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1부 46 나의 할아버지 (1)
* * *
1부 46 나의 할아버지 (1)
쨍그랑
서재에서 갑자기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났고, 나는 승만이와 무슨 일인지 확인을 하려 서재로 들어가려 할 때 채린이가 서재에서 황급히 나오고 있었다.
"채린아, 무슨 일이야?"
"... 비켜..."
"무, 무슨..."
채린이는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나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는 우리 집을 급하게 빠져나갔다.
'뭐지, 지은이랑 싸운 건가?'
서재에 들어가 보니 지은이와 승연이가 멍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뭐야? 채린이 한테 무슨 일 있어?"
그러자 지은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저, 액자..."
"액자?"
지은이가 가르키는 방향을 시선을 향하니 할아버지 서재에 있었던 액자가 바닥에 떨어져 액자를 보호하고 있던 유리가 깨져 있었다.
'아까 소리가 났던 게 액자 떨어지는 소리였군.'
"근데, 이 액자가 왜?"
"채린이가 갑자기 액자에 있는 사진을 보더니, 엄청 당황한 목소리로 사진 속 이분이 누구시냐고 하길래 내가 종찬이 할아버지라고 이야기해 줬거든."
"그랬더니?"
"그 말을 듣고는 채린이가 깜짝 놀라서 액자를 떨어트리더니, 말도 없이 뛰쳐나갔어."
'뭐지...? 왜 우리 할아버지 사진을 보고 놀란 거지?'
지은이와 나는 그 이후로 채린이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채린이는 우리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갑자기 뛰쳐나간 채린이 때문에 분위기는 뒤숭숭하였고, 결국 우리들은 여기까지만 놀기로 하고 헤어졌다. 친구들이 다 떠나고 서재에 들어가 떨어진 유리들을 청소하고 의자에 멍하니 앉아 채린이가 봤던 액자 속 사진을 유심히 살펴봤다.
'아무리 봐도 사진 속에는 할아버지 밖에 없는데... 할아버지를 보고 놀란건가??'
한참을 앉아 고민 하던 중 갑자기 불안한 느낌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이제서야 이런 생각이 들은 거지?'
할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미 루시드 드림과 감시자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할아버지도 자신의 꿈을 자각을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어..."
분명 레나가 꿈속에서의 감시자한테 들킨 건 자각을 한 지 3년이 지나 들켰다고 했다.
그러면서 들키지 않았던 3년 동안의 시간을 감시자의 눈을 피해 `오래 버텼다.`는 식의 표현을 했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자각을 한 지 10년이 지났었고, 채린이가 우연히 내 꿈속을 들어오지 않았다면 아직까지 흑협과 프란에 대해서는 모르고 지냈을 가능성이 컸다.
'할아버지의 정체는 도대체 뭐지...'
채린이는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고,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서재에 앉아 할아버지를 기다렸다. 서재에서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동안 머릿속에 수만 가지의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가 흑협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감시자라면, 왜 나를 방치해두었던 걸까?'
온갖 망상에 빠지며 불안하고 초조하게 할아버지를 기다렸다.
잠시 뒤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고 서재로 향하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끼익
할아버지는 내가 서재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는 놀라셨는지, 잠깐동안 말을 잇지 못하셨다.
"종찬아, 이렇게 허락도 없이 할아버지의 서재에 마음대로 들어오다니.."
"죄송합니다."
할아버지는 손을 휘휘 저으시며 이내 웃으셨다.
"아니다. 오랜만에 책을 읽으러 온 것이냐?"
"그게 아니라 할아버지에게 여쭤 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갑자기 이 할아버지한테 묻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나는 할아버지에게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최대한 할아버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할아버지, 흑협이세요?"
"뭐, 뭐라고??"
할아버지의 놀란 표정을 보고는 불길한 생각이 어느정도 맞을 수 있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할아버지의 표정은 분명 꿈을 자각할 수 있으신 것 같았다.
