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5화 (5/371)

〈 5화 〉 낙하산

* * *

게이트가 발생한 이래, 대한민국은 꾸준히 강대국으로서의 입지를 자랑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물론, 게이트가 열리기 전부터 대한민국은 나름대로 지역 강국 소리를 들으며 살았다. 사방 팔방에 강대국이란 강대국들은 모조리 포진하고 있어서 그렇지, 객관적으로 봤을 때 게이트 발생 전 대한민국이 약소국이라 불릴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허나, 몬스터들이 그를 고려해 침공하지는 않았다.

수많은 나라들이 몬스터들의 발톱 아래 산산조각났다. 거기에는 당시 대한민국보다 훨씬 큰 나라들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강대국들이 무너져내리는 가운데, 대한민국은 오히려 그 입지를 탄탄히 다졌다.

만일 누군가 이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면 십인십색 사람마다 각기 다른 대답이 튀어나올 게 뻔했다. 누군가는 한반도의 지리적 잠재성을 거론할 테고, 열 개 가량의 소국으로 분열된 중국의 모습을 보며 면적이 좁았던 게 도리어 이득이 되지 않았나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한국의 뛰어난 과학 기술력이나 국방부에 의한 초동 대처를 언급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른 나라랍시고 한반도와 비슷한 지리적 요건을 갖춘 나라가 없었던 것은 아니며, 소국이라 해서 무조건 무사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아니었다. 소위 말하는 마력 공학에서 한국이 앞서나가고 있는 건 사실이었으나, 반대로 타국과의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압도적인 입지를 구축하지는 못했다. 무엇보다도, 한국보다 군사력이 충실했던 모든 나라가 몬스터들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던 건 더더욱 아니었다.

사실 이 질문에 명확한 해답은 없다. 굳이 따지자면 운이 좋았고, 어쩌면 흐름을 잘 타서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헌터들은 이리 대답하겠지.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대한민국이 굳건히 바로설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이 나라에 이준구가 있었던 덕택이라고.

녀석에게는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첫 번째 게이트 발생으로부터 10년이 지난 어느 날, 몬스터의 출연이 돌연 급감했던 시기가 있었다.

어떠한 전조도 없이 발생한 이상 사태에 사람들은 심심하면 생산성 없는 논쟁을 거듭했고, 자칭 전문가란 이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TV에 나와 갑론을박을 벌였다. 그런 상황에서, 시민들의 관심은 오로지 단 한 점을 향해 쏟아졌다.

즉, 마침내 인류가 게이트를 정복하는 데에 성공한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이 또한 그저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가.

당연하지만,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몬스터가 지랄병을 떨어댔던 만큼 정답에 가까운 건 어디까지나 후자였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자면 후자 또한 온전한 정답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는 일시적인 현상 따위가 아닌,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였기 때문이다.

제 2차 대침공.

국제 사회는 뒤이어 일어난 사태를 이렇게 불렀다. 제 1차 대침공…… 다시 말해, 게이트의 발생에 뒤이은 대재앙이라는 뜻이었다.

게이트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며 어디까지나 미지의 적이나 다름없다 간주한 국가들은 그 이후 이어진 피해를 어떻게든 견딜 수 있었다. 허나, 서유럽과 같이 인류의 승리를 낙관한 채 축배를 들고 있던 지역은 거의 멸망 일보직전까지 몰리고 말았다.

유사 이래 두 번은 없을 게이트의 다량 발생. 그로부터 이어진 몬스터들의 대대적인 강습.

도저히 일개 국가가 감당할 수 없을 재난 앞에서,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무력했다. 하물며 마음을 놓고 있던 정부 기관 따위, 진격하던 몬스터들에겐 걸림돌조차 되지 못했다.

문제는, 대한민국을 포함한 대다수 나라들은 오히려 서유럽 쪽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눈 앞까지 다가온 평화라는 이름의 과실이 너무나도 달콤해 보였기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그렇게 생각한 국가들은 모두 그 댓가를 치렀다. 더 이상 인민들의 소요를 감당할 방법이 없어 대책없는 낙관론만을 밀어붙이던 중국은 그대로 공중분해되었고, 러시아는 동유럽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게이트 발생으로부터 10년. 그 사이 선구자들이 쌓아놓은 노하우가 없었다면 정말로 인류가 멸망했을지도 모른다 일컬어졌던 대재해. 3년 전, 최후의 게이트 공략 당시까지도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하던 사람들이 괜히 남아있던 게 아니었다.

그런 시대에, 이준구가 있었다.

뇌신.

혹은, 사람의 형상을 한 우레.

