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 1부 24화 떠오른 5년 전의 기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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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24화 떠오른 5년 전의 기억 (1)
"뭐, 뭐야? 무슨 일 있는 거야?"
"스, 승연이가.."
힘이 없어 보였던 목소리는 이내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바뀌었다.
"승연이가.. 지금 많이 다쳤대..."
지은이의 말을 듣고 순간 손에 힘이 빠져 핸드폰을 떨어트릴 뻔한 것을 두 손으로 간신히 부여잡고 전화 통화를 이어나갔다.
"자세히 말해봐."
"정확하게는 나도 잘 모르겠어.."
"지금 어딘데?"
"나도 지금 병원에서 전화 받고 가는 길이야.."
"알겠어, 병원 주소 카톡으로 보내. 당장 갈 테니까."
나는 전화를 끊고 지은이가 카톡으로 보내준 주소를 따라 병원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병원에 도착해 승연이가 입원해 있다는 병실에 도착하니 병실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울고 있는 지은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조, 종찬아 왔어?"
지은이는 병원에서 전화를 받고 정신없이 왔는지 주머니도 없는 잠옷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고,
한 손에는 지갑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핸드폰을 쥐고 있었다.
"승연이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 그게..."
지은이는 울먹거리고 있었지만, 이내 마음을 잡고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어제 승연이가 다니고 있는 기획사에서 회식을 한다고 했어. 그러더니 밤에 갑자기 카톡이 안되길래 나는 '회사 식구들이랑 있어서
연락을 못 하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잠들어버렸거든."
"응."
"그렇게 아침에 일어났는데 승연이 번호로 전화가 오더라고. 나는 당연히 승연이인 줄 알고 받아보니까 병원 관계자였어.. 너도 알다시피 승연이는 보호자가 없잖아."
"후.... 지금 승연이 상태는 어때?"
"너 오기 전에 의사 선생님께서 회진오셔서 여쭤보니까, 다행스럽게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대. 승연이는 내가 오기 전부터 잠들어 있어서 깨우지는 않았어."
"그래. 일단 들어가 보자."
무거운 발걸음으로 승연이의 이름이 적힌 병실로 들어갔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승연이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얼굴은 누구한테 폭행을 당한 듯 여기저기 부어 있었고, 목과 팔에는 멍이 들어 있었다.
'도대체... 누가 승연이를..'
병실에 누워있는 승연이를 본 순간 의사 선생님의 말씀으로 잠시나마 안도했던 내 마음을 책망했다.
승연이를 이미 본 지은이지만 다시 봐도 마음이 아픈지 눈물을 글썽거리며, 침대에 누워있는 승연이의 머리카락을 정돈해 주었다.
"우리 이쁜 승연이... 얼굴을 도대체 누가 이렇게 만든 거야... 우리 승연이 가수 해야 되는데..."
"......"
지은이의 흐느끼는 목소리를 듣고 인기척을 느꼈는지, 병실 침대에서 자고 있었던 승연이가 깨어났다.
"지, 지은아..... 종찬아..."
지은이는 깨어난 승연이를 아무 말 없이 안아주었고, 간신히 참고 있었던 눈물을 쏟아냈다.
승연이도 그런 지은이를 더 세게 끌어안으며 큰 소리로 목놓아 울었다. 나는 그렇게 서로를 껴안고 울고 있는 그들을 병실 한켠에 서서 조용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잠시 뒤, 지은이는 승연이에게 어젯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하여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승연아, 도대체 누가 그런 거야..?"
"그, 그게..."
승연이는 말끝을 흐렸고, 눈빛의 끝은 나로 향했다. 아마도 내 앞에서 말하기 불편해 보이는듯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승연이에게 말을 건넸다.
"승연아, 내가 불편한 거라면 나가 있을까?"
"종찬아.. 그건 아니고..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응. 걱정하지 마. 약속할게."
"그리고...."
"응..."
"이야기 다 듣고 나 피하면 안 돼.."
