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4화 (4/371)

〈 4화 〉 몬스터포비아

* * *

결론만 말하자면, 아무래도 내가 몬스터들을 죽이긴 한 모양이다.

솔직히 말해, 요새 영 갑갑했던 탓에 지나가던 사람 몇 회쳐놓곤 몬스터라 자기합리화하고 있는 거 아니냐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건 아니라는 듯했다.

허나, 문제는 오히려 거기에 있었다.

썰어댈 때야 좋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역시 무언가 이상했다.

게이트가 인류에 의해 정복당한지 어언 3년.

갑자기 인간으로 의태할 수 있는 몬스터가 세 마리나 튀어나왔다니?

말이야 쉽지, 의태는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철저하게 이에 특화된 몬스터, 예를 들어 도플갱어 따위가 아닌 이상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도 좋겠지.

당연한 이야기다.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분장하는 것조차 어려운 판국에, 완전히 다른 종족을 가장하는 게 쉬울 리가 있나. 때문에,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설령 인간으로 변신한다 할지라도 어설프게한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처럼 어딘가 티가 마련이었다.

이는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생물이라 불리는 드래곤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그토록 오만한 성정을 갖춘 과다 비만 도마뱀 새끼들이니만큼 더더욱 자신을 낮추고 다른 생물 흉내를 내려 할 리 없었다.

소위 말하는 폴리모프의 난이도까지 고려하면, 못해도 A랭크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A랭크 몬스터라 하면 상대하는 데에는 미사일이, 확실히 처리하기 위해선 핵을 터트려야 할 수준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 날 그 자리에 핵폭탄 세 개가 모여있었다는 뜻인데.

"그래서? 정말로 아무것도 짐작 가는 게 없다고?"

"네."

아무리 그래도 지나가다 핵폭탄 세 개가 굴러다니는 걸 봤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때문에, 지금 당장 내 고민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건 바로 눈 앞의 소녀 쪽이었다.

소녀는 자신의 이름을 자하연이라고 말했다.

나이는 열 일곱. 이제 막 고등학교 1학년이 될 나이다. 그러니까, 학교에 다닐 만한 여유가 있었다면 그랬을 거라는 소리다. 몬스터가 사회를 한바탕 뒤집어놓은 지금, 의무 교육 제도 따위는 꿈 속의 꿈이나 다름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린 지 오래였으니까.

실제로 그녀 또한 자신이 진학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도 않는 듯했다. 적어도 방금 전까지 이야기를 나눠본 바로는 그랬다. 자신을 일개 고아라고 말하며, 어떠한 지연이나 혈연도 기대할 수 없으리라고 담담하게 읊는 모습엔 묘하게 달관한 부분이 있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단순히 불쌍한 애다. 천애고아로 태어나, 제대로 된 도움이라곤 살면서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소녀. 흔하다면 흔하다고 할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설령 그렇다 한들 그녀가 겪은 불행의 무게까지 퇴색되는 건 아니었다.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그녀가 무고한 시민이라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아무리 이런 시대라 해도, 어디에나 있는 고아 한 명을 상대로 드래곤이 세 마리나 튀어나올 턱이 있나.

사실, 척 보기만 해도 명백한 사실이다.

물결이 굽이치는 듯 구불거리는 푸른 머리칼. 그 밑으로 반짝이는 진주빛 눈동자. 새벽녘을 틈탄 어둠 속에서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화사한 외양 너머론 뚜렷한 이목구비가 자리하고 있었고, 그 날의 달무리를 닮은 듯한 피부는 마치 백옥빛 도자기처럼 은은한 우윳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일개 고아는 무슨.'

정말로 그렇게 주장하고 싶다면, 최소한 평범한 외모를 준비하는 성의 정도는 갖춰라.

틀림없이, 게이트 발생 이후 저런 외양 또한 비교적 드물지 않은 건 사실이다. 게이트에서 발생한 마력과 그에 따른 신체 변화는 비단 헌터에게 국한된 일만은 아니었으니까. 마력과 접촉한 모든 이들이 헌터로 각성하는 건 아니었지만, 반대로 각성하지 못한 이들 또한 마력의 영향을 받아 몸에 변화가 생기는 일 정도는 없잖아 있었다.

허나, 이를 감안해도 그녀의 외양은 다소 지나치리만큼 눈에 띄었다.

외모도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눈에 밟히는 건 역시 저 특유의 독특한 색감이다.

마력의 영향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화사한 색깔의 머리카락. 거기에 마치 벚꽃이 핀 듯한 눈동자. 여타 헌터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그 빛깔이야말로, 그녀가 어지간한 헌터들보다 더욱 강대한 마력에 노출된 적 있다는 증거였다.

