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 2부 28화 죽음에 관한 의혹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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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28화 죽음에 관한 의혹 (1)
나는 써니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넨 뒤 드림홀을 타고 내 꿈속 세상으로 진입했다.
'한 달에 한 번인데 까먹을 수는 없지.'
"대장장이의 망치 생성!"
((체력이 증가합니다.))
((마력이 증가합니다.))
((집중력이 향상됩니다.))
(('제작의 법칙' 스킬을 시전할 수 있습니다.))
"제작의 법칙!"
((제작에 실패했습니다.))
지배석을 꺼내 들고 대장장이의 망치로 힘차게 내리쳤으나, 제작 실패라는 문구가 내 앞에 나타났다.
'젠장.. 실패도 있다더니... 두 번밖에 시도를 해보지 못해서 확률이 좋은지 안 좋은지는 아직 구별이 안 돼."
제작 실패로 인하여 우울한 마음으로 대장장이의 망치를 인벤토리창에 넣고 선 수련관으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꿈속 세상의 보름이라는 시간이 다시 지나고 나는 현실 세계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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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마치고, 채린이와 나는 승만이네 집에 도착했다. 거실에 둘러 앉아 제일 먼저 입을 뗀 건 채린이었다.
"너희들은 내가 미내기 님의 꿈속으로 간 사이에 별다른 일은 없어?"
응. 없었어."
나도 없었지."
"수련은 열심히 했고?"
당연하지."
당연히 열심히 했지."
"나를 꿈속에서 못 봤는데 안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지.
당연히 보고 싶었지.
채린이가 던진 질문에 승만이와 내가 똑같은 대답을 내놓자, 언짢아졌는지 나를 보며 주먹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귀령... 죽을래?"
"승만이랑 나랑 똑같은 대답을 했는데 왜 나한테만 그래.."
"네가 승만이보다 늦게 이야기했으니까 그렇지."
"진짜 별일 없었고 수련도 열심히 했고 당연히 네가 보고 싶었으니까 나름대로의 내 대답을 한 거야."
채린이는 내 말을 듣고는 할 말이 없는지 승만이가 준비해놓은 과자를 양손에 한 움큼씩 집어 내 입에 구겨 넣었다.
"몰라, 과자나 먹기나 해."
"웁.."
"그리고 내가 승만이의 꿈속을 한 번을 갔다 오라니까 약속도 안 지켰더라?"
간신히 채린이가 내게 넣어준 과자를 삼킨 후 말을 이어갔다.
"아.. 미안 내가 정신이 없었어."
"도대체 요즘 무슨 일을 꾸미고 다니길래 그렇게 정신이 없어!?"
내가 정신이 없는 이유를 알고 있는 승만이는 채린이의 말에 괜히 자신이 찔렸는지 먹고 있던 과자가 사레에 걸려 채린이의 얼굴에 그만 뱉어버렸다.
"푸후.."
"승만아.. 지금 내 얼굴에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나는 불길한 기운을 감지하고 의자에 일어섰다.
"채린아, 먼저 가볼게."
"그래. 들어가. 미내기님의 초대코드는 보내놓을게."
승만이도 기운을 감지하였는지, 집에 가려는 나를 붙잡았다.
"종찬아.. 우리 친구라며.."
"미안, 오늘 해야 할 게 많아서..."
승만이의 육두문자와 비명이 섞인 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매몰차게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승만이가 의외로 표정 관리를 못한단 말이야..'
방안에 들어왔을 때 내 핸드폰으로 우상엽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네. 형님 저 상엽입니다."
"그래. 알아봤어?"
"형님이 저한테 보낸 정보가 확실한 거 맞습니까?"
"맞아. 왜 뭐가 이상해?"
"아니, 그게 아니라..."
수화기 너머로 느껴질 만큼 우상엽은 나에게 말하기 상당히 곤란스러운지 우물쭈물하며,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괜찮으니까, 말해봐."
"형님이 저한테 알아봐달라고 하신 이정수씨와 김종대씨가 형님의 아버님 친구분들이라고 하신 것도 맞습니까?"
"그래. 맞아."
"그게.. 이미 돌아가신 분들입니다."
"돌아가셨다고?? 나이가.. 그렇게 많으신 분들은 아닌데... 사인이 어떻게 되는데?"
"이정수씨는 교통사고를 당하셨고, 김종대씨는 자살을 하셨습니다."
"돌아가셨다라..."
우상엽의 말을 듣고 혹시나 우리 아버지처럼 자각력을 잃고 자살을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제일 이상하다고 생각이 드는 게 두 분 다 공교롭게 같은 날에 돌아가셨습니다."
"둘 다..? 말도 안 돼.."
"제가 혹시나 해서 몇 번이나 알아봤는데 확실합니다."
"돌아가신 게 언제쯤이야?"
"두 분 다 사망 일자가 2007년 4월 3일입니다."
우상엽의 말을 들은 순간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2007년 4월 3일이면 내가 다섯 살이 되던 해이자,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었다.
'이거... 도대체.. 그날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수화기를 들어 말을 이어갔다.
"상엽아."
"네. 형님 말씀하세요."
"이정수씨가 어떻게 교통사고를 당했는지 정확하게 알아봐 줘."
"알겠습니다. 김종대씨도 한번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우상엽과 전화 통화를 끊고 책상 의자에 앉자, 머릿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같은 날 돌아가신 게 정말 우연일까?'
당장이라도 할아버지에게 아버지에 관해 여쭤보고 싶었지만, 할아버지 또한 아버지에 대한 상처를 가지고 계시는 분이었다.