승연이의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 우리들의 지난 과거의 일이 떠올라 머리가 아팠고 가슴이 뜨겁게 타들어 갔다.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고 혹여나 눈물을 흘려 승연이에게 보일까 봐 마른침을 연신 삼켰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부여잡고 말했다.
"응... 이번에는 절대 너를 피하지 않을 거야."
승연이는 나에게 자신의 멍이 든 팔을 힘겹게 들어 올리고서 주먹을 쥐고는 약지를 폈다.
"종찬아, 약속."
"그래.. 약속!"
그렇게 나와 지은이는 승연이에게 어저께 자신의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그날 기획사에서 회식을 가지게 되었고, 기획사 대표님이 옆에 앉아 술을 따라주는데 자신은 학생이라 거절하였지만,
대표님이 완강하게 밀어붙이는 탓에 어쩔 수 없이 몇 잔을 마셨고 이내 취해버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대표님의 차로 보이는 자동차 안이었고, 대표님이 자신의 몸을 만지고 있어 놀라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도망가자,
그때부터 차 안에서 나와 무차별하게 자신에게 폭행을 가하였고, 사람들이 조금씩 모이자 자신의 차를 타고 도망쳤다고 했다.
도망친 모습을 보고 자신은 긴장이 풀려 그만 기절을 해버렸고, 정신을 차려보니 병실이었다고 말했다.
나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다친 승연이 앞에서 분노를 표출할 수 없어 간신히 버티고 버텼다.
하지만 지은이는 나와는 다르게 승연이의 말을 침착하게 듣고 있었다.
"그럼 일단 경찰서에 신고부터 하는 게 낫겠다."
"하, 하지 마... 그렇게 되면 학교에 금방 소문이 퍼질 거야.."
"지금 소문 그깟 게 뭐가 중요해!"
"나한테는 중요해.. 그러면 학교에서 애들은 결국 나를 피하게 될 거라고! 게다가 나를 이렇게 만든 대표는..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조직폭력배들이랑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들었어.. 지은아.. 나 보복당할까 봐 무서워..."
"......."
지은이와 나는 승연이의 말을 듣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조용히 병실에 빠져나와 병실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승연이가 소문이 퍼지면 애들이 자신을 피하게 될 거라고 했지... 젠장... 나 때문에 승연이가...'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5년 전 일을 떠올렸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꽤 화창한 날씨였다. 구름 한 점 없었지만,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어왔고, 거리 곳곳에는 민들레와 개나리가 하늘을 보며 활짝 미소 짓고 있었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듯한 여자아이 둘이서 서로 손을 잡고 어딘가에 가려는 듯 신나는 발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여자아이들은 날아가는 나비를 보고 신기해 하며 웃는 순수한 아이들이었다. 그 여자아이들이 걸음을 멈춘 곳은 담장 너머로 나뭇가지가 뻗은 집 앞이었다. 한 명의 여자아이가 집 벨을 눌렀고 다른 한 명은 집 앞에 서서 애타게 누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종찬아, 놀자~"
"종찬아, 놀~자~"
그 집 창문이 열리더니 여자아이들과 친구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창문에 얼굴을 뺴곰 들이밀더니 밖을 확인한다.
"야! 우리 집 벨 모니터 화면 자꾸 손으로 가릴래? 누구인지 확인이 안 되잖아!"
"목소리만 들어도 몰라? 빨리 문 열어!"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여자아이들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에 들어가니, 강아지도 여자아이들의 방문이 제법 익숙한 듯 꼬리를 살랑거리며 반기느라 정신이 없다.
"홍이 주려고 승연이랑 간식 가지고 왔지요!"
"지은아, 내 간식은 없어?"
"만나자마자 신경질인 애한테 무슨 간식이냐!?"
"젠장.. 홍이 쟤네들 물어!"
강아지의 간식을 준 지은이와 승연이는 종찬이의 방으로 들어가 책상을 뒤져 보드게임을 꺼내 옹기종기 모여 앉고서는 보드게임을 시작했다.
"10억 달성!!!!!!!"