후일 그렇게 칭송받을 동갑내기 헌터는, 아직 그렇게 불리기도 전부터 전신에 천둥을 휘감은 채 전장을 활보했다. 그리고 그 손으로 수도 없는 생명을 살렸고, 망국으로의 카운트다운을 셈하고 있던 대한민국 정부가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무엇보다도, 희망을 버리다 못해 희망을 포기하고 희망에게 버림받았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인류가 제 2차 대침공을 극복하고, 마침내 반격의 결실을 거두었을 때.

사람들은 그를 영웅이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았다.

"존나 안 어울리네."

그리고 그 영웅 나리께서 지금 막 이 후미진 카페에 도착하는 참이었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이 한적하기 짝이 없는 장소 또한 영웅이라는 화려한 타이틀 앞에선 아무래도 빛바랠 수밖에 없겠지만, 그 이상으로 문을 열며 나타난 녀석의 모습이 문제였다.

평소 강철로 된 갑주를 걸치고 다니던 그 이준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말끔한 모습이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정장에 포마드 스타일로 빗어넘긴 머리칼. 몬스터들의 머리통을 쥐어 부수던 우악스런 손아귀엔 잘 빠진 가죽 가방을 들고 있었고, 몬스터들의 피로 피칠갑을 하던 얼굴은 화장이라도 한 양 말끔한 게 썩 보기 뭐했다.

허나, 그 이상으로 어색한 부분을 따지자면 역시 그 가슴팍에 달린 금뱃지일 것이다.

……그래.

박우찬, 27세.

녀석과 동갑인 내가 전직 헌터 겸 현직 날백수가 되어 하루하루 똥운치나 싸지르는 삶을 보내고 있을 때, 녀석은 전직 헌터 겸 현직 국회의원으로 전직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아직 박살내기 전이었던 TV에서 저 모습을 보았을 땐 당췌 이제 와서 무슨 영광을 노리겠답시고 저러고 앉았나 궁금했었는데, 지금 와서 봐도 참 우스운 꼴이다.

하긴, 저 놈이 야당에 있으면 국회 틀어막기는 못 하겠다 싶긴 하지만.

"오랜만에 불러놓곤 너무하네, 진짜."

"너무한 건 네가 내 시신경한테 해야 할 말이고. 그래서? 확인해 봤냐?"

"해 봤지, 그야."

그리 말하며 녀석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3년 전, 협회를 대표해 나와 대면하고 있을 때와는 영 딴판인 모습이었다. 정치 하면 사람이 늙는다더니, 벌써부터 삭은 티가 확 났다.

"지금은 부검 맡기고 오는 길이야."

"거 다행일세. 출입 통제는? 그거 애들이 보면 뒤집어질텐데."

"했지. 했기야 한데, 알고 있으면 좀 더 빨리 말해줄 순 없었어?"

"뭘 더 빨리 해, 빨리 하기는. 거의 잡자마자 했다, 잡자마자."

화두에 오른 건 바로 어제, 내가 도살한 그 도마뱀들이다. 사실 처음부터 이 얘기 하려고 부른 거기도 하고, 하는 김에 뒷수습까지 짬때렸는데 아무래도 잘 처리하고 온 모양이었다.

역시 정치인은 소처럼 일해야 제맛이지. 만족스레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자, 다시 한 번 더 한숨을 토해낸 녀석은 곧 바로 내 옆자리를 향해 곁눈질했다.

"……그래서? 이 애야?"

"옹야."

그리고 그제서야 그녀, 자하연 또한 반응하기 시작했다.

지나친 유명인의 등장에 깜짝 놀란 것일까. 일단 자기소개 비스므리한 걸 입에 담는 것 같긴 한데, 거의 쥐죽은듯한 소리라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하긴, 처음 보는 아저씨가 뒷수습 하겠답시고 국회의원을 부르면 나라도 저렇게 되겠지.

"기억하지? 민간인 한 명 얽혔다고."

"듣기야 들었지. 아무래도 조금 자세히 들어야겠다 싶어서 온 거지만."

그렇게 말해도 사실 이 쪽이 해 줄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여하간, 거의 전화를 통해 전한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애시당초 나부터가 무언가 설명해 줄 수 있을 만큼 자세히 알고 있지도 않았다. 쓰레기 좀 버리러 가다가 몬스터 있길래 죽였더니 옆에 누구 하나 있더라? 딱 이 정도고.

뭐, 그러니 녀석 또한 직접 찾아온 거겠지.

평소에 연락이라곤 단 한 번도 한 적 없다는 걸 넘어, 거의 3년만의 생존 신고다. 놀랍기도 놀라웠겠지만, 만일 그 뿐이었더라면 현직 국회의원인 이준구가 단박에 시간을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아마도 녀석이 여기까지 찾아온 건, 이번 사태 자체가 썩 심상찮기 때문일 터.

게이트란 게이트는 모조리 닫힌 지금 이 시대에, 어디에서 나타난 건지도 모를 A랭크 몬스터가 셋.

