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화 〉 3부 31.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로
* * *
"뭐가 문제야, 시바알..."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게 마음에 안들어서,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뜨렸다.
"아아악!!! 왜!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거야!!"
"그러니까 인생이 재밌는 거 아니겠나?"
"넌! 좀! 닥쳐!!"
본디 지금은 학교에 들어가있어야 할 우리가, 왜 지금 학교 근처의 분식집에서 이 꼴로 늘어져있는가.
원인은 간단하다.
학교 정문부터 입구컷 당했기 때문이다.
'왜?'
한 달 동안 무단결석해서?
그래서 괘씸해서 학교에서 안받아주는거라서?
아니다.
그런 평범한 이유보다는, 조금 더 '초현실'적인 이유때문이다.
마치 학교 자체가 나의 출입을 거부하는 듯, 내가 다가가기만 하면 그 자취를 감춰버린다.
이게 뭔 개소리냐고?
말 그대로다.
학교가 눈앞에서 그냥 증발해버리니까.
낙담하고선 뒤로 여덟걸음 쯤 걸어가면 그때 다시 나타난다.
이게 뭔 장난하는것도 아니고.
"하아...안그래도 날씨도 더운데."
그렇지 않아도 바깥의 날씨가 기온 30도를 왔다갔다 하는, 초여름에 걸맞는 극악의 일교차다.
그런 날씨에 바깥에서 거의 수십분동안, 학교에 들어가려고 별 짓을 다하다보니 이미 녹초가 된 뒤였다.
지금은 에어컨 바람이나 쐬려고 분식집에 들어와있는거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겨울 날씨에 있었는데 뭔 갑자기 초여름이냐고..."
세상에 불만이 가득하다.
비단 나만 그런 건 아닐것 같네.
"우선...진정하고 내 말좀 들어봐라."
"응, 그래. 어차피 반박할 기운도 없다."
차가워진 손으로 옷 아래의 배를 문질거리며 말했다.
아, 이제야 좀 시원하네.
"...내가 짐작하기에...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이유?"
"그래, 이유 말이다."
애초에 나는 이 세계에서 역할이 '학생'이다.
그렇기에, 본래라면 학교로 들어갈 수 있는 게 지극히 정상.
오히려 못 들어가는 게 이상하다는 말을 하는 사서.
"생각해봐라. 만약 루시 너의 추측대로라면, 정신간섭을 시도한 자는 우리가 이 세계에 갇히길 원하는, 그런 존재잖냐."
"그렇지?"
"그렇다면, 그 존재의 입장에서 우리는 말 그대로 '침입자'다. 정신간섭을 죄다 파훼한 주제에, 정신간섭에 당하고있는 이들에게 접촉하려 하는 반동분자."
반동분자라니, 말이 험하네 싶었지만 그만큼 어울리는 말이 또 어딨나 싶었다.
그 존재의 입장에서, 이곳은 그의 국가, 혹은 세계나 마찬가지.
그러나 우리의 존재 자체가 그 세계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다.
이 세계가 존재하는 이유는, 한서우와 그의 일행들을 이 세계에 붙잡아두기 위함.
정신간섭으로 각자의 역할을 정해두고, 그런 일상의 루틴을 반복하게 한다.
마치 이곳이 그들의 본래 세계였던 것처럼.
아마 한서우 일행뿐만이 아니라, 이곳으로 넘어오는 다른 해방자들과 군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상위차원인 이곳과, 우리의 우주를 격리한다는 작전은 기한없이 늘어지다가 결국 실패로 돌아가겠지.
"...그럼 우리가 지금 해야할 일은..."
"일단 한서우 일행으로부턴 눈을 돌린다."
"뭐? 걔네부터 정신차리게 해야하지 않아?"
그 말도 합리적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서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댄다.
"우리에게 정신간섭을 건 그 존재, 추측하건데 '학자'가 가장 유력하지만...어쨌든, 그 녀석은 한서우의 존재를 중점으로 본다. 너도 알겠지."
"...그건, 그렇지."
한서우의 존재감 자체가 보통이어야지.
걔는 신도 죽이고, 엘로힘도 죽이고, 몇번이나 인류를 구원했으며, 그 무력은 가히 세계관 최강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모든 시선이 다 한서우에게 가있는 것도...이해 못할 일은 아니지.
