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화 〉 3부 28. 달콤한 꿀과도 같은
* * *
"인간은 인간이기 이전에 하나의 생명체."
그들의 앞에 서 있는 장교가 말한다.
"생명이란, 그 존재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남으려 하기에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것 뿐이다."
어찌보면 지독히도 원리주의적인 발언이지만, 이곳에 모인 이들은 그 속뜻이 따로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다.
"살아남아라. 우리는 인간이기 이전에 동물이고, 동물이기 이전에 생명이다."
인간의 본질이라는 개념을 아는 이들에게는 의미없는 선언으로만 다가올 수 있지만...
사실, 이 말에는 감정이 태반이었다.
인간이란게 사실은 이성만으로 돌아가는 기계따위의 존재가 아니라는 걸 지독하게도 잘 아는 이들이, 여기 모인 이들이었다.
"복잡하게 말할 것 없다."
그렇다면, 비록 인간이 불완전한 생명임을 알 지라도, 이왕 태어난 김에 행복하게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말이었다.
누가보면 피도 눈물도 없는 괴물. 하지만 그런 괴물조차도 본질은 생명.
생명으로 태어난 김에 생명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모조리 누리고 간다.
그것이 이들의 모토다.
"알겠나!"
"옙!"
그리고 그들은, 일말의 주저도 없이 안개에 휩싸인 도시의 안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
"모였나?"
"일단 데려올 수 있는 애들은 다 데려왔지."
아직 모두가 비몽사몽해있을 새벽 5시 무렵.
우리는 잠을 떨쳐내고 차디찬 눈밭 위로 나와있다.
건물이 겨울바람을 막아줘서 어느정도는 따뜻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되려 안으로 소용돌이치며 들어오는 바람때문에 체감온도는 더 낮다.
그래서 지금은 거의 움직이지조차 못 할 정도로 털옷을 둘둘 두른 중이지.
이 넓은 광장에는 한서우, 성화연, 마스, 사서, 델리지아, 그리고 나와 이유리. 이렇게 7명밖에 모여있지 않아 상당히 황량하다.
오전쯤 되면 다른 해방자들도 이 우주로 넘어올거라고는 하는데, 아직까지는 안보이네.
"무슨 일인지 설명은 해줘야지. 나는 설명도 못 받고 그냥 불려나왔는데."
하품을 해대며 마법진을 관찰하고 있을때, 뒤에서 마스가 말했다.
그러네, 쟤는 제대로 설명조차 못 들었구나.
새벽에 느닷없이 깨워져서 끌려나온거지.
"그럼, 다시 설명하지. 우선 이 구슬 먼저 받아라."
품 안에서 작은 지갑만한 자루를 꺼낸 사서.
그 안을 뒤적거린 사서는 곧 영롱한 구슬 몇 개 씩을 여기 모인 각자의 손에 쥐여준다.
"...이게 뭔데 그래?"
"지금부터 설명할거다. 한 번만 설명할거니까, 잘 새겨듣도록."
이어지는 사서의 브리핑.
허공에 빛무리가 나타났다 사라지며, 이번 일의 대략적인 개요를 그려낸다.
"우선, 이 마법진은 상위차원, 즉 인간 본질의 심상세계, 바로 그 아래로 향하는 마법진이다."
저 말에 대해서도 묻고싶은게 한가득이지만, 일단은 듣고있는 사람이 있으니까 나중에 물어보자.
"묻고싶은게 많겠지만 우선은 일부터 끝내지. 우리가 할 일은 간단해. 바로, 저 마법진을 건너 넘어간 곳에 구슬 하나씩을 두고오면 된다."
"그냥 두는거야? 재단 같은거 없이?"
"그래. 어떤 방법을 써서든 저 너머에 고정시키기만 하면 돼."
뭐, 나야 이미 들었던 내용이니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내 관심이 간 것은 그보다 앞선 한마디.
이 마법진이 통하는 곳은, 인간의 본질의 심상세계, 바로 그 아래라.
'말이 너무 복잡해.'
하지만 어느정도 뜻은 이해했다.
인간의 심상세계가 아니라, 인간 본질의 심상세계가 상위차원.
