하고.
"……."
이런 상황에서도 그가 속한 야당의 당수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무책임하고, 달리 보자면 제 밑은 스르로 닦으라 말하는 듯한 태도였다.
달리 말하자면, 발언을 허가한다는 뜻이다.
덕분에 이준구 또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이준구는 자신이 코드 정치에 발을 담갔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몇 번을 생각해 봐도 자신이 선택한 인선은 최선에 가깝다. 다소 급하게 일을 처리한 감은 있지만, 저번에만 해도 말 한 마디 없이 3년 내내 모습을 감춘 녀석이다. 지금 당장 붙잡지 않으면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판국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발언하겠습니다."
이준구의 발언에 좌중의 언성이 잦아들었다. 그렇게 3초. 천천히 침묵을 곱씹으며 속으로 시간을 셈한 이준구는, 천천히 좌우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이번 제 행동에 당황하신 마음들, 짐작합니다. 아무리 재량권이 주어졌다 한들 지나치게 파격적인 인사라는 말에도, 동의합니다."
"그럼 동의해야지!"
투덜대는 소리는 이제 와선 숨기려는 기색조차 없다. 방금 전, 제 사위 또한 헌터라 외치던 정치인이다. 그렇게 목소리를 높인 만큼, 필시 이번 천거에 대해서도 조사해보았을 테지.
그렇기에 더더욱 용납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여하간, 이준구가 추천한 인물은 협회에 기록 하나 없는 무경력자였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정치나 당파 싸움을 넘어, 이준구에겐 지금 이 선택이 옳은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다.
"허나, 저는 이번 인선에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할나위 없는 확신입니다. 감히 단언컨대, 그 자리에 제가 추천한 친구 이상으로 어울리는 이는 없을 겁니다."
"거, 그 친구라는 양반이 누군데 그러쇼?"
"박우찬 헌터입니다."
그 말에 좌중의 반응은 크게 둘로 갈렸다.
하나는 그게 누구냐는 듯 좌우를 훑어보는 이들. 주로 게이트 발생 이전부터 정치인이었던 이들이나, 모종의 사유로 헌터 업계와 다소 거리를 두고 있는 자들이었다.
"박우찬? 아니, 그게 누구야?"
"아니, 애초에 이름만 들어서 알 사람이었으면 여기서 이러고 있지도 않았어요!"
이윽고 약속하기라도 한 듯 그들은 일제히 항의를 터트렸다. 그러나, 그들의 항의 어린 목소리는 누군가 제지하기 전부터 미묘하게 잦아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방금 전에 비해 아무래도 기세가 영 시원찮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거의 절반, 방금 전 그들과 행동을 함께하지 않은 이들 대부분이 침묵을 지킨 채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로 게이트 발생 이후 정치에 몸담은 정치가였거나, 혹은 본래부터 헌터 업계와 친밀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도축업자?"
"그 미친 놈 말이오?"
개중에서는 현역 시절 박우찬의 별명을 알음알음 꺼내드는 이들까지 있었다. 말하는 어투가 숫제 아니라 답해주길 간원하는 듯했다. 실제로 그 말에 이준구가 고개를 주억대자 침음성이 흘러나올 정도였으니.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협회의 실무진들과 연이 없는 이들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기묘한 분위기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제발 아니길 바라고 있던 사람들조차 박우찬이라는 헌터의 실력이나 흠결을 성토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곤혹스럽기 짝이 없는 침묵 사이로, 몇 개나 되는 손들이 빠르게 핸드폰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보나마나 협회 쪽에 심어둔 끄나풀들에게 연락을 넣고 있는 거겠지만, 설령 그렇다 한들 제대로 된 반응을 얻긴 힘들 게 뻔했다.
박우찬은 언제나 그런 인물이었다.
오늘만 해도 그랬다.
혹시 협회에 가입할 생각 있냐고 떠보는 이 쪽의 말에 단박에 일그러지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할 정도였으니까.