공교롭게도, 녀석은 이런 일을 무시할 만한 성격이 못 됐다.

하물며 내 말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적어도 여태까지 몬스터 관련으로 거짓말을 한 적 따윈 단 한 번도 없었으니 말이다.

"설마 몇 년만에 갑자기 나타나서 부탁한다는 게 또 이런 골치 아픈 일일 줄이야."

그런 식으로 투덜대기는 했지만.

잠시 둘이 대화를 나누는 걸 지켜봤다. 하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이 녀석 또한 천성이 싸움꾼. 정치에 입문한 지는 벌써 3년이라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고작해야 3년이다. 녀석이 던지는 물음은 노회한 정치가의 교묘한 감언이라기보다는 도리어 내가 사전에 말해준 사실들을 확인하는 쪽에 가까웠고, 그렇기에 그녀의 대답 또한 얼추 비슷했다.

"어떻게 생각하냐?"

"글쎄, 아무래도 조금 더 확인해 봐야겠지만……."

말끝을 흐렸지만, 사실 대답이야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미심쩍은 부분이 너무 많다.

결국 마지막까지 도마뱀 새끼들을 쫓던 헌터들과 조우하는 일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녀석을 통해 확인해 본 결과 이 주변엔 그런 소규모 게이트가 없다는 사실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요컨대, 바로 어제 내가 발라버린 그 새끼들은 정녕 하늘에서 떨어졌는지 땅에서 솟았는지 알 수 없다는 뜻이었다.

아직까지 제 2차 대침공 세대가 현역으로 뛰고 있는 지금, 무시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거기에 눈 앞의 소녀 또한 문제였다. 나중에 어디 가서 A랭크 몬스터랑 마주쳤네 무서웠네 떠드는 정도라면 차라리 귀엽다. 문제가 되는 건, 만일 그 몬스터들이 이 애를 쫓아온 경우였을 때다.

단순한 원한.

혹은, 질 좋은 마력을 노리고 헌터를 덮치는 얼간이들.

어느 쪽이든, 예전부터 그런 일은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지금은 다르다.

모든 게이트가 인류에 의해 정복당한 이 평화의 시기에, 어디에서 나타난 건지도 알 수 없는 A랭크 몬스터 세 마리라니?

몬스터들을 끌어들였답시고 마녀사냥 당하기에 딱 좋은 소재다.

더더욱 최악인 건, 마녀사냥으로 끝나지 않을 경우다.

예컨대, 정말로 그녀에게 몬스터를 끌어들이는 능력이 있다면?

썩 곤란한 이야기였지만, 있을 수 없는 가정은 또 아니었다. 소위 '미끼'라고 불리는 능력이다. 몬스터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향을 뿌려 그 되다 만 축생 새끼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부류의 힘은 일찍이 몇 차례 보고된 바가 있었다.

물론 불안하게나마 몬스터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이 능력은 현역 헌터들에게도 지극히 드문 능력이었으며, 개중에서도 복수의 A랭크 몬스터를 조작할 만한 헌터는 애초에 발견된 적조차 없긴 했다.

하지만 게이트란 게이트는 모조리 닫힌 이 시대에, 갑자기 나타난 A랭크 몬스터 세 마리가 아무 힘도 없는 계집애를 쫓아다녔다는 것보다야 훨씬 더 가망 있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그녀는 스스로가 헌터라는 자각이 없는 듯했지만, 이 또한 검사해 보면 확실해질 일이었다.

사실 내가 노리는 부분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헌터 협회에는 보호 감찰 제도가 있다. 말이 보호 감찰이지, 실제로는 요주의 인물에 대한 감시 내지는 호위나 다름없다. 요컨대, 특정 인물에게 협회 소속 헌터를 붙여주는 것이다.

요인 경호, 혹은 중요 인물에 대한 신변 보호. 아직 북한이 존속하고 있었을 적엔 망명자 등에게 적용된 적도 더러 있다고 들었다. 소문으로는 전문적으로 이런 일을 맡는 보디가드 헌터들이 있다고 할 정도였으니.

그리고 이 경우, 눈 앞의 소녀 또한 보호 대상이 될 여지는 충분했다.

헌터 협회가 보호하는 건 단순히 높으신 분들만이 아니다. 헌터가 관련된 사건의 증인이나 목격자 또한 이러한 보호 제도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눈이 돌아가 범죄를 저지른 헌터가 관련자마저 죽여버리려 할지도 모른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소녀에겐 그녀를 죽여버리고자 달려드는 헌터는 없었다. 그러나 그녀를 죽일 듯이 달려들던 몬스터들은 있었다. 그리고 이 경우, 헌터 협회가 게이트도 없이 나타난 A랭크 몬스터 세 마리를 우습게 보고 있지 않는 한 십중팔구 그녀에게 보호 조치를 내릴 게 뻔했다. 혹시나 그녀에게 무슨 힘이 잠재되어 있는지 조사할 필요도 있을 뿐더러, 만일 그대로 돌려보냈다가 다른 민간인들까지 몬스터에게 휩쓸리기라도 한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요동칠 게 뻔했다.