"그렇단 말이지."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눈 앞의 소녀는 내 추궁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어째서 제게 그런 일이 있었던 건진 정말로 모르겠어요. 여태까진 단 한 번도 그런 적 없었거든요…….

참으로 곤란한 일이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벌써부터 제 머리를 헌터마냥 물들인 미친 년을 보고 드래곤들이 단체로 눈이 돌아갔다기보다야 아무래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각성한 그녀의 마력이 모종의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쪽이 훨씬 더 설득력 있게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정작 말하고 있는 본인조차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뿐, 거짓말을 하고 있는 기색은 아니었다.

'조금 정리해볼까.'

사고를 전환한다.

눈 앞에 있는 그녀의 이름을 떠올린다. 자하연. 나이는 올해로 열 일곱. 천애고아였던 탓에 부모가 누구인지 아는 바는 없음. 딱히 알려진 친척도 없으며, 실제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아원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 퇴소당했고, 때문에 언제부터 몬스터들이 뒤를 밟기 시작한 건지 짐작 가는 일은 없다고 했다.

톡, 톡. 자신도 모르게 테이블을 손가락 끝으로 건드린다. 이 아가씨를 안심시키기에 좋은 행동이 아니라는 건 내심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여기까진가?'

가장 먼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추론이라도 해 보기엔 아무래도 주어진 힌트가 지나치리만큼 적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게 이번 사건을 해명해야 할 의무 따위가 주어진 건 아니었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십중팔구, 눈 앞의 그녀에겐 무언가가 있다.

과연 그게 무엇일진 나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관심도 없다.

내게 있어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그녀에게 있는 '무언가'에 이끌려 몬스터들이 찾아왔다는 사실 뿐.

그래.

농담으로도 사교적인 성격이라고 말하기 힘든 내가 난생 처음 보는 계집애에게 이렇게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이유 또한 그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나는 그녀를 미끼 삼아 몬스터를 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도저히 칭찬받을 만한 발상은 아니긴 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불가항력이라고 말하고 싶다.애초에 나만 좋으라고 하는 이야기도 아니고.

정말로 예의 몬스터들이 눈 앞의 소녀를 쫓다 나와 마주친 거라면, 내게 있어 이 계집애는 은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장하는 게 아니다. 장장 3년만에 몬스터들을 썰어댈 수 있었던 내 기분은 그 정도로 최고조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녀는 일종의 몰이꾼 역할을 한 셈이다. 솔직히 말해 어차피 다 쓰지도 못할 거, 마음 같아서는 수고했다는 핑계로 한 몇 억쯤 쏴주고 싶은 기분이기도 했다.

허나, 만일 그녀가 자신에게 있는 '무언가'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후에도 몬스터들이 계속해서 그녀의 뒤를 밟는다면?

그렇다면 그녀는 어떻게 될까.

이번에야말로 다른 누군가가 도와주리라는 보장도 없이, 홀로.

썩어도 헌터인 나로서는 아무래도 그런 상황을 가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는 김에 겸사겸사 몬스터들도 쳐죽일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지만!

오히려 협회가 나한테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닐까? 애초에 이런 일 해결하라고 받는 월급, 내가 대신 뛰어주고 있는 건데 말이야.

그런 식으로 자기합리화하며 시작한 이야기. 그러나 아무래도 별다른 소득은 거둘 수 없을 듯했다. 역시 사람 인생, 그리 쉽게쉽게 갈 수는 없는 걸까.

애시당초 그런 식으로 따지면 전문적인 탐문법을 배운 것도 아닌 내가 이제 와서 수상하니 어쩌니 해 봤자 뭘 알 수 있겠냐마는.

그리 생각하며 나는 내 앞에 놓인 커피를 홀짝였다.

카페, 테라스. 아무래도 이 쪽이 살고 있는 집은 누군가를 안심시키기엔 썩 힘든 탓에 우리는 새벽 이슬을 맞으며 적당히 편의점에서 노가리를 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침이 밝자 우리들은 자연스레 걸음을 옮겨 이제 막 연 카페의 한 자리를 턱 하니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방금 막 영업을 시작한 점도 있어, 카페 안은 사람 그림자 하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한산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애초에 이런 분위기가 특징적인 점포이기도 했다. 듣기로는 본래 하던 가게가 몬스터 때문에 물리적으로 폭삭 주저앉고 난 뒤 새로 차린 가게라던데, 덕분에 몬스터가 관련된 마케팅 따윈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어 나 또한 마음 편히 애용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럼, 앞으론 어쩔 거니?"