물론 이는 박우찬을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법한 반응이었고, 실제로 이준구 또한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언젠가 박우찬과 연락이 닿으면 부탁해 볼 심산으로 간직하고 있던 이번 안건을 제안할 수 있었던 것이다.
허나, 씁쓸함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침내 인류가 모든 게이트를 정복해, 평화의 시대가 찾아오길 어언 3년.
아직까지도 박우찬은 전장에 있었다.
고독한 늑대. 다소 흔한 표현이었지만, 이준구는 이토록 그에게 어울리는 서술을 찾지 못했다.
협회에 기록이 없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그는 협회에 가입한 적도 없었으니까.
협회와 대놓고 척을 진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협회와 친밀하게 공조를 유지하던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그가 얼마나 되는 몬스터들을 썰어댔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이들은 없었지만, 반대로 박우찬과 한 번이라도 만나본 이들 중 못해도 천 마리는 썰지 않았겠느냐는 말에 반대하는 이 또한 없었다.
그가 알고 있는 박우찬은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눈꺼풀 안에 뿌리 깊게 박아 넣은 살심을, 몬스터를 향해 겨누고 있는 사냥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자신과 동년배에 지나지 않는 소년이 그런 눈빛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처음으로 그와 마주쳤을 적 느꼈던 전율을, 이준구는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말하자면, 그는 천성적인 살육자였다.
박우찬이 과거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 그는 모른다. 애시당초 그런 일을 떠벌리고 다니는 성미도 아니었거니와, 면전에 대고 이를 물어볼 정도로 무신경한 사람도 없었으니까.
그런 시대였다. 애초에 헌터들 사이에서 과거를 추궁하지 않는 게 일종의 불문율이었음을 감안하더라도, 박우찬은 누구나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약한 소리 한 번 없이 침묵을 지키며 사냥에 나섰다. 그만큼 눅진한 감정을 품고 있으면서도 이를 쉬이 드러내는 일이 없었고, 몬스터들을 향해 토해내는 일 또한 없었다. 박우찬이 몬스터를 대하는 방법은 단 하나, 자신의 감정을 무차별적으로 풀어놓는 게 아니라 그조차 수단 중 하나로 여기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냉철한 살의 뿐이었다.
물론, 그가 자신에게 다가오던 사람들을 무작정 거부한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겉으로 보기엔 쾌활한 언동을 보이며 그들과 어울린 적 또한 있었다. 실제로도 그와 힘을 합쳐 몬스터를 상대로 맞서 싸운 이들 중 몇몇은 그런 박우찬의 모습에 감화되어 그와 함께 행동한 적도 있었다.
개중에서도, 특히나 그와 친밀한 관계였던 독심술사는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박우찬의 저런 모습은 단순한 허세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에겐 딱히 별다른 사연도 없으며, 단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분위기를 잡고 있을 뿐이라고 말이다.
허나.
그리 말하던 이들 또한, 박우찬이 사냥하는 모습을 지켜본 이후로는 입을 다문 채 그를 피하기 시작했다.
유쾌하며 가벼운 언동으로 주변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박우찬은 그 자리에 없었다.
남은 건, 넘쳐흐를 듯한 살심을 사람이라는 거푸집 안에 억지로 우겨넣은 듯한 살의의 덩어리 뿐.
"평소부터 스스로에게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요, 저 사람."
일찍이 박우찬을 그리 평했던 독심술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딱히 그들과 조우했던 몬스터가 특별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몬스터와 마주친 박우찬의 모습은 평소 그들이 알고 있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눈을 까뒤집은 채 날뛰는 박우찬의 모습은 몬스터를 죽여야 하는 입장인 헌터들이 보기에도 지나칠 정도로 난폭했고, 그 이상으로 자기파멸적이었다.
도저히 단순한 허세로 발휘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바로 옆에서 박우찬의 살의를 얻어맞은 독심술사는 그리 평했다. 아니, 오히려 평소 엿볼 수 있었던 그 경박함이 허세였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사람의 마음을 구축하고 있는 모든 요소가 살의라는 파도 아래로 휩쓸려 사라지는 듯한 무력감. 살의라는 감정이 그토록 농밀하고 끝이 없는 것임을, 독심술사는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어쩌다 저렇게 된 걸까.
