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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해주세요, 마수님!-150화 (150/162)

〈 150화 〉 3부 30. 인형극

* * *

"...으으, 머리야."

문득 머리가 멍해지는 것 같아서 고개를 휙휙 털었다.

수업시간에 갑자기 쓰러지면 안되지, 응.

"..."

...수업시간?

무슨 수업이더라, 지금.

"한서우! 어디 보냐. 칠판에 집중해라!"

"아...죄송합니다."

내 맹한 표정을 본 교사는 혀를 차며 다시 칠판에 필기를 시작한다.

잠시간 이쪽에 몰렸던 시선도 다시 자기 책상 위의 교과서로 옮겨가고.

"그럼 이어서­ 9번문제다. 먼저 문제부터 읽어..."

탁, 타닥.

칠판을 두드리는 분필소리와, 각자 샤프와 볼펜을 딸깍이는 소리.

창문 밖에서는 학교 밖 차도에서 오가는 수많은 자동차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어지럽네."

"그럼 쌤한테 보건실 가겠다고 말 해. 참아서 뭐 하게."

멍하니 뱉은 혼잣말에 돌아온 대답에, 화들짝 놀라 옆자리를 쳐다보니 마스가 보인다.

고아원때부터 쭉 함께 자라온...

'...고아원?'

이상하네. 난 부모가 있는데.

"그냥 기분탓인가봐."

"새끼. 그냥 말 해라."

"넌 또 땡땡이치려고 그러는거잖아. 정신좀 차려라, 제발. 너 이제 고3...."

'...고3?'

하지만 생각할 틈은 없었다.

문득 선생님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 우리 둘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러며 다시 집중하는 수업.

햇볕은 따사롭고, 교실도 나른하다.

물론 여기 모인 학생들은 죄다 전투적으로, 미래를 위해 급박하게 현실을 버려가며 공부하고 있겠지만...

어째선지 난 여기에 속해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쟤들이 아무리 공부에 필사적일지라도, 난 저런 것에 연연할 이유 따위는 없다는 듯.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다.

학생이라면 수능을 위해서 응당 공부를 해야할텐데.

그래도 이런 나른한 느낌이 싫지는 않았다.

솔솔 잠이 오는 분위기에...

"뭐, 괜찮겠지."

몰려오는 평화를 거부하지 않은 채, 교과서에 코를 쳐박고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고보면...오늘 무단결석한 애 한명 있다던데...'

별 상관은 없겠지.

같은 반도 아니고.

설마 성화연은 아니겠지.

다른 반이기는 하지만, 걔가 무단결석할 애도 아니니까.

그 생각을 끝으로 내 뇌는 가동하는걸 멈췄다.

***

한 달이 흘렀다.

얼핏 보면 한 달이 긴 시간같지만...

'긴 시간 맞네.'

거의 4주다.

7일씩, 4개.

물론 멍때리면서 시간 보내면 한달쯤은 금방 가지만, 나처럼 할 일이 많은 입장에서야 너무나도 촉박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일단 지금까지 알아낸 것만 말하자면...별 수확이 없네.

확실한건,일단 이곳이 본래의 지구와 같은 지리라는 것.

사람들도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것.마법이 없는 본래의 지구처럼 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지금까지 놓는데 성공한 구슬은, 단 15개 뿐이라는 것.

'느려...'

너무 느리다.

생각만큼 빠르게 나가질 않는다.

애들도 당최 어디갔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고...

이제는 구슬 놓는것마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이 세계를 감싸안은 마력들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으니...

아무리 마공학 장치를 쓰더라도, 마력을 감지하기가 어려워진다.

아니, 감지할 수는 있지만 그 농도 차이를 알기가 어렵다.

차이가 너무 미미해서 여기가 높은게 과연 맞는지 확신을 할 수가 없는것이다.

한서우 이새끼, 대체 어디간거야.

생체 마력측정기가 없으니 일만 더 꼬인다.

'하긴, 인간한테 이런 정신간섭으로부터 빨리 벗어날거라고 기대를 하면 안되지.'

한서우도 결국 인간이니까.

'인간맞나?'

확신은 못하겠다.

엘로힘, 그러니까 대충 얼버무려 말하자면...

신을 죽일 운명을 타고난 애가 결코 평범한 인간일 리는 없으니...

