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화 (1/371)

* * *

〈 1화 〉 전쟁이 끝났다

* * *

전쟁이 끝났다.

막상 입 밖에 내고 보면 이토록 얄팍한 말도 달리 없다. 휴전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느새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되어버린 이 대한민국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지금 중앙 광장에 모인 이들 중 그 말에 코웃음치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기묘한 침묵만이 있었다.

비웃기는커녕 헛기침 한 번에 온갖 눈총이 날아들 법한 분위기. 훅 하고 불면 날아가 버릴 듯한 살얼음판 속, 낙엽 바스락대는 소리에도 노심초사하는 모습들만이 눈에 밟혔다.

물론, 그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고작해야 저 한 문장.

고작해야 저 두 마디.

고작해야 저 여섯 글자를 위해 여태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던가?

그들은 이를 알고 있었다.

[최후의 공략대가 드디어 마지막 게이트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아! 몬스터들이 도저히 상대가 되질 않는군요!]

그리고 지금, 마침내 그 노고가 결실을 맺으려 하고 있었다.

광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그 너머로 벌겋게 달아오른 진행자의 얼굴이 보였다. 숫제 침을 튀기다 못해 쏘아내는 듯한 그 몰골을 보건대, 아무래도 여간 흥분한 게 아닌 듯했다.

그러나 화면 앞에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은 낯빛으로 카메라 속 사람들의 활약에 집중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썩 훌륭한 실력은 아니었다.

진행자의 입담은 나쁘지 않았지만, 만일 그 뿐이었다면 청중들이 이토록 흥분하지는 않았을 테지.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공략대'의 행동 하나하나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고, 가끔씩 그들이 위험에 처하기라도 하면 마치 제 일인 것마냥 안타까운 장탄식을 토해내곤 했다.

심지어, 평소라면 욕을 한 사발로 쏴갈길 상황에서도 매한가지였다.

어설픈 실수로 팀원들의 발목을 붙잡는 젊은 공략대원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역으로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쥔 채 예의 얼빠진 대원을 응원하는 관중들의 모습은도저히 D랭크 게이트 공략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물론, 이해할 수는 있었다.

자그마치 20년.

첫 번째 게이트가 열린 이래, 줄곧 패배를 거듭하던 인류의 반격이 마침내 쾌거를 거두려 하는 것이다.

때문에, 거리는 완전히 축제 분위기였다.

가도를 가득 메운 환성 사이론 때때로 감정에 복받친 울음소리들이 새어나왔다. 허나, 평소와는 달리 혀를 차거나 핀잔을 던지는 이들은 없었다. 오히려 감격에 겨워 쓰러진 노인들을 부축하는 청년들의 모습이 군데군데 눈에 밟힐 정도였으니.

만일 누군가 이 장면을 보았다면 십중팔구는 축제라 생각했을 테지.

실제로, 틀린 말도 아니었다.

지금 이 풍경은 머잖아 역사의 한 장면이 될 테니까.

마침내 인류가 게이트의 공포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날……그런 표제를 달고서 말이다.

흘끔, 시선을 흘린다. 어느덧 공략대는 게이트의 최심부에 발을 딛고 있었다. 무기들을 움켜쥔 꼴이 퍽 어설프긴 했다만, 저 정도라면 별다른 문제 없이 심부에 도사린 터주 또한 쓰러뜨릴 수 있으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문득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전쟁은 끝났다.

정말로.

꼬박 20년을 지새운 전쟁이, 마침내 인류의 승리로 끝난 것이다.

"······전쟁은 끝났어."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저 멀리서부터 환성 울려퍼지는 가도가 벽 너머에 도사린 낙관론자들의 낙원이라면, 지금 이게 사실이기는 한지 혹여 섣불리 건드렸다가 꿈에서 깨는 건 아닌지 전전긍긍하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찬 광장 안은 바야흐로 비관론자들의 진창이라 할 법했다.

그 끝자락.

소란에 가득찬 가도와 지레 겁을 집어먹은 광장 사이로덩그러니 자리잡은 뒷골목에, 우리가 있었다.

참으로 절묘한 장소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후미지게 올라간 돌담과 지독하리만치 퀴퀴한 냄새. 그 위로 한 올 야트막한 그림자를 덮어씌운 회색빛 골목길은, 바깥에서 보기엔 누구 하나 시선 주는 일 없이 방치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치 감옥처럼, 그렇게 말하는 건 다소 요란스러운 감상일까.

