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화 〉 3부 25. 행복과 절망의 본질은 같다.
* * *
끝도 없이 모래바람이 몰아치는 황야.
무너져내린 주점을 빠져나와 한참을 걷던 나는,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막막해."
막막해!
진짜, 너무 막막하다.
심상세계라는 영역은, 그 하나하나가 하나의 세계로서 기능한다.
본질은 '인간'으로 같을 지언정, '생각'만큼은 분리된 것이 사람이니까.
생각이 완전히 똑같은 개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0.1초 단위로 그 선택지가 분화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단 0.1초만 지나도 나로부터 수천, 수만개의 다른 세계가 분화될 수 있다는 말이다.
선택지가 다양하니까 생각 또한 그만큼 다양해진다는거지.
그러니까...
"...여긴 대체 누구의 심상세계길래."
이런 거대한 세계에서, 그 누군가를 찾으려면 정말 시간이 무지막지하게 걸릴거다.
심지어 내가 추측하건데, 이 괴물은 한명의 인간으로만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최소한 사람 세 명 이상이 하나의 괴물로 융합된 것.
그러니, 이 심상세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뭐...결국 알아서 나한테 끌려오긴 할테지만."
문제는 그 끌려오는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다.
현재 이 심상세계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다'라고 볼만한 것은 나 하나 뿐.
간단히 말해서, 난 이 심상세계를 기준으로 이질적인 존재다.
그리고, 사람의 의식이라는 건 보통 가장 튀는 것, '이질적인' 것을 중심으로 모이지.
예를 들자면...
그저 평화로운 나날들만 지속되는 때의 생각.
오로지 하얀 빛으로 가득찬 생각속에.
갑작스럽게 하나의 붉은 점이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
그것이 강렬한 감정이라는 것이다.
사랑이나, 복수심이나, 분노, 증오같은 감정들.
인간의 심상세계는 사실상 무한하다.
무한한 하얀 빛, 즉, 평범한 생각들로 채워져있다.
그러니 그런 무한한 공간에 갑작스럽게 이질적인게 튀어나오면 시선이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거다.
당장 광활한 우주에 태양 하나만 버젓이 떠있다고 생각해봐.
아무리 눈을 돌리려 해도, 태양만 눈에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 외의 공간은 전부 빈 공간으로 여기고 말이지.
우리의 경우에는, 하얀빛의 '평범한 생각'들을 빈 공간으로 여기고, 강렬한 색감의 '감정'들을 존재하는 것으로 여긴다.
사람은 무언가 없다는 것을 잘 상상하지 못한다.
언제나 있는 것에만 눈이 가게 되어있다.
말이 장황하지만, 결국은 이런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심상세계에 존재하는 개개인의 심층의식들은 나를 중심으로 모여들 것이라는 점.
"얼마나 걸어야하는거냐, 앞으로."
안다고 해도, 결국 찾아다니는 건 나잖아.
피곤한건 매한가지다.
***
"...한 바퀴 더! 휴식은 금물이다!"
"뭐야, 이건."
한참을 황야를 배회하던 내가 마주친 건, 아카데미의 운동장만큼 거대한 크기의 연병장이었다.
다만 이상한 점이 있다면, 분명 군대를 위해 만들어졌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고작 한명뿐이라는 점 일까.
"의도를 모르겠네, 이건."
그 사람과 똑같이 생긴 검은 인간이 조교였다.
단 일초조차 쉴 틈 없이 쉴새없이 굴리는 그.
아주 뛰고, 날고, 엎어지고...별 쇼를 다 한다.
"벌써 지친건가! 쓰러질 틈 따위 없다! 당장 일어나라!"
"...어우, 꽉 막혔네, 아주."
이건 대체 뭐하던 놈의 심상세계일까.
연병장 나온거 보면 군인같긴 한데.
"...저거 너냐?"
뒤에서 느껴진 인기척에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 서있던 건 묘한 미소를 지은 채 연병장을 바라보고있는 군인 한 명이었다.
중년 정도의 외모, 장교복을 갖춘 한명의 군인.
"네, 그렇죠. 과거의 접니다. 아마도요."
"어째 추측형이네?"
"그냥 말버릇입니다. 습관같은거에요."
그런가.
"...이름이 뭐야?"
"잊어먹었습니다. 전 이미 죽었으니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고향으로 돌아갈 겁니다."
"뭐 어때. 사람이 하루에 몇 명이나 태어나는 지 알아?"
내 이야기를 들은 군인은 작게 실소를 흘렸다.
"그렇죠. 이 삶에서의 기억은 전부 망각한 채 새로 태어나겠죠."
"아마 눈 감자마자 바로 태어날거다. 사후세계같은 건 없으니까."
"...위안되는 말은 아니네요."
자연스럽게 품 안에서 시가를 꺼내든 그는, 나에게도 하나 건넨다.
"...나도 피라고?"
"싫습니까? 이런, 죄송합니다."
"기왕 줄거면 술이나 달란 말이야."
맥주나 보드카라면 마셔줄 의향도 있는데.
담배는 아무래도 이런 몸으로는 좀 꺼려진다고 해야하나.
"그런 몸이라면 술도 꺼려져야 하는 거 아닙니까?"
"뭐야, 너 내 생각도 읽을 수 있어?"
"...지금은 중요하진 않지만, 설명은 해드려야겠군요."
남자의 이름은 불명.
그러나 초상능력은 분명하다.
바로 인간의 정신에 대한 간섭능력.
정확하게는, 타인의 생각을 읽는다는 것.
비록 지성체의 생각만 읽을 수 있다 할 지언정 문제될 것은 없었다.
