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1부 20화 별들만의 세계 (2)
* * *
1부 20화 별들만의 세계 (2)
"걱정마시오. 내가 강하는 것을 알고 있을 것 아니오? 울지 말고 기다리시면 꼭 승리해서 돌아오겠소."
"알겠어. 믿고 있을게! 꼭 돌아와."
홈즈는 그렇게 사라졌고, 루팡은 그 자리에서 가만히 홈즈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기다렸다. 홈즈를 믿고 있는 루팡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루팡은 초조해져 갔다.
'약속했잖아. 돌아오겠다고..'
루팡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차올라서 떨어질 것 같았지만 루팡은 입술을 깨물며 눈물이 흐르지 않게 참고 버텼다. 팡의 참았던 눈물이 터져 버린 건 자신 앞에 다시 나타난 홈즈를 본 후였다.
"으아앙!!"
루팡은 홈즈의 품에 와락 안기고는 불안했던 마음을 풀어내는 듯 울어댔다. 홈즈는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루팡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약속을 지켰는데 왜 울고 있는 것이오?"
"진짜 다시는 못 보는 줄 알았다고..."
"알겠으니, 이것 좀 놓고 말씀하시오. 남자가 안기는 것은 흥미가 없단 말이오."
"색골 홈즈!! 맨날 여자나 밝히고!"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여자를 밝히는 게 당연한 것 아니오! 루팡도 크면 내 마음을 알게 될 것이오!"
울음을 그치고 마음의 안정을 찾은 루팡은 홈즈에게 물었다.
"홈즈, 누군가의 사역마가 되면 좋은 걸까?"
"지금 이 삶도 더 할 나위 없이 행복하지만 그것 또한 운명이라면 받아 들여야 하지 않겠소?"
"그럼 만약 홈즈가 소환자와 대결에서 지게 된다면 계약을 맺게 되잖아. 그럼 우린 다시 볼 수 없는 거야?"
루팡은 홈즈 정도의 강한 소환수라도 언젠가는 누군가와 계약을 맺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질문을 던졌다. 홈즈는 루팡의 물음에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왜 볼 수 없겠소. 우리의 인연의 끈은 그렇게 짧다고 생각하지 않소. 나와 계약하는 계약자는 분명 강할 것이니 루팡도 강한 사람이 되어 강한 자와 계약을 맺는다면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오."
"그래! 그렇다면 이제부터 강해지겠어! 홈즈가 누군가와 어쩔 수 없이 계약을 맺게 된다면 나도 홈즈를 따라 강한 계약자와 계약을 할 거야!"
"하하. 열심히 수련을 하고 계시오. 그럼 오늘은 어여쁜 처자들과 선약이 있으니 잠깐 갔다 오겠소."
"으이구, 색골 홈즈!!!"
다른 세계에서는 그들을 라이벌로 엮기도 하였지만, 적어도 이곳 세계에서만큼은 루팡에게 있어서 홈즈는 자신의 친구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허나, 그때부터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이별할 때가 올 것이라는걸.
시간이 흐르고 루팡은 어엿한 청년의 모습이 되었다. 청년이 된 루팡의 곁에도 언제나 홈즈가 함께하고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루팡은 수련에 몰두하고 있었고 홈즈는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루팡의 수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루팡의 수련을 유심히 지켜보던 홈즈는 무엇인가 생각이 났는지 수련에 몰두하고있던 루팡을 불러 세웠다.
"음, 루팡의 스킬은 장, 단점이 확실히 있는듯하오."
"장단점 말이오? 말씀해 주시오."
"루팡군... 내 말투를 따라 하는 것을 관두면 안 되겠소?"
"왜 그러시오. 나도 홈즈처럼 신사의 도리를 지키기로 마음먹었소."
"하아, 알겠소. 마음대로 하시오. 루팡군의 스킬은 상대방 아이템과 스킬을 자기 것으로 훔치거나 복사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의 힘을 쓰지 못하는 단점이 있소."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그건 고유의 능력이 좋은 계약자, 또는 루팡군이 복사한 아이템을 잘 다룰 수 있는 계약자를 만나는 것이 중요할듯하오."
