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 2부 23화 리카엘의 정체 (3)
* * *
2부 23화 리카엘의 정체 (3)
"귀, 귀령아..."
'이런.. 너무 빠르게 끝냈나..?'
나는 재 빠르게 상황을 대처했다.
"호선아, 흑협들이 너와의 전투로 많이 지쳐있었나 봐."
"그, 그렇지..? 어쩐지 쉽게 끝난다 했어."
소혜는 감시자로서 자신의 첫 전투를 무사히 해결했다는 게 신이 났는지, 나에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래도 귀령이가 와준 덕에 쉽게 끝낼 수 있었어. 최희님도 안 부르고 우리끼리 해결한 거잖아."
나는 그런 소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음부터는 미안해하지 말고 나한테 바로 메세지를 보내. 우리는 같은 조원이잖아."
"응, 알겠어. 빨리 네 꿈속으로 가서 휴가나 즐겨. 최희님한테 보고는 우리가 알아서 할게."
"그래. 고마워."
'일단 사역마와 귀속 아이템을 얻기 전 조다영에게 정보를 얻어보러 가볼까?'
호선과 소혜에게 인사를 건넨 뒤 나는 드림홀을 생성해 조다영의 꿈속으로 진입했다.
'엇.. 저기 계시는군.'
드림홀을 빠져나오자, 처음 조다영의 꿈속을 방문했을 때 봤던 커다란 정원이 나왔고, 조다영은 정원 테라스에 앉아 차를 마시며 드림홀을 타고 들어 온 나를 발견하고는 씽긋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천귀령님, 반가워요. 잘 지내셨나요?"
"하하.. 잘 지냈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시다니..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괜찮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했습니다."
"괜찮아요. 드림관리재단에 들어왔다고 이야기는 들었어요."
"헙.. 벌써 알고 계시는 건가요?"
"모르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활약이 대단하시던데요? 이번에 특급수배자 광텐을 잡으셨다고.."
"하하.. 제가 잡은 것도 아니고, 저는 운이 좋게 발견만 하고 윗선에 보고만 한 것뿐인데요. 뭘.."
"운도 실력이 있어야 따른답니다."
나는 커다란 정원을 두리번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근데, 다영님 그때 봤던 귀여운 강아지들이 안 보이네요?"
"집안에 들여놨어요. 천귀령님처럼 예고 없이 찾아오시는 분들 중에 강아지를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아하, 다음부터는 웬만하면 메세지를 보내고 오겠습니다."
조다영은 나를 향해 다시 한번 미소를 지으며 마시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오늘은 어떤 일 때문에 오셨나요?"
"다영님에게 정보를 얻고자 왔습니다."
"정보 교환인가요?"
'흠.. 광텐의 꿈속에서 리카엘을 봤다는 사실을 정보로 교환하면 다른 누군가와 정보를 교환할 가능성도 있겠지..?
"아마도 이번에는 현금으로 지불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실례되는 말이지만, 현금거래는 액수가 상당한데 괜찮으시겠어요? 아직 나이가 어리신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그럼 이야기를 들어보죠."
"혹시 현실 세계의 사람에 대한 신상도 알 수 있나요?"
조다영은 내 질문을 듣고는 처음으로 표정이 굳어졌다.
"그, 발언.. 상당히 위험한데요? 현실 세계에서의 복수는 엄격히 금지되어있습니다."
"아.. 복수가 아니라.. 알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럼 이야기를 한번 듣고 결정해도 되겠습니까?"
"네. 상관없습니다."
"누구의 정보를 원하시는 거죠?"
"십 삼 년 전 감시자로 활동했었던 리카엘의 조원들에 대한 정보를 듣고 싶습니다."
"리카엘 님이라면... 공명님의 아들... 아... 천귀령님에게는 아버지시군요?"
"네. 그렇습니다."
"알고 싶은 게 뭐죠?"
"그냥 아버지가 감시자로서 활동했을 때 당시 조원들에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어렸을 적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에게 물어볼 수는 있지만, 괜한 궁금증으로 할아버지가 그때 당시에 받았던 상처를 다시 한번 들춰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일단 드림관리재단에 A급이하님들은 현실 세계의 정보를 공유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십 삼 년 전이라면 시간도 오래 지났고요. 현실 세계의 정보를 찾는 건 꽤 어렵겠지만, 공명님을 생각하시는 천귀령님의 마음을 생각해서 한 번 알아보죠."
"감사합니다. 그럼 액수는..."
조다영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을 마시고는 내게 대답했다.
"고민을 좀 해보고 현실 세계에 있는 테라님에게 연락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조다영에게 인사를 건넨 뒤 드림홀을 타고 내 꿈속으로 돌아왔다.
'이제 사역마와 귀속 아이템인가?'
저번의 광텐과 대전으로 A급으로 승급이 된 나는 사역마와 귀속 아이템을 모두 얻을 자격이 생겼고, 사역마를 먼저 얻기 위하여 소환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풉... 이곳에 와보니 감회가 정말 새롭군.'
소환장 중앙에 위치한 법진을 보며 괴도루팡과의 첫 만남을 회상하고는 나도 모르게 혼자 피식 웃어버렸다.
'채린이의 비키니가 아니었으면 괴도루팡과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 되었을 텐데... 그것 때문에 채린이에게 엄청난 고문을 당했었지.'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며, 나는 소환장 법진위에 섰다. 그래도 사역마를 한 번 소환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이 앞섰다.
'나에게는 루팡이가 있으니 굳이 강력하지 않아도 사역마의 성격만 좋다면 계약을 해야겠어.'