"이해한다고 해서 우리한테 도움되는 것도 아니지만..."
"별 수 있겠나. 우선 한서우쪽은 나중에 처리하고, 지금은 이쪽으로 넘어오는 해방자들과, 군인들 먼저 신경써야지."
맞는 말이긴 하다.
수가 곧 전력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하지만 시간을 낭비할 틈은 없어.
"그럼...사서 너는 해방자들이랑 그 군인들, 어디에 있는건진 알고 있지?"
"그래. 아카식 레코드를 괜히 가져온 것도 아니고."
"좋아. 그럼...너는 일단 그 쪽 공략해봐라. 나는 한서우 쪽 공략해볼테니까."
"뭐? 지금까지 한 말을 뭘로 들은거냐!"
왜 갑자기 소리지르고 난리야.
알아서 다 생각이 있다니까.
"어차피, 계속 같이 다니면서 아카식 레코드 공유할 것도 아니잖아."
"...확실히,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건."
"그럼 그쪽은 아카식 레코드를 가지고있는 니가 해결하는게 맞지. 나는...너보다는 쎄니까 한서우쪽도 해결할 수 있을거고."
만일 '정신간섭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 즉, 학자가 한서우를 계몽시키려는 나를 배재하려고 움직임을 취해도...
나는 힘이 있다.
그러니까, 해쳐나갈 수 있어.
"내 구슬, 아직 10개정도 남았어. 이것도 니가 해결해줄 수 있지?"
"...어째 일을 다 떠넘기는군."
"내가 제일 어려운 일을 맡았으니, 그나마 안전한 니가 구슬을 담당하는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말은 번지르르 해가지고는."
말은 그렇게 해도, 결국은 내 손에 쥐여진 구슬을 낚아채가는 사서.
"그럼, 각자 잘 해보자고. 난 바로 간다!"
"...수고해라."
분식집에서 나온 우리는, 서로 반대방향을 향해 멀어진다.
뭐, 다시 만나기까진 오래 안걸릴거다.
길어봤자 몇 주 쯤?
그 안에 해결해낼 자신이 있으니까 이러는거지.
그렇기에 서로를 의심하지는 않았다.
***
"상위차원에 이만한 크기의 포켓우주를 만들 수 있고...정신간섭도 거리낌이 없어."
이곳은 상위차원.
그러니, 이런 너무나도 익숙한 세계 따위가 상위차원일 리 없다.
인간들도 그저 떠돌아다니던 정보들을 이리저리 조합해서 만들어진 유령들 뿐.
그렇다면...
'이곳은, 상위차원 안에 우리를 속이기 위해 만든 가짜 우주일거야.'
일단은 현재로선 이게 가장 유력한 추측.
즉, 학자가 우리를 속이기 위해 상위차원 안에 자그마한 우주를 만들었을거라는 가설.
'내가...탐구자의 우주에 갇혔을 그 때처럼.'
그때도 나는 탐구자를 피해 나만의 자그마한 우주를 만들며 요리조리 도망쳤다.
종국에는 내가 그 싸움에서 이기고, 그를 집어삼켜버렸지만.
'음...'
아, 여기서 집어삼켰다는 말은, 그의 신격, 즉, 그를 이루고 있던 '모든 것'을 나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그의 기억도, 사상도 전부.
물론 하나같이 쓰레기같은 것들이라 마음속 한구석 쓰레기통에 쳐박고 죄다 태워버렸지만.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이 정도로 직접적으로 간섭하면...결국 내가 이상한 행동을 하면, 마법이 없는 '이쪽 세상'의 법칙도 깨버리고...자신이 나올 수도 있다는건가."
정신간섭, 우주 창조. 하나같이 너무나도 대담하고, 직접적인 행동들.
그러니까, 내 앞에 직접 나타날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아까는 사서가 뭐라 할까봐 못했지만..."
사서가 가버린 지금, 기회는 지금뿐!
쓸데없이, 계속해서 가설만 세우며 야금야금 나가는 것보다, 한 번 행동하고 그 결과를 보는게 훨씬 빠르다.
위험하다 해도, 뭐 어때!
난 목숨이 하나가 아니다.
이건 그저 첫트일 뿐!
"가라!"
그러니까, 내가 할 일은 간단하다.
