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1부 2화 내추럴루시드드리머? 현실은 빵셔틀!
* * *
[그 후로 백 년이 넘게 흐른 2010년 서울]
한 노인이 서재에 있는 의자에 앉아 곰방대에 잘게 썬 담뱃재를 털어놓고 한 손으로는 책을 다른 한 손으로는 곰방대를 물고 연기를 길게 내뿜는다.
불이 난 것처럼 짙은 연기가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노인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책장을 넘기며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시계를 보더니 황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곰방대에 붙어있는 불씨를 끄고 서재에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다 열어놓고 환기를 시키며, 그걸로 부족했는지 방향제를 들고 방안 곳곳을 뿌리고는 심지어 향초까지 태운다. 그리고선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설레는 표정으로 다시 의자에 앉았다.
"콩콩"
마치, 어린아이가 자그마한 손으로 주먹을 쥐고서 문을 두드리는 것 같은 아기자기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노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가 들리는 문 쪽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내었다.
"종찬이구나. 들어오거라."
"할아버지! 할아버지!"
이제 막 초등학교를 입학한 것 같은 어린아이가 노인의 무릎에 앉았다.
"그래, 종찬아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게냐?"
"나 할아버지가 말했던 그거 했어."
"무엇을 말이냐?"
"나 어젯밤에 꿈을 꾸었거든? 근데 그게 꿈인지 알았어. 맞다 '자각몽'!!"
"루시드 드림을 하였다는 것이냐."
"루시드 드림은 뭐야?"
"자각몽을 현대에 와서는 루시드 드림이라고 부른단다."
"응! 루시드 드림 했어!"
"거짓말하면 할아버지한테 혼난다."
"할아버지! 거짓말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면서 나는 착한 사람이라서 거짓말 안 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손자를 보며 온화한 미소를 짓던 노인의 표정은 굳어졌다.
"절대 이 사실을 그 누구한테도 말하면 안 된다. 알았지?"
"응? 왜 안돼?"
"그게 소문이 나게 되면 꿈을 관리하는 재단이 너를 감시하고 괴롭히려고 할 거야."
"응? 괴롭히는 거는 싫어. 말 안 할게, 아무한테도."
노인은 급하게 서랍에서 종이를 꺼내고 펜을 집어 영문을 모르는 그림을 그리고선 손자에게 들이밀었다.
"할아버지 이게 뭐야?"
"할아버지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이런 배지를 왼쪽 옷깃에 찬 사람이 네가 꾸는 꿈속에 보인다면 절대 그 사람에게 네가 꿈인 걸 인지하는 행동을 보이면 안 된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그건 이 할아버지가 천천히 설명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응. 할아버지"
'종찬이가 '내추럴 루시드 드리머'라니, 태어났을 때부터 정해진 천륜인 것인가.'
[10년 후, 2020년 현재]
"할아버지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종찬아 학교 잘 다녀오거라."
"네!"
그 일이 있고, 십 년이 지난 지금. 나는 학교를 다니는 열여덟 평범한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 어린 나이에 처음 해봤던 경험. 내 인생은 크게 달라질 거라고 엄청난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달라진 게 있다면...
"야 권종찬!"
"응.. 힘찬아."
"또 잤냐? 종소리 들으면 쉬는 시간마다 가서 음료수 두 개씩 사 오라 했지?"
"아, 미안. 자느라 못 들었어."
"하.. 빨리 갔다 와라."
"응. 금방 갔다 올게."
"뛴다! 실시!"
"힘찬아 또 친구 괴롭히냐?"
"박승만? 남의 반 일에 신경꺼라. 권종찬 쟤는 그렇게 처맞고도 반복 학습이 안 되는 애니까."
"신경을 꺼?"
"아, 아니 내가 셔틀을 잘못 정한 것 같아서 화가 나서 그랬어. 미안하다.. 하.. 내가 어제 미친듯이 팼거든? 근데, 또 하루가 지나면 또 저렇게 어리바리 타더라고."
"그래도 이제 열 여덟인데 애들 괴롭히는건 그만둬."
"아, 그래도 이 한힘찬 님의 가오가 있지. 누가 이기나 해보는 거지."
"에휴, 나도 모르겠다. 니 알아서 해라."