"그렇다면 더 강한 자와 계약을 맺기 위해서 끊임없는 수련이 답이겠소?"
"하하, 역시 루팡군 말귀를 잘 알아들어서 좋소."
"하하하하하"
그렇게 한참 웃음꽃을 피우고 있던 그때 홈즈의 몸에서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홈즈, 또 겁없는 누군가가 당신이랑 계약을 맺으려고 하고 있는 것 같소."
"그런 것 같소."
루팡의 표정은 생각보다 태연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 이후로 홈즈는 여덟 번이나 소환을 당하였지만, 소환자와의 싸움에서 늘 승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팡의 표정은 점차 굳어가기 시작했다. 늘 여유있었던 홈즈의 태도가 평소와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웬만큼 강한 소환수가 되고 나면 소환을 당하기 전 자신을 소환시키는 소환자의 힘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홈즈는 그때 직감했다. 루팡과의 이별이 다가왔음을..
"홈즈, 표정을 보니 꽤 강한 상대가 소환을 하는 것 같소?"
"그런 듯하오.."
루팡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억한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다. 어쩌면 홈즈와 마지막 인사가 될 수도 있는 그 짧은 시간을 자신의 우는 모습으로 채우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혹시 모르니 미리 작별 인사합시다. 행복했소. 홈즈 당신을 만나서. 우리 꼭 강해져서 다시 만납시다."
홈즈도 루팡과 마찬가지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간신히 참으며 소환되기 전 루팡을 향해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루팡, 나도 너를 만나서 행복했어."
"홈즈!!!!!!!!!!!!"
그렇게 홈즈는 루팡의 곁을 떠났다. 루팡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홈즈가 소환 당한 자리에서 하루 종일 애타게 그를 기다렸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나서야 팡은 그때야 실감이 났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오열했다. 그렇게 울며 루팡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강해지고 강해져 홈즈를 다시 만나게 될 날이 오기를.
그날 밤하늘의 별들의 무수히 별똥별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때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날의 전조가 별들만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소환수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는 것을.
[서울 어느 길가]
"권종찬, 같이 가!!"
학교를 가고 있던 나를 부른 건 지은이었다. 지은이는 어디서부터 나를 발견하고 쫓아왔는지 숨을 헐떡대고 있었다.
"지은아, 얼마나 뛰어왔다고 헥헥거려?"
"하, 권종찬, 너 자꾸 선 넘는다? 그러다가 훅 가."
"자, 장난이야.."
'하아.. 꿈속에서는 채린이, 현실에서 지은이, 어딜 가나 나를 때리고 싶어 하는 사람 천지구나.'
"좀 천천히 걸어봐, 숨 좀 고르자."
"이러다 지각하겠어!"
"훗, 종찬아. 나는 결석을 했으면 했지, 지각 따위는 안 한다고!"
'제발 자랑처럼 말하지 말라고..'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지은이와 나는 지각하지 않고 무사히 학교에 도착했다. 서로 반은 달랐기 때문에 나와 지은이는 인사를 나눈 뒤 각자의 교실로 향했다.
교실에 들어서자 며칠 동안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같은 반 학생들이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고, 오히려 눈치를 보고 있었다.
'뭐지..?'
뒤를 돌아 내 시선이 향한 곳에는 한힘찬과 이종익이 있었다. 한힘찬은 종익이에게 딱밤을 때리면서 괴롭히다가 내가 보내는 시선이 느껴졌는지, 이내 눈이 마주쳤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보며 사악한 미소를 날렸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내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나를 괴롭히는 걸까? 나를 괴롭혀서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단전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꿈속 생활만으로도 생각할 것이 많아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참아보려 했는데 안 되겠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힘찬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내가 한힘찬의 책상 앞에 다다르자 교실에 있는 학생들 모두가 숨을 죽였다.