커다란 법진위에 앉아 사역마를 불러내기 위해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한 번의 경험으로 빠르게 사역마를 소환할 수 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삼십 분이 지나서야 드디어 사역마의 형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엇.. 근데 무슨 비키니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의 형태가 보였는데...? 아까 채린이의 비키니에 대한 기억 속의 잔상인가..?'
# 다시 30분 후
펑
((소환수 '서큐버스'가 소환되었습니다.))
"소년이여, 그대가 내 단잠을 깨웠는가?"
'뭐, 뭐야... 서큐버스잖아.'
인큐버스의 여성판이라고 알려진 유럽 몽마의 일종. 밤에 자고 있는 남자를 덮쳐 꿈속에서 성적인 관계를 맺고 정력을 빼앗아 소모시킨다고 한다. 중세 유럽에서는 남성의 몽정이 모두 서큐버스 탓이라고 여겼다.
서큐버스의 원래 얼굴은 추하다고 알려졌는데, 사실과 다르다. 게다가 꿈속에서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남성들은 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알려졌다.
"소년이여, 왜 내 물음에 답하지 않지?"
소환수 서큐버스는 음마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며, 등에는 붉은 날개가 붙어 있었다. 게다가 옷차림이 너무 야해 순간적으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아니, 나는 왜 히렌의 메두사양 같은 정상적인 소환수는 안 나오는 거야..'
괴도루팡과 서큐버스를 동시에 사역마로 두게 되었을 때를 생각하니 상상만으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사역마는 자신의 말을 두 번이나 무시하자, 화가 단단히 나 보였다.
"소년.. 감히 지금 이 몸이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안 하는 가?"
"안녕. 나는 천귀령이라고 해. 나는 지금 사역마랑 계약하기 위해서 너를 소환한 거야."
"가소롭군. 네까짓 게 나랑 계약을 한다고? 내가 순순히 당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나 보지? 얼굴은 제법 봐줄 만 하지만, 나는 그대와 사귈 생각이 전혀 없다."
'..... 차, 참을 수 없다.'
소환한 서큐버스는 화려한 유명세처럼 무척이나 강해 보였지만, 이미 괴도루팡 같은 강한 사역마를 두고 있어서인지, 강력한 사역마와 계약을 맺고 싶은 마음은 크게 없었다.
'일단 졌다고 인정하고, 다른 사역마를 소환해봐야겠다. 이제는 인성을 보고 뽑아야지...'
"이봐, 서큐버스."
"어정쩡한 화술로 나를 꼬시는 것을 불허한다."
"하... 그게 아니라, 이번 대결은 내가 졌으니, 네가 사는 곳으로 돌아가도 돼."
내가 계약을 맺는 걸 포기하자, 서큐버스는 의아해하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너, 너무 가까이 오지 말라고... 속이 다 비치잖아...'
"왜지??"
"무, 무슨 소리야?"
"다른 소환자들은 나랑 계약을 하고 싶어 혈안이 되어 있던데 너는 왜 그렇게 쉽게 포기를 하지?"
"그냥 네가 마음에 안 드니까."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내가 원하는 사역마랑 달라서 그런 거야."
"그대가 원하는 사역마는 뭐지?"
"내가 그걸 너한테 왜 설명을 해야 하는데.. 보내준다니까?"
"내가 무엇이 부족해서 마음에 안 드는지.. 짐은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서큐버스의 행동에 머리가 지끈거려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을 이어갔다.
"하.. 네가 아니어도 내가 요즘 복잡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야. 그냥 좀 가라."
"원래 소환자에게 소환이 되면 나와 그대 중에 누가 더 강한지 겨뤄봐야 하는 게 맞는 것이 아닌가?"
"그렇긴 한데. 내가 포기하고 널 보내준다잖아."
"거절한다. 짐은 그대와 겨뤄보고 싶다."
서큐버스는 팔짱을 끼고는 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 뭐지..? 이 똥밟은 기분은..? 겁이라도 줘서 보내야 하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사역마는 사역마라고 했던가? 나는 서큐버스의 겁을 주기 위하여 괴도루팡을 소환했다.
"나와라. 사역마!"
((사역마 괴도루팡이 소환되었습니다.))
내가 괴도루팡을 소환하자, 루팡의 표정에는 비장함이 감돌았다. 선배 사역마의 포스. 그리고 기세. 그것이 내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루팡!"
"알고 있소. 모니터를 하고 있었소."
"그래? 서큐버스가 아무리 강해도 루팡 너보단 아니지. 확실하게 겁 좀 줘서 보내자."
루팡은 서큐버스의 앞으로 서서히 다가갔다. 아무리 서큐버스가 강하지만, 아직 소환자와 계약을 안 해본 소환수 일 뿐이고 루팡은 나와 함께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역마였다. 서큐버스도 루팡의 기운을 감지했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럴 때는 또 든든하단 말이야..'
"안녕하시오. 괴도루팡이라고하오."
"그, 그대는 짐을 해치려 하는가?"
"제가 감히 서큐버스양을 해치다니 당치도 않은 말씀이오."
"그럼 그대는 왜 내 앞으로 온 건가?"
"서큐버스양을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보고 싶었을 뿐이오."
'괴도루팡... 이 새끼... 잊을만하면...'
괴도루팡은 서큐버스와 나란히 자리를 잡은 뒤 자신의 철 지팡이를 꺼내 들고는 나를 향해 외쳤다.
"귀령도령!"
"왜 불러?"
"덤비시오. 상대해드리겠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