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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해주세요, 마수님!-149화 (149/162)

〈 149화 〉 3부 29. 막다른 길의 끝에서 만난 도시

* * *

번쩍.

마법진이 작동하며 일으키는 한줄기 빛.

저 멀리서 누군가 이 세계로 넘어오며 생겨나는 거대한 검은 돔.

실시간으로 속속들이 도착하는 해방자들까지.

어쩌면 이런 적막한 우주에서 가장 시끄러운 날이 오늘이 아닐까 싶다.

이번 일의 근본을 생각해보면, 사실 최종전투같은 거창한 게 아니라 그냥 적이 없는 토지를 점령하러 가는 것 뿐인데.

어쩌면 정말 극악의 확률로 소수의 적은 남아있을 수도 있지만... 어차피 점령에 성공하면 다 사라질 잔챙이들일 거다.

아마도, 그렇겠지.

그렇기에, 이번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그다지 큰 각오란 없었다.

그저, '아, 드디어 다 끝나는구나'하는 안도감이 9할.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꼭 일이 이상해지는 건 플래그를 세운 이후니까 말이다.

예를 들면, '별 일 생기겠어?' 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임한다던가...

뭐, 여튼.

우리는 마지막으로 우리가 해야할 일과, 인원을 점검한 뒤 활성화된 마법진의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

짹짹.

어째선지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새소리다.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아침마다 지겹도록 들었던 소리.

여느때처럼 침대에서 일어나 머리를 감고, 나갈 채비를 하기 위해 옷을 챙겨입는다.

옷장을 열자 보이는, 형형색색의 밝은 복장들.

그 중 적당히 튀지 않을만한 색의 후드를 걸쳐입고 집 밖으로 나섰다.

"...돌겠네, 진짜."

여느때처럼은 개뿔이.

애초에 옷장에 죄다 여성복밖에 있을때부터 눈치챘다.

'여기 대체 뭐야.'

가던 길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본다.

지나가는 학생들마저 나보다 눈높이가 높은, 정말 딱 어린애 시선에서 보는 세상이다.

내가 갑작스럽게 길을 멈추자 주변에서 시선이 몇몇 느껴지기 시작한다.

아니, 뭔 길가다가 멍때리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 시선이 몰려드는거지.

세삼 답답한 세상이라고 생각하며, 후드를 덮어쓰고 길을 계속 걷는다.

"...뭐가 어떻게 된거야, 이게."

분명 상위차원으로 넘어왔다 하지 않았나?

상위차원이 원래 이렇게 익숙한 곳이었어?

내가 지금까지 알고있던 상위차원은 뭐지? 그냥 내 뇌가 멋대로 망상해낸 결과물인가?

'아니, 그럴리가 없잖아.'

그때 나는, 3차원을 넘어 그 위의 차원까지도 인지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초차원적인 상태였다.

그런데 그걸 잘못 인지한다고? 말이 안되지.

그때와 지금의 가장 커다란 차이점은, 그때의 나는 인간이 아니었고 지금의 나는 인간이라는거지.

비록 신격을 한때나마 가진 적이 있어서 신격과 연결되어 있다고는 하더라도.

"인간으로서 인지하는 상위차원과 인간이 아닐때 인지하는 상위차원이...서로 다르다는 말인가."

빵, 빵.

대로변을 가득 메운 차들 사이에서 갑작스럽게 경적이 터져나왔다.

신호등의 신호가 바뀌고, 횡단보도에 모인 수많은 직장인, 학생들은 군집체마냥 일제히 길을 건넌다.

그들의 틈에 섞여 걸으며, 주변의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절대 인형같은 것은 아닌, '진짜' 사람들.

그렇다면 이곳은 대체 어딘가.

대체 무엇인가.

'평행세계라던가...?'

아. 생각을 멈추자.

자꾸 사고의 흐름이 이상하게 흘러간다.

현실에 대고 망상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일단은 중요한 것부터 생각하자구, 중요한 것부터.'

"자아, 그럼 첫째..."

길을 가던 중 만난 카페로 들어가며 중얼거린다.