"나도 10억 달성!!!! 종찬이 너 꼴등!"
"아니.. 너희들 내가 에이스라고 나만 견제하냐! 오늘 특별 보너스 칸에 들어가도 계속 손해만 봤네! 에라이!!"
"잔말 말고 이마 대!"
딱! 딱!
"서럽다 서러워."
꼬르륵
승연이는 자신의 뱃속에서 소리가 났는지 잠시 얼굴이 붉게 피어올랐고, 지은이는 종찬이를 보며 자신의 뱃속에서 알람이 울렸다며 징징댔다.
"종찬아, 배고파! 나 많이 배고프니까, 라면이라도 끓여줘!!"
"너네가 끓여! 맞은 것도 서러운데.."
"너네 집이잖아! 놀러 온 손님한테 예의도 없이!!! 또 맞고 싶어?"
종찬이는 화가 잔뜩 난 채 부엌에 들어가 식탁 의자를 익숙한 자리에 배치한 다음 의자를 밟고 선반을 열고는
두 손으로 라면 봉지를 꺼내어 들며 소리친다.
"배고프다니까 4개 끓인다!"
"너무 많아! 3개만 끓여!"
"저번에도 3개 끓였는데 지은이 네가 혼자 2개 먹어서 승연이랑 나랑 반 개씩 밖에 못 먹었다고!"
"뭐, 뭔 소리야!! 나 라면 하나밖에 못 먹는데!!"
"하.. 진짜.."
"나 1개면 배부르니까 3개 끓여!!!"
"알았어~"
종찬이는 지은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냄비에 물을 붓고 라면을 4봉지를 꺼내어 냄비에 털어 넣었다.
곧 라면이 끓기 시작했고, 화룡점정으로 냉장고에서 날계란 3개를 꺼내어 냄비에 넣고 맛있는 라면을 완성 시켰다.
"이지은! 김승연! 라면 다 됐어 나와!"
종찬이의 부름에 지은이와 승연이는 거실 식탁으로 쪼르르 달려가 식탁 의자에 앉았다.
"잘먹을게. 종찬아~"
"나도 잘먹을게!"
지은이는 종찬이가 끓여준 라면이 맛있었는지 종찬이에게 엄지를 날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역시 라면은 종찬이가 끓여야 제맛!"
종찬이는 그런 지은이를 보며 표정을 찡그렸다.
"이지은, 입에 머금고 있는 거는 다 삼키고 말하지? 다 튀잖아."
"깔끔한 척은.."
집 안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넘쳐났고, 아이들의 표정에서는 행복함이 묻어 있었다.
라면을 깨끗하게 다 비운 지은이는 지금의 포만감에 행복한지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종찬이에게 만족감을 표현했다.
"역시 라면은 1인당 1개가 가장 배불러!! 아주 맛있게 잘 먹었어."
"그, 그래 라면은 1인당 1개지..."
"종찬아, 좀 있다가 승연이네 집으로 2차 콜?"
"오케이 확인."
앞으로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채 아이들은 그렇게 승연이네 집으로 향하였다.
승연이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집 문을 열었다. 그러자 종찬이는 신발을 내 팽개치고는 승연이네 집 안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권종찬! 신발 그렇게 막 벗어 던지고 들어가면 어떡해!"
"승연아! 네가 정리해라. 여긴 너네 집이니까 하하."
"하... 이게.. 지은이한테 당한 거 나한테 복수하냐!"
끼익끼익
집 안에 들어서자 아이들에게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직 대낮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꽤나 무서울 법한 음산한 소리였다. 모두 자리에 멈춰서 숨을 죽이고 소리가 나는 방향을 찾아 나섰다.
끼익끼익
"이상한 소리가 안방에서 들리는 것 같은데?"
"우리 집 안방에?"
"응. 승연아 너네 부모님 이 시간에 없으시지 않아?"
"그렇긴 한데.. 부모님이 일찍 오셨나...?"
승연이는 의문점을 갖고서는 부모님이 있는지 확인을 하려 방문을 열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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