마수도 결국은 연구자들의 지휘 하에 움직이는 짐승들이었으니.
"어째서 이 괴물이랑 접촉했을때만 머릿속에 들어올 수 있었던가 했는데..."
"아마 제가 정신간섭 계열이라 그럴겁니다. 무의식적으로 정신이라는 영역을 조절해야한다고 봐야하나...그래서, 저 외부에서 당신이 저희와 접촉하는 걸 감지했거든요."
후, 하고 숨을 내뱉는 그의 입에서 뿌연 연기가 뿜어진다.
"솔직히 인간으로 살때는, 제 삶 하나가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이번 생이 전부라고."
"그렇냐."
"그래서 필사적이었죠. 대재앙때 친부 다 잃고 악착같이 살아온 것도 있고, 능력도 안되면서 복수심에 물든 것도 있고..."
하루하루를 자신을 채찍질하며 지내왔다.
결코 헛되이 쓰는 날 따위는 없었다.
가히 강박증에 가까울 정도였다.
하루라도 자신이 편한다면, 행복을 느끼는게 아니라 되려 죄악감을 느껴버리니.
"아카데미가 설립되고, 초기 졸업생이 되서 장교로 입대하고..."
"히어로로는 전향하지 않은거야?"
"아무래도 스스로 머리를 쓰는 타입은 아니다보니까요. 주된 역할은 정보담당이었죠. 교전지역에서 적의 생각을 잃고, 즉시 지휘부에 전달하는 역할."
일종의 전투장교다.
"적이 적인지라 생각을 읽는 것 만으로도 코피가 터져나오긴 했지만...마냥 못할건 또 없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저렇게 자신을 굴려대는데, 안되는게 더 이상한 거 아닐까."
"목소리가 작다! 다시!"
"아아아아악!!!"
연병장이 쩌렁쩌렁 울린다.
"...하긴, 그것도 그렇겠군요."
"그래서..."
고개를 돌려 군인을 바라본다.
"만족스러웠어?"
"..."
아무래도 죽은 놈이라 할 지라도, 죽어서 세상의 모든 진리를 파악한 놈이라 할 지라도 감정에서 자유롭지는 않은 모양이다.
한평생을 인간으로 살아왔으니 당연한걸지도.
"...만족스러웠냐 물어보신다면...글쎄요."
연구자들에게는 복수도 성공했다.
알 수 없는 존재들과의 전쟁도 이제 막바지로 치달았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의 '평화'가 찾아온다.
비록 평화가 찾아온 뒤에도 인간들끼리 죽어라 싸워대겠지만, 그건 적어도 인간들끼리다.
더이상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초월적인 것에 대한 공포도 필요 없다.
다만 그런 미래를 보기전에 죽어버렸네.
다시 태어나겠지만...이번의 삶은 끝이다.
"슬펐죠. 전체적으로는. 아니, 어쩌면 분노했던 일이 훨씬 많았던 것 같군요."
"..."
후우, 하고 다시금 연기가 뿜어졌다.
한번 허공을 멍하니 바라본 그는 피식 웃으며 말을 잇는다.
"그래도 뭐, 살아갔으니까요. 전 살아있었습니다. 이 시대를."
"낙관적이네."
"살아있다는 건 언제나 최고의 축복이니까요. 변화한다는 건..."
연병장에서 문득 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렸다.
"미련은 없어?"
"...미련, 말입니까?"
"저때 조금만 더 느슨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행복하게 살았다면, 하는 소망같은거 있잖냐. 평범한 욕망인데."
흐음, 하며 턱을 쓸던 그는 작게 웃는다.
"제가 선택한 길이고, 미래고, 행복입니다. 제 삶에서는 저게 저의 행복이었구요."
"...너의 삶에서의 행복이란 뭐길래?"
"허무하게 죽는다 해도, 이 세상에서 뭔가 내가 이루고 간 게 있다...라는 느낌이겠네요."
죽을때가 되서야 느낄 수 있는 행복이라는 것이다.
"보통은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걸 자신의 행복으로 선택하던데 말이다."
"저는 뭐...저렇게 선택했습니다. 어릴적의 경험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은 모두 마음 한 구석에 저런 그림자를 품고있다.
대재앙이란 이미 한 세대 전을 휩쓸었던 것이니.
고작 이삼십년 지난다고 사라질 상처는 아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건 언제 이루어지지?"
"지금도 계속 진행중입니다. 기억이 계속 증발하고 있어요. 이제는 부모의 얼굴조차 간신히 기억나는군요. 아마 하루 이틀 정도 지나면 저는 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 그럼..."
수고했다.
어깨를 툭툭 두드려줬다.
"산다는 게 말이야, 좆같은거거든, 사실은."
"신님한테 그런 말 들으니 신선한 기분이네요."
"다 경험담이야. 내가 알아."
그래도...
"막상 살아보면, 마냥 좆같은 건 아니지. 좆같음 9할에 행복 1할."
"...인정합니다."
연병장은 나에게 보여주기 위했던 것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땅으로 가라앉는다.
황야의 거친 모랫바람과 함께.
"그 행복이라는 게 알 수 없는 미래때문에 오는 거라는 것도....참 아이러니하지."
"그렇죠. 좆같은 것도 사실 알 수 없는 미래때문에 오는거니까요."
모순되네.
그래도, 뭐.
"행복하냐?"
"잘 모르겠는데, 어떤 관점에서는 행복하죠."
살아가는 건 행복했습니다.
그런 말과 함께 그의 육체가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참..."
좆같은 세상이야. 안그래?
그래도 이쁘면 됐지, 뭐.
* * *