"내가 처음에 깨어났던 곳은...누구의 집이지?"

처음의 정신간섭의 영향때문인지, 정신간섭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이후, 그러니까 집 밖으로 나와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를 발견했을 때.

그 이전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마치 머릿속에 안개를 씌운 듯 뿌연 시야들 뿐.

그렇기에 내가 깨어났던 집의 모양을 알 수가 없다.

'여자 옷이 있었던 걸 보면 적어도 원래의 내 집은 아닌 것 같은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요."

주문을 하고 한적한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자연스럽게 후드의 주머니에서 꺼내지는 스마트폰.

'...알 수 있는게 있어야지. 참.'

우선 상위차원이라는 건 '인간 기준'으로는 미지의 영역이니 뭔 일이 일어나도 받아들여야한다.

까놓고 말해서, 나도 인간으로서 상위차원을 경험해본 적은 없잖아?

최대한 조심해야지.

"후우...그리고 둘째."

커피를 받아오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그저 인형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인가."

사실 이 점에 관해선 짐작가는 바가 있기는 하다.

'이곳에 있던 사람들...전부 원래 세계에서는 죽은 사람들 뿐이네.'

얼핏보면 평범한 세상같아 보이지만, 전부 이미 죽은 사람들 뿐이다.

어떻게 아냐고?

그야...내가 과거의 정보에 한해서라면, 정말 극도로 숨겨진 정보가 아닌 한은 어지간하면 죄다 꿰고있으니까.

사람의 죽음을 숨기지도 않고, 아예 '사망처리'라는 정보를 남기는 현대에서, 죽은 사람을 판별하는 건 일도 아니다.

한때 신이었던 시절의 잔재지.

그 초월적인 정보량에 의존해서 이 사람들이 뭔지를 파악할 수 있었고.

'현실에서 죽은 이들이, 전부 이곳에서 다른 세상처럼 살아가고 있다...라.'

"이건 일단 사서랑 같이 생각해보자."

뭐...생각해둔 가설이 하나 있긴 하다.

어쩌면 이것도 '잔해'처럼 정보가 그 본질 아니냐는, 그런 추측.

'깊게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죽으면 그냥 그대로 인간의 본질로 돌아간다는 게 이상하지 않나?'

만약 본질로 돌아간다면, 그동안 살아온 인간의 인격은 어떻게 되는걸까.

어떻게 본질은 하나인데 인격만큼은 사람의 수만큼 존재하고, 그 전부가 각자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까.

그 대답은, 인격이 '인간의 영혼'. 즉, 인간의 본질과는 다른 개념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증명할 수는 없지만.

쉽게 말해서...

인간의 영혼이라 함은, 인간의 몸을 움직이는 '에너지'.

인격은, 그 움직임을 어떻게 조종할건지 결정하는 '의지'.

어쩌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본체가 죽어 인간의 본질로 돌아가고 난 이후에, 홀로 남겨진 인격이 아닐까...

그런 가설이었다.

"후우...생각해놓고도 이상하네, 뭔가."

쓸데없이 복잡하고, 간단하지도 않잖아.

어떤 과학자는 이 세상이 단 하나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원리로 움직이는 세상일거라 예상했는데.

이건 복잡해도 지나치게 복잡하다.

자고로 '간단'이란, 그 수가 적고 이해하기도 쉬운 걸 전제로 하는 말이다.

이렇게 '인간의 본질'이니, '인간의 인격'이니, 따로 나눠서 생각해봤자 그냥 생각만 더럽게 복잡해진다는거다.

일단 고유명사 다 빼고 생각해보면 괜찮으려나.

'인간의 본질은 연료라고 하고...인격을 영혼이라고 하자.'

물론 영혼이라 치부하기에는 너무 급발진이다.

이 인격들은, 실제로 존재하는게 아니라 그저 '남겨진 정보'들이니까.

"됐다, 됐어. 그냥 이렇게 생각하지, 뭐."

이상하게 과열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커피를 한모금 쭉 빨았다.

"그러면...마지막 세 번째."

다른 애들은 다 어디간거냐, 대체.

'얘들 다 어디간거야...'