"하, 뭔 소용이야."

결국 현실에서 정신을 못 차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구.

그런 마음속의 온갖 복잡한 상념과, 불안을 잠재우며 오늘도 어김없이 집 밖으로 나섰다.

아무리 마력을 감지하기가 어려워도 일을 멈추면 안되는거지.

그렇게 여느때처럼 행동을 시작하려는 오늘.

하지만 여느때의 나날과차이점이 있다면, 오늘은 거리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는거다.

'...음.'

우선 몸의 근육을 긴장시켰다.

평소에 일어나지 않는 일이 일어난거라면, 반드시 뭔가 특이한 사유가 존재한다는 뜻.

그 사유가 뭐던간에, 이런 세상에서 그 '특이한 사유'란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오늘은 평일이다.'

심지어, 평일 오전.

한창 학생들이 등교하고, 직장인들도 출근할 시점.

하지만 이렇게나 조용하다니? 말이 안 된다.

차를 오가는 자동차들조차 없다.

'몽환적이네.'

텅 비어버린 도시는 언제나 이질적이다.

하지만 소름끼치는 건 또 별개의 느낌.

한 걸음 한 걸음 신중을 기하며, 점점 단지의 바깥을 향해 걸어간다.

그리고, 얼마나 그렇게 숨죽이며 발걸음을 옮겼을까.

'??!'

갑작스럽게 두 다리가 공중으로 붕 떠버린다.

그리고, 겨드랑이 사이에서 느껴지는 소름끼치는 감각이...

"히야아아아아아아악!"

"푸웁ㅡ"

"꺄아, 아, 아...아..."

터져나온 웃음소리에 천천히 입을 다물었다.

"...아."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태에 목 깊은 곳으로부터 터져나온 깜찍하기 짝이 없는 소리.

목부터 이마까지 붉게 달아오른다.

"야."

게다가, 뭐?

날 이렇게 놀라게 만들어놓고서는, 웃어?

웃어?

"야, 야! 놔, 씨발, 놔!!"

"크흡ㅡ"

"야 이 씨ㅡ발련아!! 너 뒤졌어. 당장 이거 놔아!!"

내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집어넣고 들어올린 장본인은 역시나사서였다. 이 빌어쳐먹을 새끼가.

놀리는것도 때가 있지, 나는 진지했는데.

"야아아아아악!!"

"아, 아. 미안하군. 설마 네가 그렇게...어린애같은 비명을 지를줄은 몰랐다."

"이 개ㅡ새끼가. 아주 살판 났지?"

"잠깐, 잠깐!!!"

결국 머리 끝까지 화가난 내 화가 풀리고 진정됐을때는, 사서의 볼 한쪽이 빨갛게 물드는 지경까지 이르러서였다.

짝, 짝.

볼따구 때리는 소리가 아주 찰지더라, 씨발련아.

.

.

.

"대체, 너 진짜...넌..."

"거 참, 손 한 번 맵군."

"너는 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냐, 어? 사회에 불만이라도 있어?"

"너한테는 있다."

"아니, 말장난 하지 말고, 이 아저씨야."

사서가 아저씨라는 말에 눈썹을 꿈틀거린다.

"너에 비하면 갓난아기 수준일거다. 아니, 세포수준이겠군."

"놀리지마, 좀."

"까놓고 말해서, 너는 참을 수 있을 것 같나?"

참아? 뭘?

"쿨병걸린 꼬맹이가 나잇대에 걸맞게 비명지르는 꼴을 참을수가 있냐, 이 말이다."

"뭐, 쿨병? 쿠울 벼엉?"

사서의 양 볼을 잡고 쭉 쭉 늘어뜨리자, 한숨을 푹 쉰다.

"역시 꼬맹이는 꼬맹이야."

"이새끼가 그래도ㅡ"

­번쩍!

"히익ㅡ"

사서가 날 어깨에 들춰맨다. 짐짝마냥.

이새끼가 또, 또!

말 좀 그만 무시하라고!

"가자."

"어딜, 어딜 가?"

"어디긴 어디냐. 애들 찾으러 가야지."

"...알아? 어딨는지?"

내 물음에 사서가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으나, 또 좆같은 표정을 짓는다.

한심하게 바라보는 표정 작작좀 하라니까.