한힘찬 앞에서는 애써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내 심장은 쿵쾅쿵쾅 미쳐 날뛰고 있었다. 아무리 루시드 드림 능력으로 강해졌다고해도
상대는 늘 나를 괴롭혔던 한힘찬이기 때문이었다.
"야, 한힘찬."
내가 이름을 부르자, 한힘찬의 얼굴은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뭐?"
"적당히 하자."
"뭐, 뭐라고? 이 새끼.. 이지은이 선생님한테 고자질한다고 해서 가만히 내버려 뒀더니만, 벌레도 아니고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네?"
"선생님한테 말 안 할게. 이지은한테도 절대 말하지 말라고 할테니까, 어디 한번 너 마음대로 해봐."
"씨, 씨발 너 그 말 지켜라."
내가 이렇게 내뱉은 이상 한힘찬은 가만히 참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중학교, 아니 어쩌면 초등학교부터 차곡차곡 쌓아왔던 남들이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한힘찬만의 이미지를 자신의 손으로 무너뜨리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예상대로 한힘찬은 발끈하며 의자에서 일어나 나에게 가차없이 주먹을 날렸다. 나는 그 주먹을 피하면서 한힘찬의 안쪽으로 파고들며 정확하게 딱 한 번의 격으로 한힘찬의 얼굴을 가격하여 다운시켰다.
몇 달 동안 한힘찬에게 수없이 맞은 것에 대한 복수로는 한참 부족하였지만, 나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남들에게 폭력을 일삼으며 거만하고 때로는 남을 기만했던 한힘찬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이걸로 됐어. 지금 내가 한힘찬을 더 때린다면 똑같은 놈이 돼버리는 거야.'
한힘찬은 예상치 못한 나의 강한 공격에 공포심이 생겼는지,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나는 한힘찬에게만 들릴 수 있도록 고개를 숙인 다음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럼 이제부터 네가 벌레인가?"
이 한마디를 던진 후 한힘찬을 내려다보자 더 이상 싸울 의지가 없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반 아이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권종찬이 한힘찬을 이겼어!
드디어 한힘찬의 시대가 막을 내렸군.
아직까지는 한힘찬의 눈치를 보는지 다들 조용하게 수군거리고 있었다. 어른들에게 돈이 곧 힘이자 권력이라면, 우리에게는 몸으로 싸워 이길 수 있는 강한 힘, 그 자체가 곧 권력이었다. 그동안 아이들은 한힘찬의 단순한 힘에 눌려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소리 없던 분노의 외침들이 환호성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권종찬, 한힘찬 지금 뭐 하는 거야!?"
깜짝 놀라 교탁 앞을 보니 조회 때문에 교실에 들어온 담임선생님이었다.
'일났군.'
변명을 하기는 늦었다고 판단했을 때 뒤쪽에서 남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종찬이랑 힘찬이랑 둘이 장난으로 레슬링 하다가 실수로 힘찬이가 조금 다쳤어요."
뒤를 돌아보니 목소리를 낸 건 다름아닌 한힘찬과는 중학교 때부터 친구인 박승만이었다.
'박승만...? 언제부터 와 있었지?'
"너는 지금 조회시간인데 다른 반이면서 우리 반에 왜 있는 거야?"
"아, 죄송합니다."
박승만은 담임선생님께 사과를 드리며 뒷 문으로 조용히 빠져나갔다.
'한힘찬 친구인데 나를 왜 도와준 거지..?'
"권종찬, 한힘찬 둘 다 자리로 돌아가"
"네."
선생님은 출석부를 들고 교탁을 '탁' 치시더니 교실 앞문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어갔다.
"들어와"
드르륵
교실 앞 문이 열리자 전학생으로 보이는 어딘가 낯이 익은듯한 여학생이 들어왔다. 얼굴을 가리는 푸른빛의 머리카락이 굉장히 눈에 띄었다.
'저 헤어스타일... 뭐지 이 익숙함은?'
"네가 인사할래? 선생님이 해줄까?"
"제가 할게요. 안녕하세요. 오늘 새로 전학 온 이청아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서, 설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