"네가 어떻게 흑협을?? 설마 너... 흑협으로 들어간 것이냐?"
"아니요."
"그럼 프란으로 들어 간 것이냐?"
"아니요."
"그럼 감시자..."
할아버지는 잠시 말을 멈추시고는 머리가 어지러운지 맞은편 의자에 앉아 말을 이어 나가셨다.
"종찬이가 지금 이 할아버지를 놀리고 있구나..."
할아버지의 기분이 안좋을 때 하는 버릇. 자신의 눈썹을 짙게 매 만지셨다.
"아뇨. 흑협, 프란도 말한 것처럼 아니고 감시자 또한 아니에요."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것을 안다는 말이냐?"
"할아버지는 늘 제 물음에는 답해주시지 않으셨었죠."
"....."
"답을 안 해주신다면 앞으로 꿈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묻지도 않고 답하지도 않겠습니다. 정말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할아버지는 흑협이신가요?"
할아버지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뜨시고는 나의 질문에 대답하셨다.
"아니다."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그래도 최악의 상황은 모면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할아버지가 흑협으로 활동을 하셨다면 내가 정신적으로 감당을 하기엔 너무 버거울 것 같았다. 나는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다른 질문을 던졌다.
"프란이신가요?"
"그것도 아니다."
"그럼 감시자이신가요?"
할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
할아버지가 감시자라니 모든 상황이나 정황들이 들어맞았다. 감시자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도 나에게 꿈속에서 자각을 자제를 하라고 했던 말씀도 이해가 가고 있었다.
"종찬아."
"네."
"이제 할아버지도 종찬이한테 물어봐도 되겠니?"
"네. 말씀하세요."
"너는 어떻게 집단들과 접촉을 하지도 않고, 꿈속에 있는 집단들을 알고 있는 것이냐?"
할아버지가 감시자이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채린이가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고 새파랗게 질린 표정을 봐서일까?
감시자 출신의 채린이에 관해서는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거짓말로 둘러대고 싶은 생각 또한 없었다.
"우연히 꿈속을 떠돌고 다니는 사람을 만나서 공유몽에 관한 것을 배웠어요."
"그, 그럼 설마... 꿈속에서 등급을 올리고 있는 것이냐?"
"네. 맞아요."
내 거침없는 대답에 할아버지는 의자에 앉아 탄식하시며 말씀하셨다.
"아... 내 울타리 안에서 너를 보호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던 내 자신이 한심스럽구나."
"할아버지. 이미 꿈속의 룰을 알게 된 이상 자각력을 잃을 각오는 하고 있어요."
"그래.. 할아버지가 너를 너무 과잉보호를 했구나.. 미안하다.."
할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연달아 쉬더니 그다음 하신 말씀이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
"네 아버지도 루시드 드림을 했었다."
"... 아버지가요?"
아버지는 내가 다섯 살 때 돌아가셔서 기억은 잘 안나지만, 사진으로 많이 봤기에 아버지의 얼굴은 뚜렷하게 기억을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까지 꿈속을 인지 했었다니..'
나에게 있어서 충격의 연속이었다. 내게 숨기는 것이 없을 줄 알았던 할아버지의 비밀을 두 가지나 알게 된 셈이다.
"그래. 네 아버지도 나와같은 감시자 였었지... 그때 당시 나와 네 아버지는 나란히 A급이었다. 즐거웠지, 무뚝뚝했던 현실 세계의 아들이 꿈속을 자각한 후 많이 변했었으니까."
"어떤 식으로 변했어요?"
"긍정적이며 활발하게 변했다. 나는 그런 아들이 변화하는 모습에 덩달아 행복했었지. 그러다가..."
"무슨 일이 있었나요?"
"어느 날 흑협들한테 지배석을 빼앗기고는 자각력을 잃었다."
"...... 자각력을..."
"그리고 지배석을 빼앗긴 다음 날 자살을 했지. 한강에서 발견했단다. 너의 아버지 시신을..."