'괜히 확실하지 않은 말로 할아버지를 혼란스럽게 하기보다는 아버지가 어떤 식으로 자살을 선택하셨는지 여쭤봐야겠어.'
할아버지에게 질문할 것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나는 할아버지의 서재 앞으로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종찬이냐?"
"네. 할아버지"
"자, 잠깐만 기다리거라."
할아버지의 서재 앞에서 오 분 정도 기다렸을 때 서재 안에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들어와라."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 안을 가득 채운 매스꺼운 담배 연기에 반사적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할아버지."
"아직도 냄새가 나니?"
"네. 담배 안 피우는 사람은 냄새를 더 잘 맡아요."
"미, 미안하다. 내가 담배를 안 피워야 하는데 말이다..."
"맨날 말로만 하시지 마시고 담배 좀 줄이세요."
할아버지는 내 잔소리에 민망하셨는지 의미 없이 책상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네가 요즘 서재에 출입이 잦구나."
"물어볼 게 있어서요."
"그래, 뭘 물어보려는 것이냐?"
"다름이 아니라.."
아무리 머릿속으로 질문할 것을 정리하고 갔어도 막상 할아버지가 앞에 계시니 입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괜찮으니 말해 보아라."
"저희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요."
할아버지는 내 말을 듣고 잠시 움찔거렸지만, 이내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래. 언젠간 종찬아 네가 아버지에 관해 물어볼 줄 알고 있었다."
"그날 상황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알고 싶어요."
"그래. 이야기해 주마."
#
그날은 여느 때와 똑같은 아침을 맞이했었다. 항상 식탁에 마주 앉아, 같이 아침밥을 먹던 아들은 마치, 누군가에 쫓기는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
"기범아, 무슨 일이 있는 것이냐?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아, 그게..."
아들은 굉장히 고민이 가득한 얼굴을 지어 보였고, 나는 그런 표정을 짓는 아들에게 물었다.
"고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거라."
"흠.. 제가 생각이 정리되는 대로 아버지한테 말하겠습니다."
내 아들은 그 전날 꿈속세상에서 자각력을 잃었던 거야. 그것도 자신의 조원들과 같이 말이지. 그때 당시에 나와 내 아들은 같은 A급이었지만, 아들은 본부소속이었고, 나는 일반 감시자 활동을 하고 있었던 때라 내 아들이 자각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지.
"기범이는 아직 안 들어왔니?"
"네. 아버님. 오늘 일이 바쁜가 봐요."
"흠. 알았다."
불길한 느낌은 언제나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지.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 어디선가 전화가 걸려왔다.
"권기범씨 아버님 되십니까?"
"네. 맞습니다만, 누구십니까?"
"안녕하세요. 여기 광희 병원인데 지금 바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전화를 받고 한걸음에 병원으로 달려가, 내 아들의 시신을 확인했지. 믿기지 않았어. 고민이 많아 보였지만, 분명 나에게 생각이 정리되는 대로 말한다고 했었으니까. 이유를 알았다면 차라리 마음이라도 조금은 편했을 텐데. 아들이 자살을 선택한 이유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지.
자살한 이유를 도저히 찾을 수 없으니까 혹여나 타살을 당했을 가능성도 생각을 했었거든. 하지만, 조사 결과 내 아들이 한강에서 직접 뛰어내리는 장면을 CCTV로 확인했고 그렇게 삼일 밤낮으로 잠도 자지 못하고 아들의 장례를 치렀지.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와 꿈속 세상으로 들어가니, 감시자들이 내 꿈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더라.
"공명님 되십니까?"
"네. 맞습니다."
"리카엘님 아버님 되시죠?"
"그렇습니다만.."
"리카엘 님이 자신이 이끌었던 조원들이랑 자각력을 잃으셨습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 아들이 자살한 이유를 삼일 밤낮으로 현실 세계에서 이유를 찾고 있었으니까. 근데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해졌어. 적어도 아들이 자살을 한 이유를 알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분노가 꺾이는 건 아니었지.
"도대체 누가 내 아들의 자각력을 뺏었다는 말입니까?"
"그게 흑협들의 소행으로 알고는 있지만, 정확하게 누가 그랬는지 특정은 할 수 없습니다."
꿈속 세상에 삼십 일을 밤낮으로 아들의 흔적들을 찾아 나섰지. 적어도 내 아들의 자각력을 뺏은 그 자식만큼은 용서할 수 없었으니까. 당연히 감시자일은 할 수 없었지.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어. 드림관리재단에서 그런 나를 말리려 했지만, 모두 무시했지. 아들의 복수를 위해서
"나, 나는 리카엘이란 자를 모른다."
"그럼 편히 잠들게."
"사, 살려줘. 으억."
(('수련','전투' 경험치 합산으로 S급으로 승급합니다.))
꿈속 시간으로 3년 정도 내 아들을 그렇게 만든 흑협들을 닥치는 대로 잡았더니 어느새 S급으로 승급했고, 드림관리재단에서 나를 본부로 배정을 시키더군. 처음에는 거절했어. 아들의 복수는 끝나지 않았으니까.
"공명님! 도대체 언제까지 룰을 어기실 겁니까!?"
"나를 놔두게."
"공명님이 이러시는 걸 리카엘님이 안다면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드림관리재단의 명령은 절대적이였지. 흑협들을 처리하는 것은 감시자의 일이긴 했지만, 불나방처럼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는 나를 묶어두고 싶었겠지. 어쩔 수 없이 나를 주시하고 있는 윗분들의 시선을 돌리려 말을 듣는 척 잠깐동안 본부에 발을 붙이기로 했어.
"안녕하세요. 공명님 우범이라고 합니다."
"저는 효진이라고 합니다."
"최희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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