현실에서 바뀐 건 딱히 없다. 작년에 비해 달라진 거라곤 우리 반 짱인 한힘찬의 셔틀로 임명됐다는 것뿐.
방금 한힘찬과 대화를 나눴던 아이는 옆 반 학생인 박승만이다. 나는 그들과 같은 중학교를 나오지는 않았지만, 한힘찬과 박승만은 중학교를 같이 나왔다고 한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한힘찬과 박승만은 무언가 같으면서도 매우 달랐다.
한힘찬은 무대뽀에 힘으로 밀어 붙이는 타입이라면 박승만은 뱀같이 머리 싸움에 능하다고 하였다. 심지어 피지컬까지 한힘찬을 압도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중학생 때 이야기고 박승만은 고등학교 올라온 이후에는 한힘찬과는 달리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오늘도 한힘찬의 셔틀버스를 무사히 운행한 후 학교수업을 마치고 정문 앞을 걸어가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종찬아~"
뒤를 돌아보니 같은 학교 학생이며, 어렸을 적 소꿉친구였던 지은이와 승연이었다.
"응. 지은아."
"한힘찬 너네 반이지? 혹시 힘찬이가 너 괴롭히면 나한테 말해."
"아니야. 안 괴롭혀. 나 갈게~"
"응? 벌써 가게?"
지은이의 마지막 말을 무시하고 다시 가던 길을 걷고 있을 때 승연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은아, 종찬이랑 아는 척하지 말자니까?"
"왜 그래야 하는데?"
"종찬이랑 어렸을 적 친구였던걸 학교 애들이 알게 되면 다들 무시할 거라고."
"그게 뭐? 상관없는데? 그리고 '친구였던 걸'이 아니라, 나는 종찬이랑 지금도 친구라고!"
'승연이는 변한 게 없구나. 지은이도 마찬가지지만..'
초등학교를 들어가고 항상 싸움도 못 하고 힘이 없던 나는 늘 지은이와 승연이가 지켜 주었다. 항상 셋이서 함께 다녔던 친구였지만, 5년 전 그날 이후로, 승연이는 나를 항상 피해 다녔다.
하지만 지은이는 나를 피하지 않았고, 그렇게 우리 셋 사이의 거리는 어느 순간 정체되어버렸다.
'생각해보면 나 또한 변한 게 없네. 집에나 가자.'
"학교 다녀왔습니다."
"응. 벌써 왔니?"
"네."
"종찬아, 예전처럼 다른 친구들처럼 피시방도 가고, 노래방도 가지. 혹시 용돈이 부족해서 그러니?"
"아니에요. 오늘은 집에서 공부좀 하려고 일찍 들어왔어요."
"그래. 근데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신기하게 성적이 늘지가 않는다. 호호"
"아하! 마치, 엄마가 그렇게 요리를 해도 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랑 비슷한 거죠?"
"일로 와."
(쾅)
"문 열어라. 문 안 열면 그 맛없는 저녁도 못 먹을 줄 알아."
"공부할 거니까 방해하지 말아 주세요."
"이놈이 사춘기라고 지 엄마한테 말 한마디를 안 지네!"
'흠.. 엄마는 가신 것 같고, 이제 공부를 시작해야겠지?'
나는 가장 편안한 자세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하아.. 학교에서 잠을 많이 자서 그런가 시작하기 힘드네..'
그때 갑자기 귀에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시작됐군. 집중하자.'
나는 꿈인 걸 인지한 채로 꿈속으로 들어왔다. 꿈속으로 들어왔을 때 꿈인 걸 인지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흘러가는 부자연스러운 꿈속의 흐름을 의심하는 것이다. 꿈을 꾸었다가 일어난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꿈속에서는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아닌 곳에서, 가족들이랑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고 식사를 한다.
마치, 우리가 예전부터 살고 있던 집인 것처럼. 대부분 사람들은 꿈에서 깨어날 때까지 깨닫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다.
꿈이라고 인지하지 못하고 꿈을 꾸고 있어도 뭔가 꿈속 상황이 의심될 때, 혹은 앞과 같은 예를 들어 우리 집이 아닌데 가족들이랑 우리 집에서처럼 밥을 먹고 있다면 나는 깨닫는다.