말장난 아닌가 싶을수도 있는데, 사서가 단어 선택에 그렇게 대충대충 아무런 의미나 붙일 일은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우리는 저 건너편, 전 구역에 이 구슬을 고정시켜야하지. 계속해서 마법진을 통해 이동할거다."
그 사이 계속되는 사서의 브리핑을 따라가며 생각을 정리해본다.
'...어쩌면, 인간 본질이라는 것과 인간이라는 게 따로 나뉘어져 있는건가? 그렇지 않으면 심상세계가 따로 존재한다는 게 말이 안되니까...'
하지만 너무 복잡하잖아, 이건.
인간 본질의 심상세계가 상위차원. 그럼 인간의 심상세계는 무슨 차원인데?
대학생이 잠자다 싸갈긴 망상의 결정체를 보는 것만 같은 끔찍한 설정이다.
뇌가 녹아내리는 것 같아...
"자! 여기까지. 질문있나?"
"나, 두 개 있어."
한서우의 질문을 받는 사서를 지켜본다.
벌써 브리핑이 끝난건가.
너무 생각에 잠겨있으니 시간조차 휙휙 지나간다.
들어가기 전에 타이밍 잡아서 질문 한번 해봐야지.
그렇게 한서우와 마스의 질문을 받고 슬슬 준비를 끝마치기 시작했을 때쯤.
나에게 다가와 힘내자고 머리를 쓰다듬는 성화연을 상대하고 난 뒤에야 질문을 내뱉을 수 있었다.
"야, 야."
이름조차 모르지만, 일단 '사서'라고 불리는 녀석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한창 마법진에 마력을 주입하며 집중하고있던 사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돌아본다.
"집중할땐 방해하지 마라. 이번엔 또 무슨 일이지?"
"나, 질문 하나 있어."
"질문이면 아까 시간 주지 않았나? 아니, 아니군...그래, 이렇게 개인적으로 해야할 질문이라도 있던 모양이군. 뭐지?"
그런 사서에게, 내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망상 하나를 말해줬다.
인간 본질, 인간. 그 둘의 심상세계는 무슨 차이냐고.
"..."
한동안 멍때리며 날 바라보던 사서는, 의도를 정확히 짚었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날 내려다본다.
뭐야, 표정 소름끼쳐.
"섬세함이 없어서 이런 차이도 못알아챌 줄 알았는데."
"아니, 야. 내가 무슨 섬세함이 없다고."
"그건 본인이 잘 알겠지. 아무튼...그래, 눈치챈 건 너뿐이니, 너한테만 말해주지."
어차피 이 마법진이 통하는 곳은 하나라, 사실 알아봤자 별 쓸모 없는 내용이지만 말이다.
별 쓸데없는 사족을 덧붙이는 사서.
알아서 쓸모없어봤자 뭐해, 궁금해서 물어보는건데.
살짝 투덜거리는 나를 뒤로하고, 사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쉽게 말하면...이런거지. 인간 본질은 단 하나. 그게 상위차원에 속해있는것."
"그렇지."
"그리고 인간의 개개인의 심상세계...그게 바로 차원의 틈새 역할을 하는거다."
찌릿.
그 순간, 번개가 치듯이 내 머릿속에 푸른 빛이 반짝였다.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어째선지 지금까지의 쓸모없던 모든 정보가 합쳐지는 기분..
이건...
"차원의 틈새가, 인간 개개인의 심상?"
"그렇지."
그렇다면, 이따금 현실에서 차원의 틈이 열리며 '잔해'들이 쏟아져나온 것도.
전부 인간의 개개인의 심상에서 튀어나왔다는 거잖아.
내가 확인해본 바, '잔해'들이 담고있던 것은 '잊혀진 정보'들.
그 잊혀진 정보들이란...
"무의식에 꿍쳐두다가 결국 갈길을 잃어버린...인간의 감정, 기억. 추억."
"하, 하하."
결국 해방자들이 싸우고 있던 것은, 인간이었다.
인간이라는 물리적 실체 그 자체는 아닐 지언정, 인간이 살아가며 나오는 온갖 부정적인 것들의 집합체.
즉, '잔해'들.