파앗ㅡ!
학교로 다가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가지 않는 것 뿐.
마법이라면, 이 먼 거리도 충분히 커버 가능!
그렇기에, 학교가 보일만한 건물의 옥상에서, 저 학교를 전부 덮을만큼 거대한 마법진을 그려낸다.
별 효과는 없다.
저 마법진에 담긴 효과라고 해봐야...간단한 공간 왜곡정도.
'일단 내가 세운 가설은 이래.'
저 학교에, 내가 다가가면 사라지게 하는 마법이 걸려있는 게 아닐까, 하고.
일종의 베리어.
그러나 일반적인 베리어보다 효과는 좀 더 복잡한 베리어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하는 일은, 그 베리어랑 학교의 위치를 서로 왜곡시키는거다.
베리어가 보호하는 위치 안에서, 학교를 빼버리는거지.
그러면 베리어는 그대로 존재하겠지만, 학교는 전혀 다른 곳에 가있는거다!
그러니까 아무런 방해도 없이, 나는 학교로 진입 가능!
물론 공간왜곡 마법이라 그런지, 그 마법진의 복잡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나도 사서가 찢어준 노트의 그림을 보고 겨우겨우 따라그린 수준이니까.
'잡념은 여기까지.'
이 모든 생각은 겨우 0.1초 안에 이루어진 것.
학자가 반응하기도 전에 일을 끝낸다.
그리 생각하자, 마법진이 더욱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쩅그랑!
근데 그게 갑자기 깨져버릴줄은 예상도 못했지.
"헤?"
유리처럼 깨져버리네, 저게?!
마법진이 저렇게 깨질 수가 있는거였나?
촤악!
"흐익."
당황도 잠시, 학자가 나타났다.
몸을 드러낸 건 아니지만, 그저 그의 신격 일부가 움직였을 뿐이다.
"으, 아, 아파."
굵직하게 생긴 검은 촉수가 보인다.
피를 흠뻑 뒤집어쓴 모양새.
아래를 내려다보면, 자그마한 배를 뚫고나온 크고 아름다운 촉수가 있다.
내 등 뒤에서 열린 공간에서, 그 촉수가 튀어나온 것이다.
이 촉수 또한 학자의 본체는 아니다.
그저 신격이 구현해낸 촉수일 뿐.
'역시 마력을 대놓고 쓰는건 허락 못한다는건가.'
좋아, 어디까지가 선인지는 알겠어.
이 세계 사람들에게 마법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학자가 개입한다.
그의 신격을 움직여서.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학자가 알아서 이 세계에 마법을 공개하는 것.
내 의지가 아니라, 학자의 실수를 유발해서 이 세계에 마법을 공개한다.
세계에 오류를 만들어서, 균열을 내는거다.
그 균열로부터 이 세계를 파괴한다.
좋아, 작전은 완벽해.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학자의 신격이 발현되게 해야해.
'간단하군.'
"흐으..."
푸슛, 푸슛
계획세우기가 끝나자, 다시 현실로 생각이 옮겨갔다.
지금은 그냥 반갈죽된 상태로 옥상 위에서 뒹구는 중.
내가 정신을 차리자, 따로놀던 상반신과 하반신이 다시 들러붙었다.
계속해서 뿜뿜하던 피분수도 멎고, 심장도 두근두근 뛰기시작한다.
"교복은...다시 못 쓰겠네."
배꼽 한참 아래에 걸쳐있는 치마를 바라봤다.
배가 허전해.
아무래도 촉수가 굵었다보니, 반으로 갈라질 때 옷도 그만큼 찢어진 듯 하네.
새로 사려면 돈나가는데, 어차피 못 들어가는 학교, 그걸로 돈 지불해야하나 싶기도 하고.
"몰라~ 몰라~"
우선은, 이 세계에 마법을 드러내 '학자'가 이 세계에 건 '제약'을 깨부수는 것.
과연 어떻게 대처할까. 학자는.
"...마법을 이 세계에서 당연한 걸로 만드는거야. 한서우가 자신도 마력을 쓸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거지."
계획대로 잘 될란지는 모르겠네.
한서우라면 어떻게든 해내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 저녁 행동을 게시할 준비를 하기 위해...
그 전에 이 파렴치한 복장부터 어떻게든 갈아입기 위해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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