"그, 그러면 아버지의 죽음의 이유가 꿈속 세상의 자각력을 잃어 현실 세계에서 자살을 선택했다는 거예요?"
믿을 수 없다는 내 표정을 측은 하게 바라보며 할아버지는 한숨을 깊게 내 뱉었다.
"그렇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잠겨 한참 동안 손자인 너에게 루시드 드림에 대해 넋두리를 하곤 했지."
"네. 기억나요. 이곳에서 할아버지가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셨죠."
"그러다가 네가 여덟 살이 되던 날 꿈을 인지했다고 나에게 말했을 때 내가 너한테 루시드 드림의 말한 것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아버지에 관해서는 가족끼리 입 밖으로 잘 꺼내질 않았다.
다른 집들은 집안에서 누군가 돌아가시면 살아생전에 그 사람의 이야기들을 한다고는 하지만, 우리 가족들은 아버지 이야기를 꺼려했다. 가족을 버리고 자신의 목숨을 끊었다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인지, 그냥 가슴이 아파서인지 할아버지와 엄마는 아버지에 대해서는 늘 말을 아끼셨다.
"저는 자각력을 잃었다고 현실을 포기하지 않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이왕 엎질러진 거 드림관리재단에 이야기를 해서 너를 감시자로 만들어야겠다. 그래야지 흑협들로부터 보호를 받고 감시자들이 통제를 안 하지."
"감시자요?"
"그래. 너를 강하게 만들어야지. 자각력을 빼앗기지 않도록.."
할아버지의 말대로 내가 드림 관리 재단을 들어갈 수 있다면 채린이가 드림관리재단에서 도망쳐 나온 이유를 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저에게 꿈속의 지배력을 높여 준 사람이 프란이랑 친하거든요."
"너의 스승님 같은 분이구나. 스승님이란 분은 프란이랑 친하다는 것은 프란이라는 뜻이냐??"
"네.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감시자와 프란사이는 결국엔 적. 할아버지한테 호된 꾸중을 받을 줄 알았지만 할아버지는 예상외로 담담했다.
"그렇다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그럼 꿈속에서는 그분이랑 수련을 같이 하는 거냐?"
"아, 그건 아니고.. 요즘은 저 혼자 해요."
"혼자? 그래. 급하게 급을 올리는 것은 자칫 잘못하다가는 위험에 노출될 수 있지. 그런데 도대체 언제부터 수련을 하기 시작했지?"
"현실 세계 시간으로는 보름 정도 됐어요."
"요즘 회사 일이 바빠서 네 꿈속 세상의 보호를 신경 쓰지 못했는데. 타이밍이 참 얄궂구나.."
"할아버지가 제 꿈속에서 오신 적이 있으시다는 말씀이세요?"
할아버지는 내내 걱정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다가 처음으로 나를 향해 웃음을 지었다.
"그래. 가끔씩 뭐 하고 있나. 확인을 했지.. 재미있게 놀더구나."
"할아버지는 제가 루시드 드림을 하는 것을 반대하셨잖아요."
"반대한다고 네가 안 했던 것도 아니잖냐.."
"그건 그렇지만.."
"손자가 꿈속에서 그리 행복한 표정을 짓는데, 꿈속에서 자각을 강경하게 반대하는 것은 이 할아버지에게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러면 차라리 저에게 일찌감치 이야기해 주시지 그러셨어요."
"네가 성인이 되면 다 이야기를 해주려 했다. 그때 가면 네가 받아들이기 수월해질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다시는 내 아들같은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일을 겪고 신중해지셨고, 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내 꿈속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을 하신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마음도 모르고 섭섭한 마음을 가졌던 지난날의 내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할아버지에게 채린이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만, 아무래도 채린이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봐야겠지.'
할아버지는 뭔가 생각이 나셨는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처음에 지배력을 확인했을 때 남들보다 지배력 등급이 높지 않았더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