아니, 어쩌면 이 또한 녀석이 의도한 바일지도 모른다.

이번 일에 환호하는 사람들도, 이번 일에 비관적인 사람들도 누구 하나 주목하지 않는 울타리 너머.

지금 이 자리야말로, 녀석이 나를 상대로 준비한 교섭터일 테니까.

······스피커 너머로부터 요란스레 울려퍼지는 몬스터들의 단말마를 배경음 삼아 가도에서는 벌써 자체적인 퍼레이드를 진행하고 있었다. 헌터들의 모습을 중계하고 있는 뉴스 앵커는 여전히 열변을 토하고 있었고, 마침내 광장에 모인 이들에게도 희망이 봄꽃 내음마냥 향긋하게 흐드러지는 모습이 눈에 밟힐 정도였다.

녀석이 내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또한 필시 이 광경이었을 테지.

평화라는 단어가 한낯 농담이 된 이 시대에, 아무래도 녀석은 진심으로 평화를 논할 생각인 모양이다.

"그래, 이젠 정말로 끝이야."

"그러냐."

"고랭크 게이트 대부분은 이미 공략됐어. 저랭크 게이트는 십중팔구 제어할 수 있고. 산발적인 게이트 발생도, 이젠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수준에 지나지 않아!"

"나도 눈 있다. 귀도 달렸고."

"더 이상 싸울 필요는 없어. 이젠 정말로 싸우지 않아도 된다고!"

이 새끼, 남의 말을 경청할 줄 모르잖아.

자신도 모르게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물론, 녀석이 어째서 이토록 절실하게 나오는지 정말로 모르는 건 아니었다.

더 이상 싸울 필요는 없다.

내가 그 말에 다른 녀석들과는 다소 다른 감상을 품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지금 이 녀석은 별로 익숙하지도 않은 혓바닥을 열심히 놀리고 있는 거겠지.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그건 내가 이 녀석이나 이 녀석의 뒤에 있을 누군가에게 완전히 위험 분자라고 낙점찍혔다는 소리나 다름없었으니까.

보나 마나 뒤에서도 이런 저런 말이 나왔을 게 뻔했다. 예를 들면, 지금 당장 저 '마지막 게이트' 안으로 난입해 공략대를 토막내고 농성하려 들지도 모른다던가.

'완전히 폭탄 취급이군.'

다시 한 번,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나왔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이 쪽은 오히려 여유 있는 태도를 보이는 게 좋겠지.이 쪽의 행동 하나하나에 숨을 죽이고 반응을 살피는 놈의 반응을 보건대, 모르긴 몰라도 이 쪽과 드잡이질을 벌일 각오 정도는 다지고 왔을 테니까.

허나, 지금 내겐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 정도로 심상찮은 절망감이 내 안에서 넘쳐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끝났다.

정말로.

더 이상 인류에게 남은 과제는 없다.

마침내 모든 게이트를 정복한 인류는, 진정으로 평화의 시대를 맞이할 자격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래, 네가 이겼다."

"뭐?"

"네 똥 굵다고."

한 순간 흘러나온 당황.

그러나 거기에 응하는 대신, 나는 먼저 자리를 비우고 일어서기로 했다.

"간다."

뒤늦게 울려퍼지는 당혹성을 무시하며 걸음을 옮긴다. 다행스럽게도, 이제 와서 뒤를 밟는 녀석들은 없었다.

그렇게 두어 번쯤 더 골목을 돌았을 때였을까?

다음 순간, 어마어마한 탈력감이 어떠한 전조도 없이 나를 덮쳤다.

무릎 아래부터 와르륵 무너져내리는 듯한 느낌. 자신이 딛고 있는 바닥이 사실은 굳건한 대지가 아니라, 언제든지 부서질 수 있는 스티로폼 블럭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만 같은 감각이었다.

그제서야 문득 실감이 났다.

모든 게이트가 닫혔다.

인류가 승리했다.

그것은 다시 말해, 더 이상 몬스터를 죽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씨바아아아아아알!!"

······인류의 저항. 인류의 반격. 인류의 승리.

필시 그렇게 칭송받을 위업을 앞두고, 이 세상에서 오로지 나만이 씻어낼 수 없는 좌절감을 삼키고 있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