별 쓸모없는 깨달음이었지만...그래도 퍼즐이 풀렸다, 라는 것은 마음의 안정을 가져오기엔 충분했다.
"그럼 우리가 이곳으로 전이될 때 잔해들이 튀어나오는 건 뭔데?"
"...어쩌면 신격을 통해 인간 그 자체가 점차 상위차원의 존재로 승격되는 것일 수도 있겠군."
거 참 존나게 살벌한 이야기구만.
무서워서 잠도 안오겠다.
시간을 너무 끌면, 이곳으로 넘어온 인간들도 신적 존재로 거듭난다는거잖아.
자아를 상실한.
"빨리 해결해야겠네, 이거."
"그렇군. 그럼, 가자."
짝, 하며 손뼉을 친 사서가 광장의 모두를 불러모았다.
저 구석에 쳐박혀 잡담을 나누고 있던 성화연과 한서우도,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이유리도 모여든다.
"그럼 현 시간부로ㅡ 시작하겠다. 마법진을 가동시키지."
얼마 후, 광장의 한가운데에서는 화사한 붉은 빛이 터져나오고.
그곳에 모여있던 이들 중 델리지아를 제외하면 모두 마법진 안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왜..."
"너는 밖에서 망봐야지, 멍청아. 마법진은 누가 지키냐."
델리지아의 등짝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그래봤자 경쾌한 짝, 소리밖엔 나지 않았지만.
아니, 이새끼는 대체 몸이 얼마나 단단한거야.
"그나저나 넌...날 처음보는 걸텐데도 붙임성이 좋군. 그게 네 성격인가?"
"지랄하지 말고, 아저씨."
따지고보면 혐오에 가깝죠. 단지 본 시간이 벌써 몇 년을 넘었으니 그 감정이 조금 물러졌을 뿐이고.
넌 내가 언제 한번 날잡고 쥐어팬다는 것도 이미 버킷리스트에 들어있다.
"...살의가 느껴지는 군."
"업보가 있어야지. 쯧."
고개를 한번 휘젓고선, 나도 성화연을 따라 마법진의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푸른 빛이 사방을 휘감는 느낌과 함께...그 사이에 도착했다.
차원의 틈새.
이번 여정의 종착지에.
***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 것.
그러나 살아있는 것.
세상에는 그런 것이 무수히 많다.
인간중에서도 무수히 많고.
그리고 그 분류가 엘로힘으로 넘어가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자아가 없는 엘로힘이라니.
그런 것은 애초에 우주에서의 세싸움에서 진즉에 밀려나 소멸했을게 뻔하기 때문이다.
저 하늘, 별자리의 한구석을 장식한 엘로힘들 중에ㅡ 자아가 없는 엘로힘이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인간들이 이름붙이기를, '학자'.
탐구자와 그 방향은 비슷할 지언정 본질 자체가 달랐다.
탐구자는 스스로 인공지능을 만들어내는 과학자같은 느낌이라면, 학자는 그저 맹목적으로 지식만을 탐하는 인공지능.
그런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자아가 생겨나면 어찌될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자아를 다시 빼앗겨버린다면.
한때의 자아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한 꿀과 같았을 것이다.
다시 되찾고 싶어 발광할만한, 그런 달콤한 것.
학자가 자아가 있던 시절 만들어낸 조악한 우주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자신이 그 우주가 되어버렸을 뿐이지.
자신이 만들어낸 우주임에도, 학자 자신이 보지는 못한다.
그러나, 머릿속에 담겨있던, 우주를 창조했을 시절의 기억.
자신이 자아를 가지고 있었을 때의 기억.
그런 달콤함을 뿌리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 우주 한복판에서, 공간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눈을 깜빡이는 것처럼.
혹은 태동하는 것처럼.
고립에 저항하기 위한, 마지막 움직임이었다.
결국 자아가 있는 존재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했다.
이 세상에 오로지 자신, 즉 하나의 우주만 있는 것, 즉 자신의 우주가 다른 우주로부터 고립되는 것.
즉, 저 차원의 틈새에서 일어나는 일이 성공했을 때의 일.
그것은 그에게 두려움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