대답은 없었다. 사실, 쉬이 대답할 수 있었다면 오히려 놀랐을 터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게이트가 발생한 이후 세상에는 몬스터에게 부모님을 잃은 아이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대한민국의 보육원들은 이토록 늘어난 고아들을 부양할 만한 여력이 없었다. 때문에, 이제 아이들은 스물이 아닌 열 여섯 나이에 고아원을 떠나야만 했다.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국민의 약 3할 가까운 인원이 가족을 잃었다 일컬어지는 이 시대에, 그 정도면 오히려 선방한 축일 거라고.

틀린 말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 막 열 여섯 내지 열 일곱 된 계집애가 제 살 길을 궁리할 수 있다는 뜻은 또 아니었다.

"어디 갈 데라도 있어?"

마찬가지로, 대답은 없었다.

만일 그 뿐이었더라면 차라리 지금에라도 파출소에 맡기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그마치 3년만에 몬스터들을 썰어댄 나는 지금 이상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고, 그 이상으로 두 가지 의미에서의 걱정이 앞섰다.

하나는 고작 반나절이라지만 이렇게 이야기까지 나눈 애가 어디서 얼어 죽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이요, 또 하나는 이대로 보냈다가 이 애가 신세 지던 집까지 몬스터들의 습격에 의해 박살이 날지도 모른다는 의혹이었다.

뭐, 어울리지도 않는 호의를 발휘하고 있는 데에는 물론 오랜만에 몬스터를 찢어 죽일 수 있었던 탓도 적잖게 관련되어 있긴 했지만.

"집이라도 하나 사 줄까?"

"……?"

아무리 그래도 이건 실수다.

잠깐 묵었다 갈 테냐고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지금 나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들뜬 모양이다.

아무튼, 덕분에 흘러넘치는 관대함을 과시하며 다시 한 번 고쳐 물었지만 그녀는 대답 대신 떨떠름한 미소만을 띄울 따름이었다.

하긴, 아무리 절박하다 해도 난생 처음 보는 아저씨 집에 묵는 건 거부감이 생길 수밖에 없겠지. 방금 전 말실수랑은 별개로 말이야.

……별개 맞겠지?

'뭐, 이 정도인가.'

그렇지만, 슬슬 작파해야 할 때였다.

상황 수습을 고려해도 지나치게 길게 어울린 감도 있거니와, 내 개인적인 부채감과는 별개로 이 이상 해 줄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원한다면 집 정도야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처음 보는 아저씨가 집을 사주겠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여고생이 있을 리가 있나.

만약 고개를 끄덕인다면 조금 다른 의미로 걱정이 된다. 오히려 인생에 경각심을 심어줘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어느 쪽이든, 아쉽긴 했지만 슬슬 마무리 단계에 들어갈 때였다.

"좋아. 그럼, 잠깐만 기다려 보렴."

남은 건 정말로 뒷수습 정도.

그리고 이 사회를 살아남는 데에 필요한 건, 이러니저러니 해도 혈연과 지연이다.

응? 학연? 그야 게이트가 전부 말아먹었지.

사실 혈연과 지연이라는 단어조차 게이트 발생 이후엔 그 의미가 다소 변질되어버리긴 했지만, 그거야 어쨌든.

그리 생각하며 멋들어진 태도로 일어선 난, 그러나 곧 이 카페의 점주에게 조용히 청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 좀 빌려도 될까요?"

"그러쇼."

아, 맞아.나 아직 핸드폰 다시 안 샀지.

등 뒤로 꽂히는 미적지근한 시선을 애써 흘려넘기며, 나는 카페에 비치된 전화기의 번호판을 손끝으로 깔짝댔다.

다행스럽게도, 번호는 기억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다면 연락해라. 상담에 응해 주겠다. 부탁이다. 속에 홀로 쌓아두진 말아다오…….

예전부터 그토록 절박하게 간청해대던 녀석이 있었던 탓이다. 비록 내 태도를 보고 착각한 탓에 벌어진 희극이긴 했지만, 덕분에 녀석의 번호는 어느덧 내게 있어서도 지극히 익숙한 물건이 되고 말았다.

'딱히 외우려 한 적도 없었는데 말이지.'

천천히 신호가 가는 소리가 들렸다. 불현듯 예전과는 달리 너무나도 유명해진 녀석이 어쩌면 내 연락을 무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 한들 내가 받는 피해라고는 자신만만하게 일어난 주제에 뭐 하나 제대로 한 일도 없이 주저앉은 꼴을 보고 날아들 냉담한 시선 뿐이겠다만.

사실, 애초에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딸칵.

[누구십니까?]

"나다 새끼야."

어쩌면 녀석이 마음을 바꿔 먹었을지도 모른다던가, 애초부터 지금 이 번호는 내 핸드폰 번호도 아닌 만큼 무시당할지도 모른다던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녀석은 도저히 그럴 만한 성격이 못 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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