평소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며, 자신이 당한 일을 숨기고자 행세한 탓일까. 사실 자신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고, 가족들은 모두 멀쩡하다고…… 평소 행동은 단순한 허세에 불과하다고 스스로에게 그리 되내이고 있었던 걸까.
모든 싸움이 끝난 뒤, 평소처럼 담소를 나누는 박우찬의 모습을 보며 독심술사는 형언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저 낯가죽 아래에 그토록 끈적한 감정이 다른 생물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조차 느껴질 정도였다.
이준구가 보기에, 그런 박우찬의 행동은 자신의 감정을 아까워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원한도 증오도, 모두 분노라는 불꽃을 태우기 위해 필요한 장작이다. 그리고 무릇 불꽃이란 장작이 없으면 꺼지기 마련. 말하자면, 박우찬은 자신의 분노를 성의 없이 토해낸 끝에 그 심마가 사그라드는 것을 다른 무엇보다도 두려워하는 듯했다.
삶도 없다.
취미도 없다.
애환도 없다.
필시 평소 내비치곤 하는 호방뇌락한 태도 또한 일종의 자기 방어 기제에 지나지 않겠지.
이번에 슬쩍 들린 박우찬의 방만 봐도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돈이 부족할 리도 없을 텐데, 제대로 된 가구 하나 없이 휑뎅그렁하니 방치된 방. 벽면에 새겨진 핸드폰 자국 또한 언젠가 꾸었던 악몽이 현실에 남긴 흔적이리라.
싸움 속에서만 살 수 있는 사냥꾼.
말하자면 박우찬은 그런 인물이었고, 이를 증명하듯이 평화의 시대에 모습을 감추었던 박우찬은 새로운 전란의 불씨와 함께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기에 이준구는 그 자리에 박우찬을 추천했다. 거기에는 그의 얼마 되지 않는 벗으로서, 아직까지도 그의 가슴을 불사르고 있는 화마를 꺼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또한 있었다. 허나, 그 이상으로 지금 이 나라엔 박우찬의 힘이 필요했다.
"아, 그래서 그 박우찬이라는 놈이 누구요?!"
참다 못해, 누군가 노성을 터트렸다.
마침내 터져 나온 성화에 이준구 또한 천천히 정신을 추슬렀다. 삼천포로 빠지려던 사고의 흐름을 붙잡아, 박우찬에 대해 사고하던 두뇌를 지금 이 자리로 되돌린다. 그리곤 몇 번 헛기침을 통해 가다듬은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허면, 대답하겠습니다."
신입 정치가 치고는 상당히 무게를 잡은 목소리였다. 허나, 그런 이준구의 태도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제 사위에게 연락을 넣고 있던 양반이나 의혹에 젖은 시선을 보내던 야당의 당수, 나아가서는 지금 당장 진심이냐고 묻고 싶어하는 듯한 얼굴로 이 쪽을 바라보는 협회 측 직원들까지 포함해 전원이.
당연한 이야기였다.
애초에 정치가로서는 신참에 불과한 그가 야당의 당수는 물론이요 헌터 협회의 지부장까지 호출할 수 있을 법한 대형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번 프로젝트를 맡은 건 신참 정치가 이준구가 아니다.
헌터 이준구.
뇌신, 혹은 사람의 형태를 한 우레.
보다 직관적으로 말해, 인류 최강.
이번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건, 대한민국의 일개 정치가가 아닌 '인류 최강의 헌터' 이준구였다.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연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백은, 물불 가릴 줄도 모르는 애송이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강렬했다.
마치 노회한 정치가처럼, 자신의 전문 분야에 있어 더할나위 없는 확신을 담은 채 이준구는 그리 말했다.
"걔가 나보다 강해요."
그리고.
인류 최강이 심플하게 던진 그 한 마디야말로, 이번 회의에 있어서 가장 큰 폭탄임과 동시에 회의를 닫는 맺음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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