'아, 이건 꿈이구나'
꿈인 걸 자각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내가 지금 하는 방법, 바로 잠을 자면서부터 시작하는 방법이다.
나의 육체는 잠을 자고 있다고 인지하지만 뇌는 아직 깨어있을 때, 그 찰나의 순간에 집중하면 나는 귀에서 진동 소리를 느낀다.
진동 소리를 들으면서 마치 유체이탈처럼 몸을 끄집어내면 몸을 전부 꺼냈을 때, 그 세상은 바로 꿈속의 세상이었다.
이 두 번째 방법은 많은 시행착오와 연습이 필요하다. 할아버지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이런 결과를 얻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음.. 일단 RC 체크부터 해야지."
RC 체크란 꿈인 걸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인셉션이라는 영화를 보면 팽이를 돌리면서 꿈인지 현실인지를 인지하는데,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어렸을 적에는 RC 체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확실히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구별이 잘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꿈속 세상에서의 자각을 경험해보면 해볼수록 현실인지 꿈인지 애매해지는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RC 체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RC 체크하는 방법들은 많이 있고, 정하기 나름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인 손가락 끝을 확인하는 RC 체크를 한다.
꿈이었을 때는 손가락 끝을 보면 손끝이 살짝 흐릿한 느낌을 받는다.
그럼 지금 이곳이 꿈속이라는 걸 아주 확실하게 인지하는 것이다.
"오케이! 일단 RC 체크는 끝이 났고, 그럼 이제 한힘찬부터 소환해야지."
'눈을 감고 저쪽에 문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그 문을 열면!'
"좋았어, 한힘찬 소환 성공!!"
'이제 한힘찬을 패는 일만 남았군.'
꿈속에서는 무엇이든 소환이 가능하다. 소환하는 방법 또한 여러 가지가 있다. 만화에서 나오는 마법사처럼 소환하는 방법도 있고, 연금술사처럼 법진을 그려 멋지게 소환하는 방법도 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해서 당사자를 불러내는 소환법 또한 존재한다. '번호를 모르면 소환을 못 하지 않냐고?' 아니. 가능하다.
꿈속에서 꿈인 걸 인지하고 무엇인가 행동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확신이다.
내가 이 꿈속 세상의 주인이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전지전능한 힘을 갖고 있다는 확신, 그 사람의 번호를 알고 있다는 확신.
내 어렸을 적 얘기를 경험삼아 해보자면 하늘을 나는 빗자루를 타고 날고 싶었다. 나는 꿈속에서 바로 옆에 지나가는 아저씨를 붙잡아 말을 건넸다.
"아저씨. 하늘을 나는 빗자루 많이 가지고 계시죠? 많으니까 한자루만 주세요. 어차피 많이 갖고 있어봤자 짐만 되잖아요."
그럼 아저씨는 빗자루를 나에게 건네준다. 이때 왜 나는 "많이 가지고 계시죠?"라고 말을 건넸을까?
어렸을 적이라 확신에 대한 연습이 없었을 때는 상황을 잘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저씨가 빗자루를 안 주면 어떡하지... 라고 속으로 의심하는 순간 그 아저씨에게서 빗자루를 받을 수 없다.
그렇기에 아저씨에게 문장을 잘 만들어서 대화를 시도 한다면 내 입장에서도
'저 아저씨는 어차피 빗자루가 많으니까. 나한테 그냥 쓰레기 처분하듯이 한자루 정도는 줄게 분명해!'
라고 생각하며 빗자루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한힘찬, 오늘 교실에서 왜 그랬어?"
"잘못했습니다."
"그걸 알면 좀 맞자."
꿈속에서는 내가 만든 '한힘찬'이라는 인형의 행동은 물론이며 언어까지 통제할 수 있다. 두 사람을 소환하여 서로 싸움을 붙이고 구경할 수도 있다.
'후..이 정도면 현실 세계에서 한힘찬에 대한 앙금은 풀었고, 저녁에도 자야 하니까 슬슬 깨어나 볼까?'
현실세계로 돌아온 나는 현재 시간을 체크했다.
'후아암~ 현실 시간으로 30분 정도 잔건가?'
"권종찬!"
방문 너머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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