한서우, 성화연, 마스. 혹은 사서...

그리고 이유리랑 델리지아도 있었지.

게다가, 사서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계속해서 이쪽으로 사람도 건너올 예정이었다.

"...이것도 내가 지금 뭘 어떻게 할 수는 없네."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들지 않은 오른쪽 손 위에 마력을 운용해봤다.

검은 연기가 음산하게 피어오르며, 여전히 정상적으로 동작하는 중.

'...좋아, 마력이 완전히 없는 세상은 아니라는거지.'

일단 이런 연약한 몸뚱아리로 상황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마법이라는 개념이 없었어.'

'신우주'였을 시절 살아온 지구와 굉장히 비슷한 모습이다.

마법은 없이 오로지 과학만을 통해 발전해온 세상.

그런 세상속에서 지금 내 마력이 멀쩡하게 작동한다는거다.

"...다른 애들도 쓸 수 있으려나..."

내가 이 세상에서 마법을 쓸 수 있는게 특이한건지 뭔지 잘 모르겠다.

일단 사람들은 못 쓰니까 내가 특이한거라고 해두자. 이 세상에서는.

'말이 상위차원이지, 사실상 그냥 평행세계잖아...'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평범하게 죽고, 감정을 느낀다.

과학을 발전시키고.

"...어쩌면 인간의 본질과, 인간의 인격은 서로 여행을 다른 곳으로 하는 게 아닐까."

인간의 본질이라는 건, 여행이 끝나면 돌아갈 집이 있는 것들.

인간의 인격이라는 건, 여행이 끝나도 돌아갈 곳이 없어 계속해서 다른 여행지로 가는 것들.

연료는 다 쓰고 나면 충전을 위해 집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여전히 남아 다음 세상으로의 여정을 계속한다.

하아...이게 뭔 개판난 상상이야, 지금.

"다...다 잊자."

내가 알고있던 개념을 전부 잊어버리자.

인간의 본질이던, 개념이던, 상위차원이던, 하위차원이던.

별 좆같이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을 그냥 잊어버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런가보다'하고 받아들이자.

이 세상은 내 상식으로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일단...해야할 건 두가지네.'

구슬을 둬야할 곳에 구슬을 두는 것.

그리고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를 애들 찾는것까지.

'한서우나...사서라면 몰라도...'

내가 처음 이 세상에서 깨어났을때, 정신간섭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나조차 옷장을 열어 그 안에 가득한 여성복을 발견하는 계기가 없었더라면, 정신간섭에 당했는지조차 몰랐을 정도로.

그렇다면, 다른 놈들은 이미 정신간섭에 당해서 이미 이 세상이 지들이 살아가던 세상이라 여기는 중이겠지.

아마 날 봐도 알아챌 것 같지는 않다.

'물론...흰머리가 굉장히 희소한 외형이기는 한데...'

지금도 봐라. 카페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나만 흘끗흘끗 쳐다보잖아.

대체 저 놈은 얼마나 노는 놈이길래 저 나이밖에 안됐는데 탈색이나 하고 다니냐면서.

'흐으, 뭔 소용이야.'

상대가 기억을 알아차려야하잖아.

막무가내로 날 소개할 수도 없고.

'...정신간섭을 건 놈은 대체 누굴까나...'

또 내가 모르는 초월적 존재같은게 튀어나오지나 않으면 좋겠다.

아니겠지?

여기서 더 튀어나오면 그건 또 뇌절이니까.

'...여정이 좀 길어질 것 같네.'

일주일 내에 후딱 해치우려 했다만, 예기치못한 방해가 들어왔어.

구슬 놓을 위치도 찾아야하고, 애들도 찾아야하고. 할 일이 적긴 한데 그 하나하나가 난이도가 욕나올정도로 높다.

'일단 격리장치 구슬 놓을 위치부터 찾자...'

대충 마력이 가장 높은 곳으로 가면 되겠지.

그곳이 현실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주는 상위차원의 포인트일테니까.

'움직이자, 움직여. 시간낭비할 틈이 없잖아.'

그렇게, 마법이 없는 세상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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