뭐, 그거야 헌터 협회가 생각할 일이고.

'연락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만일 정말로 그녀에게 몬스터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어쩌면 나 또한 주기적으로 몬스터들을 도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하간, 나는 해당 사건의 첫 발견자라고 할 수 있는 입장이다. 그런 이상 헌터 협회에서도 사건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선 주기적으로 나를 호출할 수밖에 없고, 그럴 때마다 나 또한 그녀와 접촉할 수 있을 공산이 컸다.

물론 너무 단락적인 추측이기는 했다. 어디까지나 정황을 보고 때려맞췄을 뿐, 별다른 근거도 없고. 굳이 따지자면 사건 당시 내가 그녀에게서 느꼈던 묘한 위화감 정도겠지만, 그조차 이제는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어차피 이대로 살다간 더 이상 몬스터는 구경도 못 할 판이다. 그렇다면 어차피 할 일도 없는 거, 여기에 투자해도 나쁘진 않겠지.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까놓고 말해, 그나마 나였으니 다행이지 만약 나 대신 다른 헌터가 있었다면? 아니, 애초에 이준구까지 은퇴한 마당에 A랭크 몬스터 세 마리를 도살할 수 있는 헌터가 그렇게 흔할까?

그러니 이 쪽이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겠다, 이 말씀이시다. 딱히 돈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원한다면 소재도 양보할 수 있다. 이 쪽은 몬스터만 사냥할 수 있으면 되니 연중 무휴 무급 노동도 씹가능. 이런 조건 어디 가서 또 없다. 거기에 협회는 따로 인력을 차출할 필요도 없으며, 그녀는 상대적으로 평범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이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게 아닐까?

"아무래도 보호 처리하긴 해야겠지."

"그렇지?"

"그래. 문제는 네 신분이야."

뭣이?

"요새 협회는 신고한 사람 직업도 보냐? 이런 씨발, 그럼 나같은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으라고?"

"애초에 넌 신입도 아니잖아……. 그런 게 아니라, 이번 사건이 사건이니까."

"흠?"

"A랭크 몬스터가 나왔다. 그래서 죽였다. 그렇게 말해야 하는데, 너 아직도 협회 등록 안 했지?"

그러고보니 그랬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헌터가 되면 협회에 등록하는 게 당연시되는 이 시대에, 나같은 비 인가 헌터는 아무래도 설 자리가 없었다. 아니, 없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헌터 협회에 등록조차 하지 않은 입장으로서 헌터 협회의 시스템을 이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말로만 들으면 숫제 정경유착의 한 장면이었지만, 사실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협회 등록 따위, 요새는 인터넷으로도 신청할 수 있다. 언제 한 번 날짜 잡고 근처 동사무소 가서 능력 검증하면 딸 수 있는 게 헌터 자격증이었으니.

문제는 내겐 그런 자격증이 없다는 점이다.

아, 씨발. 빌어먹을 광고…….

"그냥 네 이름으로 등록하면 안 되냐?"

"국회의원은 겸직 못 해."

"뱃지 떼 그냥."

"돌았어?"

씁, 어쩔 수 없지.

침착히 눈을 감고 각오를 다진다. 마침내 내게도 이 때가 오고 말았나…….그래, 조금만 연습하면 광고 따위 안 보고도 신청 정돈 할 수 있겠지. 문제는 동사무소 운영 시간인데, 그것도 어찌저찌 계획만 잘 짜면 가능할 법도 했다.

아니, 그 이전에 이 새끼 입김 쓰면 안 되나? 내가 역겨운 광고들을 피해 때 아닌 잠입 액션을 시도하는 것보다야, 비록 국회로 떠났다지만 일찍이 협회의 정점에 섰던 이준구의 이름을 쓰면 훨씬 더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헌터이자 국회의원의 권세를 등에 업고 동네 꼬마도 각성만 하면 10분 만에 딸 수 있는 자격증을 발급받을 생각에 희희낙락하고 있자, 마침 녀석 또한 생각한 게 있다는 듯이 나를 보며 천천히 입을 떼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제안이 있는데……."

역시 정치 짬밥이 어딜 가진 않았구나.

아무래도 녀석은 이미 준비를 마친 듯 싶었다. 짜식, 많이 컸다. 그래, 본격적인 국정 농단의 시작이다──.

"너, 교사 한 번 안 해 볼래?"

"엉?"

그러나.

그리 생각하며 코끝을 훔치는 내게 녀석이 내민 서류는, 헌터 협회 등록 서류 따위가 아닌 무언가 기묘한 증서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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