"하아...이건...너 혼자만 제일 먼저 정신간섭으로부터 벗어났기에 꼬인거다."

"뭔 개소리야, 그게. 정신간섭 벗어나면 좋은거지."

"...그냥 눈으로 직접 보는게 더 빠르겠군. 집이 어디지? 안내해라."

설마 지금 내 집 말하는건가.

지금 살고있는곳.

"그건 왜?"

"옷갈아입어야지."

"허?"

***

사서가 갈아입히기로 한 옷은, 놀랍게도 옷장 저 한구석에 자리잡은 교복이었다.

밝은 갈색과 흰색으로 이루어진 교복.

"굳이 거울 앞에서 돌아보는 이유라도 있는건가?"

"원래 처음 입어보는 옷은 다 이렇게 보는거야."

"이해할 수가 없군."

그냥 평범한 교복이었다.

아카데미의 교복처럼 중세분위기를 띄지도 않고, 그냥 현대에나 입을법한 교복.

"근데 교복은 왜 있는거지..."

"그야 당연히 학생이니까 있는거 아니겠나?"

아, 그런가.

그러고보니 상위차원으로 넘어왔을 때, 이 집에서 깨어났다.

마치 처음부터 이 집이 내것이라는 것 마냥.

그렇다면 이 세계에서는 내 역할이 따로 있는게 아닐까?

"근데 그 말은 조금 이상하지 않나?"

"응? 뭐가?"

내 추측에 사서가 딴지를 걸었다.

"네 말대로라면 이곳에는 너의 역할이 존재한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너의 부모는 어딨지?"

"그게 뭔...개소리냐?"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너는 학생 혼자 이정도로 넓은 집에서 혼자 사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건가?"

아니, 갑자기 뭔 쓸데없는 생각이야. 기분 나빠지게.

"애미애비 없을수도 있지 니가 뭔상관이냐."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아, 그딴거 필요 없어! 그냥 지금은 한서우랑 애들 있다는 곳이나 가자구."

"...뭐, 네가 그렇다면야."

마지막으로 복장과 책가방을 점검한 뒤에야, 사서의 차량에 올라탔다.

부웅, 하며 차도를 달리기 시작하는 자동차의 창 밖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묻고싶어서 안달났던 질문들을 쏟아냈다.

"너...넌 정신간섭은 어떻게 빠져나온거냐? 나야 그렇다쳐도..."

"끝없이 훈련하니 그런거지. 애초에 나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시도때도없이 정신간섭의 위협에 시달려야한다. 그러니 시간 날때마다 '트리거'를 하나씩은 필수로 가지고다니는 편이지."

"트리거?"

"정신간섭을 당하는 중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일종의 물품이지. 아무런 능력은 없다. 다만 그 물품을 머릿속에 각인시키는게 훈련이다."

복잡한 방법이네.

확실하긴 하겠지만.

"그럼 나 나왔을때 거리에 사람 없었던 건...그래, 네 그 초상능력이겠구나, 그건."

"말하지 않아도 되서 편하군."

"뭐, 그건 뻔하니까."

'공간을 확장시킨다'라는 능력을 어떻게 응용해야 거리에 사람을 지울 수가 있는건진 감도 안잡히지만...

까놓고 말해서 그 초상능력을 수십년 쓴 놈이랑 한 번도 안 쓴 놈 생각이랑 비교해서 뭘 하겠어.

체념했다.

"아, 근데 마지막으로 물어볼 거 하나 있는데."

"뭐지?"

"네가 애들 위치 알면, 그냥 네가 가서 데려오면 되는 거 아냐? 사정 설명하거나, 정신간섭 어떻게든 풀어서."

"..."

뭐지.

어째선지 사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대놓고는 아니지만, 은근히 얼굴이 붉어지는게...

"뭔데, 왜 그래?"

"...이미 한 번 해본 일이다."

"그래? 어떻게 됐는데?"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는 차내.

결국 사서는 내가 대답을 들어야만 고개를 돌릴 걸 알았는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신고당했다."

"뭐?"

"...학교 앞에서 이상한 아저씨가 어슬렁거린다고...신고당했다."

"큽ㅡ"

그 후로 학교에 도착하기까지 수십분동안, 차 안에서 쉴새없이 사서를 놀려댄 나는 덤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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